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센티멘털해지면 어떠랴, 조금 유치해지면 또 어떠리. 애상의 시간을 불러 모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 한 구절을 만날 수 있는 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자 행운이다. 한 편의 시에서 우리는 시간이란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아련한 불빛을 만나기도 하며, 속울음을 삼키는 심장의 따끔거림을 만나기도 한다. 감상적인 시, 애잔한 시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잠 못 드는 밤이라면 이런 시에 누군들 홀리지 않을 것인가.
“전부 당신 같아서 붐비는 빛 한 올도 허투루 받을 수 없습니다 / 천지사방 당신이니 암만 발버둥 쳐도 나는 당신한테 머뭅니다 / 그래요, 당신 만난 날부터 나는 속수무책입니다 (중략) / 헤픈 봄볕을 한줌도 자루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되지 않을 일임을 압니다. 그런데도 비워도 비워도 다시 당신이 들어차는 내 속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김해민 시인의 `안부` 일부이다. 붐비는 빛 한 올에 우주가 있고, 그 우주 속 천지사방은 당신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씩의 당신은 존재한다. 발버둥 쳐도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당신이 존재한다. 욕심이자 모순이며, 절망이자 바람인 당신. 번민으로 가득 찬 `간절한 바람`인 그 당신을 위하여 오늘도 잠 못 드는 이 얼마나 많은가. 무릇 평화, 그저 안정, 다만 웃음일 뿐인, 당신 없는 삶이란 얼마나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인가.
“내 마음 읽으시거든 보리누름에는 걸음해주세요 / 난출난출 보리잎 보며 어디쯤에 오시는 줄 알고 가만히 눈감겠습니다 / 보리보다 노랗게 내 속 익기 전에 부디 당신이 먼저 와 주세요 / 볕이 여간 흔전하지 않습니다 ” 보리누름에 읽기 좋은 이토록 흔전한 시 한 편의 위안이라니. ”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