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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준비하며

등록일 2023-11-02 18:14 게재일 2023-1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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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겨울의 초입, 11월이다. 그런데 날씨는 푸근하다. 주말부터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오겠다는 예보도 있는데…. 달력을 살펴보니 공휴일이 없어 좀 쓸쓸한 달이지만 1일부터 청송 사과축제가 열리고 3일에는 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포항음악제가 시작되며 10일에는 구룡포 씨푸드축제가 준비되고 있다.

저녁 먹고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다. 40여 일째 해오고 있는 해변가 ‘맨발로 걷기’를 하기 위해서다. 바다시청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니 하루의 일과가 머릿속에 정리된다. 붉게 물든 큰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떠 있고 많은 사람이 깨끗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나는 찰방찰방 물을 밟으며 영일대 쪽으로 걷는다. 많은 사람이 스치며 조용히 뒷짐 지고 걷거나, 팔을 크게 흔들며 걷는다. 대부분 혼자서 걷는 사오십 대가 많고 노년의 부부도 조용히 얘기하며 걷고 몇몇이 놀러 나온 젊은이들은 불꽃도 터뜨리고 사진도 찍는다. 무릎 깊이의 물속에서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모래사장에 해초와 함께 밀려 나온 조개를 도로 바다로 던져주는 아저씨도 있다.

영일대 부근까지 오니 스페이스워크가 알통을 재는 것 같은 포즈 위로 달이 보인다. 집을 나설 때는 춥지는 않을까 하고 따뜻하게 입고 나왔으나 물속에 발을 담구어 보면 차갑지가 않다. 요즘은 바람도 잔잔하다. 해변에 서 있는 스틸아트 이정표를 보니 먼 나라 도시 10개 정도가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뉴욕이 약 1만1천km이고 서울은 270km이다. 되돌아 오면 포스코의 휘황 찬란한 불빛이 포항의 힘을 빛나게 하고 있다. 남쪽 끝 여객터미널 앞까지 와서 체조를 하며 잠깐 쉬고 되돌아간다. 이렇게 약 3천500 보 2.5km를 걷는다. 오늘도 버스킹 그룹 몇 개가 노래를 들려주고 큰길 옆 식당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카페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조용하다.

이처럼 바다는 맑고 깨끗한데 근래 갑자기 들려오는 ‘럼피스킨’이라는 소 전염병이 전국 74곳이나 발생하였고 약 5천 마리가 살처분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행히 경북은 아직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다. 이 병은 모기 따위가 옮긴다는 데 또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린다.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 뿌려서 1970년대에 없어진 줄 알았던 빈대가 또 말썽이다. 아마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맨발 걷기를 마치고 모래밭을 나와보니 스틸아트 작품들은 거의 철거되고 몇 개만 남겨두었는데, ‘Time’의 흰 딱따구리는 기둥을 쪼고 있고 ‘비상(飛上)’의 20마리 포항갈매기들은 하늘을 향해 뜨겁게 날아오른다.

집에 와보니 땀이 조금 났다. 이제 여름철 옷은 빨아 넣고 길고 두꺼운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벌써 마음먹고도 행하지 않았던 에어컨 청소도 전기 코드는 이미 빼놓았지만 필터도 닦고, 이방 저방 흩어져 있는 선풍기도 씻어 넣어야지. 시골집 뒷간도 정리하고 황토방에 불을 때어 주어야겠다. 곧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니 더 추워지기 전에 주위를 정리하고 마음 조용히 11월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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