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꽃은 거름에서 핀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02 02:01 게재일 2014-10-02 19면
스크랩버튼
가을 들녘을 지나면 구린내가 진동한다. 은행나무 열매 익는 냄새인가 싶었는데 거름냄새란다. 닭똥 등 동물분이 섞여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지독한 냄새는 여전한데, 그것이 똥이 아니라 거름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저 거름더미에서 향기로운 국화가, 고소하고 단단한 배추나 무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참을 만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향기 진하고, 자태 아름다운 장미일지라도 그 출발은 냄새나는 퇴비더미이다. 결실을 위해서는 거름냄새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그 거름이 자신이 뿌린 보석인지도 모른 채, 코 막고 남의 똥 보듯 하는 이들도 있다. 잎 나고 꽃피고 열매 맺어도 거름 덕인지를 알지 못한다. 도리어 냄새 난다는 그 이유만으로 제가 삭인 거름마저 부정한다. 막상 꽃피고 열매 맺으면 맨발로 뛰쳐나가 그 꽃과 열매가 제 것이라고 설레발치기 바쁘다. 그러다 무성의하게 거름 내지 않은 채 씨를 뿌려, 농사를 크게 망치고 나서야 그 거름이 보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 어떤 눌변가라도 자기변호 앞에서는 달변가가 된다. 목소리가 커지고 조금 알수록 그게 전부인양 소리친다. 소리친 열배의 낭패를 당하더라도 일단 내질러놓고 본다. 이 역시 정치인들에게 어울리는 비유이다.

여린 잎으로 피어나 푸름 짙어지는가 싶다가도 끝내 떨어지고 마는 게 인생이다. 무성할 때 낙엽을 내다보고, 강할 때 쇠락을 미리 읽을 수 있어야 사람이다. 그간의 역사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오늘의 허세나 교만은 내일의 수렁이나 자책을 예견한다고. 세상엔 말로 할 수 있는 허상의 것보다 말할 수 없는 본질의 것들이 더 많다. 비열한 사람들은 자신의 들보만한 잘못은 숨기고 티눈만한 타인의 실수는 잘도 말한다. 겸허한 사람들은 자신의 티눈은 자책하고 타자의 들보는 보듬는다. 후자의 성정을 지닌 자들이 정치를 관장하면 좋으련만 세상은 언제나 바라는 것의 거꾸로 될 때가 많다.

꽃은 거름에서 시작하고 거름은 냄새가 나야 거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