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육반(肉飯)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19 02:01 게재일 2014-06-19 19면
스크랩버튼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독후감 수상작을 감상하다가 위의 문장을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독후자가 책 내용을 인용한 문장이었다. 저 문장 하나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읽은 책이지만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육반`이라는 낱말에다 한자를 병기했다면 혼란을 줄일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밑도 끝도 없는 저 문장 자체는 해독불가였다. 사전을 찾아봐도 육반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질 않는다. 번역자 임의로 만든 말인 게다. 검색엔진을 몇 번 돌린 끝에 인용문의 앞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닭고기와 계피 뿌린 육반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갓 쪄낸 육반처럼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먼저 먹읍시다. 먼저 배를 채워놓고 그 다음에 생각해봅시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이렇게 앞 문장을 제 자리에 찾아 넣으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 설령 한자를 표기하지 않았다 해도 맥락만으로 `육반`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현재를 살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내숭과 과장이 없는 조르바를 설명하기 위해 저 첫 문장을 인용했다는 걸 알겠다.

자유인 조르바는 담백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양념이 섞인 언사나 복잡한 사색은 질색한다. 맛난 고기가 앞에 있으면 우선 즐겨 먹고, 내일 갈탄광에 나가야 하면 그 걱정은 내일 하는 인물이다. 조르바에게 고급한 영혼 앓이는 사치다. 진정한 자유인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느끼는 자기 때문이다. 그 인과관계를 알면 저 첫 인용문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중요한 건 맥락이다. 한 문장 안에 진실을 다 담을 순 없다. 답은 앞뒤 연결 고리 안에 있다. 따라서 아귀 맞지 않는 단편적 사실 앞에서는 그 어떤 판단도 유보 상태여야 한다. 궁하면 구하고, 구하면 해결 된다. 상황을 그르치기 전에 먼저 답을 구하려는 노력이라도 할 것. 그것이 `육반` 에피소드가 내게 준 소득이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