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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스무 살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03 02:01 게재일 2014-06-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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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겪었다는 사실을, 그 모든 사람을 스무 살 무렵에 다 만났으며 그 모든 길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걸었습니다. 그 모든 기쁨을, 그 모든 슬픔을, 그 모든 환희를, 그 모든 외로움을, 스무 살 무렵에.”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에 나오는 공감 가는 문장이다. 스무 살을 온몸과 맘으로 건너온 청춘이라면 작가의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일상은 지리멸렬하기만 했다. 공부는 어려운데다 현실성이 없었고, 진전 없는 청춘사업은 허깨비가 되어 눈앞을 어지럽혔다. 고뇌와 번민의 길은 온통 내게로만 몰려오는 것 같았고, 경제적 궁핍은 스무 살 특유의 빳빳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저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몰입하다가도 이 길밖에 없을 것 같아 타협하는 현실의 나날이었다. 실은 몰입도 타협도 모두 내 영역 밖의 일이었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스무 살 시절에 배운 웃자란 운명론이었다. 모든 게 불분명하고 모든 게 부주의했으며 모든 게 부조리하다는 것 또한 그 시절이 깨우쳐준 시니컬한 인생론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 시절이 지나자 모든 게 분명해졌다. 새로운 인연도, 새로운 학문도, 새로운 미래도, 여하튼 새로운 것이라면 그 무엇도 새롭지 않다는 사실. 스무 살 겪어야 했던 삶은 경이로울 정도로 역동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대책 없이 아팠고, 주책없이 깊어지려고만 했다. 하필이면 스무 살 즈음에 겪은 그 모든 것들이 화인처럼 맘속에 새겨져 있기에 스물에 모든 삶을 살았다고 우리는 믿게 된다.

그렇지만 삶은 스물 이후로도 한참 계속되었고, 여전히 그 삶은 진행 중이다. 스물에 겪었던 모든 일들이 되풀이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 시절에 느꼈던 그대로의 삶이 지속되는 건 아니다. 더 깊어지고, 더 관대해졌으며, 더 충만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것은 증명된다. 인생 스무 살은 계속되지만 결코 그때의 스무 살과 같을 수는 없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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