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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17 02:01 게재일 2014-06-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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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에 들었다. 물총새의 날갯짓을 신호로 일순간 숲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난 데 없는 소낙비에 나뭇잎들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제 몸을 물방이질에 맡기고 있었다. 맞을 바에는 제대로 맞는 게 나을 것이었다. 빗줄기라는 불가항력의 회초리를 빌려 잎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렇게 단련된 그들은 물을 머금어 더 푸르고 싱싱해질 것이었다.

비 내리는 숲속 나무처럼 사람 숲에도 `말`이라는 비가 내린다. 사람 있는 곳에 말 있고 말 있는 곳에 오해가 생긴다. 오해는 필연적 상처를 남기고 그것이 아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비 맞은 숲이 더 푸르러지고 무성해지듯 말 비를 맞은 사람도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렇게 숲이 우거지듯 사람도 정반합의 성장을 거듭해간다.

사람 사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필요악일 수도 필요선일 수도 있다. 폐쇄적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전자라 여길 것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바라는 사람은 후자라 생각할 것이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인간관계이긴 하지만 적어도 비관적인 관계론만은 피하고 싶다. 사람 곁에 있을 때 얻는 게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가 아무리 성가시다해도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위안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 없는, 사랑 없는 일상이 가당키나 한가.

누군가 말했다. 우리에겐 삼만 명의 행운 천사가 있다고. 한 사람을 알면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 네트워크를 작동하면 끝내 삼만 명의 사람과 맞닿는다고 한다. 비록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코 이 과정을 무시해도 좋은 건 아니다. 사람 없이 사람 살 수 없다. 더구나 우리 관계는 이 삼만 이라는 숫자 안에서 나고 핀다. 내게 행운과 불운을 주는 사람 역시 이 숫자 안에 포함 되어 있다는 말이다. 행운을 바란다면 누구에겐들 함부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 삼만의 숫자만큼 행운을 가질 것인가, 불운을 취할 것인가. 사람 사이가 필요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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