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주장대로, 과연 ‘영남스타’인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5선)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도권 험지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을까. 나는 가능성 제로라고 생각한다. 주 의원은 이미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수도권 지역구에 낙하산공천을 받아 총선을 치르겠다는 가정 자체를 하기 싫을 것이다.
총선취재를 여러번 해봤지만, 어떤 지역구든 현역의원을 이기기는 힘들다. 특히 수도권 현역들의 경우 당선직후부터 다음 선거에 대비해 지역구 관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당별 지지도가 엇비슷하고, 공천경합자도 많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선거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지금 비판받는 민주당의 팬덤정치는 현역의원들의 끊임없는 조직관리 때문에 생긴 측면이 강하다.
이런 수도권 선거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주 의원이 인 위원장의 서울 험지 출마요구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주 의원은 지난 4월 대구지역 한 방송에 출연해 TK현역 공천 물갈이설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2016년 총선에서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어떤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정말 괜찮은 정치인이라면 다시 당선시켜주는 경우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만약 대구 수성갑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지는 부분이다.
여기서 주 의원을 예로 들었지만, 인 위원장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TK정치권을 비하하고, 김기현 대표(울산 남구을·4선)와 주호영 의원을 콕 집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요구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다. ‘잘 모르는 사람끼리 술집에 앉아서 할 수준의 말을 혁신위원장이 함부로 얘기한다’는 비판에 공감이 간다. 당사자들은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겠지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는 말은 사실 정치를 그만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최근 이와 관련해 “TK중진 서울 차출은 그냥 죽으라는 얘기다”라고 했다. 사실 국민의힘이 김 대표나 주 의원을 서울험지에 출마시킨다고 해서 감동할 국민도 없다.
여당은 이번주 총선기획단과 인재영입위 가동을 시작으로 총선준비에 들어간다. 12월 12일부터는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는 총선기획단은 선거전략과 공천기준 수립 등 밑그림을 그리는 기구다. 향후 출범할 공천관리위원회의 실무기구로 생각하면 된다. 인재영입위는 말 그대로 당선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의힘은 앞서 호남, 수도권, 청년 등을 영입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다.
앞으로 두 기구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그동안 혁신위가 제기했던 이슈들은 묻힐 수밖에 없다. 혁신위가 공천에 관여해 봤자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혁신위가 지금 긴급하게 해야 할 작업은 수도권 선거판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견인할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