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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라는 말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9-03 02:01 게재일 2014-09-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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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혁신합니다.” 여당 회의실 배경 현수막에 적힌 글귀가 뉴스 화면에 잡힌다. 곱씹자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문학 용어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보여주자는 것일까. 말뜻만 살펴도 보수는 혁신의 대상은 될지언정 혁신의 주체는 될 수 없다. 즉, 보수를 혁신할 수는 있어도 보수가 혁신을 할 수는 없다.

보수의 사전적 풀이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고,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다. 한 마디로 전자는 지키려 하는 것이고, 후자는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가급적 지키려는` 성질의 것이 어떻게 `완전히 바꾸려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혁신(革新)은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의 껍질을 벗겨 무두질하여 쓸모 있는 가죽이 되게 새롭게 만드는 일이 혁신이다. 피부를 벗겨낸 상태인 피(皮)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완전히 다른 제품인 혁(革)이 되려면 거기에다 여러 까다롭고 힘든 공정을 보태야 한다. 단순한 물리적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위적 제품이 되려면 피와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지나, 가죽이 문드러지고 펴지기를 수십 차례 해야 한다. 극한의 고통 뒤에야 `혁신`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키려는 보수는 새로워지려는 혁신과 궁합이 맞으려야 맞을 수가 없다. 보수의 태생적 운명이 혁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혁신의 옷걸이에다 일말의 `개선`이라는 옷이라도 걸어보려는 시도, 혹 그것을 두고 `혁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나쁜 것을 고쳐서 좋아지는` 개선과 혁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수의 말뜻에는 미묘하나마 변화를 수용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니 개선이라는 말과는 얼추 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변화를 뜻하는 혁신은 보수라는 말과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날마다 `혁신`을 부르짖는 그들 앞에서 국민은 `개선`의 기미조차 느끼지 못한다. 정치계의 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심각한 인플레 놀이 중이시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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