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을 마치고 들어오니 그 다음 약속까지 한 시간의 짬이 남았다. 어쩐지 하루가 몹시 피곤했다. 하품이 나고 발뒤꿈치가 당기고 눈꺼풀이 감긴다. 피곤하면 생기는 신체적 현상이다. 나도 몰래 쌓인 피로가 한 순간에 터지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 충전을 해야만 했다. 한데 그 잠깐이 잠깐이 아닌 게다. 눈을 떠보니 약속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침 닦을 새도 없이 허둥지둥 뛰쳐나갔다. 비몽사몽간이라 늦다고 연락할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늦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 오직 더 늦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만 꽉 차오른다. 오다가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던 멤버들 앞에서 자다가 늦었노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창피함 때문에 피곤증이 확 달아났다.
“인생에서 가장 피곤한 것은 불성실한 것이다. 사람들은 가면을 써서 사회생활이 피곤하다”고 앤 머로 린드버그가 말했다. 피로는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밤 도둑처럼 조심스레 다가온다. 린드버그 식으로 주석을 붙이자면 폭풍우에는 가면이 없지만 밤 도둑에게는 복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삶이 점점 피로해지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인간적 가면이 피로를 앞당기는 건 맞다. 하지만 그 피로가 불성실 때문이 아니라 성실하고자 하는 자기 검열에서 오기 때문에 더 피곤한 건 아닌지. 이래저래 피곤은 연민을 부른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