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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도 예술이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10 02:01 게재일 2014-06-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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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도 예술이다. 수요 있는 곳에 공급 있다. 모두가 고급 예술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의 대중은 무난한 자극, 풍성한 인간미, 따뜻한 정서에 기초한 쾌락을 원한다. 한때 이발소 그림이란 게 있었다. 어린 시절 `가리야개`라는 단발머리를 하기 위해 이발소에 가면 실제 그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소녀의 기도나 밀레의 저녁종 같은 모사품이 걸려있을 때도 있었고, 북유럽 풍 침엽수가 호위하는 호수가 나오는 풍경화가 걸려 있을 때도 있었다.

이발소 유리벽 위에 그들이 걸려 있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명백했다. 찾는 손님에게 쾌락과 위안을 주기 위함이었다. 마치 고속버스 운전수가 틀어놓은 뽕짝 음악에 누군가는 정서적 충만으로 여행이 즐거워지는 이치와 같다.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발소 그림과 고속버스 내의 뽕짝음악은 `키치`이다. 키치는 보편적이고도 대중적인 감성에 호소한다. 과격과 과잉을 거부하며 침체와 허약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달콤하며, 영속적이고, 불변하며, 일상적이며, 수평적인 것을 영접하려는 속성이 키치이다. 무리한 것은 대중적일 수 없고 키치와도 멀어진다. 대중에서 멀어질수록 예술성과 가깝다. 예술성과 키치는 상극의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충하는 면이 있다.

누구나 예술성을 추구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키치적 속성을 지녔다고 해서 그것을 폄하하거나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 낼 필요도 없다. 사람은 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성장한다. 대중성을 예술적 취향 쪽으로 끌어당길 수는 없다. 모든 건 물 흐르듯 해야 한다. 인간적 설득이나 인위적 노출에 의해서 예술성이 획득되는 건 아니다. 키치적 감흥이 주는 긍정성을 다 겪고 난 뒤에 어느 순간 몰려드는 정신적 자족감. 이런 순간을 어떤 이는 맛본다. 설사 그것을 놓쳤다고 잘못된 건 아니질 않나.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키치적 정서가 예술이 못 된다고 설레발치거나 설득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반성한다. 모든 키치적 정서는 순정한 사람들이 거치는 기본 감성인 것을.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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