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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악의 평범성

등록일 2022-02-27 19:48 게재일 2022-02-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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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게 잡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지켜본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악이라는 것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독가스로 유대인을 학살한 일을 아이히만은 자신의 자리에서 명령을 수행했고, 심지어 법을 지키며 그 일을 했다고 했다.

그는 사형장으로 향할 때조차도 자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꼿꼿하게 서있기 위해 발목과 무릎을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잠시 후면 여러분과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만세…”라고 말한 뒤 죽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말하기에서의 무능, 생각하기에서의 무능과 판단하기의 무능함을 보았다며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더욱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 없이 만든다”고 경고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독후감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인류세’라는 말이 있다. 25~15만 년 전에 탄생한 인류가 46억년 된 지구에게 ‘생태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로 붙인 말이다.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보자.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의 ‘인류세 : 인간의 시대’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77억 인구가 250억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아가는 ‘닭들의 행성’이며 우리가 먹는 닭의 조상은 ‘붉은들닭’으로 8천년 전부터 가축화되었단다.

이 ‘붉은들닭’은 원래수명대로 산다면 30년을 사는데 현재 식용 닭의 수명은 중국 55일, 미국 45일, 한국 평균 35일이다. 길어도 두 달을 못 넘기며 로마나 중세시대의 닭들과 비교하면 다리와 가슴부분만 비대하게 자라고 5배 정도 빠르게 성장하도록 변형시켰단다. 그렇게 효율적인 닭이기에 일 년에 650억 마리 정도를 먹어치울 수 있게 됐단다.

이 엄청난 대학살에 우리는 공기 중에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축산업과 유통업에서 생산하는 치맥으로 동참하고 있다.

닭들이 어떻게 부화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어떻게 죽어서 튀겨지고 우리 집 앞으로 배달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주문하고 먹어치운다. 삼겹살을 뒤집으며 아무도 돼지의 분뇨를 치우다가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다.

닭과 돼지와 소는 인간들 덕에 자신의 종이 지구에서 번성하게 된 것을 고마워할까? 가축들의 죽음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가 진행한 거대한 가속의 반생태적 문명이, 무심코 먹는 육식메뉴가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46억년 된 지구를 70년 만에 거덜 낸 실력을 생각하면 ‘악의 비범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태문명선언’이라는 책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영화감독 황윤은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에서는 ‘육류세’가 의회에서 논의 중이며 뉴질랜드에서는 가축사육에 ‘트림세’를 물리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2019년에 우유를 제외한 식물기반 자연식의 ‘캐나다 국민권장식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교육부행사에 채식을 기본식단으로 제공하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식물식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뉴욕시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볼티모어에서는 200개의 학교에서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품에 대해 가르치고 축산업이 기후변화와 물, 그리고 생물종다양성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랜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악의 평범성’을 말하기, 생각하기, 판단하기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학자 최재천은 ‘호모 심비우스’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모두 함께 사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적혀있는 본능 같은 게 아니다. 이 지구를 공유하고 사는 다른 모든 생명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안한다”고 했다.

호모 심비우스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설 곳이 지구에는 없다는 절박함이 묻은 말이다. 협력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이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사유와 삶을 어떻게 꾸릴지를 안내하는 책 ‘소크라테스 스타일’에서 철학자 김용규가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로 ‘우리 안의 아이히만’이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을 다시 상기하자.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가난한 사람들과 지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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