온 국민을 탈진 상태로 몰아넣는 날들이 지나고 있다. 야속하고 야속하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절망적인 예감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담긴 아이들 동영상이 마지막 편지처럼 매스컴에 소개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구조 헬기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선생님의 안부를 걱정하고, 애써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 무서운 시간을 견디려했다. 그것이 지상으로 보내는 마지막 소식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파도 파도 의문만 남고, 봐도 봐도 가슴만 아프다.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진정되질 않는다. 어디서 이 모든 잘못이 시작된 걸까. 우리 안에 깃든 저마다의 파시즘이 이런 총체적 난국을 자초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이것저것 생략하고 권위주의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총집합체를 파시즘이라 쳐두자. 달리 말하면 개별자의 개성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모든 체제는 파시즘에 해당한다. 나아가 상하 구별, 관료 시스템, 예절 강요, 상명 하달 등의 의식은 모두 파시즘의 곁가지들이다. 이것들이 크나큰 위급 상황에서 제 구실을 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위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안전 불감증에다 복지부동이고, 책임 떠넘기기와 뒷북일 뿐이다. 파시즘의 전형적 행태가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또 다른 징후의 예고로 작동할 뿐이다.파시즘은 언어로 구체화된다. 언어는 체제를 유지하고 규범적 인간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도구 중의 하나이다. 체제에 순응하게 하고, 실수를 조롱하게 하며, 경직된 분위기로서 질서를 유지하게 유도한다. 모든 길들임은 언어를 수단으로 한다. 그것을 잘 아는 책임자나 리더일수록 언어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리더가 무책임으로 수수방관할 때 파시즘에 길들여진 개별자는 유연한 사고를 방해 받는다. 언어가 무의식을 지배할 만큼 파시즘적 언사들에 민중은 그만큼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권력 앞에 개인이 깨어 있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김살로메(소설가)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