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최근 정치권에 일고 있는 험지 출마 논란은 정당 공천과 연관이 깊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여 앞두고 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다. 현역 의원은 물론 출마 희망자들은 중앙당과 용산 주변에 안테나를 꽂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험지 출마 논란으로 뜨겁다. 험지 출마는 금배지를 오래 달았고 많은 특혜를 누린 이들은 이제 뒷전으로 좀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눈치없이 무거운 궁둥이를 비비적거리며 일어설 줄 모르는 이들이 대상이다. 통상 3선급 이상이 해당된다.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한 몫한다.
부산 출신 3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출마를 선언, 험지 출마론의 불씨를 당겼다. “제 살길 찾는 것”이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거기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대표를 콕집어 “서울 험지에 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언급에 영남 의원들이 발끈했다. 여당 중진에게 ‘험지 출마’가 발등에 불이 됐다.
험지 출마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정당의 지지세가 약한 지역이 타깃이다.
20대 총선때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텃밭을 떠나 사지나 다름 없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홍의락 전 의원도 대구 북을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들은 보수 텃밭에서 당선돼 정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지역주의가 판 치는 우리나라에서 험지 출마는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단골 메뉴다. 험지 출마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공하면 정치권의 스타가 된다.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된 후 다음 총선때 부산에서 출마, 낙선했다. 이후 ‘바보 노무현’ 별칭이 붙었다. 그의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은 대통령 당선에 교두보가 됐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 때는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가 등 떼밀려 종로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이낙연 총리에게 고배를 마시고 정치 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번 국민의힘 혁신위에서 사면 대상자로 거론된 3선의 김재원 의원도 상주·군위·의성·청송을 떠나 서울 중랑을에 나섰다가 분루를 삼켜야 했다.
반면 험지 출마 요구에 반발,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선됐다. 정치 재기의 기반이 됐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의 5선 주호영, 3선 윤재옥·김상훈 의원과 부산·울산·경남의 3선 이상 중진들이 험지로 등을 떼밀리고 있다. 험지 출마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험지 출마는 당 쇄신을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천을 둘러싼 파워 게임 성격이 짙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정치적 도전과 쇄신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후진을 위한 자리 양보는 숙명이지만 고통이 수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