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뻗어도 닿지 않은 가지라면 점프하면 된다. 점프해도 만질 수 없는 포도라면 주변이라도 둘러봐야 한다. 농원 한쪽 지지대로 쓰던 허드레 막대기라도 있을 것이고, 가지치기하다 세워둔 사다리라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다른 여우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친구와 합심해 목말을 타면 그 포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손에 쥘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뒷전에서 씁쓸히 자기합리화의 자괴에 빠지는 것보다 앞에서 당당히 자신감의 노를 저을 수 있어야 한다.
저 말처럼 쉽다면 이솝 우화가 생겨났을 리 없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솝이 말한 `신 포도의 여우` 모습으로 살아간다. 나머지 십 퍼센트 미만의 사람들만이 신 포도를 극복한 `단 포도의 여우` 모습을 보여준다.
눈앞의 저 포도, 달디 달다는 것을 뻔히 안다. 하지만 환경적 물리적 요건이 얽힌 데다 자기확신이 없으니 필요 이상으로 심적 위축감을 맛본다.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지레짐작으로 쉽게 포기하고 만다. 시도도 않은 채 도망부터 가버린다.
뭔가에 일가를 이루고 싶다면 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의 주술도 나무랄 게 아니다. 같은 일을 해도 결핍의 낯빛으로 억지를 연출하는 것과 충만의 화사함으로 자기 긍정을 견지하는 것은 그 결과에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안온한 자기 확신을 실천하고 싶어도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한 자괴감이 방해꾼으로 등장하곤 한다. 저 포도는 신 포도가 아니라 분명 단 포도이다. 우리가 먹지 않고,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신 포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일상의 단 포도를 영접하기 위해 내 당장 버려야 할 것은 가시철망 같은 자기 부정의 자세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