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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넛’의 미래, 전기추진선박으로 이어지나

등록일 2022-03-02 19:53 게재일 2022-03-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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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전기추진차도선이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 내년 시운전을 거쳐 2024년 우리 바다를 누빌 예정이다. /해양수산부 제공

EBS 교육방송과 친해진 계기는 육아 때문이었다.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뽀로로’의 도움으로 매일의 육퇴(육아퇴근)가 가능했다. 온 몸이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울 때 아이와 함께하는 애니메이션 휴식도 달콤했다. 이야기와 주제도 다양해 어른들도 쉽게 빠져들었다. 덕분에 갇힌 육아 속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꼬마버스 타요’의 ‘피넛’ 등장이 대표적이다. 유치원에서 막 돌아온 아이의 간식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땅콩버스 ‘피넛’의 에피소드를 듣게 됐다. 참고로 엄마들은 손으로는 간식을 만들며 귀로는 애니메이션을 듣는 멀티플레이어다. 집안일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다 생긴 기술인 셈이다. ‘꼬마버스 타요’는 새내기 버스인 ‘타요’를 주인공으로, 버스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EBS 장수 애니메이션이다. 이 날은 새로 온 친구인 전기버스, ‘피넛’이 소개됐다. 갑자기 피곤해져 ‘타요’의 도움으로 충전소를 찾았지만 천연가스충전소(CNG)인 바람에 전기충전소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후로 이어진 아이의 질문세례는 상상에 맡긴다. 피넛의 실제 모델인 ‘프리머스(PRIMUS)’가 ‘선두’를 의미한다는 것과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이 버스 회사 이름인 ‘에디슨’과 같다는 이야기, 카본이 말랑말랑해 땅콩처럼 둥근 모양의 차가 됐다는 등 진땀을 흘려가며 설명해 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덕분에 엄마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각종 기술과 탄소중립에 관한 상식을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선박용 배터리팩을 실은 자동차가 개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밀히 말하면 전기추진선박의 전원공급시스템(배터리팩)이 차량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다. 항만과 터미널에 충전소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과 기술문제로, 이동·교체가 가능한 배터리팩을 차량에 싣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순수 전기추진 선박의 배터리가 탈부착 가능하며, 세계 최초라고 한다.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추진선박도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2010년 이후로 선박과 항만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국가별, 국제기구별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대형 컨테이너선 1척에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가 화물트럭 50만대와 맞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후속계획에 착수했다. 해운·항만·수산분야는 ‘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선박법)을 필두로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다. 배터리팩을 차량 형태로 구현한 전기추진선박(전기추진차도선-K1)도 해양수산부의 지원 덕분에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내년 시운전에 나선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저감 외에도 친환경선박법이 갖는 의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시장 선점 효과다.

탄소배출을 줄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데에는 모든 이들이 동의한다. 다만 그 성장이 특정 산업을 선점하는데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부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 출간으로 이 문제를 짚었다. 경제대국들이 어떻게 시장을 선점하며 산업을 주도해왔는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에게는 어떤 패널티가 주어졌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며 선진국의 위선을 알렸다. 후발주자로 힘겨운 압축 성장을 이뤄낸 우리에게 이번 기회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미세먼지로 악명 높았던 LA항이 최근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80%가량 줄였다고 한다.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파트너십이 유효했다고 하지만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점은 육상전원공급장치(AMP) 설치 비용이다. 부두에 정박한 선박은 냉동고 등 자체 설비를 사용하기 위해 유류발전기를 가동한다.

정현미작가
정현미작가

차량 공회전과 마찬가지로 이 때 내뿜는 초미세먼지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다. LA항은 이를 줄이기 위해 7개 터미널에 2억 달러(한화 2천400억)를 들여 AMP를 설치했다고 한다. 물론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펀딩을 통해서다. 정부의 특정 산업 지원이 어떤 효과를 노리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고로 전기추진선박 시장규모는 2018년 8억 달러에서 10년 후 124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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