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 결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오색영롱한 단풍이 물들어가듯이 10월엔 각종 축제나 문화행사, 기념식이나 체육대회가 도처에서 열리고 한 켠에선 풍년가를 부르거나 단풍놀이로 화색이 감도는 등 시월 한 달이 짧게만 여겨진다.
등을 치며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서 새삼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엔 누구나 가슴 설레는 시인이고 시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테마와 이벤트로 풍성했던 시월을 뒤로 하고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시향(詩香)의 추임새로 11월이 열리고 있다.
미틈달의 첫날은 우리나라 ‘시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하여 1987년부터 시의 날을 제정, 기념사업을 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나 은빛 억새의 몸짓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연상(聯想)작용이나 감성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시의 울림은 여전히 삶의 큰 위안과 감동을 줄 것이다. 그만큼 시적인 효능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시는 감정의 순수한 발로이듯이, 자연의 변화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고 짧으면서도 유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문자로만 머물지 않고, 현대 들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출되고 변용되고 있음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시의 구절에 음색을 입혀 말과 목소리로 표현하면 시낭송이 되고, 시의 행간에 곡조를 붙이면 시노래가 되며, 몸동작이나 대화를 곁들여 연기하듯이 시의 퍼포먼스를 펼치면 시극(詩劇)이 되듯이 시의 확장성은 실로 다양하고 무진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 시낭송과 시극 등이 다양하게 열리면서 ‘시의 날’을 마중한 것 같아 반갑고 넉넉하기만 하다. (사)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는 예천에서 열린 제8회 시낭송 올림피아드에서 회원들의 자작시 또는 경북문협 회원의 발표시로 시낭송의 격조와 향기를 더했고, 포항시낭송회는 10월 중순 울릉도 초청공연에 이어 지난 주말 구룡포읍 아라광장에서 열린 ‘경상북도 해녀 한마당 축제’에서 해녀스토리 시극을 성황리에 펼쳐 갈채를 받았다. 또한 포항문인협회는 시민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낭독함으로써 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포항 문학의 숲을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시는 시인이 쓰지만 쓰고 나면 결국 독자의 것이며, 시낭송이나 시극은 개개인의 독특한 목소리나 몸짓이 말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언어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시의 날을 맞아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며 시처럼 살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