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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다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는 출생률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데 이를 뒷받침할 젊은 세대는 줄어든다. 그런 가운데 젊은이들의 일자리 공급에 가려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는 뒷전이다. 일할 사람이 모자라 정년 연장을 꺼내자니 젊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의 부족은 심각하다.지금의 노인들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살아왔다.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부모를 모시고도 자신은 자녀로부터 부양도 받지 못한다. 본인들의 노후를 준비하지도 못한 채 가정과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지위도 흔들린다.공적연금과 기초연금 예산은 늘었지만, 정부의 긴축정책에 따라 노인 일자리 예산은 줄었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 예산은 큰 틀에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사회 기여 측면에서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긍정적 효과는 무시할 수가 없다. 낮은 임금으로 쓰레기 분리수거, 공원 청소, 주차관리 같은 소소한 일을 노인들의 노동으로 메운다.공공일자리의 역할을 생각할 때 쉽게 예산을 줄여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 어슬렁거리며 하는 시답잖은 일이라고 치부하며 생산성의 잣대로만 가치를 판단하면 안 된다. 공공일자리는 투자한 돈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이 강하다.노년의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이 크다.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버는 27만 원은 우리 사회에서 27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추운 날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먹을 수도 있고 난방을 하여 노인의 차가운 몸을 녹이는 돈이 되고, 추운 겨울을 나게 하는 소중한 생명의 끈이 된다.일하다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얼굴 가득 웃음이 돌고 몸에 활기가 넘친다. 일하다 쉬는 휴식으로 삶에 리듬을 타고, 사람과의 관계가 이어지며 삶에 핏기가 돈다. 이러한 가운데 외로움은 남의 일이 된다. 봄철의 새싹처럼 몸에 생기가 돌고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다.일거리가 없어 몸을 쓰지 않으면 굳는다. 쓰지 않는 몸은 이내 병이 나고 드러눕게 되고 병원의 장기 입원자가 된다. 장기 입원 환자에게 국가가 부담하는 돈은 27만 원 이상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돈주머니는 고삐가 풀려 어느 틈에 적자로 돌아선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 나이 든 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나이 든 사람에게 최선의 복지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일자리는 홀로 사는 감옥 같은 집에서 탈출시켜 주는 열쇠요 삶의 소중함을 맛보게 하는 도구이다. 무기력함과 외로움 속에 살다가 병원비로 지원할 것인가 삶의 에너지로 지원할 것인가는 정부의 몫이다.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적은 돈으로 국민을 기쁘게 하는 일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잠시만이라도 노인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말이다.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얻는 것이 긴축 재정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는지.

2023-02-13

성찰하는 권력에 박수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전쟁 같은 정치’가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집행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나 입법권력을 가진 야당이나 하나같이 자기성찰은 없고 정적(政敵) 공격에만 혈안이다. 민생은 외면하고 ‘네 탓 공방’으로 날을 새고 있으니 ‘정치의 존재이유’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정치인들의 오만과 독선, 확증편향, 선택적 정의, 내로남불 행태는 전혀 변화가 없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권력은 자기성찰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찰 없는 권력은 ‘편견과 독선의 괴물’로 전락함으로써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근심’이 되고 있다.이처럼 권력은 왜 성찰에 인색할까? 그 원인은 ‘권력의 자기중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성찰을 위한 전제는 ‘경청(傾聽)’이다. 타인의 고언(苦言)을 겸허히 듣고자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커질수록 자기중심성이 강해짐으로써 타인의 충고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권력의 크기와 성찰의 가능성이 반비례’하는 까닭이다.한국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은 권력의 자기중심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성찰을 거부하면 ‘소신’이고, 상대가 성찰을 거부하면 ‘아집’이라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니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하게 된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탓하면서 적폐청산에 올인(all-in)했고,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을 탓하면서 새로운 적폐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행하게도 ‘내 탓이오’라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권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게다가 여야의 강성 지지자들, 즉 정치팬덤들의 극단적 행태도 권력의 성찰을 가로막고 있다. 좌우의 팬덤들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합리적 비판까지도 이적(利敵)행위로 몰아서 집단린치를 가하고 있다. ‘충신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내부비판을 막고 있으니 권력의 자체교정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이처럼 권력의 성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찰 없는 권력은 국가적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은 ‘엿과 채찍’으로서 정치인들의 성찰을 유도해야 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권력의 표리부동(表裏不同)’에 속지 말고, 위선적 권력은 가차 없이 비판하고 성찰하는 권력은 격려해야 한다. 특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권력에 직언하는 충신들, 그리고 정치팬덤들의 비열한 공격을 받고 있는 내부비판자들에게는 성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반면에 성찰을 거부하는 오만한 권력은 미래가 없음을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권력의 속성상 자기성찰은 쉽지 않기 때문에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는 국민이 채찍을 들 수밖에 없다. 최선의 방법은 대선·총선·지선 등의 선거를 통해서 그들을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보다 자기성찰에 충실한 정당과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퇴행적이고 야만적인 한국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

2023-02-13

우산고로쇠

홍석봉 대구지사장 ‘신비의 물’로 불리는 울릉도의 ‘우산고로쇠 수액’이 본격 출하되기 시작했다.요즘 고로쇠 수액 채취시기를 맞아 울릉도의 해발 400~700m 산 중턱의 눈 더미 속에서 주민들의 고로쇠 수액 채취 손길이 분주하다. 해마다 경칩전후인 2월 말∼3월 중순에 채취한다. 우산고로쇠 수액은 청정지역에서 생산돼 깨끗하고 맛도 으뜸으로 평가받는다.높은 당도와 산삼(사포닌)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우산고로쇠 나무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생, 100% 국산 유전인자를 가진 울릉도 토종 단풍나무과 활엽수다. 울릉도의 옛 지명인 우산국 이름을 따왔다. 산림청의 지리적 표시 임산물 제40호로 등록돼 있다.우산고로쇠 수액에는 시판 생수에 비해 칼슘은 약 40배, 마그네슘은 약 30배 높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아미노산, 비타민C, 미네랄 등 여러 가지 무기성분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산후조리, 숙취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노폐물 제거 및 신진대사 촉진 등과 비뇨, 변비, 류머티스, 관절염, 위장병, 신경통, 피부미용에도 효험이 있다. 신장병, 이뇨작용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냉장 보관하면 한 달 정도는 간다. 고로쇠는 ‘뼈에 좋은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樹)’가 바뀐 말이라고 한다.우산고로쇠 수액으로 장을 담그면 일반 된장보다 뒷맛이 구수하고 개운해 장담그기용으로도 인기다. 울릉군은 해마다 우산고로쇠 수액으로 된장을 만들어 소외된 이웃에 전달하는 사랑의 장담그기 행사도 갖는다. 각종 쇼핑몰 등에서 판매해 요즘은 육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산고로쇠는 주민 건강을 챙기고 소득 증대에도 일조하는 효자나무가 됐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13

의성 조문국(召文國), 옛 영광은 잠들어

삶을 이어가는 지역의 공간은 그 지역을 살아가는 지역민에게 주요한 관심사다. 사람들은 시간의 축적에 따른 잠재력, 공간적 위치, 주변과의 관계성, 역사적 사실, 민담이나 전설 등이 명징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의성 금성면에도 그 기대감을 드높인 전설이 전해진다. 삼한시대에 조문국이라는 커다란 왕국이 의성에서 번성했으며, 조문국 경덕왕릉(景德王陵)에 제를 지내면 가뭄을 해결해준다고 한다. 경덕왕릉에 얽힌 전설에서는 주로 꿈에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은 기이한 복식을 입고 나타나 옛 영광을 노래하거나 봉분의 관리에 대해 언질하거나 자신의 집 위에 있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를 조선 조정은 범상치 않게 여겨 의성 현령 이우신( 1670~ 1744)에게 고분을 정비하고 하마비(下馬碑)를 세우게 하며 기우제나 향사를 국가가 주관토록 했다.의성 금성면에서의 전설은 조문국의 존재에 대한 신빙성과 관련되어 있다. 명덕리 비봉산에는 봉황이 날아올랐다는 이야기가, 백장령에는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게 100장의 그물을 쳤다는 이야기가, 오동산에는 봉황이 먹는 오동나무가 많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1960년 대리리·학미리·탑리리에서 5~6세기경 고분군 374여 기가 발굴되면서 이와 같은 조문국 전설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발견된 고분 중 100여 기는 경주 고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규모가 컸으며, 특히나 새(봉황)의 깃털 모양 장식이 있는 금동관도 발굴되어 의성에 오랫동안 구전된 전설의 신빙성을 더욱 뒷받침하였다.의성은 동부의 산악지대를 제외하고 완만한 구릉과 곡저평야로 이뤄져 있어서 예로부터 영남의 곡창지대이자 경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삼한시대 사로국은 외부 세력의 유입을 통제하기 위해 의성의 조문국을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 했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벌휴이사금 2년(서기 185년)에 조문국은 사로국에 복속된다. 이후 언제까지 조문국 왕실이 유지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화랑세기’에서 조문국의 왕녀 운모와 사로국의 김씨 왕실이 혈연으로 맺어져 신라의 진골 정통을 형성하였다고도 전해지지만 ‘화랑세기’는 정통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조문국의 기록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소략한 사료에도 불구하고 금성면의 대규모 고분군은 옛 조문국의 장엄했던 영광을 짐작하게 한다.조문국 경덕왕릉에 지내던 기우제나 지역 향사는 조선때 국가향사가 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중단된다.이를 박규환이 1910년 개인적으로 제를 지내면서 그 명맥을 이어간다. 그러나 1919년 고종 승하에 곡을 하고 3·1 조문교회 만세운동을 주관하면서 고문으로 인한 병을 얻는다. 그는 당시 천석꾼인 신명환에게 향사를 이양한다. 신명환은 문화통치 시기의 정책에 맞춰 조문국 향사의 규모를 키우고 체계화하였다. 다만 경덕왕릉비를 세웠으나 비문에 일본의 연호가 기록되고, 조문국의 역사를 기록한 ‘미광’을 발간하였으나 조선식민지화를 정당한 것으로 설명하는 등 당시의 일제 정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 주관으로 고분이 발굴되고, 1985년 경덕왕릉보존위원회로 이전되기까지 조문국 향사는 개인 중심의 향사에서 지역 중심의 향사로 천천히 변화하였다. 1988년 이후 적극적인 기록보존을 위한 노력-사료수집, 연구용역의탁, 간이전시실 운영 등의 의견 제시-으로 조문국에 대한 현대적 자료가 만들어진다. 현재는 의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향사가 이어지고 있다.의성 금성면 고분군에는 조문국사적지와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경덕왕릉을 중심으로 펼쳐진 조문국사적지에는 작약꽃단지·팔각정자·고분거님길·전시관 등이 있어 고분군 사이를 거닐 수 있으며, 길 건너 박물관에는 유물과 발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둥근 돌이 아닌 깨진 돌을 사용한 유사 돌무지덧널무덤, 네모난 구멍이 많은 굽다리 토기, 새 깃털 모양 장식이 특징인 금동관모 등을 통해 조문국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했음을, 경주의 위세품 유물을 통해 사로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박물관 옆에는 물놀이터와 지석묘·미로정원, 공룡놀이터가 마련되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을 위한 여건도 마련되었다. 잘 갖춰진 숙박시설이나 캠핑장, 카페와 같은 인프라가 좀 더 구축되고, 문화공연과 연계된다면 더 많은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 같다.그러나 ‘여지도서’(1760)의 기록 “문소고을 과거사를 누구와 의론하랴/천년이 지난 오늘 경덕분만 남았도다/비봉곡조 없어지고 사람도 볼 수 없고/조문의 거문고 가버린 지금 그 소리도 묘연하다”처럼 의성은 현재 인구절벽에 가로막혀있다. 애써 지켜왔고 지금도 잘 지키고 있지만 조문국 향사와 같은 지역 문화를 이어받으려는 젊은층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는 비단 의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관광자원을 유치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여전히 의성의 옛 영광은 잠들어 조문국 꿈길 위를 벗어나지 못한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2-13

그들은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쓴다

바야흐로, AI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완승하고, 이세돌이 신의 한 수로 승리했던 드라마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인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조금은 더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AI는 현실 세계 바깥의 샌드박스 속에서 빠르게 발전하면서, 어느새 인류가 몇천 년의 시간을 들여 세워 올린 문명의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 고작 몇 개의 단어만 입력하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수많은 일러스트 AI와 앨런 튜링이 제안했던 컴퓨터와 인간의 대화에서 자연스러움에 대한 튜링 테스트 같은 것은 이미 넘어버린 수준으로 대화하고 있는 chatGPT처럼, AI는 말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제 곧 음악을 만들고, 놀이를 하고, 생각을 할 것이다.인간 세계의 물리적인 시간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병렬 처리 프로세스를 통해 압축해버릴 수 있는 것이 디지털 세계의 시간이다 보니, AI가 인류 문명을 따라 잡는 속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빨라질 것이다. 소나 말이 끌지 않는데도, 굉음을 내며 스스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보았을 때의 압도적인 근대 문명의 충격만큼의 것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셈이다.AI가 지배하는 미래 세계의 풍경은 이미 많은 작가들이 보여주었다. 그것들 대개는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는 세상을 희망찬 미래로 담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SF는 아직 열리지 않는 미래의 불확정적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가장 큰 동력으로 삼고 있기 마련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1932)에서 보여준 인간이 가진 감정이라는 잉여의 대상을 통제하는 소마(soma)라는 통제 시스템은 미래 문명에 대한 공포어린 시선으로 AI에 의해 초래될 세계에 대한 공포로 수렴된다.아이작 아시모프의 자율적인 의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기계인 ‘로봇’ 시리즈나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그리고 필립 K딕이 보여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알고리즘을 짜기 시작하는 기계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인류가 세워 올린 문명의 방향성을 문제 삼는 사춘기를 겪기 시작할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나면 어엿하게 독립된 존재로서 그것은 세계 속에서 자기의 영역을 주장하고, 조만간 자신이 인간보다 기능적으로 나을 뿐만 아니라 더 힘이 센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리라.AI의 도래가 가시화된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SF를 한 작품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neuromancer, 1984)’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이버펑크(cyberpunk)를 대표하는 작가로, 필립 K. 딕 이후 가장 대표적인 SF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매트릭스’라는 사이버스페이스 개념을 처음으로 소설 속에 구현해서 신체 교환된 포스트 휴먼이 디지털 네트워크와 실제 세계를 오가면서 겪는 모험담을 그려냈다. 주인공인 케이스는 피폐화된 세계 속에서 신체 교환과 약물 중독을 겪으면서, 자칫하면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 AI 윈터무트와 뉴로맨서가 주도하는 음모를 파헤쳐간다.이 소설은 마치 영웅의 서사시처럼 고난을 겪으며 이를 헤쳐나가는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에게 멘토는 실제의 사람이 아니라 매트릭스 속에 데이터로 업로드된 지금은 죽은 스페이스 카우보이이다. 자기에게 영향을 주는 AI의 존재를 알아내고서 이 소설의 주인공 케이스는 그와 맞서기보다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다. 시스템의 주인은 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감각 전이나 매트릭스 접속, 인격화된 AI 등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기술적 미래상은 수도 없이 많다. AI 계시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2-13

쪼개지면 망한다

김진국 고문 2000년 연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차기 권력’ 후보들의 정치 발언을 단속했다. 김 대통령은 그해 6월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1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1년 1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받은 구제금융을 상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잘 달리던 그가 ‘차기’가 부상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블랙홀’이었던 개헌처럼 ‘차기’라는 단어는 역대 대통령의 역린이었다.그런데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언급했다. 노 장관의 정치 발언은 처음이 아니었다. 한광옥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 장관을 불러 “제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김 대통령의 경고를 전달했다.그렇지만 질책받으러 호출됐다는 노 장관의 표정은 당당했다. 청와대 비서실을 여기저기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그때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주자로서 노 장관은 5~7번째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하며 합의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김영삼 당 대표는 ‘노란 봉투’를 던지고, 눈 덮인 지리산을 오르며, 노 대통령을 굴복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현재 권력’과 동거했던 대표적 ‘미래 권력’이다.‘레임덕’이란 단어는 역대 정부에서 금기어였다. 그런데 집권 세력 안에서 ‘레임덕’과 ‘탈당’을 먼저 끄집어내는 건 의외다. 김기현 당 대표 후보의 후원 회장을 맡았던 신평 변호사는 ‘미래 권력’인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수 있고,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그의 발언은 당 대표 경선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를 말해준다. 그래도 너무 거칠다. 금도가 필요하다.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당 대표가 된다고 바로 ‘미래 권력’이 되는 건 아니다. 차기 후보는 당 대표가 되기보다 훨씬 어렵다. 대통령이 지명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스스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임기 마지막까지 남는 과제가 정권 재창출이다. 정권이 넘어가면 5년 치적이 모두 뒤집힐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차기 후보에게 굴복하는 모양까지 연출했다. 그래도 ‘말 잘 듣는 후계자’는 환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다.준비하지 않은 후보는 이기지 못한다. 임기 초반부터 ‘현재 권력’과 대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보가 될만한 사람의 손발을 모두 묶어 버리면 차기 경쟁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자칫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열린우리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경선이 결선보다 더 치열했고, 정작 본선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경선 이후 줄곧 ‘문빠’의 공격 대상이었다 후보가 되었지만 실패했다.물론 ‘현재 권력’이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이 없다. IMF 사태가 벌어진 김영삼 정부, 집권당이 쪼개지고, 탄핵에 시달리고, 국론 분열됐던 노무현 정부 뒤에는 정권이 넘어갔다. 조그만 이견마저 ‘배신자’로 낙인찍고, 공천 파동이 벌어진 박근혜 정부도 결국 정권을 넘겨줬다. 바닥을 치는 ‘현재 정권’ 아래서는 정권을 재창출할 ‘미래 권력’도 없었다. 문제는 권력 주변 인사들이다. 현재 권력도, 미래 권력도 쪼개면 망한다. 현재 권력이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쪼개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지지 정당을 쪼개놓고 당선될 미래 권력도 없다. 권력 주변 인사들은 다르다. 자리는 언제나 모자란다. 공직은 한정돼 있고, 지역구는 오히려 줄어든다. 앉힐 사람은 넘친다. 경쟁자를 줄일수록 자기 패거리 몫이 커진다. 당과 나라의 미래보다 패거리가 먹을 게 급하다. 이런 자들의 말에 현혹되면 현재 권력도, 미래 권력도 망하는 길로 간다. 집권당이 혼란하면 국민도 불행하다. 더이상 무리해선 안 된다. 전당대회 이후를 생각하면, 금도가 필요하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2-12

운동할 때 물, 어떻게 마셔야 할까?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물을 마시고 운동을 하면 배가 아프다”, “운동 중 물을 마시면 근육이 풀어진다”, “운동 직후 물을 마시면 살이 찐다”. 이처럼 운동과 물에 대한 속설은 의외로 많다. 운동과 물은 따로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불가분적 관계이며 운동할 때 가장 필수적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운동할 때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제한으로 마셔서는 안 된다. 운동 중이나 직후에 마시는 물이 과다할 경우 호흡곤란, 폐부종, 뇌부종이 발생하여 혼수상태 또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적정량의 물을 언제, 어떻게 마셔야 할까?운동을 하게 되면 수분 손실이 많아지게 된다.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운동선수의 경우 하루에 체중의 6~8%까지도 수분을 잃을 수 있다. 흔히 탈수라 하는 수분 손실 현상은 갈증, 식욕 상실, 무기력, 불안, 메스꺼움, 과민증 등으로 나타난다. 보통 체내 수분이 체중의 1%가량 손실되면 갈증현상이 나타난다. 약 2%가량 부족하게 되면 운동 중 심박수와 체온이 올라가고, 3~4%에 이르게 되면 혈류량 감소로 인해 신체활동력과 유산소 운동능력이 20~30%까지 감소된다.게다가 고온 환경이나 계속적인 고강도 운동으로 수분 손실이 더 증가하게 되면 현기증, 정신착란, 기억 감퇴 등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열 탈진, 열사병을 넘어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 만성적인 탈수 상태가 되면 수분을 보충해도 운동수행능력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운동 전후나 중에도 적절한 물 보충은 해야 한다. 유산소운동이든 무산소운동이든 운동 형태와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물을 마시면서 빠져가는 수분을 보충해주는 게 운동 효과가 크다.수분 섭취 방법은 운동 강도에 따라 다르다. 목이 마를 때만 마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운동하기 2시간 전에 약 0.5ℓ를 마시는 것이 권장되는데, 1시간 이상 땀을 많이 흘리는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운동 중과 후에 손실된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규칙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훈련이나 시합 중에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증은 쉽게 인지할 수 없는데, 이는 젖산 등 노폐물 배출이 잘 이뤄지지 않아 피로 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운동선수는 자신의 체액 손실을 알고 보충해야 한다. 운동선수의 경우 운동 중에 시간당 약 0.5ℓ를 마시는 것이 권장되지만 운동할 때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는 개인의 수분 요구량에 따라 다르다. 운동 전과 후의 체중 차이와 운동 중 섭취한 수분의 양을 합하면 체액 손실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운동 중에 0.5ℓ를 마셨는데, 운동 후 체중이 1kg 줄었다면 수분 요구량은 1.5ℓ이다. 특히 운동 중에 수분 보충은 반드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마셔야 한다.운동선수와 같이 하루에 몇 시간씩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면 운동 전중후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물에 희석한 미네랄워터 또는 주스는 운동선수를 위한 수분보충제로 권장된다. 특히 장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이나 마라톤과 같은 시합 후에는 몸에 충분한 전해질을 공급하는 것이 좋다. 전해질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이온음료가 추천되지만, 약 3/4의 물과 1/4의 사과 등 과일 주스를 섞어 마시는 방법도 있다.특히 나이가 들수록 갈증을 느끼는 능력이 저하되는데, 노인에게 탈수증은 치명적일 수 있다. 체내의 만성적인 물 부족 현상은 단순 목마름을 넘어 근감소증을 더욱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근감소증은 근육량의 감소로 인한 근력의 저하가 동반되고 이로 인해 신체기능이 저하되어 낙상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노인의 낙상은 골절상을 발생시키고 이는 높은 사망률과 이환율을 증가시킨다. 게다가 근육량의 감소는 신진대사를 떨어뜨려 노인성 비만을 증가시켜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성 합병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독일스포츠영양연구소(Deutsches Institut f00FCr Sportern00E4hrung)는 근력운동 후 근육 재생에 우유 섭취를 권장한다. 특히 저지방우유는 탄수화물, 전해질 및 칼슘뿐만 아니라 근육 형성을 위한 고품질 단백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또한 물은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물의 온도는 4~5℃가 가장 잘 흡수되기 때문이다. 다만 과민성 대장염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무조건 찬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섭취해야 한다. 변비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차가운 물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다.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1.5~2ℓ 정도의 수분섭취를 권고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물 충분 섭취자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나타났다.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수분은 인간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이다.운동을 하면 땀이 나는데, 땀도 수분의 일종이다. 운동 전에는 미리 수분을 보충하고, 운동 중에도 갈증이 나기 전에 규칙적으로 물을 천천히 조금씩 마시며, 운동 후에도 땀을 흘린 만큼 탈수 예방을 위해서 충분히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23-02-12

‘벚꽃 피는 순서’와 ‘첫눈 오는 순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우리 대학은 한국에서 가장 마지막에 망할 겁니다. 그건 우리 대학의 벚꽃이 한국에서 가장 마지막에 피기 때문입니다”라는 농담을 하는 대학의 보직자를 만난 적이 있다.그가 재직하는 대학이 서울보다 더 북쪽인 한국의 최북단에 있기 때문에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라면 가장 그 대학이 늦게 망할 것이라는 농담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필자는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서울과 지방으로 양분되는 한국적 현실이 이런 코미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벚꽃 순서’의 내면에는 서울과 지방을 양분하는 고질적 병이 숨겨져 있다.‘지역대학의 세계화’를 강조하며 포스텍을 지키던 포스텍 교수들조차 퇴임 후에는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경북이나 대구, 부산이 고향인 분들도 퇴임 후 고향을 찾지 않고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 선호도는 포스텍 교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대’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칼럼에서 ‘지방대’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사실상 지방대라는 말에 오늘의 대학의 문제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서울에 있지 않는 대학은 지방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심지어 경기도에 있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에 있는 유력한 대학들도 ‘인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생유치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니 정말 한심한 현실이 한국의 서울과 지방의 양분화 상황이다.2023학년도 정시모집 결과 수험생이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곳은 전국적으로 26개 학과, 14개 대학인데 모두 지방대로 집계됐다고 한다.얼마 전 대구의 모 대학 총장이 대학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입시 실패에 대한 총장 책임을 묻는 글 아래에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할 것이라는 사실만 약속드린다”는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사실상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대입에서 정원을 못 채운 지방대가 속출하면서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는 말이 나돌고, 이제는 총장 사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아마 이런 현상이 더 가중될 것이다.1960∼70년대 시절 신생아는 연 100만 명에 가까웠고 초등학교는 한 반에 10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이었다. 2부제, 3부제 수업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초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20∼30명 수준이고 폐교되는 학교도 종종 있다.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이미 시작되었다.한국은 출생아가 역대 최저치인 30만 명 선이 무너졌고 대학정원은 약 50만 명이니까 조만간 대학의 거의 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 정부지원, 지방대 특화 등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기도 한다.구조 조정은 모든 대학이 다 같이 정원을 줄이자는 것이고, 정부지원은 지방대에 좀 더 많은 지원을 하자는 주장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각자도생토록 하지 말고 구조조정과 재정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또한 지방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특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포항의 포스텍이 전국적인 명성의 프리미어 대학으로 문제가 없지만, 한동대의 100% 충원은 글로벌 역량강화와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한 것이라는 예를 들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도 한다.그러나 국민들이 ‘첫눈 오는 순서’로 대학을 지망하고 그 지역에 사는 것을 선호한다면 어떤 구조조정도 정부지원도 효과를 크게 갖기 힘들다.이러한 선호는 서울과 지방의 양분을 고착화시키고 있다.일부 대학의 폐교는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서울과 지방에 대한 양분법의 인식과 지방과 지방대학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줄어든다면 현 대학정원 미달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하다. 재수, 반수를 통해서 ‘인서울’ 대학으로 가려는 분위기가 없어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미국의 많은 우수한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주요 명문 주립대학들은 주의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있다. 이것은 교육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찬가지이다.미국과 같이 한국도 서울 지역 가리지 않고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질로 승부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한다.서울·지방 이분법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벚꽃 피는 순서’로 망할 것이라는 말은 ‘첫눈 오는 순서’로 지역을 선호하고 서울과 지방을 양분하는 고질적인 한국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떠한 처방도 약이 될 수가 없다.이러한 고질적 병이 사라질 때 한국의 대학충원율 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사실상 ‘벚꽃 피는 순서’라든가 ‘첫눈 오는 순서’라든가 하는 지역적 차별을 일컫는 농담도 사라져야 한다.

2023-02-12

챗봇 돌풍

우정구 논설위원 2016년 3월 5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게임의 전개가 다양하고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을 이기지는 못할 거란 기대는 곧 허물어졌다. 알파고가 세계 최고수인 이세돌을 4대1로 눌렀던 것이다.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기계의 승리란 측면에서 인간 세계에 던져준 충격은 실로 컸다. 인공지능 발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컴퓨터가 최초로 개발되고 계산에서 사고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과 같은 기능은 거듭 발전해 왔다. 1997년에는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었고, 인공지능 왓슨은 미국의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 역대 우승자를 모두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난공불락 영역으로 여겼던 바둑이 무너지고 최근 미국의 오픈 AI사가 개발한 대화형 GPT가 출시됐다. 출시 두 달만에 월간 이용자가 1억명을 돌파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판 챗봇 출시도 임박하다고 한다.챗GPT는 대화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질문에 답변한다. 대학의 과제나 판결문 작성도 단숨에 써낼 수 있다. 어떤 복잡한 문제도 척척 대답을 한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폰 등장을 능가하는 일상의 변화가 예상된다니 얼마나 엉뚱한 세상이 될지도 걱정이다.또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의 진화로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을 한다. AI가 법률 자문을 하고 논문도 써주며 기사도 작성도 한다니 기상천외하다. 그보다 AI가 사람의 감정 영역까지 침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12

역사적인 판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2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면서 원고에게 3천만 원과 관련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한국군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6월 12일 작전 중에 원고 가족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원고의 이모와 남동생, 언니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원고와 오빠가 중상을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료됐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 역시 원고가 처한 심각한 장애 사유로 발생한 늦은 권리행사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이번 판결에 한국인들의 증언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해병대 소속 증인들이 한국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10월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파병을 기점으로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4만8천여 명을 베트남에 보냈다. 그 결과 5만여 명의 베트남인을 죽이고, 한국군 5천여 명의 사망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 2만여 명의 고엽제 환자가 생겼고, 총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언젠가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시작해 다낭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방문 목적은 베트남의 전쟁역사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는 예외 없이 전쟁역사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에서 방송으로 안내하는 베트남 전쟁 전개 과정이 처음에는 영어로 바로 다음에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다가왔다.파리를 관통하는 센강의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도이치어 순서였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전쟁역사박물관을 찾은 푸른 눈의 여행객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고 한국어 방송 도중에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었다. 남의 나라 내전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하여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학살한 대가로 10억 달러 벌어서 조국 근대화의 소중한 종잣돈으로 썼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20세기 국가들이 보이는 공통의 행태가 있다. 그것은 고대에는 자국(自國)의 위용은 과시하고, 현대에는 피해자로 자신을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일본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되, 디아스포라와 유대인 학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이스라엘. 임나일본부설과 찬연한 만세일손의 국가로 자부하다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만 누누이 강조하는 일본. 그런 대열에 우리도 합류하기 일쑤였다.이번에 나온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배상 판결은 역사적이다. 가해자로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가증스러운 일제와 그 후예들에게 우리의 역사 인식과 책임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베트남에서 한 짓은 눈 감고 왜 우리에게 사죄를 요구하느냐’ 하는 일본인들의 역겨운 시선을 일거에 날려버린 판결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에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2023-02-12

청송군, 군민 중심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윤경희 청송군수 청송군은 올해 복지시책 추진방향을 ‘꼭 맞게 든든한 보편복지 실현’으로 정하고 군민 중심의 사회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선다.군은 올해 노인·아동·청소년·여성·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함으로써 군민 모두가 행복한 맞춤 복지를 구현해나갈 방침이다.먼저 어르신들에게 쾌적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경로당 신축 및 개·보수와 경로당 활성화 물품을 지원하고 특히 소파·입식테이블을 적극적으로 보급하여 경로당 좌식문화로 불편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가생활을 지원한다.이와 더불어 매년 노인일자리사업 대상자를 확대해 어르신들의 안정된 노후생활 기반을 조성하고 사회참여 기회를 늘여 나간다.또한 기초연금지급, 어르신 목욕비 지원,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 운영을 비롯해 일상생활을 혼자 하시기 어려운 취약 어르신들에게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편안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다음으로는 보육환경 조성과 출산 분위기 장려에도 앞장선다.부모급여, 영유아보육료 및 가정양육수당, 아동수당 지원을 통해 맞춤형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노후화된 보육시설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사업으로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특히 드림스타트사업·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 보호육성사업 등으로 아동들에게 종합적인 방과 후 돌봄서비스를 지원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다양한 여가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다.또한 다문화가족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빠른 이해와 적응을 돕기 위해 방문교육 및 우리말 공부방, 사회적응 특화프로그램 등도 운영·지원한다.아울러 방과후 학교 운영 등 학교교육을 지원하고 중·고등학교 신입생 교복구입비, 고등학교 무상교육 지원으로 공공성을 강화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등 지역 교육여건을 개선해 나갈 방안도 마련했다.이와 함께 학업 향상과 재능연마에 전념하도록 우수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양질의 교육 기회와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청송인재양성원을 통해 지역 학생들의 교육 의지를 높이기 위해 적극 나선다. 또한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복청송 아카데미, 행복청송 군민대학, 성인문해교육 지원 등 평생학습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한편으로는 이웃사촌복지센터를 운영해 주민조직화 및 주민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해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인적안전망 구축을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가는 전략도 펼친다.이와 더불어 사회보장수급가구(기초생활보장수급,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책정을 위해 행안부(주민등록), 국세청, 금융기관과 연계된 사회보장시스템을 활용하여 자료확인·법적검토·방문실태조사 등으로 적정한 급여를 결정하고 인적·소득재산 변동사항 등을 수시로 조사해 수급자격을 정비함으로써 맞춤형보장급여를 제공할 방침이다.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집중 발굴 기간을 운영하고 위기가구에 대한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이들의 욕구를 조사해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 지원하고 점검하는 등 지속적이고 의욕적인 통합사례관리는 물론, 복합적인 문제로 위기상황에 놓인 가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복지안전망을 구축해 나간다는 전략이다.끝으로 숱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구국·호국 의지를 불태우다 산화한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위해 참전명예수당, 보훈예우수당과 참전배우자 수당을 지급하고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들의 사회참여와 소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장애인일자리 참여자 수를 늘리고 장애인연금·수당·의료비지원 등 장애인에 대한 맞춤형복지 서비스를 적극 펼쳐 나갈 계획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군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복지청송, 그리고 군민의 삶이 보다 안정된 윤택한 행복 청송을 만들기 위해 올 한해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3-02-12

그날은 달도 비밀을 지켰어

사과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지인이 보낸 것이다. 제법 묵직한 걸로 보아 올해 사과 농사는 풍년인가 보다. 택배 상자를 열어 보았다. 빨간 홍옥이 가득하다. 사과 따느라 애쓴 지인 얼굴이 상자 안에서 빨갛게 웃고 있다. 사과를 소분해 냉장고에 넣고 몇 개를 식탁에 두었다.아침햇살이 빨간 홍옥을 밀치고 들어와 더 빨갛다. 사과 한 개를 깎았다. 사과 한 쪽을 먹기도 전에 벌써 침이 고인다. 과즙이 그득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참 달콤하다. 사과를 씹으면서 달콤하고 살벌했던 첫서리에 관한 추억이 떠오른다.숙이네 집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마을 공동 빨래터가 있다.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거기서 기다리면 친구들이 하나둘 모였다. 과수원집 숙이는 사과 궤짝에서 꺼낸 사과를 한 아름 안고 왔다. 주로 벌레 먹거나 흠집이 있었다. 그것도 달았다. 그날 밤, 우리는 우물가에서 어깨를 맞대고 정신없이 사과를 먹었다.배가 그득해지자, 이제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재미난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보니 친구들 눈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먹다 남은 사과를 한 쪽에 밀쳐 두고 모두 일어났다. 숙이네 창고에 들어가 빈 포대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가득 따서 오자는 약속을 하고 빨래터를 벗어났다. 삼삼오오 나누어 조심스럽게 사과밭에 숨어들었다. 정신없이 사과를 따서 포대기에 담는데, 소리가 왜 그리도 크게 나는지.“이런 도둑고양이를 봤나!”사람 소리가 났다. 맑은 달밤의 적막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웅성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퍽퍽 매질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사과나무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숨을 죽이며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열었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소리와 크게 혼내는 동네 오빠들의 음성이 들렸다. 혼쭐나는 친구들은 모두 남자아이들이었다.사과 서리를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과나무에 시커먼 달이 걸려 있었다. 하늘빛이 급하게 변하고 사위는 고요했다. 달님이 마치 우리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한참을 혼나더니 동네 오빠들은 돌아갔고, 친구들의 흐느끼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우리는 그제야 나무 아래서 나왔다. 서리한 사과를 나무 아래 그대로 두고 과수원에서 벗어났다. 바로 동네 우물가에 갈 수가 없었다. 여자아이들은 동네를 빙 돌아 늦게 우물가에 갔다. 거기서 한참을 남자아이들을 기다렸다.빨래터에 비치는 달빛에도 겁이 났다. 훤한 달빛에 선뜻 나오지 못하고 나무 뒤에 한참을 숨어 있었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남자친구들을 걱정했다. 이순혜 수필가 발 없는 소문이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같이 사과 서리를 갔지만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는 쏙 빠졌다. 지난밤에 남자아이들이 숙이네 사과 과수원을 서리한 이야기만 소문이 돌았다. 며칠 동안 남자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선배들한테 서리하다 들켜서 맞았다는 이야기만 골목을 가득 채웠다.시골 마을에서 같이 자란 우리 또래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다. 주로 여자들이 주도해서 온 산천을 돌아다닌 것 같았다. 그날 밤 사과 서리를 하자는 이야기도 아마 여자 친구들이 먼저 꺼냈지 싶다. 그런데 벌을 받은 것은 남자친구들이었다. 아무도 그날의 일에 대해 변명이나 원망하지 않았다.첫서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과수원 주인집 숙이를 앞세우고 사과를 서리했지만, 숙이네와 관련 없는 동네 오빠들에게 들켜 남자친구들이 혼나는 사건이었다. 남자친구들은 여자친구들이 꼬드겨서 그랬다고 불지 않았다. 달도 우리의 소행을 빤히 내려다보았지만 고자질하지 않았다. 남은 사과를 다시 입에 넣는다. 사과즙이 쪼르륵 흘러내린다. 달콤하고 살벌했던 추억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내 친구 다섯 숙이와 경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비밀은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남자친구들은 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사과 서리에 관한 기억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고 있으려나.

2023-02-12

우리 회사는 왜 안되는가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 경영은 투명한 어항에서처럼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거대한 사회변혁적 기술은 늘 불확실성이 따르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현상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시시하게도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 요소 때문에 거대한 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인한다면 현재의 수준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그 아래로 흐르는 변화의 본질을 무시할 수 없다. ‘왜 우리 회사는 안되는가?’‘왜 우리 조직은 안될까?’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 컨설턴트로서 고민한 바를 공유하고자 한다.첫째, 비전의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층과 직원의 비전은 공감되어야 하고, 자발적인 공감에 실패했다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서라도 비전은 공감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공감할 때까지 설득해야 한다. 지금의 조직은 수직 형태지만 수평적인 사고를 통해서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설득해야 한다. 진솔한 설득보다는 직책을 이용한 강압, 조직을 이용한 계단식 관리, 이런 조직은 겉으론 일사불란하고 튼튼해 보여도 작은 충격에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조직이다. 관리자가 직원에게 경영층의 비전을 심어주는 데는 소홀하고 자신의 MBO와 승진만을 위해 경영층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용한다면 비전이 떠난 자리에 위기가 주인 행세할 것이다. 관리자는 좀 더 자세를 낮추고, 직원들을 설득하면서, 직원들이 정말 힘들어하는 것을 우선 해결해 주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일 때 회사의 비전은 비전으로서의 가치가 있게 될 것이다. 비전이 공감되고 경영층부터 직원까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전은 동력이 되어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게 될 것이다.둘째, 관리자의 일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 해도 상부 지시로 검증도 안된 설비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수십억 하는 경상투자가 애물단지가 돼도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이 없으니 신음하는 조직이 보내는 시그널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여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비전을 이야기하고 위기를 극복하자고 한들 공감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관리자가 좀 더 직원들 가슴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할 때 비전은 꿈이 아닌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마지막으로 내실 없는 실적 위주의 한탕주의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조직에서 안전 실적을 제외하곤 부서를 경쟁시켜 내실 있게 성공할 만한 사항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일회성이어서 지속적 성과로 이어가기가 어렵다. 각 분야 최고 부서가 강제해서 만들어진 결과라면 무주공산에 불과하다. 내실을 꾀하기보다는 수치로 경쟁을 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할 때 일하는 방식이 문화로 정착되지 않는다. 성과를 창출하는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을 때 그 결과는 개인에게 쌓이고,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는 조직에 쌓이는 특징이 있다. 개인에게 쌓인 것은 암묵지가 되고 조직에 쌓인 것은 형식지가 되어 기업 발전의 중요한 자산으로 치환돼 회사가 지속성장하는 핵심요소로 자리할 것이다.

2023-02-12

행복한 청소부의 노동 시간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율곡로, 퇴계로, 세종로 등 서울에는 위인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독일도 그런가 보다. 독일 작가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에 나오는 청소부는 예술가 이름을 딴 거리에서 표지판을 닦는 사람이다. 그래서 표지판이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토마스 만 광장 등 예술가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어느 날 청소부는 꼬마가 하는 말을 듣고 표지판의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후 5시에 퇴근하면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 다니면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는다. 나중에는 대학에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청소부는 청소부로서의 삶이 너무나 행복해서 그 요청을 거절하고 변함없이 표지판을 닦았다고 한다.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른에게 시사하는 바는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부가 이렇게 행복한 것은 청소부가 5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적정한 노동과 퇴근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참고로, 2021년 현재 독일의 연간 근로 시간은 1천349시간으로 한국보다 566시간이 적다.시간적 여유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례는 네덜란드다.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 ‘물 건너온 아빠들’에서 네덜란드 사람 톨벤이 25개월 된 딸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딸의 손놀림이 느려도 아빠가 전혀 재촉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주자, 패널들이 모두 톨벤의 여유에 감탄한다. 이런 육아법 때문인지 네덜란드는 아이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고 한다. 반면, 한국 아이의 행복지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OECD 국가 중 꼴찌를 맴돈다. 톨벤은, 이렇게 네덜란드 부모들이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이유는 근로 시간이 적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 28~33시간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네덜란드는 이런 제도를 1980년대부터 실시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우리 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주 12시간까지만 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제대로 실시한 지 2년이 안 되었는데, 올해부터 정부는 연장 근로 방식을 월 단위나 분기, 반년, 1년 등으로 다양하게 적용하여 최대 69시간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천915시간으로, 지난 26년간 멕시코의 2천128시간에 이어 2위를 고수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5위로 밀려났지만, 근로 시간이 개선된 것은 아니고 한국보다 근로 시간이 많은 페루,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가 OECD에 가입했기 때문이다.작년 10월, SPC 계열사 공장의 여성 노동자 사망은 연장 근로로 인한 과로 때문이었다. 2016년 IT업계 노동자의 연이은 자살도 과로 때문이었다. 어른의 연장 근로는 아이의 행복은 물론, 한 가정의 행복을 결정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행복한 청소부’는 책에나 있다고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행복한 청소부는 현실에 있어야 한다.

2023-02-12

공천권 수렁에 빠진 정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결국, 대형 사고가 터졌다. 장관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모두 여야의 정치력부재 탓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책임을 회피했고 야당은 머릿수로 밀어붙였다. 여당은 이재명 방탄용이자, 꼼수의 연속이라고 반발했다. 야당은 장관에게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여야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고 협치는 물 건너갔다.반도체 대기업 추가세제 지원과 지역균형발전 특별법 등 현안 처리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정치 실종과 국정 혼란의 책임에 가장 정점에 선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장관을 해임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이 장관이 법적 책임은 없다지만 정치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야당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고집이 참사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민주당은 품위 유지·성실의무·부실 대응 등을 탄핵 사유로 내세웠지만 논리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태원 참사 대응이 헌법에 규정한 ‘국무위원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는지 여부도 논란이다. 탄핵 소추위원도 국민의힘 의원이다. 법조계에서는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 논란 등 괘씸죄도 한 몫 한 것 같다. 헌재 심판 때까지 장관 권한과 직무정지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재명 당 대표 턱밑까지 다가선 검찰의 사법처리를 막으려는 방탄국회라는 국민의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탄핵이 블랙홀이 됐지만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눈 앞에 둔 자중지란도 꼴불견이다.‘윤심(尹心)’과 ‘윤핵관’의 개미지옥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친윤만 있고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 개입으로 불공정 경쟁이 됐다. 공천에 목멘 초선 의원들은 ‘집단린치’도 서슴지 않는다. 정당 민주주의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차기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권에 혈안인 국민의힘 모습이다. 어떤 비판과 훈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따갑다.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오십보백보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처리를 막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 범죄행위를 옹호한다는 비판에는 귀닫았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면서 뒤로는 당 대표 구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결국 차기 공천권이 문제다.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입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했다. 바로 정치의 요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 그 사회는 바르게 돌아갈 것이다.정치인들이 떡밥에만 관심을 두고 민생을 외면하면 나라가 어지럽고 사회가 혼란해진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때에 정치가 있고 나라가 산다.

2023-02-09

튀르키예의 비극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에게는 터키로 잘 알려진 튀르키예공화국이 위치한 아나톨리아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집단거주지 중 하나다.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는 인도와 유럽어족 일파인 아나톨리아인이 살았다. 아나톨리아반도 동남부에서는 BC7500년에서 BC5700년 사이에 번성했던 인류 집단거주지의 유적이 발견됐는데, 그곳서는 사람들이 곡물로 빵을 만들어 먹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국경지대 일대에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다. 21세기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 중 4번째로 큰 지진이다. 직선거리로 약 7천400km가 떨어진 우리나라 지진계서도 감지됐다니 지진 강도는 짐작하고도 남는다.AFP통신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1만1천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지진발생 초기 15명으로 알려진 사망자가 시시각각 늘어 지금은 1만명을 넘겼다.미국의 지질조사국은 사망자가 10만명까지 갈 수 있다는 비극적 예측도 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이 많아 사망자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외신이 전한 사고 현장은 끔찍하다.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가 속출했다. AFP통신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비극의 현장들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지진은 인류가 대비하기 가장 어려운 재앙이다. 튀르키예 비극이 남의 일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등 각국의 구호대가 긴급 파견을 갔지만 현장의 혹독한 기후 등으로 구호작업이 순조롭지 않다. 튀르키예의 비극적 사태에 지구촌 모두가 인류애로 그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09

봄이 오는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매섭게 몰아치던 한파도 입춘이 지나자 한결 누그러졌다. 살을 에는 삭풍에 죽은 듯 움츠렸던 개쑥갓과 봄까치꽃이 다시 생기를 띠고 어느새 꽃을 피웠다.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흔히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나 동백의 고절을 칭송하지만 나는 이런 가냘픈 풀꽃 앞에서 더 숙연해진다. 아마도 태생이 워낙 흙수저라서 그런가 보다. 영하 십 몇 도의 혹한을 맨몸으로 견뎌온 저들에 비한다면 사람이 겪는 웬만한 고통과 좌절쯤은 엄살에 불과한 게 아닌가.북한을 일러 동토(凍土)라고도 한다. 폭정과 압제의 한파로 자유도 정의도 인권도 다 얼어붙은 땅이라는 뜻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도 해빙의 바람이 불어 두꺼웠던 얼음장이 갈라지고 다시 러시아가 되었지만, 북한은 오히려 얼음의 두께를 더 견고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얼음장 밑으로도 해빙이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고 한다. 장마당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 간에는 암암리에 남한의 가요나 드라마 같은 자유세계의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다가오는 봄의 징조가 아니겠는가.좌파정권 5년 동안 남한에서도 북풍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대규모 촛불시위의 여파를 몰아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전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언론, 법원, 군과 국정원, 헌재와 선관위까지 좌파들 코드인사로 물갈이 하는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거나 감옥으로 갔다. 실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연상케 하는 폭거였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갈채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그러나 그들의 무능과 파렴치와 비리가 곳곳에서 불거지자 동조하던 국민들도 하나 둘 등을 돌리거나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호언장담하던 장기집권의 꿈은 깨어지고, 다시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자 생사를 건 냉전이 시작되었다. 자고로 좌·우의 대립에는 화합이나 협치가 불가능하디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피터지게 싸워서 어느 한 쪽이 득세를 하면 그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살벌한 냉전논리가 못 마땅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역사인 걸 어쩌랴.대선후보였던 이재명이 보결선거에 나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면서 냉전의 양상은 점입가경이었다. 파렴치범 전과와 수많은 비리의 혐의·의혹으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을 당의 대표로 선출한 제일야당의 행보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당대표의 개인 비리에 대한 구속수사를 막으려고 당이 나서서 방탄 국회를 잇달아 소집하는 것도 모자라 엉뚱한 구실을 내세워 장외시위까지 벌였다. 일단은 배수진을 치고 총력 저항을 해보는 것이겠지만 그게 얼마나 국민들과 사법부에 먹혀들 것인가.때마침 조국일가의 입시부정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왔고, 노동계와 종교계 등에 침투해서 반국가 투쟁을 주도하던 간첩들도 검거되는 등 뒤집히고 헝클어진 국가기강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아직은 혼란한 냉전 정국이지만 머지않아 봄이 완연해질 거란 기대를 갖게 한다.

2023-02-09

지구에 닥치는 재앙(災殃)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2월 6일 새벽 4시 17분(현지시각)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규모 7.8 강진이 일어나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었고 골든 타임을 넘기면 10만여 명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어 금세기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SNS에서는 이 엄청난 참변을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는데 인명 구조 현장에서 뒤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영상을 보면 자연재해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느끼게 된다. 현재까지 파괴된 거의 6천여 채의 건물 잔해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되어 있을까 안타깝다. 추위와 악천후 속에 어렵게 구조되는 앳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애가 타고, 심지어 탯줄이 붙은 채로 들려 나오는 신생아를 보니 기적을 본 듯하다. 사망한 딸의 손을 잡고 망연자실한 아버지, 꺼내주면 당신의 노예가 되겠다고 호소하며 동생을 껴안고 있는 소녀 등…. 인간의 무기력이 가슴을 친다. 도로 파괴로 구조가 지연되고 여진 공포 속에 약 2천300만 명의 이재민이 추위에 노숙하고 있다.이러한 참사에 세계 65개 나라에서 구조의 손길을 펴서 구조대와 구호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18명의 역대 최대규모의 긴급구호대를 파견하여 인명 구조와 구호를 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의 자유를 지켜준 형제의 나라에 대한 당연한 의무이다. 이렇듯 전 세계가 하나 된 지구를 보여주며 따뜻한 정으로 추위를 녹여주고 절망 속에 한 아름 감동의 꽃을 피우고 있다.이번 지진 피해가 큰 이유는 겨울철 새벽 4시, 지표 18㎞ 지하에서 발생하였고 건물들이 내진설계가 미약한 탓이고, 시리아는 내전 중이라 구조지연에 따른 것이라 한다. 이러한 재앙은 예고가 없다. 21세기 들어 아이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국 쓰촨성, 동일본 등 수많은 대규모 지변(地變)이 있었고 작년 파키스탄의 폭우, 최근 유럽의 폭염과 가뭄, 미국 동부 한파 등 천재(天災)도 발생하고 있으니 기후위기와 함께 지구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생물 다양성 파괴, 해수 온도 상승, 온실가스 증가 등 인간이 저지른 행동으로 지구의 대재앙이 우려된다.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6년 경주의 규모 5.8, 2017년 포항의 규모 5.4 지진 등 1990년 이후 급증하여 규모 3.0 이상이 연간 11회로 기록되고 있다. 작년엔 규모 3.0 이상 지진이 전국에서 8회 발생하였고 올해 1월 강화도 서쪽 해상에서 규모 3.7의 지진이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우리는 내진설계, 재난대비 시스템, 대피요령 교육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자꾸만 솟아오르는 고층빌딩을 보면 두렵기도 하다.지진은 지구 내부의 급격한 지각변동으로 산사태뿐만 아니라 건물, 도로, 철도, 댐 등을 파괴하고 화재 발생, 교통과 통신 장애, 전기와 가스 사용 불능 등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지만, 이번 튀르키예 대지진 참사에서 10여 개 주에서 건물이 내려앉았고 내전에 지친 시리아에는 수천 년 된 고고학 유적지가 파손되는 모습을 보니 천재지변(天災地變) 즉 ‘신의 행위(Act of God)’라 할지라도 인류가 헤쳐나가야 할 엄숙한 과제이다.

2023-02-09

군위군의 정치 역정(歷程)

홍석봉 대구지사장 22대 총선을 앞두고 군위군의 정치적 역정(歷程)이 관심사다. 올 7월 대구 편입 확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군위군은 대구 선거구로 편입된다. 현재 대구 북구나 대구 동구의 편입이 거론되고 있다.국회 선거구 획정위의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에 군위·의성·청송·영덕군 선거구가 확정됐다.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인구수 미달로 합쳐야 하는 대상이다. 현재 군위군을 대신할 지역으로는 예천군과 울진군이 유력시된다.인구 2만3천명의 군위군은 대구의 웬만한 동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선거구 조정때마다 설움을 당했다. 선거때마다 인근 시군과 묶였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군위는 1948년 제헌국회부터 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단독 선거구였다. 6~8대 선거때는 선산군과 한 선거구로 묶였다. 9대 때는 칠곡·군위·성주·선산 선거구에 포함됐다.10대 때는 구미·군위·성주·칠곡·선산이 한묶음됐다. 11· 12대는 구미·선산·군위·칠곡으로, 13·14대는 군위·선산 선거구에, 15대는 군위·칠곡·청송·영덕 선거구로, 16대는 군위·의성·청송·영양·영덕과, 17· 18·19대 선거는 군위·의성·청송과 한 지역구가 됐다. 20대 총선때는 군위·의성·청송에 상주가 더해 같은 지역구가 돼 선거를 치렀다. 2020년 21대 총선때는 군위·의성·청송·영덕군이 한 지역구가 됐다. 군위는 그동안 11차례나 이웃 지역과 합해졌다가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이다.군위는 대구 선거구에 편입됐지만 아직 동구와 북구 중 어느 곳과 합쳐질지 불분명하다. 어느 쪽과 합치느냐에 따라 국회의원 공천 판도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08

학교폭력의 서늘한 그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 학교폭력이 등장한다.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인기드라마의 소재가 됐다. 만성적인 사회문제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실태는 숨길 바 없이 부정적이다. 미디어와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라 학교폭력의 현상에 관심을 둔다. 재발방지를 위하여 가해자처벌이 주목받는다.상대적으로 피해학생이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소외되기 일쑤다. 상상도 못했던 일을 당하여 일상이 흔들리고 마음이 위축되며 삶의 지평이 한꺼번에 무거워진다. 가족의 평화가 깨어지고 관계마저 흔들리면, 학교폭력은 그 어느 범죄나 폭력의 폐해 못지않은 악영향을 끼친다.지역에도 학교폭력은 끊임없이 학교와 지역사회에 어려움을 던진다. 교문 앞에 걸린 학폭 관련 현수막은 교육현장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는가. 피해학생과 가족들을 위하여 애쓰는 이들이 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긴 이름은 피해학생이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어려움의 자락들을 보여주는가 싶다.‘포항경북센터’를 시내에 두고 학폭피해자와 가족들을 돕는다. 피해자학생에게 대학생멘토를 일대일로 붙여주어 회복에 이르게 한다. 가족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신뢰의 기반을 되찾기 위해 위로상담가들이 함께한다.피해가 극심하여 학교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는 학교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학습과 위로를 경험하는 시설을 둔다. 대전지역에 둔 ‘해맑음센터’는 수요에 비하여 태부족이지만 그마저도 노후하여 장소를 다시 찾아야 한다.학교폭력은 뒷끝이 길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학교폭력 이슈로 떠오를 때면 으레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다. 정작 가해자는 ‘기억도 나지않는’ 일인데 피해학생에게는 씻기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터이다. 방금 저지른 학교폭력에도 ‘장난’이었거나 ‘생각없이’ 한 행동이었다고 항변하려 든다. 입은 피해가 안겨준 상흔과 고통은 두고두고 되살아난다. 학교폭력이 발생한 바로 그때 바르게 정리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평생을 두고 짐을 지우게 된다.진상 규명과 가해자처벌이 필요한 만큼 피해자와 그 가족을 돌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불어, 학교폭력피해의 심각성과 지속성을 제대로 알려 예방에 힘쓰는 교육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폭력은 범죄다. 학생이 저질렀다 해도 범죄라는 기본성격은 그대로 있다. 범죄피해가 끼치는 사회적 악영향처럼 학교폭력이 교육에 던지는 악영향의 그늘이 짙다. 밝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인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피해학생 회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피해가족의 어려움도 돌아보아야 한다. ‘해맑음센터’를 지역에도 두면 어떨까. 인구감소로 늘어난 폐교자원을 학교폭력피해의 그늘을 걷어내는 일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가해학생을 필요한 처벌과 동시에 바르게 선도하고, 피해학생이 올바르게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야 한다. 교육의 마당에 드리운 폭력의 그늘을 씻어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내일이 산다.

2023-02-08

점복이

윤명희 수필가 점복이가 또 집을 나갔다. 언덕바지에 자리한 과수원에 눈바람이 일렁인다. 과수원 초입에 있는 점복이 집에 온기가 없다. 기숙씨는 목줄을 걷어 집 앞에 두고, 건너에 있는 야옹이집 방문을 열어 묻는다. 눈도 오구만 점복이 어디 갔어? 그들은 게으른 표정으로 힐끔 올려다 볼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먹이 한 국자를 부어주고는, 닭장으로 들어가 계란을 주워 나온다.기숙씨는 딸이 안고 온 강아지를 내치지 못했다. 녀석의 얼굴은 갓 만들어 둔 노릿한 메주를 살짝 쥐었다 놓은 것 같고, 다리는 과식이라도 하면 배가 땅에 닿을락 말락할 길이다. 눈가에 검은 점이 있어 점복이가 된 녀석은 주인이 밭에 있을 때는 밭에 있었고, 비닐하우스에 있을 때면 그 곳에 있었다.기숙씨가 집밖으로 나갈 때면 눈물 그렁한 표정으로 쳐다봐 할 수 없이 차에 태워 다니곤 했다. 그녀가 자주 가는 친구네 고물상에 점복이 혼자 가기 시작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외출할 때 집에 혼자 두고 가면 점복이는 마치 그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먼저 고물상에 와서 주인을 기다리곤 했다. 점복이 거기 와있다는 전화를 받은 그녀는 별 볼일이 없으면서도 녀석을 데리러 고물상에 가야 했다.꼭 다문 입 사이로 덧니까지 튀어나온 녀석은 기숙씨와 함께 있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 기억한다. 점복이 공원에 있더라. 하이고 녀석 거기까지 와 갔노. 점복이 향교에 왔네. 조금 전까지 여기 있더만, 거는 또 언제 갔노. 그녀는 사흘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에도 몸빼바지에 장화 차림으로 녀석을 데리러 갔다. 혹여 차에 치일세라 걱정이라는 말에 지인은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녀석을 봤다고 했다. 파란불로 바뀌자 사람들 따라 건너는 폼이 주인보다 낫더라며 웃었다. 기숙씨는 발 달린 짐승이 어디를 못 가겠냐며 더 이상 데리러 가지 않았다. 짧은 다리로 녀석은 동네 곳곳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았다.세상이 궁금한 점복이 목에 줄이 매인 것은 경찰아저씨의 호통 때문이었다. 점복이 지금 첨성대에 왔습니데이. 그 집의 개가 지금 월영교에 있습니다이 이래가 되겠습니까. 보소, 지금 시장에 왔다 아입니까 진짜 이럴랑교? 벌금 매기까요?기숙씨는 하늘도 보고 날아가는 새도 보라고 밭에 길게 와이어 줄을 설치하고는 목줄을 매달았다. 건너편에 대여섯 마리나 되는 야옹이의 집을 지어주고 그 옆에는 닭장까지 마련했다. 그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살라는 그녀의 뜻과는 달리 녀석은 가끔 목줄을 벗어놓고 집을 나간다. 어떤 날은 새 연인의 집에서 몇 날을 보내고 오곤 했다. 산책길에서 만났다는 지인의 말에 기숙씨는 녀석의 여행이 빨리 끝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점복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산으로 들로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몸에 도깨비 풀이 범벅이다. 기숙씨는 털에 엉겨 붙은 것들을 떼어내느라 식겁을 한다.10여 년 전 그날 아들의 모습이 그랬다. 비바람이 치던 겨울 늦은 밤, 제 키만 한 가방을 앞뒤로 맨 아들이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섰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번 돈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다던 녀석이 온다는 소식도 없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나는 거지꼴을 한 아들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돈만큼 샀다며 술과 안주가 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이야기가 담긴 소주잔으로 가라앉혔다.어둠이 겹겹이 쌓인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다음 달에 미국 간다는 아들의 전화다. 코로나로 몇 년 동안 갇혀 있느라 발바닥이 가려웠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라고 물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10주년 기념이라는 말에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기념해야 할 여행이 어디 그것뿐이던가.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벌써 사막을 걷고 강을 건너고 있다.

2023-02-08

신묘(辛卯)

이지안作 ‘Again’ 육십갑자 중 스물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신묘(辛卯)다. 천간(天干)의 신금(辛金)은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차갑다.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어린 화초와 같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은 하얀 토끼다.신묘일주는 천간이 매울 신(辛)만큼이나 매서운 땅의 영등할매가 차디찬 바람을 세차게 날리며 뜻을 이루게 할 사람과 뜻을 꺾어버릴 사람을 선택하는 냉정한 기운이다. 보석이 박힌 암살용 칼이 연상된다. 묘(卯)는 음력 2월 바람달이다. 옛날부터 이 달에 결혼하는 것을 기피했다. 혹시나 신랑, 신부가 바람날까 우려해서다.신묘일주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불교 다라니 중에서 최고라는 ‘신묘장구대다라니’처럼 신묘일주는 매사 무엇이든지 최고 일류만을 좋아한다. 남보다 뒤에 놓이는 것을 못 참는 성질이다. 너무 나가면 추락할 수 있으니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일류가 되고, 상자 속의 보석이 되는 이유가 있다. 가족, 특히 배우자 간의 애정이 풍부하고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빚지고는 못사는 성질로 계산이 확실한 것도 이유가 된다.신묘일주는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많다. 신묘(神妙)한 사람이다. 웬만하면 자신이 불쾌한 일을 당해도 그것으로 인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 하늘에서 매섭고 매운 기운을 뿜어대도 고비를 잘 넘어간다. 또한 보석 같은 마음이 생겨 어려운 사람을 보면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어 한다.보석 같은 신(辛)의 마음과 그것을 잘 사용하는 토끼 묘(卯)의 마음을 잘 융합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더 좋은 멋을 내기 위해서다. 신묘일주, 신묘월주, 신묘년주, 신묘시주를 가진 분들은 끊임없이 일류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자기가 더 나은 삶을 살려다가 분에 넘치는 바람에 신묘 기운을 가지고도 아주 싸구려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마틸드는 뛰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유복하지 못했다. 가난한 하급관리와 결혼한 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무도회 초대장을 구해 온다. 돈 많은 여자들 틈에서 가난하게 보이는 것처럼 창피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아내는 입고 갈 옷이 없다고 짜증을 내자, 남편은 비상금을 털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사준다. 장신구가 없다고 불평하자 당신 잘 사는 친구 포레스트 부인에게 장신구를 빌리면 어떻겠냐고 말한다.아내는 친구 포레스트 부인한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참석한다. 마틸드는 소원대로 파티에서 주목받은 여인이 된다. 그녀는 취한 듯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새벽 4시에 파티는 끝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순간이다.부부는 많은 빚을 내어 비슷한 목걸이를 구해 돌려준다. 그 후 10년 동안 힘들게 생활하면서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마틸드는 간혹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창가에 걸터앉아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총애 받던 무도회의 밤을 회상하곤 한다.그러던 어느 일요일, 공원을 산책하다가 목걸이를 빌려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늙고 초라해진 마틸드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틸드는 친구에게 지나온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마틸드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어떡하면 좋아. 가엾은 마틸드! 내 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 프랑 밖에 나가지 않는….”교훈적, 비판적, 묘사적 성격의 자연주의 소설로 극적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주제로 쓴 작품이다. 한 젊은 여인이 사치스럽고 우아한 귀족생활을 동경하는 욕심 때문에 고달픈 삶을 살게 되었다.인생에 있어 무의미한 것은 없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는 다 오늘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마틸드가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10년을 고생했지만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세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허영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정신이 빈곤하면 계속해서 주변을 시기하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한다.신묘일주의 신(辛)과 묘(卯)는 끝이 바늘처럼 날카로워 현침살이 있다. 현침살 기운으로 인해 예민하고 초조하거나 불안한 사람이 많다. 누구보다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여 대처 능력이 좋다. 성격이 급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실수가 잦으며, 마음의 변화가 심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현침살의 날카로운 기운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여 우유부단한 것을 싫어한다. 호불호가 강하여 한번 틀어지면 마음을 열지 않으며, 냉정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경향이 있어 사기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12운성으로는 절지(絶支)에 해당하므로 밀어붙이는 힘이 약해 희노애락의 굴곡이 심하고 애인 또는 배우자와 단절을 경험한다. 또한 큰 재물을 꿈꾸지만 용두사미 격이다.인간은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고귀하고 좋은 것인지 보는 눈도 다르다. 명예, 쾌락, 지성 등의 덕목을 선택할 때 우리는 그것이 특별한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자체를 원하기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궁극적인 미덕이 자족(自足)이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2023-02-08

정초, 거조암에 가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올해는 예쁜 후배랑 갔다. 언제든 어디든 동행을 청하면 항상 선선하다. 일하는 이 불러내 미안하다 싶다가도 거조암의 오백나한을 꼭 보여주고픈 마음이 컸다. 이미 잡혔던 약속을 취소하고 한달음에 집까지 와서 나를 차에 태운다. 작년까진 늘 남편과 함께였다. 설 연휴를 보내고, 정월대보름 전에 꼭 하루를 비워 오백나한을 뵈러 간 지 여러 해째다.집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평탄하고 넓은 길을 지나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조금만 오르면 도착하는 한적한 길 끝에 일주문이 다소 생뚱맞게 서있다. 영산루를 머리에 얹고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정갈하고 말간 마당에 얌전한 삼층석탑이 있다. 탑 뒤에 영산전이 튼실하게 앉아있다. 단청 화려하고 삼면이 문으로만 되어있는 여느 절들과 달리 장식없는 흙벽이다. 동서로 길쭉한 전각 한가운데 여닫문이 있고, 창문이 좌우로 4개 달려있다. 단정하고 고졸하다 싶은데 무려 국보다. 영산전 안에 나한상이 오밀조밀 빽빽이 좌정해있다. 오백나한은 500위가 아니고 실은 526위라 한다. 흰 회를 얇게 바른 얼굴과 몸에 알록달록 채색을 한 석조상들이다. 하나하나 그렇게 다채로울 수가 없고 자세나 표정이 하나도 같은 이가 없다. 진지한 모범생은 가끔 보이고 대부분이 앉음새도, 표정도 익살스럽다. 입고 있는 옷색이며 들고 있는 물건도 가지가지다. 수염이 있는 이, 없는 이, 수염의 모양도 같은 이가 없다. 모자 쓴 이도 있고, 껄껄껄 웃거나, 미소짓거나, 하품하거나, 곁눈질하거나, 옆 친구와 속삭이는 이, 경전, 염주, 목탁에 포도, 귤 같은 과일을 가진 이, 호랑이나 사슴 등의 동물을 안고 있는 이도 있다. 심지어 거꾸로 물구나무 서있는 나한상이라니.법당에 들어서면서 6만원의 보시금을 백원짜리 동전으로 바꾼 돈바구니를 얻는다. 삼존불에 삼배한 후 번호대로 화살표를 따라 나한의 명호를 입속으로 부르며 앞앞이 놓인 쟁반에 동전 하나 놓고 합장례를 한다. 추워서 손은 곱고, 동전 육백 개의 무게가 만만찮지만 면면이 다른 나한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황색 법의를 입고 왼무릎을 세우고 손을 소매 속에 감춘 불소소존자 옆에 연두색 법의의 견유변존자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화장존자는 왼손으로 목탁을 쥐고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입에 넣어있고 그 옆 광명존자는 염주를 두 손으로 다소곳이 쥐고 있다. 둘 다 수염이 없는 걸로 봐서 젊은이신가 모르겠다. 두 손을 모두 큰 입 속에 넣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성무진존자는 앞섶도 열어젖혀 둥근 배속살을 다 보인다. 도리천존자는 귀가 어두우신가 오른손을 귀 뒤에 대고 옆얼굴을 하고 있다. 보시금을 바꿔준 보살님은 한가지 소원만 외라고 했다. 나한들의 표정을 보고 명호를 부르다 보면 그 소원은 까맣게 잊힌다. 그들의 공부방에 나도 함께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돈바구니가 가벼워지고 번호가 높아질 무렵이면 그저 환희심만 가득해진다. 함께 간 후배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이 나한상을 캐릭터로 개발하면 어떨지 제안해 본다. 151개나 되는 포켓몬스터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을까.

2023-02-08

어린이와 보약

강미선 이강부부한의원장 예전에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의 학교생활 후 다시 봄방학을 하던 학사 일정이 요즘은 겨울방학을 늦게 시작해서 봄방학까지 쭉 이어서 보낸 후 새 학년을 맞이하는 학교들이 많아지는 추세인 듯하다. 학기 중에는 늘 바쁘고 챙기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한약을 먹이기에는 좋은 시간이다.한의학에서 보(補)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기능 중 부족한 부분을 치료하는 방법, 즉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건강상태를 유지하도록 몸의 조화를 돕는 일이다. 그리고 보약이란 그러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일체의 한약을 말한다.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보약이라 함은 녹용을 가미한 약으로 알고 있다. 물론 녹용은 인삼과 함께 신체의 기능을 보강하여 몸이 허약한 것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보약으로 주로 근골을 강하게 하고 정혈을 생기게 해주며 생장발육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인체의 저항력(면역기능)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특별한 병이 없더라도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는 필수적인 보약이다. 하지만 꼭 녹용을 복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증상에 맞추어 알맞은 약을 복용시키는 것이 더 좋다.그렇다면 보통 소아 보약은 몇 살 때부터 복용하는 것이 좋을까?아이가 생후 6개월쯤 되면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면역기능이 떨어져 감기나 외부 자극에 쉽게 감염되는 등 여러 가지 허약 증상이 나타난다.따라서 보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가장 적당한 시기는 생후 6개월부터 1년 6개월이 되는 때이다. 만약 녹용을 가미한 약을 복용시키려고 하면 대개 만 1세가 지난 후부터 매년 만 나이에 맞추어 먹인다. 예를 들면 만 3세의 아이의 경우 3첩을 먹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에 따라 복용량과 복용횟수는 달라질 수 있다.그럼 보약을 먹는 계절은 따로 있을까?예로부터 한의학에서는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받아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로, 가을은 영양분을 저장하여 체중이 느는 시기로 인식하여 보통 봄과 가을에 보약을 먹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동의보감에서는 오히려 ‘여름에는 기력을 보충하는 치료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라며 여름철 보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잦은 감기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호흡기가 다소 편안해지는 여름철이 오히려 보약을 복용하기에 적당하다. 또한 환절기나 겨울철에 감기에 잘 걸리는 경우 잠시 감기에 걸리지 않은 시기에 보약을 복용함으로써 이후로 감기의 빈도를 줄이거나 증상의 심한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그러나 학기 중에는 학교와 학원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요즘 소아청소년들은 하루 두세 번 약을 챙겨먹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체질적으로 허약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아이들의 전반적인 상황에 맞추어 보약을 복용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합리적인 방법이다.새 학년을 맞이하기 전 이번 2월에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챙겨 보는 건 어떨까?

2023-02-08

“함께 잘 살자”

우정구 논설위원 공동부유(共同富裕)는 “함께 잘 살자”는 뜻이다. 2021년 8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를 강조하면서 당시 중국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용어다. 중국의 민간기업과 고소득층의 부를 당이 조정하고 자발적 기부를 통해 인민과 나누는 개념을 이르는 말이다.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면서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면 시진핑은 분배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영국의 자선구호단체 CAF는 2022년말 기준 ‘세계기부지수’를 지난달 말 발표했다. 인도네시아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뉴질랜드 등 경제 선진국을 제쳤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적은 나라가 기부선진국이라는 사실이 적이 놀랍다.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19개 국가 중 88위를 차지했다. 2011년 57위에서 해마다 순위가 떨어져 기부후진국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의 기부지수가 높은 것은 종교적 특성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하나 사회 전반에 기부문화가 잘 유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은 자부심을 가질 하다.공동부유를 주창한 중국은 2017년 세계 꼴찌에 머물던 기부지수가 작년에는 49위까지 뛰어올랐다.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미국도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부자들의 사회공헌 문화와 세제지원을 통한 사회적 기부문화 조성이 순조롭기 때문이다.지난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으나 상대적으로 기부도 그만큼 증가했던 것으로 CAF는 밝혔다. 기부문화는 사회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다.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경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의 정신이 이럴 때 발휘돼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2-07

‘58년 개띠’가 벌써 노인대접 받아도 되나

심충택 논설위원 나는 1958년에 태어난 개띠다. ‘58년 개띠’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것은 베이비붐 시대의 콩나물교실, 옥수수 빵, 중학교 무시험, 고교평준화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1958년생이 새해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이 돼 전국 도시철도를 모두 공짜로 탈 수 있다.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홍준표 대구시장이 오는 6월부터 만 70세가 돼야 도시철도를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밝혀 공짜혜택을 5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노인복지법에 무임승차 대상이 ‘65세부터’가 아닌 ‘65세이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70세로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같은 58년 개띠인 고교 동기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대부분 홍 시장의 조치가 다소 서운하기는 하지만, 조례제정에 공감은 간다고 했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벌써 노인 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을 공짜로 타기가 영 거북하다는 반응이 주류였다.조례제정안이 대구시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지하철 무료승차 때문에 적자에 시달려온 전국 6개 광역자치단체 모두 홍 시장의 생각에 동의하는 분위기다.보건복지부도 지난주 노인연령 상향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여야 정치권도 도시철도의 노인 무임승차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여, 58년 개띠의 ‘지공대사(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세대)’혜택은 곧 사라질 것 같다.사실 만 65세가 되면 기초연금과 의료비 할인, 공익형 일자리 제공 등의 노인 복지 혜택을 받지만, 사회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노인대접을 받기는 이른 나이다.지난해 6월에 발표된 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2%나 됐으며, 특히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찬성’ 응답이 70% 정도를 기록했다.생활환경과 의학 발전으로 60대 이상 건강조건이 경로우대제도가 도입됐던 1980년 당시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그리고 노인 인구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지난해 기준 통계청이 발표한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01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를 차지했다. 2년이 지나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후면 25.0%, 20년 후면 33.9%로 올라간다고 하니 ‘65세 노인’ 규정을 이대로 두면 국민 10명 중 3~4명이 노인인 시대가 20년 안에 도래하는 것이다.노인연령을 상향시키는 문제는 불가피하지만 쉽지는 않다. 직장 정년이 현행대로 60세로 유지되면 퇴직 후 노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받기까지는 지금도 5년의 간극이 있다.만약 노인 연령을 70세로 높이면 60세 정년 이후 10년간 노인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정년과 고령 일자리 문제도 종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초고령사회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23-02-07

포항탈북민 정월대보름잔치와 함께한 봉사의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입춘과 정월대보름이 지나니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차츰 봄날이 다가오는 듯하다. 코로나 유행의 확연한 감소세 속에 맞은 정월대보름이라 몇 년 간 잠잠했었던 세시풍습이 다시 열리고,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한 해의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는 각종 의식이나 행사가 이어져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신명나는 윷놀이와 널뛰기, 줄다리기 등의 함성이 어디선가 들리고, 액운을 막고 소원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와 신성한 동제(洞祭)를 지내는 것 등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풍습이다.정월대보름 세시풍습에 맞춰 소통과 화합의 또 다른 잔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포항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정월대보름잔치와 함께 어우러져 흥겹고 정겹게 열린 것이다. 이날 잔치에서는 탈북민들이 고향에서 즐기던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통해 향수를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풍선 터트리기와 노래자랑으로 폭소와 재미를 유발하며 시종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포항에 거주하는 3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들은 지난 2017년 포항지진 이후 한 탈북민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낙하물에 사망 후, 이 같은 무연고의 안타까운 처지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탈북민을 위한 단체를 결성해야할 필요성이 수차례 제기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날 첫 민간단체로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탈북민들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위해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한국사회의 적응과 안전한 생활, 순조로운 정착을 도우며,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일자리·교육정보 등 탈북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포항탈북민연합회의 출범 취지이다.이와 같은 포항탈북민들의 의미있는 새 출발과 정월대보름잔치를 성황리에 펼치기 위해 지역의 신망있는 정치인의 적극적인 배려와 후원, 포항향토청년회, 남포항로타리클럽, 포스코 사진봉사단, 포스코 붓글씨봉사단, (사)대한미용사회 포항북구지부, 포항공예전문강사협회 등의 동참으로 대보름잔치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결 다양하고 풍성하게 빛났다.특히 사진봉사단에서는 행사장 한 켠에 촬영세트장을 조성하여 탈북민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다양한 포즈의 스냅사진을 찍어 즉석인화 후 현장에서 미니액자에 넣어 선물했다.또한 붓글씨봉사단에서는 입춘서와 새해 소망·가훈 등의 신청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는가 하면, 서예체험코너에서는 직접 붓글씨를 써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탈북민들이 잠시나마 행복해 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어쩌면 죽음의 사선을 넘어온 탈북민들의 고초와 삶의 애환은 상상 외로 크고 깊을런지도 모른다. 막상 장막을 벗어나긴 했어도 새로운 터에 뿌리내려 건사하기란 만만찮은 일이다. 그럴수록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다독이고 챙기며 위로해서 용기를 북돋워줘야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국내 탈북민을 위한 순수민간 봉사단체로서의 포항탈북민연합회 첫 출범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향후의 활동방향과 귀추가 주목된다.

2023-02-07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망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올 한 해에 대한 회색빛 전망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장기적인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 전망은 어떨지, 금리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 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학업 및 취업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등 고민하고 생각해야 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들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위한 대가 지불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금액이 얼마가 되든지 말이다.다행스럽게도 앞으로 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매번 마주하게 되는 이 불확실성 문제의 답을 전문가 대신 인공지능이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인공지능이 대용량 데이터를 만나면서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예측을 대신 수행해주는 전문가를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간단한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과 데이터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마치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의 뛰어난 예측력과 성능은 지금보다 덜 불안해하고 덜 염려하면서 살 수 있는 윤택한 삶을 우리에게 선물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빅데이터가 결코 ‘전부’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빅데이터가 분명 엄청나게 큰 데이터인 것은 맞지만, 결코 그것이 모든 정보와 지식을 대변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지금의 몇만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정보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이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치 수많은 바둑 경기를 학습했던 알파고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세돌의 78수처럼 말이다.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성장은 어쩌면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더 빠르게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이 두 기술은 지금보다 더 눈부신 속도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알 순 없으며, 삶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을 뿐 완전히 해소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즉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모든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미래를 알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대로 움직이는 사회에 과연 인간다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인공지능도 정복할 수 없는 미지의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선물이 아닐까?

2023-02-07

‘독’

연극 ‘독’(최보윤 작, 김진욱 연출)을 관람했다. 정말 오랜만에 본 소극장 연극이었다. 10주년을 맞은 극단 ‘웃어’의 신작이다. 극단은 안혜경, 정애화, 허동원, 한은선 등 오랜 연기 내공을 지닌 탄탄한 배우들과 실력파 작가, 연출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학로 드림시어터 소극장은 평일임에도 객석이 꽉 찼다. 지난해 12월 29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1월 21일 폐막 예정이었지만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2월 5일까지 연장 공연을 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관객 기근에 시달리던 공연 예술계에 싱그러운 봄비의 마중물이 되어준 듯하다.혜영은 촉망 받는 화가다. 경매에 출품한 작품이 수억 원에 거래되고, 여러 미술 전문 저널에 소개되는 등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모두 받고 있다. 남편 정호는 미술품 경매 업체의 임원으로 아내의 그림에 날개를 달아준다. 둘은 미대 선후배 사이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화목한 결혼 생활 가운데 두 사람의 커리어도 점점 탄탄해지고, 혜영의 임신까지 경사가 겹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연락이 끊긴 대학 후배 서현이 나타난다. 혜영 혼자 있는 집에 불쑥 찾아와서는 무례하게 행동하다가 묘한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집을 나선다. 그 한마디 말에서부터 혜영의 의심과 불안이 피어난다. 처음엔 작은 불씨였던 것이 나중에는 커다란 불길이 돼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고, 남편과 다투고, 급기야 임신 중절을 시도하기까지 한다.혜영과 정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 무대는 다시 혜영과 서현이 등장하던 첫 장면으로 전환된다. 거기서 연극은 혜영과 서현의 시점을 첫 장면과 정반대로 바꾸면서 모호한 분위기의 열린 결말로 끝난다. 최보윤 작가의 말대로 “하나의 현상은 여러 얼굴을 갖고, 진실은 여러 겹이다”라는 메시지를 묵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기억이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며, 진실이란 늘 상대적 가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같은 현상이나 사건이라도 저마다 다르게 감각하고 수용한다는 것, 그러니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을 너무 맹신하지 말 것이라는 메시지도 서늘하지만 보다 섬찟하게 다가온 것은 ‘생각 하나의 파괴력’이다.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장석남, ‘맨발로 걷기’)는 시구는 낭만적으로 읽히지만, 생각 끝에서 꽃이 피고, 그 꽃은 덤불이 되고, 덤불은 점점 자라나 사방을 휘감아 숲을 이루고, 덤불숲에 불이 붙는 순간 커다란 산불이 돼 모든 걸 태워버린다.지옥은 마음에 심겨진 작은 생각 하나에서부터 만들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셉션’에서 멜(마리옹 꼬튀아르)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심겨진 그 단 하나의 생각, 세계가 세계가 아니고 현실이 현실이 아닐 거라는 그 어처구니없는 의심이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남편인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평생 동안 고통의 수렁에 빠지게 한다. 연극 ‘독’에서도 서현이 혜영의 마음 안에 떨어뜨린 독 같은 한 방울의 의심이 모든 걸 마비시킨다. 생각 하나가 삶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사실 사소한 오해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독’이 위험한 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의심만큼 무서운 게 편견이다. 특정 지역민들에 대한 편견, 일부 직업군에 대한 편견,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등 독 같은 생각들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편견은 결국 ‘나’에게 익숙한 것 외에는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보수주의가 되고 만다. 불신, 의심, 편견은 관계를 망치고, 나를 망치고, 결국 세계를 망친다.어느 시인은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라고 토로한 바 있다. 지금 당신이 고통스런 번민으로 괴롭다면, 지옥 같은 나날들 가운데 있다면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 깊은 곳으로 가는 길에 쳐져 있는 장막들을 헤집고 나면, 그 안에는 좁쌀만큼 작은 생각 하나가 시퍼런 독을 뿜고 있을 것이다. 티눈처럼 작고 하찮은 그 생각 하나 때문에 지옥을 짊어지고 있다니, 얼마나 억울한가. 그 생각 하나를 뽑아내는 순간, 당신을 둘러싼 세계는 평화롭다.

2023-02-07

봄을 향해서

후리지아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가졌다. /언스플래쉬 며칠 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의사 선생님께 재차 물었으나 확실한 양성이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 앓을 때 나는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던 시기를 나는 무사히 지냈으니, 이 정도면 슈퍼항체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여기저기 우쭐거리며 다녔었는데, 그간의 입방정에 벌을 받듯 한순간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버렸다.확진 이후 계속 집에 머무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일차 오전은 가벼운 감기인가 싶었지만 오후가 되자마자 몸에 열이 오르면서 눈앞이 어지러웠다. 팔다리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도저히 의자에 앉아있을 힘이 없어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휴가 신청을 냈다.연달아 3일 정도 휴가를 낼 수 있어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약 먹을 시간에만 겨우 눈을 떠서 죽과 약을 삼켰고 다시 잠이 드는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체감상 7일은 침대 위에서 보낸 것 같은데 날짜로는 겨우 3일 정도 지나가 있었다.그래도 다행스럽게 3일 정도 지나자 TV를 보면서 잘 앉아 있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었고, 딸기나 포도 같은 달고 신 과일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드디어 다 나았나 생각이 들 때 쯤 두통과 울렁거림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백신 1차를 맞고 찾아 왔던 부작용과 느낌이 흡사했다. 증상이 바뀌면 약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서 다시 병원에 찾아가 약을 바꾸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구토감과 지끈지끈한 두통이 계속 괴롭혔다. 잘 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 문득 집을 둘러보았을 때, 마음속에 작은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폭풍의 한가운데인 눈 안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 눈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세차게 휘몰아치는 회오리에 힘없이 휘말려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쉬는 동안 밀리고 밀린 업무, 평소보다 더 속도를 내야하는 잔업,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나 벗어 놓은 빨랫감 등 크고 작은 가지각색의 괴로움이 눈 너머의 바깥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려 애써 보았지만 어서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초조함과 과연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무사히 일을 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번갈아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느꼈다.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먹을거리와 함께 노란 후리지아 한 다발을 집 앞에 두고 갔다. 마트에서 한 다발 저렴하게 묶어서 파는 것을 사왔다는데, 꽃집에서 잘 손질된 꽃이 아니라 그런지 따로 컨디셔닝이 필요한 꽃이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포장지와 테이프를 풀어 꽃을 꺼내고 가위로 줄기를 사선으로 살짝 자른 후 시든 이파리들은 손으로 떼어냈다. 친구 말대로 물에 소금을 살짝 넣으니 처음 받았을 때의 모양보다 더 꽃잎을 드러내며 화사하게 피었다.칙칙하고 어두운 집 안에 대뜸 환한 노란 색을 놓으니 시선이 은근슬쩍 꽃에게로 갔다. 화병이 없어 급한 대로 집에서 제일 큰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놓았지만 그래도 꽤 그럴싸한 모양이 되었다. 멀리서 보는 후리지아는 갓난아이의 꽉 쥔 주먹 모양 같고 꽃잎은 힘없이 보드랍다. 비록 양쪽 코가 잔뜩 막혀 향을 맡을 순 없었지만 꽃을 마주하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매번 꽃을 사는 친구를 보며 사실 잘 이해를 못 했었지만 꽃이 주는 사소한 활력과 더해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특히 후리지아는 겨울을 끝내고 봄을 처음 알리는 꽃이라 알려져 있는 만큼,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연약하고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꽃이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만큼은 기분 좋은 에너지와 생기를 주기엔 충분했다.후리지아는 향이 정말 좋다던데,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단순한 이유가 생기자 두통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어느 때엔 약보다 꽃이 더 좋은 법이다.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