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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해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9-16 02:01 게재일 2014-09-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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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전하게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를 안개 밖으로, 발각되기 쉬운 탁 트인 바깥으로 끄집어내려고 계속 애를 쓴다.” 켄 킨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이다. 편한 수감 생활을 원하던 맥머피는 미치광이로 위장하는 바람에 정신 병원에 위탁된다.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권위와 억압의 상징인 수간호사를 상대로 그는 끊임없이 저항한다. 농아(聾啞) 행세를 하는 브롬든은 내레이터로서 그 둘의 갈등이 주축이 된 병동 생활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소심하거나 허세에 쩐 수용인들은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콤바인으로 명명되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폭압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맥머피가 벌이는 적극적 투쟁을 보면서 알아차린다. 교묘한 학대와 부당한 처우 속에 치유불능 상태가 되어가는 수용자들. 그들에게는 분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전기충격이나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무시무시한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에게 맥머피는 쉼 없이 `깨쳐라, 일어나라`를 강조한다. 위기관리에 구멍이 생길 때 병원 측에서 쓰는 안전한 방법이 저 안개 요법이다. 흡입구를 통해 몽롱한 안개가 쏟아져 나오면 거칠고 흥분했던 환우들은 모호함 속으로 제 존재를 숨겼다. 저항할 수 없는 굴욕 앞에 숨을 수 있다는 위안만큼 효과적인 약도 없었다.

그토록 `탁 트인 바깥으로 끄집어내려고` 애썼던 맥머피는 스스로 전기충격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맥머피 도발의 종착역은 패배였지만 그것이 소설의 패배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의 영향으로 브롬든이 탈출을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위엄은 그 어떤 억압과 폭력 보다 윗자리임을 브롬든이 알게 된 것은 맥머피의 통찰 덕이었다. 거대한 억압체인 뻐꾸기 둥지를 바꿀 수 없다면 그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것밖에 없다. 소설 머리말에 나오는 인디언 동요처럼 안개 자욱해도 `한 마리는 동쪽으로,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나머지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그렇게 날아올라 보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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