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가 지난 10월, 중국 은하상의 ‘최고인기외국작가상’을 수상했다. 성운상에 이어 중국의 양대 SF 문학상에서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렇게 기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작가와 포항의 한 동네 책방에서 진행했던 공개방송 겸 북토크가 떠오른다. 방송을 진행한 지 6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날은 가장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김초엽 작가와 팟캐스트 ‘서바이벌SF키트’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포항 효자시장 안 독립서점 ‘달팽이 책방’에서였다. 책방 사장님이 마련해주신 포근한 공간과 향기로운 차, 설레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김초엽 작가와 ‘서바이벌SF키트’의 호스트 토끼한마리(내 닉네임이다), 공상주의자가 마법처럼 몽글몽글한 시간을 만들어 냈다. 그 시간 우리가 흠뻑 빠져들었던 작가의 세계는 SF의 언어로 쓰였기에 문화권을 넘어 공감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달팽이 책방’은 SF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영어원서낭독모임 ‘영자’에서는 영화 ‘콘택트(Arrival)’의 원작이기도 한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다. 한국어로 읽어도 만만치 않은 책이라 영어로 도전하기에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의 유려한 문장을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음미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나누며 안도의 웃음을 짓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테드 창의 소설은 인물이 아닌 과학이 주인공으로 보일 만큼 과학적 사고나 가치관이 작품의 뼈대를 형성한다.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운 작품도 간혹 있지만, 궁리하고 이해했을 때 느끼는 경이감은 다른 장르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동이다.
얼마 전에는 포스텍SF어워드와 문윤성SF문학상 대상을 받은 지동섭 작가와 함께하는 ‘SF 소설쓰기’ 워크숍도 있었다. SF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창작의 원리를 알면 SF를 비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서둘러 참가 신청을 했다. 역시나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열띤 합평 속에 SF를 어떤 관점으로 읽어야 할지 많이 배우는 수업이었다. 수강생들의 글솜씨에 감탄하는 한편, 창작의 고통이 무엇인지도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방에 살면서도 SF적, 문화적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책방 덕분이다. ‘달팽이 책방’에서는 유일무이한 개성의 독립출판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사장님의 안목으로 큐레이션 해 놓은 단행본(과학 교양 도서와 SF 소설도 빠지지 않는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시중의 카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홍차와 허브차 컬렉션을 맛보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독서 모임은 지역 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포항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전시회나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이렇게 소중한 문화 플랫폼이지만 전국의 동네 책방 현황을 보면 운영이 어려워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대의 동네에 운 좋게도 책방이 남아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동네 책방에 놀러 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