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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재가 만나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등록일 2023-10-30 18:12 게재일 2023-10-3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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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촘촘하고 짙은 나무 창살이 건물의 겉면을 감싸고, 비대칭형 창문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2층에 덧댄 목재들이 툭 튀어나와 있고, 지붕에는 일직선의 기와가 이중으로 처마를 장식한다.

건물들은 옆집과의 완충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일본 특유의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서 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와 ‘동백꽃 필 무렵’(2019)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옛 포항의 황금어장이며, ‘포항의 종로’로 불렸던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는 길게 늘어선 해안선을 따라 그 이면도로에 일본인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상업지구였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인에게도 조선인과 동일한 어업권이 보장되었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구룡포는 가가와현 일본인 어민들이 모여들어 거주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32년경에는 구룡포 거주 일본인 가구가 287가구·1천100명이 넘었고, 신사에 올라가는 계단 측면에 세워진 공헌비가 120개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그 화려한 성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본인 거주지는 조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일본에 의해 착취당하던 조선인들은 거리의 뒤편 산등성이 후미진 별도의 장소에서 생활했다. 1945년 일본인이 떠나간 후 구룡포 사람들은 120개의 공헌비에 새겨진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발라 없애버린다. 이후 적의 재산이었던 가옥이라 하여 적산가옥이라 불렸던 이 거리의 건물들은 국가에 귀속되었다. 1960년 옛 신사가 있던 곳은 충혼탑과 구룡포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재미있는 점은 옛 일본의 공헌비에 구룡포 공원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계단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착취의 상징이었던 공헌비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이 유머러스하다. 2001년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따라 근대건축물의 보존을 위한 등록문화제 제도가 만들어지고 보존과 복원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다. 2010년 포항은 국가에서 이 거리를 매입하여 일본식 가옥을 중심으로 거리를 조성하였다.

일본인 가옥 거리에 남겨진 적산가옥은 한옥과는 다른 이면을 찾아볼 수 있다. 한옥은 기단 위에 1층 건물이 놓이고 온돌이 깔린다. 이 건물에서 중요한 것은 곡선미를 자랑하는 기와와 이를 받치는 기둥이며, 그 외의 벽은 대부분 개방적인 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앞마당에서 데워진 공기가 뒷마당의 화단에서 식어 넓은 대청마루를 통해 순환한다. 마당은 생활 공간이며, 마당을 나누는 담장은 까치발을 들면 안이 훤히 보이는 높이에 불과하다. 한옥은 개방적이고 밝고 마당을 비롯한 공간의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비해 일본식 건축물은 폐쇄적이고 어두운 편이다. 일본은 어둠이 차분함을 만든다고 여겨 집을 어둡게 짓는 면이 있다고 한다. 2층 건물의 외벽은 좁은 나무 창살로 촘촘하게 엮어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2단으로 된 기와는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고, 내부는 좁고 긴 복도가 특징이다. 정원은 나무와 꽃으로 꾸며 차를 마시며 구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림 같은 정원이다.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의 기단부와 복도의 윗면 등에 환기를 위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적산가옥은 완전한 일본식은 아니다. 일본식 외관·서양식 입식 구조·한국의 온돌과 벽을 접목시킨 형태를 지닌다. 포항의 일본인 가옥 거리의 건축양식도 비슷하여 크게 3가지 형태의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술집·약국·숙박시설 등 상업 거리를 형성하던 건물은 주로 1층 상점·2층 다용도실로 이뤄진 주상복합형 건물이 지어졌다. 1열식 마치야로 도로에서 보이는 건물의 가로면보다 보이지 않는 세로면이 긴 형태이다. 일본식 전통 양식인 좁고 긴 복도가 특징이다. 이와는 또 다른 형태로 건물의 가로면이 세로면보다 길게 드러난 2열식 정방형의 가옥도 눈에 띈다. 이 건물은 주로 어촌민가로 보이며, 중복도가 특징이다. 3열식 이상의 대규모 건물은 서민주택은 아니었다. 하시모토 젠키치와 도가와 야사부로는 당시 구룡포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현재 하시모토의 집은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일본식 정원이 있으며,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신이나 부처 등을 모셔두는 신성한 공간-와 장식장(도코바시라) 그리고 대문 입구의 간독(생선 소금절임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식 온돌도 적용되어 있다.

적산가옥은 주로 일본인이 많이 살았고 수탈의 전진 기지였던 항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인천·목포·여수·군산·논산·포항·부산·창원 등은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러나 적산가옥은 일본의 잔재가 아니라 일본·서양·한국식이 결합된 독특한 한국 근대의 건축물로 봐도 무방하다 생각된다.

적산가옥과 같은 형태는 한국의 일본인 가옥에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사로 향하던 계단을 올라 구룡포 공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일본인 가옥 거리의 복잡함과 달리 구룡포 바다는 고요하기만 하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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