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집착하고 통찰하는 바르뷔스 식 아웃사이더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보는 것과는 무관한 아웃사이더 유형도 있다. 가시적인 사회적 관계망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모든 아웃사이더들이 닮았다. 진실을 보려하고 그것에 충실한 것은 모든 아웃사이더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카뮈가 창조해낸`이방인`의 뫼르소는 거기에 더해 정직한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여기서 정직이란 도덕적 책무로서의 정직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가 요구하는 본능적 정직을 말한다. 뫼르소에게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카뮈가 말하려한 정직성이었다. 뫼르소에게 `엄마`에 대한 애정의 유무와 애도의 형식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 두 개를 연결 지어 판단한 것은 세상의 눈들이다.
아웃사이더는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타자에 기대지 않으니 눈치나 망설임을 친구로 두지 않는다. 우정을 구하거나, 애정을 갈망하거나, 연민을 부르지도 않는다. 악이든 선이든 있는 그대로의 본질에 충실하다. 따라서 욕망하고 번민하는 보통의 존재로 남는 한 우리는 결코 이방인의 뫼르소가 될 수 없다. 진실을 몸소 실천하려는 트러블 메이커의 운명이 아웃사이더의 길이라면, 인사이더는 관계의 지속을 바라는 평화주의자들이다. 정직하지 않을 예의가 정직할 무례보다 덜 위험하다는 암묵적 약속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간다. 뫼르소 식 아웃사이더가 드물어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