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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하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02 02:01 게재일 2014-06-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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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휴일, 남편이 기획한 트레킹에 따라나섰다. 왕복 15킬로미터,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 걷기란다. 기관지가 좋지 않고, 기초체력마저 약하지만 산행이 아니라 숲길 걷기라니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힐링 코스이니 힘들면 쉬엄쉬엄 가면 되겠지 하고 편하게 맘먹었다.

그런 생각이 대책 없이 낭만적이었음이 금세 증명되었다. 안내를 맡은 분은 고희는 넘어 보였는데 급한 성격에 걸음새 또한 날렵하다. 스무 명이 넘는 조원들의 선봉에는 장정들이 포진해 있다. 뒤따르는 여성들 걸음새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몇 걸음 따라 떼는데 이건 내 페이스가 아니다 싶다. 한마디로 속보 경쟁이다. 힐링 체험이 아니라 누가 튼튼한 다리와 호흡기를 지녔는지 자랑하는 대회인 것 같다. 너무 빠른 행보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작 나 말고는 모두 잘도 따라 붙는다. 출발해서 재 두 개를 넘고 나니 이미 일행과 나는 한참 멀어져 있다.

숨은 곧 멎을 듯하고 기침은 계속 나오고 머릿속은 샛노랗다. 처음부터 이러면 무리니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안내자가 말한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창피했지만 한편 울컥했다.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다행히 남편이 나서서 적극 변호를 한다. 오르막에서만 이렇지 평지에서는 따라갈 수 있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저렇게 말하는 남편 속은 얼마나 쓰릴까. 뒤처진 마누라를 묵묵히 당기고 밀고 하느라 고생한 남편 보기에도 부끄러웠다.

하늘 한 번 쳐다볼 겨를이 없는 트레킹이 더 이상 즐거울 리 없다. 오직 한 방향이라도 성공해야겠다는 간절한 바람만 있을 뿐이다. 밥 차가 보이는 반환점에 이르자 그나마 해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버렸다. 겨우 8킬로미터를 걷는 선에서 체력의 한계와 타협해야만 했다. 패잔병처럼 차에 실려 하산하는 신세가 됐다. 몸이 곧 정신이고 정신은 곧 그 사람이다. 몸과 정신은 함께 건강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의 건강만으로 인생이란 트레킹을 완주할 수 없다. 덜 다진 몸으로 정신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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