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보건통계를 근거로 볼 때, 한국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적다고 한다. OECD 국가 평균 임상 의사 수는 3.7명이라고 한다.
인구 1천명당 임상 의사가 많은 국가는 오스트리아(5.4명)와 노르웨이(5.2명)이고, 임상 의사가 적은 국가는 한국(2.6명)과 일본(2.6명, 2020년), 멕시코(2.5명)라고 한다.
한국의 이러한 의사 부족과 함께 과학자 양성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18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과기 특성화 대학의 의전원 설립 가능성은 이전보다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대가 증원되면 당연히 포스텍, 카이스트가 ‘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해 추진해 온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도 승인되어야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과학자다. 진료보다는 임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환자 치료나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줄기세포 치료제, 인공장기, 유전자검사, 면역항암제 등 바이오산업과 의료 분야의 최신 연구와 기술 개발을 맡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인력이 의사 과학자이다.
최근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7%가 의사과학자이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표과학책임자 70%도 의사과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천명 중 3.7%가량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매년 1천7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의대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가 되는 이들이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모집정원이 3천58명이므로 30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첨단의학 기술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의사과학자를 키우려면 의과대학 교육에 공학을 집어넣은 트랙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의대를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기의전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의 반대 논리는 이렇다. 의사과학자 가운데 일부가 임상의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고, 이들 대학의 경우 부속병원이 없어 임상과 연구의 긴밀한 연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의협은 의사이건 의과학자의 절실한 증원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수를 묶어놓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의사의 희소성에 의한 의사의 높은 봉급을 즐기려는 게 의협의 목적처럼 보인다.
여기서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보자.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고교가 서울대라는 농담도 있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린다는 소문이다.
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
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
언제까지 의협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몰입할 것인가? 의사 부족으로 병으로 고생하고 숨을 거두는 환자들, 그리고 의과학자 부족으로 의과학 후진국으로 신약 하나 개발 못하는 나라로 창피를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밥그릇 지키기 위한 의사증원 반대를 계속 할 것인가? 의대 광풍을 즐기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