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치 붓과 그림용 나이프를 든 밥 아저씨가 시청자를 향해 속삭인다. “자, 이 왼쪽 공간이 심심해보이죠? 벤다이크 브라운을 이용해 나무 한 그루를 그려 넣어볼까요? 티타늄 화이트를 살짝 덧발라 주세요. 나이프로 이렇게 몇 번 긁어 주시면 완성!” 팔레트를 든 그의 손길이 빈 캔버스에 닿으면 금세 한 폭의 풍경화가 탄생했다. 마술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곤 했다. 붓질 몇 번 하고 나이프로 긁어주고 덧붙질로 갈무리했을 뿐인데, 희한하게도 앙상한 나무에 잎이 돋고 숨어 있던 호수가 살아나며 밋밋했던 오솔길이 깊어지곤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한 뒤 밥 아저씨는 꼭 이런 멘트를 남겼다. “참 쉽죠?” 시청자를 약 올리는 듯한 묘한 이 말에 사람들은 중독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너도나도 붓을 들었다. 누구나 아저씨처럼 소매 걷어붙이고 팔레트를 들기만 하면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알았다. 아저씨가 그토록 예찬해 마지않는 벤다이크 브라운과 티타늄 화이트 그리고 올리브 그린을 사용해 저마다 풍경화에 도전했다. 밥 아저씨처럼 될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조했다. 쉽기는 개뿔!
전문가에게나 쉬운 일이지 초보자에게 쉬운 게 어디 있겠나. 보거나 말하거나 듣기에나 쉽지 뭐든지 손수 겪어 보면 쉬운 게 세상에 어디에 있나. 적어도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려면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걸. 너무 쉬워 보이는 밥 아저씨의 그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흉내 낼 때나 별 것 아니게 보이지, 실제 캔버스 앞에 앉는 순간 아득한 절망감에 몸서리치게 된다. 쉬워 보이는 한 가지 길엔 재능과 함께 언제나 땀이란 수고가 따라다닌다. 참 쉽죠? 이 말 뒤에는 부단히 노력했죠. 라는 답이 숨겨져 있음을 알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