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가까울수록

말로만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카피가 있는 것처럼, 때에 따라 언어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상대가 나에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는 말 아닌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눈빛, 밝은 안색, 다정한 손짓, 다가오는 어깨, 끄덕이는 고갯짓 등 누군가의 긍정적인 이런 리액션은 상대를 신뢰한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하는 관계의 가장 대표적인 범주가 식구일 것이다. 식구끼리는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 거기서 파생되는 직감만으로도 어떤 상황이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서로 알 수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의 이런 비언어적 표현을 잘 이해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가깝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의 표정이 우울한 건 맘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제 상황 때문이지 무심하게 보이는 다른 식구 탓은 아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의 비언어적 속성에다 제 욕구불만을 투사해버린다. 누구보다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이면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아니냐며 예민하게 군다.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일수록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데 습관화된 안일함은 가까운 식구 앞에서 종종 무기가 되곤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민하거나 예리한 시선이 아니라 섬세하거나 배려하는 눈을 지녀야 한다. 예리한 눈은 무언가를 평가하는 데 필요하다면 섬세한 눈은 상대와 교감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리한 눈이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고 상대를 머리로 훑는 것이라면, 섬세한 눈은 상대의 약점을 그러안고 상대를 가슴으로 보듬는 것이다. 사람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의 대상이다. 하물며 가까운 사람끼리라면 말해 무엇하랴.별 뜻 없는 타자의 몸짓을 내가 곡해하는 것은 내 눈이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타자의 약점이 크게 보이는 만큼의 내 결점이 내 등에 달려 있다. 등에 붙은 내 티끌은 나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정한 오늘의 탐구 과제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8-07

악행의 범위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돈의 사회학에 노출되어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태아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한 순간까지 우리는 돈으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평생을 살면서 돈 없어서 서러웠던 기억, 돈 때문에 가슴 쓸어내렸던 아픔 한 번 지녀보지 않은 이 몇이나 될까. 돈으로 인격을 살 순 없지만 돈이 없으면 그 인격이 망가지는 것은 찰나이며, 돈 없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한 진리이다. 한 마디로 돈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 귀한 줄 알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돈 부리는 방법을 학습한다. 그 일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각자의 방식대로 노동을 한다. 이때의 `돈 벌기`는 타자에게 그 어떤 해악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이런 보통의 생각만 지녀도 평화로이 어울릴 수 있을진대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돈은 필요한데 노력 또는 노동을 하기 싫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살이가 무서워졌다. 돈 때문에 또래를 성노예로 전락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잔인하게 죽이고, 돈 때문에 동료를 구타해 숨지게 하고, 돈 때문에 남편과 애인을 살해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한다. 선량하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는 무용한 것이 되어버렸고, 끝 모르는 악행은 나이와 성별도 묻지 않는다.돈은 그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더러운 손도 돈을 주면 칭찬 받는다. 미덕은 돈의 뒤를 따른다. 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악행의 어머니다.`반어법 혹은 정공법으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계한 동서양 선인들의 말을 되새긴다. 돈은 삶의 유익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목적이 될 수 없는 돈을 위해 타자의 삶을 무참히 해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악행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김살로메(소설가)

2014-08-06

배려와 생색

텔레비전에서 흥미 있는 여행기를 접했다. 익히 알려져 있는 `꽃보다 할배`시리즈의 여름 특집인데 이번 여행자는 사십 대의 젊은(?) 아티스트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십일 간의 페루 여행기라는데 막무가내로 떠나게 된 여행 콘셉트라 첫날부터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세 남자의 갑작스런 여행기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남자나 여자나 사람의 감정은 똑 같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여행지에서 남자들은 털털하고,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예민할 거라는 편견을 지니기 쉽다. 하지만 그건 여자니 남자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 나름이라는 것을 알겠다. 셋의 개성은 확연하다. 한 명은 상남자 성격에다 털털하고 영혼이 자유롭다. 다른 한 명은 배려심이 강하고 눈치가 빠른 만큼 상처 받기 쉬워 보인다. 나머지 한 명은 섬세하고 깔끔하지만 다소 자기중심적이고 예민해 보인다. 모두 실생활에서 있음직한 캐릭터들이다.상남자에다 털털한 캐릭터는 뭐든지 긍정적이고 잘 웃는데다 유머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다. 여행하는 동안 자신이나 타인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이런 캐릭터를 지녔으면 좋겠지만 다양한 게 인간사의 가장 큰 매력 아니던가. 반면 화장실 문제나 잠자리 문제에 예민한 한 아티스트는 그 자체가 신경 쓰여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 스스로다. 그것을 눈치 챈 막내 출연자가 최대한의 배려심을 발휘해 더 나은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배려를 상대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사소한 갈등이 생겼을 때 그가 자책하는 장면에 공감이 갔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그가 말했다. “이 나이에도 배려를 하면서 생색을 버리지 못했구나.”낯선 여행지에서 여행자끼리 배려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그 생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배려하는 만큼 상대도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내심을 고백하는 그 출연자의 표정에 같이 울컥하게 되는 것이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8-05

센스 있게 보기

제대로 보려면 얼마나 연습이 필요한지. 대상을 온전히 배려하려면 얼마나 센스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지. 시각장애인 문예회원들과 야외 나들이를 갔다. 시각을 제외한 청각, 후각, 촉감 등이 상대적으로 발달된 덕에 그들의 자연 교감 친밀도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스치는 바람 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구분해서 듣고, 빛의 세기와 공기 중에 떠도는 습기의 정도에 따라 같은 꽃도 그 향을 달리 느낄 수 있다. 물론 살랑거리는 나뭇결을 느끼는 손끝까지도 섬세하고 예민하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대상을 본다. 오전 활동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설 때였다. 모두 신발을 찾는다고 부산하다. 시각장애인 한 분마다 도우미 한 분이 짝을 이뤘기에 신발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었다. 베테랑 도우미 분들에겐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생짜 초보인 나만 당황했다. 신발 벗는 것까지 도와드렸으면서도 어떤 색 운동화였는지,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실은 파트너의 신발을 내가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분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했지, 정작 그분에게 뭐가 필요하고 무엇이 절실한지에 대한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면 센스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마음만 그들 곁에 있었지, 감각은 아직 `잘 보이는 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했다. 잘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그때의 마음이란 내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일 것이다. 머리로만 봐서는 상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없고 가슴으로 봐야 제대로 닿을 수 있다. `나뭇잎이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고, 콩이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눈 가리고 귀 막는 나뭇잎 하나와 콩 한 알이라는 자기 한계. 그것이 모여 온 우주가 멍들 수도 있다. 의식하지 못한 새, 누적된 습관이 되어 버린 이 무신경한 마음의 눈과 귀를 저 내리는 장맛비에 깨끗이 헹궈내고 싶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8-04

명량해전

개봉 영화 `명량` 관람을 계기로 명량해전에 대한 간단 공부를 한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기록물이 다양하다. 밤새 영상물을 찾아보고 기록물을 검색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전쟁사가 이처럼 호기심과 흥미와 감동과 짠함 등을 동시다발로 줄 수 있다는 것이 묘하긴 하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에게 남은 건 실의에 빠진 수군과 열세 척의 군함뿐이었다. 그에 비해 진군하는 왜군함은 무려 삼백여 척에 달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전쟁을 필사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고,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몸소 실천했다.명량해전이 승리할 수 있었던 실질적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배의 구조이다. 조선의 주함 판옥선은 왜의 주함 안택선에 비해 튼튼했다. 만드는 방법과 구조의 견고성이 안택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회전력도 우수해 울돌목의 빠른 유수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무기의 활용 면에서도 조선해군이 유리했다.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조총이었다. 살상 무기로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녔으나 해전에서는 조선의 함포가 나았다. 천자총통을 비롯한 각종 화포는 원거리 사격이 가능한데다 화력이 우수했다. 튼실한 배와 위협적인 무기는 이순신 해군 전투력의 바탕이 되었다.마지막으로 이순신의 전략전술과 리더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명량 일대의 해류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좁은 물목에 왜함대를 몰아넣어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 수중 철쇄를 해협 양쪽에 걸어 몰려드는 왜함을 뒤집어지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런 기록들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의 것들이라 믿음을 주진 못한다. 굳이 쇄사슬 전법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순신의 지략은 여러 기록들이 충분히 검증해주고 있다. 이순신 없는 명량의 승리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해협의 언덕에서 장군과 수군들의 승리를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환호했던 당시 백성들의 마음이 기록으로나마 그들을 기리는 후대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8-01

아이, 상큼해!

몇 년 전 교육방송에서 본 한 장면. 예닐곱 살 되는 여자 아이가 엄마 심부름을 가는 중이다. 동심을 몰래 카메라 기법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이의 순간적 언행이 내 눈을 매혹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들길을 혼자 걸어가던 아이는 연신 이맛머리를 쓸어 올리며 `아이, 상큼해!`를 연발한다. 그 말과 행동이 무척 귀여웠다. 그림처럼 파란 하늘엔 구름 몇 점 떠 있고, 들판엔 봄을 재촉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는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을 믿고 과제를 준 것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다. 거기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주니 금상첨화다. “아이, 상큼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가 귀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의 양육 태도 또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동심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다 순수한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다 때 묻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동심의 말에도 계산이 들어 있을 수 있고, 동심의 혀에서 나오는 말도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 태생적인 기질에 따라 뱉는 말의 형식도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말이란 건 경험과 학습에 의해 좌우된다.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밝은 언어를 쓰는 엄마 곁에 그런 언어를 쓰는 아이가 있을 확률이 높다. 한 점 바람에도`아이, 상큼해!`를 연발할 수 있는 건 아이의 심성이 원래 고운 것도 있겠지만 엄마의 좋은 언어 습관을 보고 배운 덕이기도 하다. 천성적 기질이 곱게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언어 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얼마나 축복 받을 일인지.활용하는 말 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맘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오해하거나 기분 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말을 잘못 부린 탓이다. 젊은이의 패기와 직설 화법은 어울리는 세트라 쉬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테가 늘수록 에둘러 말하되 심지는 적당히 물러져도 좋다. 덕(德)의 시작은 말이다. 말이 정돈되고 순하면 행동도 그리 된다. 순하지 않아야 할 한 순간의 폭발력을 위해서라도 평소 언어 습관은 `아이, 상큼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아도 족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31

절실하게 묻기

김일광 작가의 특강을 들었다. 히트작인 `조선의 마지막 군마` 창작 과정을 중심으로 당신의 문학관 전반에 관한 얘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선생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었다. 문학은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인간은 그 표현의 주체이자 대표적인 객체이다. 그러한 인간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는 문학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선생은 이에 대해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라는 논어의 한 대목을 빌려 설명해 해주셨다.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인데 논어의 자장 편에서 자하가 한 말이다. 원래는 인생 지침서의 한 대목으로 쓰이는 말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도 이보다 나은 건 없다 싶다.문학과 절실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절실함이 요청될수록 문학적 성취도도 높아진다. 절실하면 구해진다. 어디에서 무엇으로 구할 것인가? 저 짧은 문구 안에 답까지 있다. 근사(近思), 즉 가깝고도 구체적인 생각에서 얻어진다. 문학 행위는 대개 어렵고, 그 방법 또한 모호하다. 과연 그럴까? 문학이 모호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건 정말로 문학이 그러해서가 아니다. 내 맘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모든 답은 가까이 있다. 게다가 그 답이란 건 선명하고 담백하기까지 하다.`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인재기중의(仁在其中矣)`는 문학에서도 적용된다. `널리 배워서 뜻을 두텁게 하고, 간절히 물어 가까운 것부터 생각해 나간다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게 된다.`왜 쓰는가에 대한 최우선의 답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 쯤이 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는 내면의 절실한 요청에 따라 내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쓰면 된다. 문학의 궁극적 목표를 자하(子夏)의 말에 빗대 설명해준 선생의 강의는 내 문학적 길을 재탐색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30

냉혹한 스페이드도 필요해

성악설과 성선설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을 겪을 때마다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데 결론은 언제나 `둘 다 맞다` 쪽이다. 우리의 태생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태어난 이상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겪는데 어떤 나침반을 곁에 두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의지가 결정한다. 성선설이다, 성악설이다 하는 애초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태생적 기질이 강한 사람은 특수한 환경을 만나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작인 대실 해밋의`몰타의 매`에서 주인공인 탐정 샘 스페이드가 그렇다. 그는 유쾌한듯 냉혹하며, 친절한듯 능글맞다. 사랑에 호소해 자신의 살인을 위로받고자 하는 의뢰인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단박에 거절한다. 물론 몰타의 매를 차지하기 위한 브리지드의 악행이 용서 받거나 이해받을 만한 수위는 아니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브리지드에게 이처럼 냉정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당신을 경찰에 넘길 생각이에요.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20년 뒤에는 나올 거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나는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만약 당신이 교수형을 당한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스페이드는 브리지드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기적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여자 때문에 얼간이가 되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황금 보석으로 치장되었다는 전설 속 몰타의 매, 알고 보면 가짜에 지나지 않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여자는 살인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은 배신을 일삼는다. 탐욕은 그들의 붙박이 친구이기까지 하다. 웃으면 늑대 같은 인상으로 변하는 금발의 사탄 샘 스페이드. 하드보일드 문학의 원조격인 소설의 묘사 장면을 읽으면서 인간은 성악설의 영향에서 자유롭다고는 말 못할 것 같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인간적이진 않지만 소위 말하는 쿨한 이미지의 탐정 몇 명쯤은 문학사를 빛낼 캐릭터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김살로메(소설가)

2014-07-29

낯빛부터 긍정하기

낯빛은 인격이다. 낯빛이 긍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눈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를 온 얼굴에 심는다. 바라만 봐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유난히 낯빛이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상대를 거부하겠다는 신호부터 온 얼굴 표정으로 보낸다. 우울한 낯빛에는 연민이라도 생기지만, 뭔가 불만 가득한 사람의 낯빛은 경계심만 불러일으킨다. 얼굴빛은 자기 긍정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인생 계발서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누구보다 신뢰한다. 그들 메시지의 공통점은 `긍정하는 힘`이다. 물론 긍정하는 게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자기 긍정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환경적, 물리적 제약이 분명히 현실 속에는 존재한다. 긍정하는 자세만을 주입하는 계발서들에 대해 희망 고문을 한다느니 무모한 낙관주의를 심어줬다느니 하면서 비판하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기아에 시달리는 지구촌 사람이 아무리 긍정의 상상을 한다한들 배고픔이 해소되는 게 아니고, 북한 주민 누군가가 아무리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긍정한다 해도 그것이 쉽게 눈앞에 펼쳐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개별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긍정의 한계 안에서 긍정하되, 얼굴빛에 그것을 담는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긍정의 자세와 자기 확신을 가지도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얻지는 못한다. 언제나 이룬 것보다 이뤄야 할 것들이 많은 게 우리 삶이다. 긍정하면서 좇아도 웃을 수 있을까 말까한데 굳이 부정하고 비관하는 얼굴빛을 연출할 필요가 없다. 모든 건 맘먹기에 달렸다. 물론 맘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실행에 옮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긍정의 힘이다. 가만 보면 `힘들어, 귀찮아, 될까` 이런 말을 자주 해왔다. 맘과 몸이 덜 따라와 줘도 낯빛부터 긍정하는 훈련을 해야겠다. 얼굴이 긍정적인 사람들은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힘이 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8

말의 강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가히 해부학적이라고 해야 할 시선으로 파고들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그의 태도이다.”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평론가의 글말은 탄력 스타킹을 당겨 신는 것처럼 팽팽하고, 끊고 싶지 않은 애인과의 통화처럼 미련을 담보한다. 굳이 평론집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편마다 에세이로 가득하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그의 말들은 온전하게 그 자신의 말로서만 읽어도 충분하다. 분석 대상이 되는 작가나 작품을 몰라도 읽기엔 별 문제가 없다. 독자인 내게 그는 평론이란 겉옷을 빌려 입은 내면의 철학자로 비친다.아무 쪽이나 펼쳐도 맘에 드는 구절을 쉽게 만난다. `구체적 일상의 숭고함`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는 김훈 작가에 대해 말하는 저 인용문을 나도 모르게 메모한다.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현상뿐이다. 현상만을 말하고 냉혹하리만큼 그 현상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주석은 달지 않는 것, 이것이 김훈 작가식 글쓰기 방식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 안에 구체적이고 던적스러운 일상이 들어가고, 그것은 숭고한 밥벌이가 되거나 과장 없는 신념이 된다.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말하려 할 때 우리는 진실을 포장하게 되고 양심을 의심 받게 된다. 섣부른 연민, 지나친 환호, 드넓은 오지랖, 김훈의 작품 안에선 이런 것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김훈이라면 저런 정서를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 안에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다가 있고, 다만 거기로 나가 싸우고, 그저 견딜 뿐인 게 삶이지, 애초에 거창한 명분이나 정치적 함의 같은 건 김훈 소설의 주인공에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윤리적 진실에 가깝다고 김훈을 해석해주는 신형철의 말글. 함부로 연민하거나 멋대로 재단하지 않을 것, 이것이 우리가 건너야 할 말의 강물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5

열린 듯 막혔다!

나는 딸이 버겁다. 나는 딸을 신뢰한다. 이 양가감정은 오랫동안 내가 딸에게 느껴온 감출 수 없는 진실이다. 제 생일을 맞아 아들녀석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늦은 밤에 도착한 녀석은 저녁 먹다가 찌개국물이 튀었다며 셔츠를 빨아줬으면 했다. 여기서 엄마로서 금세 행동 개시를 했으면 좋았을 걸, 거짓말 보태 밤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과제가 밀려 있던 나는 맘만 급했다. 마침 소파에서 딸이 빈둥거리기에 `동생 셔츠 니가 좀 빨아줄래? 더 늦으면 얼룩 안 진다.` 이렇게 말했다. 한데 딸아이가 발끈한다. `스무 살인데 지 셔츠는 지가 빨아 입어야지.`한다. 덧붙여서 `엄만 만날 나보고는 샤워하는 김에 속옷 빨래 정도는 하라고 하면서 왜 아들한테는 그 룰을 적용 안 해?` 한다.너는 쉬고 있고, 엄마는 지금 바쁘고, 동생은 밤차 타고 오느라 힘들었으니 니가 좀 배려해주면 안 되나, 했더니 나더러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척 하지만 이럴 땐 꽉 막혔단다. 만약 자신이 누나가 아니고 형이었다면 그 셔츠를 자신에게 빨라고 했겠냐는 것이다. 착한 아들은 웃으면서 `누나 말이 맞아요. 제가 샤워하는 김에 빨게요.` 하면서 금세 욕탕으로 사라진다. 아들과 딸이 평소 우애가 깊은 건 아들녀석의 속 깊은 이해가 전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 이야기를 맏딸인 지인들에게 했더니 내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딸아이 입장도 말이 된단다. 은연중에 맏딸에게 거는 엄마로서의 기대감이란 게 무조건적인 배려와 적당한 자기희생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자기앞가림 면에서는 정신력 강한 딸이 순정한 아들에 비해 훨씬 믿음직스럽다. 그쪽으로 딸을 신뢰하는 내 마음이 딸아이의 반격 콘셉트 앞에서 살짝 흔들린다. 나는 배려에 대해서 말하는데, 딸은 남녀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이 아이러니를 뭐라 설명할까. 이건 딸아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아무리 바빠도 엄마는 아들 셔츠를 빨아 줄 때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런 뚱딴지같은 결론이라도 내려야 불편한 맘이 가실 것 같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4

해주길 바라는 대로

인성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긍정적인데다 타자에 대한 배려심이 높다. 어떤 상황이라도 좋게 받아들이고, 아주 작은 것에도 타자를 먼저 생각한다. 따뜻한 유머로 주변인들을 웃음 짓게 한다. 귀찮은 기색 없이 인간적인 오지랖의 치마폭을 넓힌다. 그들은 가르치려 들지 않고 다만 이해한다. 성가시다고 피하는 대신 먼저 솔선수범한다. 자신보다는 타자의 입장을 우선한다. 모두가 그들을 인정하고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몸에 밴 실천적 행동이 절로 나오는 것뿐이다. 어느 누구도 가르치려 들거나 잘난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네 맘을 내가 안다며 공감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럼으로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법이요, 선지자다.” 남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내가 먼저 해주면 된다. 친구를 얻고 싶으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 쉬운 방법 같아 보이지만 실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역지사지하는 사람들은 저런 말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과 최선을 다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조선소 현장, 외국 선주가 근로자들을 위해 얼린 음료수를 마당에 부려놓았다. 그 소식을 아는 일부만이 음료수를 마셨다. 지인 한 분은 그 순간 무더위와 씨름하는 동료들 얼굴이 먼저 떠오르더란다. 제 욕심을 차리는 걸로 오해를 받아 감독관과 싸움이 날 뻔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음료수를 상자 째 들고 가 동료들에게 나눠 주었단다. 나 같으면 성가셔서, 오해 받기 싫어서, 오지랖을 떨기 싫어서라도 내 음료수만 챙겼을 것이다. 소심하게 음료가 배달되었다는 정보나 전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부러 악행을 저지르진 않지만, 적극적 선행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멋진 사람들은 오해를 받든 말든 적극적으로 타자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들 반만 따라하자. 오늘도 반성문을 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3

꽃에 물 주듯

오랜 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고, 어질러진 책도 정리한다. 방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신간들을 제 자리를 찾아 넣는다. 내보내도 아쉬울 거 없겠다 싶은 책들을 빼낸 자리에, 맘과 달리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새 책들을 바꿔 앉힌다. 책 정리를 할 때마다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책을 두 번 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산 기억조차 없는데 책꽂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 이번 경우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만화판이 전자에 속했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후자에 속했다. 몇 년 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사들였다. 4권까지 를 읽고는 만족감으로 오래 설렜었??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얼마 전 그 책이 독서 토론 모임의 지정도서로 정해졌을 때, 원글 번역본은 쉽게 내 책꽂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만화본이 통 보이지 않았다. 온 책꽂이를 다 뒤져도 소용없었다. 급기야 내 기억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좋은 책이니 다른 문우에게 선물했을 거라고 믿었다. 해서 다섯 권으로 늘어난 그 시리즈를 다시 샀다. 한데 이번 정리할 때 먼저 산 네 권이 발견되는 게 아닌가. 이중으로 된 책꽂이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사랑의 기술`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 같은데 내 책방에도 꽂혀 있었다. 슬쩍 기억을 더듬을 겸 훑어보았다.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이런 말은 용케도 눈에 띈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필시 나는 책을 사랑하는 이가 아닌 게다. 책을 사랑한다면 아끼는 그 책이 제 방 책꽂이 어느 위치에 꽂혀 있는지, 또한 언제 무슨 이유로 그 책을 샀는지 정도는 금세 알 것이기 때문이다. 물 주지 않고는 꽃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곁에 두고 아끼지 않으면서 그 책을 사랑한다 할 수 없으렷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2

메이플 시럽 귀히 먹듯

덜 갖되 더 충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더 가져 불충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덜 가진 건 떳떳한 것일까. 많이 가진 건 부끄러운 일일까.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가 재산 축소 및 누락 신고 의혹을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많이 가졌다는 것은 적어도 공직 후보자로서는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 못되나 보다. 저토록 감추고 싶어 하니.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한다지만 그건 세속적 관점에서의 부러움일 뿐이다. 옳고 그름인 도덕적 문제로 옮겨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직 후보자들 스스로 더 많이 가진 것에 떳떳하지 못하다. 재산 축소 또는 누락 신고를 자처함으로써 그들의 부가 정당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가진 자가 되었다면 쉬쉬할 이유가 무엔가.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 많이 가졌다는 건 행복 조건의 일부분은 되겠지만 궁극적 목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숨겨야 할 땐 숨기는 한이 있더라도 많이 가져 봤으면 하고 소원한다. 탐욕 때문이다. 아주 보통의 인간 누구에게나 탐욕은 있다. 하지만 아주 드문 누군가는 그것을 다스린다. 아니 초월한다. 가령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경우는 어떤가. 니어링 부부의 행복 찾기는 자연에서 맞춤하게 살아가기였다.남편 니어링이 죽은 뒤 헬렌은 회고록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다음과 같이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 썼다. 자신과 화해할 것,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모든 면에서 잡동사니를 치울 것, 날마다 자연을 느낄 것, 힘든 노동을 하고 산책을 할 것, 날마다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 것, 모든 생명체에게 친절할 것 등등이다.물질을 그러안고 드높인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마음 부자는 소박하게 비우고, 기꺼이 나누는데 있다. 벌들에겐 그들의 양식이니 꿀도 아껴 먹고,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한 게 미안해 메이플 시럽조차 귀히 먹은 그들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21

모든 것, 백성

김탁환의 두 권짜리 소설 `혁명`을 완독했다.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역사 소설인데도 스토리에 치우치지 않은 것도 맘에 들고,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방식도 위안이 된다. 한마디로 취향이 맞으니 금세 읽힌다. 역사 소설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디테일한 내면의 소리나, 담백하면서도 정돈된 문체 미학을 곁에 두고 싶은 독자라면 곁에 둬도 좋은 책이다. 이성계, 공양왕, 정몽주, 정도전의 순서대로 화자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성계는 해주에 있고, 왕과 정몽주는 왕성에 있으며, 정도전은 유배지이자 고향인 영주에 머물러 있다. 정몽주가 살해되기 직전의 18일 간이란 시간을 역사적 기록을 빌려와 작가적 감수성으로 직조해냈다. 혁명이란 제목에 걸맞게 정도전의 내면이 가장 많이 투사된다. 혁명가의 내밀한 비망록을 전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치밀하고 촘촘하다. 작가는 생의 가장 아련한 지점, 가장 극적인 순간만을 취함으로써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물론 밀도 높은 문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동문 학자로서, 혁명 동지로서 정몽주와 정도전은 같은 꿈을 꾸었다. 백성이 주춧돌이 되고, 재상이 대들보가 되며, 왕이 지붕이 되는 이상적인 세상. 하지만 현실 정치는 권력의 이전투구장일 뿐이었다. 정치는 타이밍이자 힘이 지배하는 논리이다. 그 둘의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자는 역사의 승자가 되고 그것을 놓친 자는 연민을 부르거나 잊힌 자가 된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후자의 운명이었다. 그들에게 혁명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였다.짧은 시간적 배경과 한정적인 공간적 배경 때문에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 역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다소 아쉽다. 그렇지만 `사직보다도 임금보다도 귀한, 결코 갈아치울 수 없는 그와 나의 모든 것, 백성`이라는 말 한마디를 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은 차고 넘친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18

평정심 유지하기

기억의 자기력은 얄궂다. 대개 기억은 좋은 쪽보다 나쁜 쪽의 힘이 세다. 주변의 가깝거나 먼 사람들 대부분은 특별히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그저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 평범한 사람이 내게 깊은 상처를 준 적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좋은 기억이 있음에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상처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약화시키는 속성이 있다. 타자에 대한 좋은 쪽의 기억은 나쁜 쪽의 기억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타자에 대한 나쁜 쪽의 기억은 단 한 번이라도 깊이 각인되고 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기억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상처는 나쁜 기억을 낳고 그것의 자기력은 끈질기고 뭉근하게 우리 내면을 괴롭힌다. 그 상처의 길은 끝내 기억을 왜곡한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내 기억과 당신의 기억이 다른 것은 모든 개별자는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대로 가공하고 아쉬운 대로 재배치되는 게 사람의 기억이다. 기억은 대체로 믿을 만하지만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건 못 된다.한편으로 기억 인자가 자기 유리한 대로 재편성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기억이 만약 원형질 그대로 재생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안 그래도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끈질기게 우리의 심리적 옷자락을 잡아당기는데 왜곡조차 되지 않고, 가공조차 되지 않은 채 재현된다면 제 기억의 한계가 부끄러워 더한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아닌지.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내면의 고통을 부른다. 고통은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고 급기야 자기 연민으로 치환되곤 한다. 그 연민이 다 이해받는 건 아니니,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냉정한 조언을 준다. `네 연민조차 지나친 기억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상기하라`는 것. 그렇게 부단히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게 삶인 것을./김살로메(소설가)

2014-07-17

정치가의 덕성

권력의 세계에는 법의 지배와 함께 힘의 지배도 요구된다. 숱한 영웅들이 제 나름의 정치적 덕성에 따라 역사를 장식했다. 요동치는 격변의 세상, 정치판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자는 끝내 힘의 논리를 거부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권력 쟁취라는 면에서 승리한 그들은 자신이 지닌 정치적 역량에 따라 훌륭한 리더로 추앙되거나 함량 미달의 독재자로 추락하곤 했다. 여말조선 초, 격동의 시기 군웅들이 할거했다. 그 중 정치적 리더로서 제 나름의 덕성과 개성을 확보한 이는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위기의식으로 인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방식은 셋이 지닌 덕성이나 개성만큼 달랐다. 극적인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치열한 권력 투쟁을 했다.우선 정몽주는 원칙에 입각한 인물이었다. 두 임금을 모시지 못한다는 신념으로 역성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다. 끝내 반대 노선을 택했고 죽음으로서 제 정치적 덕성을 실현했다. 이방원은 구체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권력의지에 무게를 둔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적 덕성은 법과 제도에 충실한 신념에 있다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의리에 바탕을 둔 인간 경영에 무게를 두었다. 마지막으로 정도전은 주자학의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이론과 현실을 접목한 인물이었다. 이념과 제도를 바탕으로 한 권력 지향적 인물이 정도전이었다.정치적 자질로만 보면 정도전은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상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운명이 쏠리는 곳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운명은 이방원 쪽으로 기울었다. 정치가의 덕성은 일반 철학에서 말하는 덕성과는 다르다. 정치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그것이 정치에서 말하는 덕성이다. 이방원의 힘이란 덕성이 정몽주의 원칙과 정도전의 이상이라는 각각의 덕성을 눌렀다.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만을 그 기준으로 할 때, 사람들은 정도전의 정치 이념에 손을 들어준다. 그리하여 역사의 승리자가 못 된 심적 동반자로서 그의 실천적 의지를 응원하게도 되는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16

정도전의 철학

정도전 정치 철학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주자학과 정전제와 재상제였다. 얼마 전 종영한, 그를 타이틀로 한 주말 드라마에서도 이 정신만은 온전히 투영되었다. 정치적 기초 질서로 주자학을, 민본의 생업 토대로서 정전제를, 이상적인 권력 제도화로서 재상제를 설계했다. 우선 그는 더 이상 불교가 정치 이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정치의 요체는 `질서`였다. 천지만물을 아우르는 불교의 가상적 윤회관은 이를테면 군신과 부자 관계 등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의 상하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정도전 정치철학의 기본은 차별적인 상하관계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 차이를 부정하는 불교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경제적 토대로서 그가 내세운 것은 정전제였다. 어떤 정치 제도도 그것을 받쳐줄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다. 정도전 정치의 활동 방향은 `의식의 풍족`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바탕에 백성이 있었다. 민생 안정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토지개혁을 내세웠다. 대토지를 소유한 기득권에 맞서 국가권력의 지배가 미치는 토지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밖에 없었다.마지막으로 권력의 제도화로서 재상제를 주장했다.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관료체제가 요청된다고 보았다. 그가 이상으로 내세운 재상은 식견과 도량과 덕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군주는 재상의 시비와 적부를 논하고, 재상은 군주를 바르게 보필해 서로의 임무를 다함으로써 정치적 권위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정도전 정치 철학이 새삼 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사상 밑바탕에 민본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밥벌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백성 없이 나라 없다. 제 정치적 신념으로 조선왕조 건국에 크게 기여한 정도전이 민본정치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주목 받아 마땅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15

용서, 위안부의 경우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따라서 설득이나 학습된 강요에 의한 용서라면 한참 미뤄져도 좋다. 때 아닌 용서는 더한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맘 편하고자 용서하라고 한다든가, 용서는 빠를수록 좋다는 등의 섣부른 감화를 조장하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으련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이면의 여러 상황과는 별개로 할머니들의 심적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억과 경험`에만 의거한 반쪽 의견에 우리 국민 정서가 움직이고,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여러 오해와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간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두 나라의 화합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식민지 경험의 왜곡에서 벗어나 용서함으로써 과거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게 저자의 논지이다.위안부를 총체적 피해자로 규정하면서도 저자는 가해의 궁극적 주체가 일본이라는 점을 피해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예를 들면 업자와 포주란 모집책이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안부 문제를 `온건통치의 범주에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불법을 자행`한 면이 있다고 쓴다. 깡패집단 보스의 잘못이 `온건`으로 이해되거나 행동대장의 잘못만이 `불법`으로 치부되는 시각이 독자로서 불편하다. 조선 위안부가 겪은 상황을 구별해서 인식하려 한 점도 껄끄럽다. 그들 대부분은 관리매춘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국 점령지에서의 일회성 강간이나 네덜란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속적 폭력과는 달리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 위안부의 상황이 그 둘의 경우와 분명히 다른데 그들의 기억인자는 후자의 방식으로만 발현된다는 것이다.적극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저자의 시각이 아쉽다. 자발적 형식이든, 공포적 속수무책이든 정황상 비인륜적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 맥락을 깊이 성찰하는 게 먼저지 용서가 급한 건 아니다. 후대에게 숙제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닌 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용서를 미루는 건 잘못이 아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14

갈 길이 멀다

독도에도 텃밭이 있을까? 온통 바위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설마 보자기만한 텃밭 하나 만들 땅이 없을까?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하려면 독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잘 알려면 직접 그곳을 경험하면 된다. 독도를 터전 삼아 살아본 사람만이 가장 현장성 있는 답을 줄 수 있다. 오늘 그 확실한 답을 알게 되었다. 전충진 기자의 독도 현장 르포인 `여기는 독도`의 한 장면. 독도에 살러 간 기자에게 가족과 지인은 각각 질문을 한다. `독도에 슈퍼마켓은 있는가, 독도에 밭농사는 좀 할 수 있는가`하고. 독도에 슈퍼마켓이 있을 리 없다. 극히 제한된 주민이 살거나 드나들 뿐이니 구멍가게조차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밭농사는 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자신이 없다. 막연히 섬 한쪽 어딘가에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다.그러고 보니 독도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면 알아야겠다고 적극적 노력을 한 적조차 없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외국 사람들의 70퍼센트가 독도를 일본 땅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에 유학하러 간 대학원생의 전언에 의하면 자신만 빼고 다른 모든 외국 학생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더란다. 왜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이 대학원생은 한 가지 답밖에 할 수 없었단다. 한국인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한국 땅이라고. 이렇게 빈약한 논리로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제대로 주장할 수가 없다.독도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알기라도 하듯 그들은 틈만 나면 독도가 저들 땅이라고 우긴다. 지피지기라야 백전백승할 수 있다. 하지만 독도 문제에 관한한 우리는 아직 지피지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점유했다고 다 우리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독도 공부를 제대로 해, 아집에 둘러싸인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논리적 맞대응을 하고 싶다. 그러기엔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참고로 독도에는 `파 한 뿌리 묻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게 작가의 전언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