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겨울을 뚫고 매화가 가지에 꽃잎을 열었다. 제주도부터 꽃소식을 들고 달려오는 봄바람의 발걸음 소리가 분분하다. 꽃소식에 점심시간에 황성공원을 걷다가 칼바람에 겉옷을 목까지 당겨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겨울 끝이라고 방심한 탓이다. 입춘이라고 봄에 들어서려다 문지방에서 넘어질 뻔했다. 겨울은 조금 더 기다리라고 아직 방을 뺄 생각이 없다.
나는 매화를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고 얼마 전 매화만 그리는 친구의 전시회에 갔었다. 매화 가지가 작은 종지에 꽃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어사화처럼 둥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탕색이 파랑일 때와 붉을 때 매화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림을 그린 친구도 한복을 곱게 여밀 때와 원피스로 정장을 차려입었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달라 화들짝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파란 바탕의 매화를 보니 고흐의 ‘아몬드 꽃이 피는 나무’가 오버랩 된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층 사이에 유행하던 목판화 우키요에가 도자기를 감싸고 바다를 건너 고흐에게까지 당도했다. 새로운 화풍에 놀란 화가들이 앞 다투어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고흐는 자신의 그림 곳곳에 일본을 담았다. 고흐의 ‘꽃피는 매화나무’는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정원’을 유화로 모사한 작품으로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판화인데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일본 땅에서 피어난 매화가 바다 건너 저 멀리에서 다시 피어난 것 같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하루는 매화나무를 팔 사람이 왔지만, 김홍도는 살 형편이 아니었다. 때마침 그림의뢰를 하는 사람이 사례비로 3천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남은 200냥으로 겨우 쌀과 나무를 들였다고 하니 단원의 고결한 성품과 의연함을 느낀다.
매화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꽃이 있을까.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는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기에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가족들과 즐겨 치는 화투의 두 번째가 2월 매화인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대학 다닐 때 차편이 불편했던 나는 정원에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나던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시피 했다. 아침이면 한 상 차린 밥상에 허겁지겁 내가 밥숟가락을 옮기면 친구는 늘 서너 숟가락 뜨고는 가자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늘 좀 더 먹으라며 친구에게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깨작거리곤 했다. “야야, 더 먹어라, 이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잘 먹는 나의 식성을 칭찬하셨다. 열여덟의 허기지던 나는 어느새 쉰 고개를 넘은 지 오래다. 그 사이 친구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는 형편이다.
어떤 이는 치매의 한자를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癡呆)’가 아닌 ‘치매(致梅·매화에 이르는 길)’라고 한다. 치매(致梅)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이른다는 뜻으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누구세요”라는 어머니의 말이 엄마 손 잡고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같다. 울컥 눈물이 나다가도 자신의 병을 안다면 더 고통스러울 터인데,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에 치매를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이야말로 절망적이다. 다만 치매(癡呆)일지라도 치매(致梅)로 가는 길이라고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저 어머니 머리에 환하게 피어나는 매화야말로 자식들의 세상을 밝히고자하는 매화등은 아닐까.
봄으로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우수(雨水)를 지나도 겨울은 물러날 기색도 없이 영하의 날씨를 고집한다. 하지만 제주도를 출발한 꽃소식이 통도사 홍매화를 피워 올렸다. 이제 갓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발긋한 꽃망울이 가지를 뚫고 올라온 것이 보인다. 추위 속에서도 매화가 꽃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도 봄은 곧 올 터이니 나는 매화 향에 그윽이 잠겨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