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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케모포비아

‘케모포비아(Chemophobia)’는‘화학적인’이라는 뜻의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잘못된 상식 때문에 소비자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를 느끼고 지나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제조·유통과정에서의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보관법이나 사용법 때문에 부작용을 경험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최근 아이들이 사용하는 그림물감, 아동용 섬유제품 등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합성가죽 소파에서 불임 위험을 높이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성분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공산품으로 생산·유통되는 거의 모든 생활화학제품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2017년의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파동도 화학혐오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조사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5%가 생활화학제품에 케모포비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케모포비아 때문에 특정 먹거리나 생활용품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불안을 키울 필요는 없다. 운동과 식습관으로 인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을 높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운동을 할 때는 땀을 배출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동작을 매일 15∼30분정도 해주는 것이 좋다. 음식에서는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면 대부분 지용성인 화학물질 배출이 잘되게 돕고, 수분도 몸속 자정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14

코로나시대를 건너는 법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사람과 만날 일이 없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의 영역을 무한정 침범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바이러스들은 말을 이동수단으로 이용하자 말에게서 사람에게 감기가 옮겨온 것처럼 사람을 선택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괴물이 되었다. 성장과 효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입은 마스크로 막혔다. 숙주와 숙주 사이를 떨어트리는 일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행동백신’이 되었고 ‘서로에게 백신이 되자’는 말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매뉴얼이 되었다.거리두기, 모이면 죽는다, 흩어져라. 소통을 강조하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이 권장사항이 되었다. 그렇게 어리둥절 혼란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사람대신 자연을 만나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도 아니면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을 괴롭혀서 생긴 고립과 우울을 자연에게서 위로받는다. 이래저래 참 고마운 자연이고 사람은 참 염치도 없는 것 같다.자연을 자주 접하는 것, 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나무를 읽을 줄 아는 ‘감수성의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서로 만나진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 꽃으로 놀자’라는 슬로건아래 건물 앞, 벽면, 옥상, 계단, 현관 지붕 위, 언더라인(다리 밑과 그 주변 유휴 공간)에 테마-색상이나 정서, 관계의 변화-가 주어진 주민참여 마을단위 생활형 정원 가꾸기로 발전한다면 코로나블루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무튼 더욱 더 사람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자세는 소중한 자산이다.코로나 초기, 미국에서는 노숙자들을 주차장의 주차선 한 칸을 띄워서 격리하다가 온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우리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자기 것이 없어서 신발과 방한복을 공동으로 사용하여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 된 일이 지탄을 받았다. 사회적 돌봄에서 제외 된 소수자들이 물류센터 뿐이었을까? 감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는 우리의 불평등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콜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좁은 곳이나 저소득층을 파고들었다. 아파트 출입문에 손을 빼기도 전에 닫아버려서 다친 택배기사들은 ‘사람이 온 게 아니고 음식이 온 것’으로 취급당했다.하지만 코로나는 ‘포스트 코로나? 어떤 세상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도 가르쳐 주었다.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무거운 생수를 시킨 것이 미안해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출발을 한 택배기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써서 샌드위치, 우유와 함께 건넨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선물을 받은 택배 노동자는 자신이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에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며 인터뷰 끝에 ‘하하하’ 크게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코로나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전교육이 강조됐는데 너무 강조되다보니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졌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말이 안전교육을 하며 다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코로나,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벗기 전에 우리가 포스트코로나를 맞이하는 자세를 돌아보아야한다.돌봄이라는 개념은 일방향적 서비스가 아니라 모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역능, 즉 ‘자기배려와 타자배려’의 기술로 이해해야한다.돌봄을 저렴한 노동으로 치부하고 돌봄 노동자에게 하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래사회를 우리가 직접 설계해야한다. (미래-공생교육/김환희/살림터 2020)포스트코로나를 살아가야할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공생’이다. 모든 기술도 매뉴얼도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 코로나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 공생의 범위는 사람을 넘어 지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한다. 공생이 보편적 윤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첨단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여야 하고 ‘세계를 다시 설계’하고 지금까지의 ‘사회를 다시 고쳐야한다’는 생각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공생의 삶이 어떤 삶인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릴 적, 마당에 세수를 마친 뜨거운 물을 붓자 그 물길을 따라가며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벌레들의 눈을 걱정하던 할머니를 보고자라지 않았는가! 매일매일 장독대를 닦는 어머니에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웬 정성이냐’ 물으면 산속의 새도 보고 청설모도 보는데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른거리지 않는가!‘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생태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이 잉태되어 그 목숨을 다 할 때까지 가진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다가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면 다시 되찾는 일상은 ‘공생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를 낳아야한다.’ 실패에서 배우는데 실패하지 말자는 각성의 백신을 계속 맞아야한다.

2021-06-13

다문화와 함께 하는 열린 대구의 희망

정영태대구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19년 기준 177만 명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4%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낮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이주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결혼, 취업, 학업 등의 목적으로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결혼이민자의 한국국적 취득, 난민 인정,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사회적응과 교육, 취업 등 이주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서로 다른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집단을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를 다문화수용성으로 정의하고, 정부에서 2012년부터 3년마다 국민의 다문화수용성을 발표하고 있다.지난 2019년 4월에 발표된 다문화수용성 결과, 우리 지역이 속한 영남권은 다문화수용성이 51.83점으로 전국 평균 52.81점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다. 2015년 대비 1점이 하락하였으며,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지수 간 격차 역시 5.4점이 더 넓어졌다.대구시의 외국인·이주민을 위한 정책 가운데 결혼이민자와 관련된 정책은 구·군별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교실, 가족교육, 가족상담 등 가족관계는 물론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원되고 있다. 주목해 볼 사업으로 사각지대의 결혼이민자를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소외되지 않고, 지역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지지망을 맺는‘다문화가족소통도우미사업’, 한국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초기 결혼이민자 또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한시적 ‘일상생활 통역지원’, 자녀의 학교 공지 사항 등 알림을 알기 쉽게 모국어로 번역하여 서비스하는 ‘다국어 자녀 학교 알림서비스’ 등 이주민을 위한 세심한 정책이 지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그런데도 우리 지역의 다문화수용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 않는 차별·배제·동화 등의 전통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초기 다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보다는 주로 우리 중심의 하나의 방식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결혼이민자의 경우 자녀에게 엄마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중언어의 필요성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에게 이중언어를 학습의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문화수용성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이처럼 다문화수용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주류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가 ‘상호문화주의’입장에서 다문화사회를 바라보기 위한 흐름으로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익숙했던 문화에서 크게 다름이 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얼마 전 어떤 강의에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피자와 파스타가 있다면 베트남 대표요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쌀국수’를 외쳤다. 순간 “왜, 이탈리아 면 요리는 파스타인데. 베트남 면 요리는 쌀국수라고 하죠”라는 질문에 모두가 순간 다른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베트남의 면 요리의 퍼(ph1EDF)로 부르지 않고 쌀국수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그제야 인지했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러한 태도가 우리가 지닌 다문화에 대한 수용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바꾸기 위해 어린이집, 학교,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다문화수용성제고를 위한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 문화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별로 다문화수용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강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 역시 부처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앞서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의 세대 간 정도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타인에 대한 문화를 배려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수용성이 샐러드 볼이라고도 하고, 용광로라고도 한다. 샐러드 볼은 다양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용광로는 그 다양성이 하나로 녹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강점이 있다.대구는 샐러드 볼이 될 수도, 용광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함께 뭉치고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열정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살아있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에 더 많은 이주민이 이방인이 아닌 우리의 공동체로, 그들과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열린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1-06-13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지난 1년간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생산, 고용, 소비, 무역 등 거의 모든 경제 부문이 코로나19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금년 들어 세계 각국이 백신 도입을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도 팬데믹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 등에 힘입어 조금이나마 해동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모습이다. 이에 따라 주요 경제주체들도 비대면, 언택트, 온라인 등 다양한 방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급감하였던 생산, 고용, 소비의 주요 지표들도 조금씩 반등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포항 경제의 근간인 철강 산업단지의 월별 생산액도 증가하는 등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는 있으나 월별지표만으로 경기가 완전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왜냐하면 올해의 지표는 특이요인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호텔숙박업의 경우에는 2019년 5월 매출을 100으로 볼 때 지난해 5월은 10 정도까지 떨어졌었기 때문이다.만약 올해 5월 매출이 20 정도라면 전년 동월 대비로는 해당 업종의 매출이 무려 2배나 늘어난 셈이 된다.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100이었던 수준을 생각하면 여전히 매출은 평소보다 마이너스 80% 수준에 그친 것이다. 그렇기에 올해 월별지표는 좀 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한 경기 회복은 어렵다는 이야기다.포항시가 선정한 병원 등 의료기관 종사자, 60세 이상 어르신, 학교 등 우선 접종대상자는 총 16만 8천127명이다. 포항시 홈페이지를 보면 지난 2월 26일부터 6월 1일 오후 7시 현재까지 1차 접종자는 5만6천671명(접종률 33.7%), 2차 접종까지 마친 자는 2만2천970명(접종률 13.7%)이다.집단면역이 이루어지려면 포항시 인구의 70% 즉 35만명까지는 접종을 마쳐야만 한다. 접종자 모두 100% 항체가 생긴다고 가정했을 경우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2차 접종까지 마친 접종 속도라면 이들 모두 접종을 완료하는 시점은 2022년 12월이다. 게다가 포항시 전체가 집단면역을 이루는 35만 명 모두 접종을 마칠 수 있는 시기를 마찬가지로 계산해보면 2024년 12월이 되어서야 가능해진다. 물론 이후 백신이 조기에 대량 공급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따라서 주요 경제지표가 개선되어도 해석할 때는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당연히 지역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은 금물이다. 포항시 정책당국자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겠지만 일본처럼 조급하게 경기회복 우선주의를 내세운 ‘Go to 캠페인’과 같이 시민 생명과 안전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책은 과감하게 포기해야만 한다.시민들도 지난해와 같이 방역 안전에 힘써야만 지역경제의 회복도 빨라질 수 있다.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2021-06-13

그린웨이 ‘맨발路’ 걷다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운동을 권한다. 평소에도 동네 뒷산이랑 철길 숲 산책을 다니는데 더 걷기를 일상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 많이 걸으며 발바닥을 자극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방에서는 말한다.내가 즐겨 걷는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울창한 숲이고 또 한 곳은 확 트인 모래밭이다. 숲은 기계 서숲, 시골집 가는 날이면 그 둘레길을 걷는다. 읍내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작년까지만 해도 넝쿨과 잡목들이 뒤엉켜 정글처럼 답답해서 숲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했는데, 다행히 올봄부터 말끔히 정리하여 숲속 길이 만들어졌다.기계 서숲은 경주 이씨 입향조 도원(桃源)선생이 낙향한 후 홍수와 찬 바람을 막기 위해 관민을 설득하여 제방을 쌓고 조림을 하여 일구어 놓은 3만여 평의 인공림인데 지역주민을 위해 시민의 숲으로 내놓았고, 포항시에서 ‘기계 서숲 맨발路’를 꾸민 것이다.포장도로 좌우 두 개 숲속에 깨끗하게 잘 정비된 1.2km 정도의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면 깔려있는 마사토 알갱이들이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지만 기분이 좋다. 잠시 소나무 둥치를 껴안고 심호흡을 하기도 한다, 입구 표지판엔 맨발 걷기의 효능이 적혀 있다. 혈액순환, 면역기능, 뇌 건강은 높아지고 혈액 점도, 불면증은 내려간다고….하루는 비 온 후 숲의 맑은 공기 마시며 허리를 쭉 펴고 걷고 있는데 천천히 걸어오던 노부부가 “참 씩씩하게 걸으시네요”하며 부러운 듯 말을 건넨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예쁜 숲속 둘레길엔 긴 의자와 흙먼지 털이기도 있고 출구엔 발 씻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정자에는 마을 노인들이 한담을 즐기고 있고, 인근의 학생들이 야외 수업 나온 모습도 보이곤 한다. 이 숲에서는 가끔 ‘숲속 음악회’도 열린다.또 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푸른 물결이 모래밭을 씻고 있는 바닷가에 이른다. 바다 시청에서 시작하여 긴 방파제 위를 걸어 빨간 등대까지 갔다 오면서 방파제 위 지압용 자갈돌을 깔아 놓은 곳부터는 신발 벗어들고 맨발로 걸어와 여객터미널 앞 모래밭으로 내려선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동해의 기운이 온몸에 올라오는 듯 어깨가 펴지고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서 영일대 누각에 오른다. 저녁나절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맨발로 걷고 있는 시민들이 즐거워 보인다.포항시는 위 두 곳을 포함하여 송도 솔밭, 해도 도시숲, 흥해 북천수 등 ‘걷기 좋은 길 8선’ 부채를 만들어 알리고, 최근 연일에 ‘조박지 둘레길’을 만드는 등 ‘맨발路 20선’ 리플렛도 나누며 녹색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21년도 GreenWay 프로젝트는 ‘도시에 녹색 쉼표를 찍다.’를 추진 목표로 삼아, 도시의 생기를 되찾고 시민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며 멈췄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추진 중인 멋진 계획이다.맨발로 그린웨이를 걸어보자.

2021-06-13

윤석열 대선출마선언 빠를수록 좋다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공식적인 대권도전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9일 퇴임 후 3개월 만에 독립운동 명문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렸는데, 그는 “한 나라는 어떤 인물을 배출하고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그 존재가 드러난다”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첫 행보의 의미를 부여했다. 대권 도전이나 국민의힘 입당 등에 대해선 지켜봐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그의 정치적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공보담당자 임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주말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51)을 공보담당자로 임명했다. 이 논설위원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에 입사했다가 2013년 조선일보로 옮겨 왔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그를 상대로 느닷없이 수사절차에 들어간 것도 ‘민심에 의한’ 그의 대선출마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현 정권 권력기관에 의해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의 대선출마를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년 3월 대선까지 270여일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윤 전 총장이 고민할 시간도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윤 전 총장이 대선출마의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국민의힘에 입당을 하거나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을 규합해 새로운 당을 만드는 방법이다. 나는 그가 주변에 현혹되지 말고, 국민의힘을 대선의 산실(産室)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은 그의 대선후보 지지율보다 더 높아졌다. 과거 대선과정을 반추해보면 후보 중심의 캠프를 차려 사조직을 가동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캠프 내부알력으로 인해 불법정치자금 문제도 반드시 불거지게 돼 있다. 대선을 치르려면 수백억원의 선거비용이 들어가는데 개인 자금이나 후원금으로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번 대선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선거비용문제 등으로 중도 포기한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윤 전 총장의 본격적인 대권도전 움직임에 집권당의 방해작업도 강해지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 전 총장의 대선후보 지지율(리얼미터 조사)이 35.1%로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0일, “윤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냉정하게 말하면 윤 전 총장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대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지율은 선거 구도와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하루아침에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가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국민의힘에 합류하는 것이 맞다. 합류시기를 늦추다 보면 사조직이 커질 수 있고, 타이밍도 놓칠 수 있다.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야권의 강력한 지도자가 하루빨리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2021-06-13

MZ세대

1990년대 386세대란 말이 처음 나온 후 한 세대의 특성을 규정짓는 사회적 용어로 X세대 N세대 Y세대 등 많은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시대의 특징을 말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나 주로 젊은층의 사고를 시대 구분의 특징으로 삼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의주시할 만한 부분이다.세대(世代)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이다. 한 세대를 약 30년으로 보는데 이는 생물학적 나이로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다. 세대교체란 부모가 자식에게 권한을 물려주듯 우리사회가 신세대와 구세대간에 대물림을 주고받는 과정이다.국민의힘 당 대표에 36살의 MZ세대가 백전노장의 정치인을 물리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한 거대한 세대교체 요구의 물결이란 해석이 돌면서 정치권의 긴장감도 만만찮은 분위기다.MZ세대란 1980년초에서 2000년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34%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이 세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 매우 익숙하며 스스로의 만족을 중시 여긴다. 또 가치관에 따라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뭉치고 흩어져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학연, 지연, 혈연중심의 관계망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MZ세대는 나의 행복이 침범된다고 느껴지면 직장도 빠르게 이직하는 성향이 있다. 집단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신념의 생활을 한다. MZ세대의 돌풍, 과연 우리 정치나 사회에 어떤 변화를 던져줄지 궁금해진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13

구미형 도시재생,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민선 7기 출범 이후 원평동에서 물꼬를 튼 구미의 도시재생은 선주원남동과 금오시장, 선산시장 세 곳의 사업을 새로 추진하며 순항 중이다.거기에 지난해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공단동 일대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재생 혁신지구로 지정되면서 구미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한층 힘을 받게 됐다.구미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궤적을 같이하며 성장한 도시다. 60,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까닭에 공장이 먼저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 주거지와 상업시설들이 얼기설기 형성돼 발전해 왔다. 경남 창원, 경기도 과천과 같이 계획화된 도시가 아니다 보니 주거기능과 상업기능이 혼재돼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하고 구도심과 신도심의 불균형 또한 구미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구미가 가진 도시의 강점과 그 가능성은 실로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 대한민국 산업을 견인해 온 수출도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제조도시로 구미는 국가 성장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지방에서 구미만큼 산업의 펀더멘탈(Fundamental)이 잘 갖춰져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필자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구미는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다. 그것이 바로 구미라는 도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구미의 도시재생일 것이다. 구미는 그동안 원도심을 재생하고, 노후 산단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이끌어 내는 문화적 도시재생에 주력해 왔다. 구미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구미가 지향하는 바는 다름 아닌 도시혁신이다.도시재생을 통한 도시혁신은 단순히 도로를 깔고 아파트를 짓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설을 재생하는 것뿐 아니라 도시가 지닌 가치를 찾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지난해 말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된 공단동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은 산업단지를 활용해 새로운 재생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방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상상해 보라. 1969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공장밀집 지역에 입주기업과 비즈니스 센터가 들어서고, 창업기업을 위한 시설도 들어선다. 노동자를 위한 복합지구에는 행복주택과 보육 시설, 라키비움(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 자리 잡게 된다. 낡고 생기를 잃었던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가 활성화 될 것이다. 스마트산단과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산단 대개조와도 맞물려 침체된 지역 경제도 활기가 살아날 것이다. 산업단지의 정체성을 살리며 새로운 가치를 더한 도시재생,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구미형 도시재생이 구미를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다. 역동성과 가능성이 숨 쉬는 공간, 도시의 경제와 사회기반을 살려 지속가능한 구미를 만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에 따른 배후도시로서 향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미의 도시 공간 구조를 새롭게 창출하는 일 역시 우리 구미의 도시재생이 향후 긴밀하게 조율해야 할 과제이다.도시재생 전문가인 필자에게 고향 구미는 꽤 매력적인 도시다. 잠재력과 가능성이 큰 도시기 때문이다. 매우 기대되는 여정이지만 불안과 우려도 있다. 이런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여파로 구미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이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여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구미의 정체성을 살린 도시재생을 차분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

2021-06-13

서숲

“아우 보래이/사람 한 평생/이러쿵 살아도/(중략)/그렁 저렁/그저 살믄/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중략)/그저 살믄/오늘 같은 날/지게 목발/받쳐 놓고/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한잔 술로/소회도 풀잖는가”- 박목월 ‘기계 장날’주말마다 남편과 길을 나선다. 내가 어디라고 콕 집어 가자 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길을 잡았다. 목월 시인이 노래한 기계장터로 차를 밀어 넣으니 장날도 아닌데 사과 상자를 펼쳐놓고 아주머니가 흥정 중이었다. 손가락을 다친 것인지 깁스를 하고서도 사과를 팔려고 내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한 상자 차에 실었다.기계장터를 좌측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로 초등학교를 지나니 소나무가 병마용의 군사처럼 둘러선 숲이 보였다. 여름 강렬한 햇살을 모두 가릴 만큼 빽빽이 선 모습이 늠름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내려놓고 쉬려고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우리도 그늘로 들어갔다.예전에 서숲에 왔을 때는 돌보는 손길이 없는지 소나무 사이를 걷기에는 풀이 우거져 힘들었다. 누군가 표고버섯 농사를 하는지 소나무 아래 가득 나무 등걸을 맛대어 놓았었다. 지금은 오솔길이 소나무 사이를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모양새였다.걸으면서 쫓아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는 케에르 케고르의 말이 소나무 사이에 걸렸다. 맨발로 걸으라고 부추겼다. 신발을 신고 한 바퀴 크게 돌았으니 양말도 벗고 걷기로 했다. 가다 힘들면 돌아오자고 하면서 자신 있게 벗자마자 발이 아팠다. 신발에 의지해 걸을 땐 멀리 숲 전체를 관람하며 백로가 내려앉는 하늘도 올려다보며 힘차게 내 딛었었다. 하지만 발밑에 마사토의 작은 조각이 몇 개인지 오롯이 느껴지는 지금은 발밑만 보고 걸어야 했다. 앞서가던 남편이 “길이 이레 길았나?” 한다. 숲 전체를 도는데 30분도 안 걸렸었는데 맨발로는 발 씻는 자리가 저기 보이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찬찬히 흙길을 밟자니 청설모가 까놓은 잣 껍질이 흩어져 있다. 소나무만 있는 줄 알았던 숲에 잣나무도 몇 그루 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가니 대나무 숲이 서숲 둘레를 깜쌌다. 빨리 지나칠 땐 들리지 않던 새들의 조잘거림이 대나무 숲 가득했다. 매실을 가득 매달고 선 매화나무가 옆으로 기울어지기 직전이었고, 산비둘기 소리도 더 구성지게 들렸다.겨우겨우 걷는 우리 옆으로 힘차게 맨발로 걷는 분이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하니, 걸음을 멈추고 초보자는 큰길 건너 소나무 숲길이 발이 덜 아프다며 그리 가보라, 길 가장자리로 걸으면 돌이 좀 작아 편하다, 자신은 300일째 걸음이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었다. 멀어져 가면서 우리도 맨발로 오래 걷기를 성공하길 바란다고 손을 흔들었다. 처음 만나는 우리의 건강까지 바라는 그 진심이 느껴져 끝까지 완주했다.맨발로 걷느라 고생한 두 발을 부드러운 손으로 씻어주라고 써있는 세족공간에 앉았다. 발게진 발바닥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여름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이는 느낌이 발끝에 전해졌다.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양말 신발 차례로 신었다. 한 발 한 발이 포삭포삭 몰캉몰캉거렸다. 땅 위를 살포시 떠 가는 느낌이었다.안동 김씨가 서림으로 바람을 막았다면 서숲은 경주 이씨 문중의 땅이다. 소나무숲에 쌓여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동네 안쪽에 도원정사가 자리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협동길36번길 21-9 두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도원정사는 경주 이씨 기계 입향조인 조선 중기 유학자 도원 이말동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해 1928년에 후손들이 세운 누각이다. 누각 아래 배롱나무 붉은 꽃이 연못에 비칠 때 가면 더 좋으니 여름이 끝나기 전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하고 숲을 나왔다. 도원은 비록 은둔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제방을 쌓고 인공 숲을 만들게 했다. 기계 서숲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의성에 서림이 있다면 기계에는 서숲이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6-13

휴일 양극화

양극화란 서로 다른 계층이나 집단이 점점 더 차이를 나타내고 관계가 멀어지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와 빈곤의 양극화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말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장려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극화 해소는 쉽지 않은 문제다.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휴일 양극화란 공휴일인데도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휴식의 불평등을 뜻하는 말이다. 법정 공휴일이면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모두가 쉰다. 그런데 임시 공휴일은 법정 공휴일과 달리 공공기관과 공무원 등에게만 적용되고 민간기업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은 대개 정부가 지정한 임시 공휴일에도 쉬는 분위기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교와 어린이집이 쉬게 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오히려 임시 휴일이 짐이 될 때도 있다.과거에도 법정 공휴일을 대체할 임시 공휴일 지정 문제가 논의됐으나 이런 문제점으로 시행을 보류한 적이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대체 공휴일을 확대해 모든 공휴일을 대체 휴일제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여야가 뜻을 같이하기에 빠르면 6월 중 법안 통과도 가능하다. 올 하반기 돌아오는 광복절(일요일), 개천절(일요일), 한글날(토요일), 크리스마스(토요일) 등 주말과 겹치는 휴일은 이 법이 통과되면 대체 공휴일을 별도 정하게 된다.많은 직장인이 대체 공휴일 확대에 찬성하고 있으나 일부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휴일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법이 필요할 때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10

휴브리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도전과 응전’으로 유명한 20세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가리켜 ‘휴브리스’라고 불렀다. 이후 휴브리스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소수가 기득권층이 된 다음 자만해 자멸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휴브리스는 어느 시대, 어떤 집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현상이다.요즘 여야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부동산 투기의혹 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휴브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소속 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탈당 권유(비례대표는 출당)’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충격을 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였다. 민주당의 조치는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여권 전체가 ‘부동산 투기 내로남불’프레임에 걸려 이대로는 대선이 물건너간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강경조치 직후 곧바로 야당에 화살을 돌려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모두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의 전현희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국민권익원회에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감사원 감사를 주장했다. 감사원은 당초부터 “감사원법 2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며 조사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자체 법률 검토 결과 감사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감사원 조사의뢰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송영길 대표는 “국민의힘이 사실상 전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했고, 윤호중 원내대표는 “권익위 조사에 응하는 것이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정의당·열린민주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나머지 5개 원내 정당이 권익위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의뢰하는 바람에 외통수에 몰렸다. ‘버티기’, ‘꼼수’라는 비판도 아프고, 따갑다. 그렇다고 권익위 조사카드를 덥석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당내에 부동산 부자가 많다는 점이 국민의힘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21대 국회 부동산 재산 상위 10명 중 7명이 국민의힘 소속이었고, 민주당은 2명, 무소속은 1명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국민의힘은 판돈(?)을 올렸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장·차관, 더 나아가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 시행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10일 여야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과연 누가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져들까. 정치권의 한판 드잡이질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내다.

2021-06-10

과기부 부총리 부활 돼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이제 새로운 정부 탄생이 1년도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 새 정부가 시작되면 관례처럼 해오는 일이 있다. 정부 부처 이름 바꾸기와 부처 만들기 와 없애기다. 상공부, 동력자원부, 체육부 등도 만들어졌다가 없어졌다. 과학기술부는 과학자들이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이름이 바뀌어 갔다. 교육과학기술부라고 과학을 교육부에 붙인 기괴한 상황도 있었고 과기부 부총리를 만든 시절도 있었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희한한 이름도 탄생했었다.새 대통령이 탄생할 때마다 부처이름이 바뀌니까 이제 어떤 부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혼동될 때가 많다.200년 역사의 미국은 행정부처의 이름, 가령, 국무부, 국방부, 교육부 등의 이름이 거의 바뀌지 않고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이 정부부처 이름을 안 바꿔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점은 대부분의 서구의 선진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그간 수없는 부처명 변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안 바뀌는 것들도 있다. 정부부처의 이름은 수시로 바꾸지만, 운영방식은 구태의연하다. 관료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지나친 자율침해 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오래 지난 정부 때 교육부와 과학부를 합친 교육과학부가 융합효과를 목표로 했다지만, 한 지붕 밑에서 두 개 부처가 따로 공전하는 이름만의 융합부였다. 특히 과학부와 융합됐다는 교육부의 경직성은 많은 대학들의 불만을 사왔고, 융합명칭을 가지기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필자는 과기부 부총리 직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 중심의 융복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을 빼놓고 미래를 생각할 수는 없다. 기술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실현할 연구 성과가 정착될 수 있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국정 운영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고 우대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없이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전통 주력 산업 외에도 첨단 소프트웨어·바이오·환경 기술 등에서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체계적인 정책구조가 필요하다.과학기술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의 최정점에 있어야 한다. 전 국가적으로 과기분야의 두뇌를 총 집결하고 이를 실현하는 국가적 접근이 절대 필요하다. 이는 과기부 부총리직 부활만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무슨 화려한 이름도 필요도 없다. 그냥 부활로 족하다.과기부 부총리를 정점으로 과기 정책을 총괄하고 통합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추진할 수 있다. 또한 각종 출연연, 과기대, 과기 특성화 대학 등을 연계하여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산업계를 연결하는 산학연계 제도를 과기 부총리가 직접 진두지휘해야 한다.과기부 부총리 제도 부활이 절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부처 이름을 바꾸고 하는 일은 그만하자. 그냥 과기부 그리고 과기부 부총리로 충분하다.부처 이름보다 일이 중요하고 내용이 중요하다.

2021-06-10

국민의 자격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인 자녀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바로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된다. 반면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귀화의 경우 5년 이상 거주를 하고 한국의 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 사람으로서 일정 금액의 재정입증과 귀화추천서를 갖추어서 관할 출입국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 또는 귀화용 필기시험 내지 면접시험을 치루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 국적 배우자와 결혼한 경우에는 결혼한 상태로 2년 이상 계속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거나, 결혼 후 3년이 지나고 1년 이상 거주한 주소가 있으면 귀화신청을 할 수가 있다. 그 밖에도 간이귀화, 특별귀화, 국적회복 등의 신청을 통해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다.대개의 국가가 그러하듯이 대한민국에서도 국적취득과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부여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법 앞에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체적 자유, 사회경제적 자유, 정신적 자유와 같은 국가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교육을 받을 권리, 취업의 권리,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같은 생존적기본권 있다. 그 밖에도 청원권, 채판청구권, 형사보상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같은 청원적기본권도 있고, 피선거권, 공무원담임권, 국민표결권 같은 참정권도 있다.다양한 권리에 비해 의무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을 받게 할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전의 의무,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 의무 등이다. 여기서 납세의 의무는 법률로써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정하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른다.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에 의한 군복무 뿐만 아니라 예비군이나 민방위대의 복무 등으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의무를 말한다. 또한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으며, 일을 할 의무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할 의무, 자신의 재산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복리에 위배되는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국가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국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는 방글라데시나 시리아 난민촌에 관한 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국가를 위태롭고 피폐하게 하는 것은 외세가 아니라 바로 자국의 국민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다 같은 국가가 아니듯이 국민이라고 다 같은 국민은 아니다. 미개하고 열악한 국가의 국민이 있는가 하면 부강하고 안정된 국가의 국민도 있다. 정의롭고 풍요로운 선진국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고 포퓰리즘에 현혹되고 프로파간다에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양식도 필수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므로 나라의 운영을 위정자들에게만 맡겨놓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국민(주인)된 도리가 아니다. 국민 각자가 선진국민의 자격을 갖추고 참여했을 때 비로소 선진국가 되는 것이다.

2021-06-10

학도의용군을 가슴에 품다

정미영 수필가 이른 아침, 집 옆의 산책로를 따라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여기 탑산에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을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전보다 자주 찾아간다. 오늘도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전승기념관에 들렀다 올 요량으로 길을 나선다.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에 학도의용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복 입은 어린 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찌 되었을까?기념관 사무실에 가면 학도의용군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1979년 8월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해 왔다고 한다. 1950년 그 날로부터 71년이 지났다. 전쟁 때 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80대 노인이다.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포항여중 전투뿐만 아니라 장사 상륙작전, 독석리 해상철수작전, 천마산 96고지 전투, 형산강 전투, 기계 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에도 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25 전쟁 당시 국내 학생 5만여 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 중 7천여 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8월 9일부터 44일 간에 걸쳐 일어났던 낙동강 전투, 그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기념관을 나와 포항지구 전적비를 향한다. 솔숲을 떠도는 눈부신 햇살이 내 등에 업혀 같이 동행한다. 나라를 위해 군복도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들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 의연하게 호국(護國)에 가치를 두고 혼신을 다한 그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전적비 옆에 있는 이우근 학생의 편지를 새긴 돌비 앞에 선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학도의용군에 자원했다가 전투가 잠시 멈춘 틈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꼭 돌아가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바람이 되어 이곳을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어린 영혼을 가슴에 묻은 의용군들 어머니의 가슴은 한이 맺혀 어찌 살아갔을까?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다시 생기지 말기를.6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한참을 묵념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면서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죽은 영혼들을 보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한숨과 눈물을 받아준 탓인지,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충혼탑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의 방문으로 학도의용군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숙하게 해본다. 새끼손가락 걸듯 충혼탑을 쓰다듬으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의 말도 덧붙인다.학도의용군들을 가슴에 품는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친다.

2021-06-09

소나무에 대한 경배

소나무는 꿋꿋하다. 모양새가 참으로 아름답고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아 초목의 군자로 부른다. 우리 땅과 우리 삶에 잘 적응한 나무이다. 그래서 애국가에서 민족의 푸른 생명력을 소나무에 비유했다.‘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소나무의 생동력은 줄기에서 뻗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용트림하며 구불구불 올라가는 줄기의 형상은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다. 품새 또한 침엽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디 심어 놓아도 품격 있게 보인다.소나무 중의 으뜸은 금강송이다. 줄기는 붉으며 가지가 넓지 않다. 울창한 숲에서 햇빛을 받아 살아남으려고 성큼성큼 제 키를 키운다. 백두대간의 산골에서 함박눈을 이기고 비바람을 견디며 곧게 자란다. 하늘을 향해 높이 우뚝 솟아 기골이 장대하다. 그래서 국가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 금강송을 벨 때는 예를 갖추었다. ‘어명이요!’라며 왕의 부름을 받았음을 먼저 알리고 도끼질했다. 실려 간 금강송은 국가건물의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쓰였다.소나무는 씨앗에 날개가 있어 솔방울에서 천천히 떨어지면서 날아간다. 어미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마을이나 논과 밭 근처에 솔숲이 형성된 것이 이 때문이다. 넓은 들판에 서 있는 소나무는 다른 식물과 햇빛이나 땅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나무는 키를 키우기보다는 가지의 폭을 넓게 펴며 자란다.소나무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키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쏟는 나무 아래서는 자박자박 느릿한 걸음으로 탑 돌듯 주변을 돌아본다. 솔솔 부는 솔바람에 솔가지가 흔드는 소리에도 귀를 전부 열어야 한다. 제 키보다 더 크게 양팔 벌린 소나무 아래서는 앉거나 눕거나 엎드린 자세로 요리조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고는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오관을 활짝 열어 소나무가 내뿜는 기를 느껴본다. 오늘은 사람보다는 소나무 입장이 되어보고 소나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말을 걸어본다. 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에는 오래된 반송이 한그루 서 있다. 소나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이다. 토지대장에 등재된 주인은 성은 석(石)씨이요, 이름은 송령(松靈)이다. 매년 그 세금으로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마을의 단합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나무를 사람과 같이 하나의 인격체로 여긴 석평마을의 소나무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좋은 예이다.먼저, 소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석, 송, 령. 그리고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묵례했다. 강렬한 봄볕이 정수리에 닿아 뜨거웠지만, 소나무가 내뿜는 날숨을 들여야겠다는 욕심에 가슴부터 열었다. 어깨를 곧게 펴고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기운을 끌어와 ‘후’ 하고 뱉었다.석송령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다. 소나무 뿌리 주변에 흙이 다져지면 생장에 좋지 않기도 하지만, 나무 아래 막걸리를 뿌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과일을 두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소나무는 사람이 뿌려주는 막걸리에 취해 흥에 겨워했을까, 아름드리 몸통 앞에 놓인 바나나, 사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울타리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석송령이 지닌 이야기 따라 90년을 거슬러 간다. 이순혜 수필가 석평마을의 이수목 노인은 자식이 없어 날마다 걱정이었다. 어느 날, 꿈에 들리는 또렷한 소리 “걱정 마라, 걱정 마라” 선명하고 우렁찬 소리에 노인은 꿈에서 깼다. 노인의 걱정이 소나무에 닿았는지 소나무가 꿈에 나타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을의 영물인 소나무에 노인은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노인은 군청을 찾아가 토지의 소유주를 새 주인에게 옮겼다.천천히 석송령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석송령은 하늘로 높이 솟구치기보다는 오히려 넓게 가지를 펴면서 600년을 살아왔다. 크게 펼친 팔이 힘들어 돌기둥으로 떠받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쭉쭉 뻗어 갈 것 같다. 내일은 비바람에 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릴지라도. 건너편에 석송령의 아들 소나무가 높이를 쑥쑥 키우고 부지런히 양팔 벌리며 가지를 넓히고 있다. 아버지를 이어 석평마을의 안녕을 위해 그렇게.석평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마을의 화목을 지키는 영물(靈物)이라 믿는다. 소나무에 한 번 더 경배(敬拜)하고 발길을 돌렸다.

2021-06-09

대북 무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기로 돌아가 버렸다.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 비방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과 보수층으로부터 대북 ‘구걸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라는 정책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임기 1년도 채 남지 않는 기간에도 남북 화해의 불씨를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냉담하면서 대통령까지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무작정 북한의 호응만 기다릴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대화 제의 거부 배경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 북한의 급박한 내부 경제 사정이 대화 재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 역시 코로나 방역에 매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는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국경선 완전 통제라는 원시적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듯하다.또한 지난해의 수재와 자연재해는 북한의 농업생산량을 감소시켰다. 여기에다 김정은의 경제 개발 5개년 개혁마저 김정은이 스스로 실토한 것처럼 실패하고 인접 중국과의 국경무역량도 현저히 줄었다. 이러한 북한 내부적 위기 상황이 대외 협상력을 억압하고 있는 형국이다.북한은 과거 내부적 주민 불만을 외교적 형식을 통해 잠재우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개발된 핵전력을 앞세워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김정은 정권은 수령의 보위를 국가의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독재자 후세인이나 카다피의 말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다. 김정은 자신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한 트럼프에 대한 향수를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선미후남, 통미봉남이라는 대미 협상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러한 입장에서 북한 당국은 우리의 대북 대화 제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들은 남북 간의 어떠한 합의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실효를 못 거둔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의 역사적인 판문점선언도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라는 틀 속에서는 한 치도 진척될 수 없었다. 더욱이 북한 당국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10·4 선언이 정권이 바뀜으로써 휴지가 되어 버린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당국은 남북대화보다는 미북 대화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이런 정황에서는 정부가 대북 무시 전략이나 무관심 전략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그간의 평화프로세스로 포장된 대북 화해 포용 정책을 당분간 포기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개성의 남북 공동 사무소 폭파, 표류 남한 공무원의 확인 사살에도 유감만 표명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 당국은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은 어떤 경우라도 유지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거부하는 대북 협상보다는 우리 스스로 선제적으로 대북 무시 전략으로 기다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매달릴수록 북한 당국은 이를 더욱 외면하기 때문이다.

2021-06-09

마스크 무도회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학생들이 마스크를 안 벗으려고 합니다. 점심에 밥을 받아서 그냥 버리는 학생이 많습니다.”어느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그의 말에는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도저히 부끄러워서 마스크를 못 벗겠다고 합니다. 식당 가림막이 투명이어서 마스클 벗으면 모든 학생이 자신의 맨얼굴을 볼 건데, 밥을 안 먹었으면 안 먹었지 벗을 수가 없다고 너무도 단호하게 말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학생들 얼굴을 모릅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이 생각났다. 그 학생은 마스크 때문에 거의 매일 교무실에 불려왔다. 그 당시에는 교실이나 학교에서 이유 없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교사들은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마스크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많은 교사는 “지시 불이행” 항목을 적용해 그 학생에게 벌점 폭탄을 내렸다.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점을 받는다. 코로나19 예방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분에 학생들은 학교는 물론 집 안팎 모든 곳에서 마스크 안에서 산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법률까지 정해졌으니, 할 말 다했다. “어떤 학생은 성형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코로나가 끝나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스크에 숨은 아이들 모습이 안타깝습니다.”작년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지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스크가 인류를 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부작용 또한 크다. 마스크가 막은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소통의 길까지 막아버렸다.마스크는 가면과도 같다. 가면을 오래 쓰고 있으면 내가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마스크를 벗은 자신 모습에 기겁(氣怯)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문제는 문제다. 성인들이 이러한데 학생들은 오죽할까?코로나19의 가장 큰 부작용은 학생들의 사회성 결여다. 사회성 형성의 기본은 만남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학생들은 만남의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그러니 사회성이 길러질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마스크 무도회와 같은 학교에서 과연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코로나19도 이제 서서히 종점을 향하고 있다. 사회 많은 부분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력 격차 해소와 같은 의미도 없는 성적 이야기뿐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학생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겠다고 하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제라도 제발 공부 병에서 벗어나 하루에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어주자. 마스크를 벗었을 때의 혼돈은 지금의 혼돈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2021-06-09

젊은 나라를 기다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60대가 주도하던 판이 흔들린다. 한 때 40대 기수론을 들어보았지만 30대가 지도자 반열에 선 모습은 사뭇 낯설다. 늘 보던 얼굴들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경험과 관록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보지만, 이제는 고인 물이 되어버린 당신들의 세상이 아니었던가.젊은 정치인이 선배들을 간결한 논리와 수려한 말솜씨로 마주하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다. 그가 만들어낼 충격과 변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관심을 모은다. 젊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판에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20대와 30대는 함께 뛸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선배들은 저 현상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진보의 깃발이 높기는 했지만, 함께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놓쳤던 모양이다. 공감과 배려를 말하기는 했지만, 바라보는 지평이 좁았던 모양이다. 민생의 현장과 청춘의 난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88만원 세대와 헬조선이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건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젊은 세대는 놀라우리만큼 소외되었다는 자각에 이르고 말았다. 나라경영에도 청년정책은 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고 결론은 언제나 나이든 기득권층에게만 과실이 돌아가는 듯 보인 게 아니었을까.노동현장의 안전사고, 병역과 군대의 현실, 대학입시와 대학교육, 페미니즘과 성차별, 공교육과 사교육의 부조화, 취업장벽과 불투명한 미래….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젊은이들과 관련된 정책 어젠다는 많은데 어느 하나 시원하게 정리된 게 없다.분노할 만도 하다. 그러니 젊은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맞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생각이 젊어져야 하고 지향점이 싱싱해야 한다. 누가 맡아도 그가 바라보는 앞길에 청년의 기운이 있어야 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그가 나이가 젊다는 까닭으로만 표심이 움직인다면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젊은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의 생각이 실제로 ‘청년의 기운’을 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나이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경고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이가 젊어도 생각이 고루할 수 있고, 노년에 이르러도 젊은 생각을 샘처럼 퍼올리는 어른들이 있다. 일으킨 바람에 어울리는 젊은 기운이 나라 안에 폭넓게 번져가길 기대해 보자.이번뿐이 아니다. 앞으로 만날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는 젊은 생각과 싱싱한 기운을 찾아야 한다.청년들 뿐아니라 모든 세대가 젊음을 회복해야 한다. 희망과 기대를 접었다는 사람처럼 불행한 이는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떠오를 무지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온다. 젊고 싱싱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넘실대는 청년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생각이 젊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기반 위에 새 기운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1-06-09

프롭테크

프롭테크(Proptech)는 부동산 자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동산 서비스 산업을 말한다. 프롭테크의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부동산 중개 서비스, 빅데이터를 이용한 부동산 가치 평가 등이 있다.부동산 중개, 사이버 모델하우스 같은 3차원(3D) 공간설계, 부동산 크라우드펀딩,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건물관리 등도 프롭테크에 해당한다.한국에서는 지난 해 7월부터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다방이 원룸 전세·월세 계약을 모바일에서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는 전자계약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다방의 전자계약은 임차인, 임대인, 공인중개사 3자가 앱에서 전자서명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공인인증서를 깔아야하는 국토부 전자계약시스템과 달리 토스나 카카오뱅크처럼 간단한 인증절차만 거치면 된다. 계약 체결 후엔 앱에서 보증금 및 월세도 바로 결제할 수 있다.부동산 플랫폼 업체 1위인 직방은 최근 헤이카카오와 카카오 스마트 스피커에서 음성으로 부동산 정보를 검색 및 확인할 수 있는 ‘부동산 봇’ 기능을 출시했다. 카카오의 인공지능 플랫폼 ‘kakao i’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인 카카오미니에, “헤이카카오”라고 부른 뒤“OO동 OO 아파트 시세 알려줘”라는 식으로 아파트 정보를 물어보면, 카카오미니가 “O억O천만원입니다. 출처는 직방이에요”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부동산 봇 역시 프롭테크의 산물이다. 뭉치돈이 굴러다니는 부동산업계에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프롭테크 산업의 성장세는 자못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09

당신의 등불은 빛나고 있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 남유럽 어느 조그만 마을에 해가 지고 어두움이 짙어 오면 하얀 집들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다만 마을을 굽어보며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당만은 어둠을 지키듯 깜깜한 채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교회를 ‘많은 등불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400년 전 이 교회를 지은 공작에게는 10명의 예쁜 딸이 있었다. 공작은 어린 딸들이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딸들이 성장한 다음에는 바느질하는 모습, 궁전을 장식하려고 꽃다발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그런데 딸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게 되자 공작은 매우 슬퍼졌다.사람들이 위로해 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딸들의 자리가 제각기 있는데 어느 한구석이 비면 집안은 어둡고 쓸쓸하오.”그런 중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시집간 딸들이 모두 돌아와 잔치를 베풀고 공작을 기쁘게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먼 나라의 왕비가 된 딸이 오지 못해 매우 슬퍼했다. 나머지 딸들은 악사를 동원하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버지를 위로하였지만 아름다운 딸의 노랫소리를 대신하지 못했다.나이가 많아지자 공작은 후세에 남길만한 무엇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생각 끝에 아름다운 교회당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위로를 얻게 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회당이 완성되었을 때 공작은 딸들에게 보여주었다. 건물의 아름다운 선, 성스러운 내부 장식, 조각품, 색유리, 어느 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것이 없었다.교회당을 돌아본 딸들이 “그런데 아버지, 등불은 어디다 걸죠? 교회당 안에 등불이 없어요?”라고 물었다.공작은 기다렸다는듯 미소를 띠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말이다. 이 늙은 아버지의 특별한 계획이란다. 등불을 거는 데가 없지? 교회당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등불을 들고 올 거야.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 하나씩 나누어 줄 멋진 놋쇠 등을 준비해 두었단다.” 그리고 말을 잠시 끊었다가 이었다. “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의 어느 한구석은 어둡고 쓸쓸할 거야.”그로부터 400년, 그 조그만 놋쇠 등불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져 내려왔다. 누구나 그것을 고이 간직했다. 이 오래된 교회에서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면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등불을 가지고 언덕 위 교회당으로 올라간다. 교회당은 늘 마을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아무도 자기 자리가 어둡고 쓸쓸한 구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2021-06-09

대월동화와 공룡뼈

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대월동화(大月東火)란 말이 있었다. 한자사전이나 사자성어 모음집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문을 좀 안다고 해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단어다. 하지만 대구에서 학교나 청장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대구백화점은 월요일이 휴무고 동아백화점은 화요일에 쉰다는 뜻으로 일반인이 만들어낸 인조단어다. 대구와 동아백화점은 지역의 대표 유통기관으로 대구시민을 비롯 비교적 가까운 구미 경주 포항 등 인근 시군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성장을 함께 해왔기 때문으로 그만큼 시민들과 더불어 기업경영이 지속됐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양 백화점은 토종으로 지역경기의 큰 축을 담당해 왔지만 거대자본을 앞세운 수도권의 대형백화점이 몰려오면서 변화하는 세태를 극복하지 못한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더불어 대월동화라는 단어도 지워졌다. 수십년동안 함께 해왔던 기업이 영원히 같이갈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결국은 문을 닫는 사태를 보면서 시도민들도 많은 상념이 교차됐다.경북도에는 박물관 등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도청 앞마당에 있다가 청내 어린이집 옆으로 이동해 전시중인 공룡뼈다. 공룡 몸체가 아닌 뼈를 전시한 것은 ‘변화지 않으면 이렇게 앙상한 뼈만 남게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이철우 지사는 2018년 도지사 취임 후 다음해 세계적 기업인 구글 본사를 방문해 큰 감명을 받은 후 길이 10.5m, 높이 3.5m 크기의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의 뼈 조형물을 설치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후기 백악기에 생존한 육식공룡으로 가장 힘이 세 당시를 주름잡았던 공룡이다.이 지사가 공룡뼈를 설치한 것은 직원들에게 ‘변해야 산다’는 것을 강조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지사는 취임 초 “경북도 공직사회가 생각 이상으로 활력이 없고 변화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다”고 진단하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부 불평을 잠재우고 해피댄스와 맨발걷기, 간편복장 등을 도입한 것을 비롯 급기야 공룡뼈까지 가져다 놓았다. 이는 공직사회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한 이 지사의 몸부림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도정에 만족할 만한 변화가 보인다면 이 공룡뼈를 검무산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대월동화와 공룡뼈에 대해 재삼 반추해본다. 지역의 버팀목이었던 대구와 동아백화점도, 백악기를 주름잡았던 공룡도 변화하는 세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졌다. 이 지사가 그렇게 강조한 변화의 바람이 도정내에서 과연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는가를 한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 됐다. 내년이면 이철우 지사도 4년간의 지사 임기가 끝난다. 물론 재선의 길이 있겠지만 초임 임기 내 화두로 삼은 ‘변화의 길’이 그만큼 험난하고 어려웠던 만큼, 과연 어디까지 변화했는지 중간 결과물이라도 한번 보고싶은 마음이다. 지금 공룡은 도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가 완성돼 공룡이 도청을 떠나 검무산으로 가는 날이 언제일까. 진정 이 날이 오긴 올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도청에서 뼈만 앙상한 채 지나가는 길손의 눈팅대상으로만 있을 것인가. 오직 도청 공직자와 이 지사만이 해답을 낼 뿐이다. 많은 시도민이 지켜보고 있다.

2021-06-08

마린온 헬기

마린온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한국형 헬기인 수리온을 기반으로 만든 상륙 기동헬기다. 해병대를 뜻하는 마린(Marine)과 수리온(Surion)이 합쳐진 이름이다. KAI가 2013년 개발에 들어가 함정·해상 환경의 비행성능 검증을 거쳐 2016년 개발을 완료한 헬기다. 해병대는 2018년 1월 마린온 1·2호기를 도입하면서 해병대 사상 최초로 항공전력을 보유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해병대는 자체 기동헬기가 없어 한미연합작전에 동원된 미군 상륙 기동헬기에 의존해 훈련을 받아왔다.마린온 헬기는 장거리 통신용 무전기와 전술항법 장치를 장착하고 있으며 최대 순항속도는 265km다.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으며 기관총 2정도 장착돼 있다. 특히 함상 운용을 전제로 개발했기에 기존의 수리온과는 달리 상륙함 내부에 기체를 수납할 수 있도록 헬기의 회전익 부분을 접었다 펼 수 있도록 했다.2018년 7월 17일 마린온 2호기가 경북 포항에서 기체 결함으로 이륙 직후 13초만에 추락 폭발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해병대 장병 5명이 순직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 해병대 항공전력 보유 계획도 큰 차질을 빚었지만 사고 수습을 둘러싼 논란도 크게 일어났던 사건이다.특히 철저한 원인 규명을 요구한 유족과 군부대간의 신경전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사고 원인은 기계부품 결함으로 결론이 나고 책임 소재는 결국 밝히지 못했다.유족의 고소로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를 벌였으나 결과는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로 종결됐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수사 결과에 누구보다 유족의 마음이 허망했을 듯하다. 특히 군 장병 희생에 대한 국가의 보답이란 측면에서 보면 매우 실망스런 결과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08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은 누구일까?! 온갖 고난과 난관을 돌파하지만 끝내 위로받지 못한 장발장인가, 법률의 주구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자베르인가, 아니면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가 그를 대신해 총 맞고 죽은 에포닌인가?! 단언컨대 미혼모이자 코제트의 엄마인 팡틴이 제일 불쌍하다.팡틴은 바람둥이 애인 톨로미에스에게 버림받고 홀로 코제트를 기르다 악질적인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장에 들어간다. 200년 전 프랑스는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미혼모를 박대했다. 미혼모에 문맹인 팡틴은 공장에서 쫓겨나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다가 아이 때문에 머리털을 자르고, 생니를 뽑다가 끝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만약 그녀가 문맹이 아니었다면, 인생 행로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무상으로 교육하지 않는 사회는 죄악’이라고 주장한 위고는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관철한다. 1880년대 일이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조선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프랑스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대학과 대학원도 무상으로 교육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가운데 16개국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교육을 개인의 선택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다. 내가 유학했던 도이칠란트는 1945년 제2차 대전으로 나라 전체가 폭삭 망해버린 그 이듬해인 1946년부터 전면적인 대학 무상교육에 돌입한다.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의 그들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한 까닭은 교육이야말로 그들의 미래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변변한 부존자원이 없는 도이칠란트의 미래 먹을거리는 오직 교육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모든 외국 유학생들까지 무상으로 교육했다. 나는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많은 국민이 부실한 사립대학 문제와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걱정한다. 천만번 옳은 말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부실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을 시급히 재정비하여 퇴출하거나,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가가 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 분명히 타개할 방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재정적인 면은 훨씬 수월하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대학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연간 12조원 정도라고 한다.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15년 동안 정부는 200조가 넘는 돈을 출산장려대책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작년에는 사망자 숫자가 신생아 숫자를 능가하는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했다.애먼 일에 헛돈 쓰지 말고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면 대학 무상교육은 분명히 가능하다. 무상교육으로 젊은이들과 학부모들의 큰 시름 덜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출산 장려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와 교육부는 거시적이고 대승적인 판단을 했으면 한다.

2021-06-08

현장개선의 불씨, QSS활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은 성공한 기업들의 혁신활동을 벤치마킹하고 자구책을 세워보지만,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기에는 경영진의 높은 관심과 지원으로 활발하게 혁신활동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영진이 바뀌거나 지원이 소홀해지면 금세 멈춰 버리고 만다. 그만큼 혁신을 추진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실행하고 유지시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혁신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외부의 영향없이 스스로 일상적으로 지속해야 하고, 개선문화로 정착시켜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도출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꾸준히 실천하는 혁신, 경영진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혁신활동으로 정착시킨 포스코 고유의 현장 개선활동인 QSS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QSS는 Quick Six Sigma의 약어로 Quick은 단순히 ‘빠르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전적인 의미로 ‘역동적인’, ‘활기찬’의 뜻도 내포하여, 전원참여 속에 지속적인 낭비제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포스코는 15년 이상 중단없이 QSS활동을 추진하고 있고, 안전·환경 개선과 설비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세계적인 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로부터 10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되기도 했었다.이는 QSS활동을 통해 포스코 고유의 혁신 DNA를 내재화한 임직원들이 생산, 품질 등의 가시적인 유형의 성과는 물론, 직원 간의 신뢰증진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점진적인 무형의 변화가 더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외부에서도 포스코 QSS를 벤치마킹하려는 발걸음이 쇄도하고 있고, 이 활동은 제철소에서 해외법인, 그룹사, 협력사 쪽으로도 확산 전개되고 있는가 하면 동반성장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중소기업에도 활발히 전파되고 있다.포스코의 QSS가 성공하게 된 노하우의 첫째는 의식변화이다. QSS활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주제는 ‘마음가짐’이다. 계층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고,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둘째는 전원참여이다. QSS활동은 전원이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운전부서 관리자가 현장에만 활동하게 하거나, 정비부서의 적극적인 참여 부족, 사무부문의 지원이 미흡해지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Top의 의지와 실천이다.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활동해 어려움과 보람을 함께 느끼면서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셋째는 인재양성이다. 모든 활동의 기반은 사람이다. 개선의지와 역량을 갖춘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여 QSS전문역량을 교육하고 개선마인드를 향상시켜야 한다. QSS개선리더는 개선 전문인력으로서 4개월간 Off Job으로 개선과제를 수행하면서 QSS제반활동을 익히고 체득하여 현업에 복귀해서는 혁신의 불씨 역할을 해야 한다. 여타의 기업에서 QSS혁신활동을 도입, 적용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혁신활동으로 자리매김되어 자사의 독창적인 혁신문화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1-06-08

구미시 최초 4급 개방형직위 공모… 진실은 무엇인가

김락현 경북부 구미시가 역대 최악의 경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며 최초로 시도한 4급 경제기획국장 개방형직위 공모가 최근 도마위에 올랐다.공모를 통한 임용시험으로 선발된 양기철 경제기획국장이 “(자신은) 영입이 된 입장이라 시장이 어떤 면을 보고 영입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분명한 것은 구미시는 양기철 국장을 영입한 사실이 없다.지난해 6월 29일에 첫 공모를 진행했으나 적합한 인사가 없어 같은해 8월 3일 재공고를 했고, 이 때 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사람이 바로 양기철 현 국장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영입이 된 입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동안 경제기획국장으로 임명이 된 후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낙하산 인사’를 스스로 인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당당히 임용시험을 거쳐 들어온 인사는 ‘영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리 없기 때문이다.양 국장의 그동안의 행보도 구미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양 국장은 이번 구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구미시장과) 중점적이고 핵심적인으로 추진하는 경제는 현재 트랜드인 탄소중립이나 RE100 (Renewable Energy 100)같은 새로운 비전의 사업”이라고 했다.하지만, 취재결과 장세용 구미시장은 단호하게 “현재 구미시가 추진하는 핵심사업은 스마트산단과 산단대개조 사업”이라고 못 박았다.양 국장은 정말 구미시의 핵심 추진사업을 모르는 것일까.구미시 경제기획국장 개방형직위 공고문에도 주요 직무내용으로 △경제기획국 업무 총괄 △투자유치 및 대회협력, 홍보 활동 △스마트산단 조성, 산단대개조 사업 등이 표기돼 있다. 그것도 공고문 첫장에 표기 돼 있어 공고문을 본 사람이라면 몰랐다고 하긴 힘들다.그렇다면, 양 국장이 구미시의 입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누군가는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게 없다”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만 구미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다. 그리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고, 아픈 일도 없다.대의(大義)를 위해 아프더라도 옳은 결단을 해야 할 때다./kimrh@kbmaeil.com

2021-06-07

그들만의 사랑이 누구나의 사랑이 되는 순간

이안 감독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다룬다. 1960년대 서부,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두 카우보이의 20여 년에 걸친 관계를 그리고 있다.만년설로 뒤덮인 여름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방목하는 양떼를 돌보던 이들은 그곳의 혹독하고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서서히 피어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순간 훅하고 들어오는 감정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것 같다.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양떼들을 돌보던 두 명의 남자는 그들에게 찾아온 감정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목장주에게 들킨데다가 우박을 동반한 폭풍우로 인해 몇 마리의 양을 잃어 버리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산을 내려온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 동안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한다.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랑(퀴어 시네마)을 다루면서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의 맥락이 대단하다. 누구는 그들의 사랑 때문에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누구나의 사랑’에 관한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우울하고 퇴폐적이며, 어두운 것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대자연의 풍광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이별이다.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그들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것은 눈빛과 표정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는 브로크백 마운틴이다.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공간은 그들에게 시작의 공간이었으며, 만남의 공간이며, 둘만의 온전한 장소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공간을 두고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조금 다른 의미의 해석도 가능한데, 우선 그들의 직업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카우보이(cowboy)라는 직업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지만 소몰이꾼으로 서부개척 시대의 주역이었다. 숱한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도 모두 소떼를 몰고 다니지 양떼를 몰거나 돌보지 않는다. 아무래도 양떼를 몰고 다니는 카우보이는 익숙하지 않다.영화의 제목이며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이며, 그 이후에도 오붓한 시간을 이어가던 만남의 장소였던 곳이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일주일에 한 번 부식과 필요한 물자를 지급받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것을 빼곤 여름 한 철의 그곳은 그들에게 온전히 둘만이 존재하는 ‘에덴동산’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카우보이라기 보다는 에덴동산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영화 초반에 그들에게 양들을 방목하는 일을 주면서 목장주인 아귀레는 지켜야하는 규율을 전달하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고 에덴동산에서 살아갈 규율과 금지된 행위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이 둘의 관계는 태풍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목장을 방문한 목장 주인에게 들키고 마는데, 이때 목장주는 높은 자리에서 망원경으로 이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마치 신이 지상의 피조물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앵글이 잡힌다.목장주의 규율을 어겨 양떼를 잃어버린 것으로 이들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하산하고 일자리를 잃는다.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던 아담과 하와는 신의 규율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야기와 겹친다.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추방된 이들은 각자의 길로 돌아가 일반적인 가정을 이룬다. 4년 후 잭의 엽서를 받은 애니스는 이후 1년에 한번 꼴로 만나서 추방된 땅 에덴동산과도 같았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선까지 끌어올린 것은 침묵과 여백의 연출이며,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그들에게 에덴동산이 되어 주었던 브로크백 마운틴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침묵과 여백 사이로 잔잔한 감정들을 포진시키며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묵직하고 아프며 슬프게 달아오른다.광활한 대자연의 풍광이 작은 사진 속에 담기고, 잊혀진 소품의 등장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그 여운은 길고 오래도록 남아 잊혀지지 않는 한 편의 영화로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2021-06-07

신라인이 본 세계… 유물에서 보이는 국제관계

“흙으로 사람 모양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는 한 신라의 공인(工人)은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사람 모습을 만들고 있다. 작은 크기에 최대한 특징을 표현해야했는데, 특별한 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한 모습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역에서 왔다는 특별했던 ‘그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집중하고 있다.”월성해자에서 출토된 서역인의 모습을 한 토우(土偶)를 통해, 그 토우를 만들던 신라 공인을 떠올려 보았다. 그 공인이 만든 독특한 복장의 토우는 1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일반적으로 토우는 작은 크기(2~10cm 내외)에 그 특징을 정확히 담아낸다. 토기뚜껑이나 항아리 등에 장식적인 기능으로 부착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한 눈에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임신한 여인이 가야금을 뜯는 모습, 남녀의 성행위 장면, 얼굴이 풍선처럼 동그랗게 과장된 사람,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등이 인상적인 토우의 모습 등이다.앞서 월성해자에서 출토된 독특한 복장의 토우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복장(服裝) 표현을 비교적 충실히 하고자 했던 제작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비록 팔 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출토되어 자세를 완전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행동 혹은 자세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얼굴과 몸은 과장되지 않게 일반적인 비율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가장 관심을 끈 것은 서역인으로 추정되는 복장이었다. 머리에 띠와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천을 덧댄 터번을 두르고 있다. 팔 부분의 소매가 좁은 카프탄(caftan·지중해 동부사람들이 입는 셔츠 모양의 기다란 상의)을 입고 있으며 허리는 꼭 맞게 조여져 윤곽선이 드러나고 무릎이 살짝 덮이는 길이다.이러한 복장은 효율적인 이동성을 고려한 기마민족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서아시아나 당(唐)나라에서 호복(胡服)으로 불리던 소그드인(Sogdian·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를 근거지로 하는 현재의 이란계 주민)의 옷과 유사하여 서역의 영향을 받은 차림새로 볼 수 있다. 정확한 유래 지역과 민족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그 동안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서역 유물을 통해서도 그 연결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서역의 유물로는 이국적인 로만글라스(Romanglass·로마제국에서 제작되어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유입된 유리제품), 장식보검(계림로 14호분 출토) 등이 확인된 바 있다.서역 사람의 모습으로는 괘릉(원성왕릉)의 무인석상과 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의 토용(土俑)등이 알려져 있다. 왕릉에 부장된 로만글라스, 왕의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모습의 무인석상 등을 통해, 당시의 교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극적인 신라 외교의 일면임을 이해할 수 있다.지금 한창 발굴조사 중인 월성에서 최초로 확인된 신라의 아주까리(파마자)씨앗은 교류의 새로운 단면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아주까리 씨앗은 주로 기름을 사용하는데 머릿기름이나 약용 식용 혹은 등잔용 기름등으로 이용하였다. 신라시대를 기록한 ‘삼국사기’ 혹은 ‘삼국유사’에는 남겨진 바가 없었는데, 이러한 아주까리에 대한 흔적을 월성해자의 깊은 흙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아주까리의 출현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씨앗이 한반도 자생종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아주까리 씨앗은 인도 및 아프리카 등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월성에서 찾은 길이 9mm, 폭 7mm의 아주 작은 씨앗이 어떻게 신라에까지 왔을까? 또 그 사용법과 재배 방법은 누가 누구에게 전달해 주었을까? 단 1점의 아주까리 씨앗은 우리에게 지금부터 풀어야할 많은 질문과 숙제를 남겨 주었다. 최문정 학예연구사 우리에게 남겨진 서역사람들의 모습은 보다 적극적으로 당시의 국제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서역의 물건과 이국적인 식물 혹은 동물들을 배에 싣고 저 먼 지중해 바다를 지나 우리에게 당도했을 것이다. 혹은 먼 사막길을 거치며 수많은 밤과 낮을 지났을 것이다. 먼 곳에서부터 신라까지 직접 운반한 사람들은 용강동 고분의 토용처럼 덥수룩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 터번을 쓰고 긴 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다. 먼 바다 혹은 길을 지나 신라에 당도한 그들도 신라의 문화를 배웠을 것이다. 그 곳은 활기가 넘쳤을 것이고,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호의적인 교환은 신라가 한반도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에서 더욱 확장해나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어느 신라 공인이 담은 서역인의 모습과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아주까리 씨앗을 통해 우리는 신라 사람들과 서역인들이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여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단서들이 모여 연결된다면, 신라의 다양한 교류 관계의 실타래를 모두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6-07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게 운전은 먼 이야기였다. 학창시절에는 스쿨버스로 통학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십 분 거리에서 자취했다. 어쩌다 먼 곳으로 놀러 갈 일이 생기면 동행하는 친구의 차에 훌쩍 올라타면 그만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서는 난폭운전을 하네, 승차감이 별로네, 하고 평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이루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내겐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게 남이 운전해주는 차인데. 왜 그렇게 힘들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나 BMW(Bus, Metro, Walk) 타고 다니잖아” 하는 시답잖은 농담에는 은근한 진심도 섞여 있었다.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뤄 놓은 지 오래였다.인생이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평생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살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나 역시도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경제 사정에 맞춰 이사 간 집의 교통이 좋지 않아 약속을 잡으면 두어 시간은 기본이요, 버스와 지하철 몇 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출퇴근도 문제였다. 차로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가 버스를 이용하면 두 시간이 훌쩍 넘었고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무척이나 지쳤다. 고심 끝에 나는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차를 구입했다.다들 가지고 있다는 ‘장롱 면허’라도 있으면 곧바로 운전 연수라도 받겠다마는. 나는 면허는커녕 자동차 핸들조차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파란불에는 가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아는 교통 법규의 전부였다.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던 날, 강사님의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저 꼭 면허 따야 해요. 차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강사님은 나를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간절함이 엿보인다는 거였다. “이를 악물고 해요.” 강사님의 말에 나는 다짐했다. 운전학원 역사상 최단 시간 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필기시험과 기능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 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달달 외워 필기시험에 단박에 합격했고 그 어렵다는 직각 주차도 거뜬히 해냈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처음 도로로 나갔을 때는 그야말로 황망한 기분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내가 벌써 도로를 달리지? 그나저나 원래 도로가 이렇게 살벌했던가? 조수석에 탈 때는 몰랐는데… 머릿속에서 나를 태우고 달렸던 운전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운전 고수였구나. 이 극악무도한 무법지대를 거침없이 누볐구나. 그들의 운전 실력을 멋대로 평가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실전이었다.뒤에서 빵빵대는 커다란 버스와 승용차들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공포의 순간이 다가왔다. “정신 차려. 여기서 들어가야 해요.” 강사님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흔쾌히 속도를 줄여 끼어들 수 있게 해주는 차도 있었지만 반대로 속도를 높여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차도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옆 차선에서 차들이 줄줄이 들어와 도저히 끼어들 수 없을 때, 별수 없이 예정된 도로를 지나서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발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 절규에 강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들었다. “본인이 끼셔야죠. 누가 끼워줘요.” 아, 그렇구나. 도로는 정말 혼자의 싸움이구나.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이 작은 공간을 내 손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이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차와 차 사이로 끼어들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면허를 취득했다. 여전히 도로는 무섭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휘발유 값과 현재 교통 상황을 알리는 뉴스도 이젠 훌쩍 가깝게 느껴진다. 비상등을 켜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그널을 목도하면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기에서도 나름의 소통 방식이 있구나. 그리고 나도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붙였구나.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다.그리하여 어느 도로에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를 만난다면 답답해하는 대신에 안쓰럽게 봐주시라. 지금 운전석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도로를 노려보며 사투를 벌이는 중일 테니.

2021-06-07

문신, 누구에게도 유해하지 않은

어느새 기온이 25도를 넘어서곤 한다. 반팔 티와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찌감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내 팔과 다리에 새겨 넣은 몇 개의 자그마한 문신들 때문이다.나는 이십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몇 개의 문신을 몸에 새겼다. 온 팔과 다리를 휘감은 커다란 문신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문양 몇 개를 조그맣게 몇 군데 새겼을 뿐인데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사로잡게 되곤 한다. 제일 오래된 문신은 오른 손목에 새긴 것인데, ‘Difference is not evil’이라는 허세 가득한 문구를 작은 팔찌처럼 둘렀다.가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姓)을 새겼고, 왼 손목에는 해와 달이 겹쳐져 있는 모양을 새겼다. 왼쪽 전완근 쪽에는 내가 사랑하는 밴드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귀엽게 그려넣었고, 오른쪽 이두근 쪽에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나무꾼을 그려넣었다. 오른쪽 발목에는 제일 좋아하는 동물인 범고래 두 마리를 그려넣었고, 양 손날에는 말씀 언(言) 자와 절 사(寺) 자를 새겨 합장을 하면 시 시(詩) 자가 되도록 새겨넣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문신은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바로 반영구 눈썹문신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예술적인 목적이나 패션의 목적으로 받은 것이라면, 이것은 미용을 목적으로 받은 것이다. 우리가 문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다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개수가 어느 정도 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 문신인가요? 그럼 안 지워지나요?’인데, 레이저 시술을 받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간혹 문신과 타투라는 용어를 달리 생각하여 문신은 안 지워지는 것이고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워지는 피부 염료인 ‘헤나’와 타투를 혼동해서 생긴 경우다. 문신과 타투는 같은 말이다. 다음으로 빈번하게 듣는 질문은 ‘아프지 않나요?’인데, 이는 부위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내 경우 도저히 참지 못할 만큼 아픈 부위는 없었고 부위에 따라서 잠시 잠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아프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아팠던 곳은 손날과 가슴, 안 아팠던 부위는 팔뚝이었다. ‘왜 했나요?’ 또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멋으로 했다. 어렸을 때는 대단한 신념이랍시고 문장이나 글씨들을 새기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나름의 멋으로 한 것이고, 대부분의 그림 문신들은 그냥 예뻐서 몸에 새긴 것이다.마지막 질문과 답으로 인해서 간혹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예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훼손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귀를 뚫는 행위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도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여러 유교적 규범들과 함께 재고가 필요한 문제이고, 오히려 그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작년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문신사법 제정을 언급하였다. 한국타투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문신 행위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며, 법원은 문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업무를 하는 경우에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박 의원은 “많은 시민들이 미용이나 자기표현의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문신 시술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합법화하고 문신사를 전문직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나 산업·보건적으로도 모두에게 이득”이라며 문신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한국타투협회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연간 국내소비 650만 건의 소비자를 보호하고 직간접적으로 22만여 명의 안전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하여 문신사법 제정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문신은 이미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예술행위로 간주되어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이 문신사에 대한 소정의 자격 또는 요건을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법적으로, 그리고 인식면에서 문신사, 그리고 문신 피시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팔과 다리에 있는 자그마한 그림들이, 또는 누군가의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문신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유해하기에 TV화면은 이를 모자이크 처리해 버리는가. 어째서 눈에 보이는 곳에 문신이 있는 사람은 경찰관이 될 수 없는가. 법률과 인식, 양면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1-06-07

다함께 만드는 행복도시

강석암​​​​​​​흥해읍 지역사회보장協 민간공동위원장 생각지도 못한 지변(地變)으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불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11·15 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망연자실한 우리 시민들을 일일이 잡고 위로할 수도 없을 만큼 참담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발 빠른 초동대응을 시작으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포항 흥해지역 특별재생사업’을 비롯한 지진대응 매뉴얼을 체계화하여 체계적이고 일원화된 지진 대응체계 구축기반을 마련한 덕분으로 지진으로 흔들린 흥해지역에는 오는 2023년까지 총사업비 2천257억원을 투입해 도시재생 작업이 추진된다.포항시가 지난 201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토부로부터 승인받은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직접 피해지역은 재개발 및 재건축을 추진하고, 그 밖의 지역은 거점 공공시설을 비롯한 도시재생사업과 주민분담금을 최소화하는 자율주택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등 지진의 상처가 곳곳에 남은 흥해읍을 새로운 도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최근들어 하나둘씩 가시적인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흥해읍 남성리 대웅파크2차 철거부지에 문화·체육·복지시설이 입주하는 복합커뮤니티 조성공사가 시작됐다.전파(全波) 판정을 받은 ‘경림뉴소망타운’ 철거 지역에는 지상 2층 규모의 다목적 재난구호소를 올해 말까지 준공하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농구, 배드민턴 등 시민의 생활체육 여가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재난 시에는 안정적인 이재민 구호 지원 등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마찬가지로 전파 피해 아파트인 ‘대성아파트’ 부지에 특별재생사업으로 확정된 흥해공공도서관과 현장지원센터, 키즈카페, 장난감도서관, 시립어린이집으로 구성된 ‘아이누리플라자’를 건립하는 ‘행복도시 어울림 플랫폼’의 공구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오는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하기로 했다니 다행이다.포항시는 이밖에 사업을 추진하는 중간중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부족한 점은 추가사업 발굴 등을 통해서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이강덕 시장도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재생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꼼꼼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사업추진을 통해 주민 삶의 터가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아울러 ‘공동체’라는 살아 숨 쉬는 지역사업을 통해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 앞선다.우리는 ‘지진’이라는 초유(初有)의 사태를 겪으며 큰 피해를 보았지만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굳은 의지와 모두가 ‘우리’라는 하나 된 마음이 흐트러진 땅 위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우리 흥해는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과 예의범절을 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정신문화의 고장이다. 특히 그 삶의 터전 속에는 ‘신바람’과 ‘흥’이라는 희망의 유전자가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지금 우리는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행복도시 흥해!’를 다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