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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펀 마케팅’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편의점에 자주 들르는 사람이라면 음료 진열대에서 밀가루 포대나 구두약 디자인의 캔맥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협업하는 것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 직접 디자인한 의류, ‘포켓몬 빵’처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식품과 조합한 상품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구두약과 맥주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조합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상품에 의외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업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소비자는 이를 소비하며 즐거움을 얻는다.이처럼 대중의 재미와 관심을 공략하는 마케팅 기법을 ‘펀 마케팅(Fun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재미를 구매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펀슈머(fun+consumer)’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어떤 상품이 일단 펀슈머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하면 SNS를 통해 그 상품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펀슈머는 단지 재미를 위해 상품의 이미지를 공유할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해당 상품에 대한 호감도 함께 공유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 콜라보레이션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 간의 거리가 멀수록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할 수 있다. 구두약 디자인의 흑맥주라니,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은가.그러나 이질적인 브랜드를 조합하는 과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 유명 빵집에서 인기 메뉴인 ‘튀김 소보로’ 모양 비누를 출시했다가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먹을 위험이 있다는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기획할 때 문화적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 격차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을 잘 보여준다.몇 년 전 시멘트 제조업체가 출시한 ‘○○표 시멘트 백팩’은 시멘트 포대의 디자인과 질감을 실감나게 구현하여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고, 금세 품절되어 온라인에서 정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업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건설현장 작업자 차림으로 ‘시멘트 백팩’을 매고 있는 이미지를 광고로 내보내고, 이 상품에 ‘내 삶의 무게’라는 이름을 붙였다.이 상품은 ‘펀 마케팅’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졌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시멘트 백팩’은 동료 시민과 노동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지금도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개당 40kg에 달하는 시멘트 포대를 작업자들이 몇 개씩 등에 지고 나르는 일이 드물지 않으며, 이는 대단히 고된 노동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건물들, 시설들 모두 이러한 노동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잃어간다는 데에 있다. ‘시멘트 백팩’이라는 상품과 시멘트를 ‘곰방치는(건축자재 등을 나르는)’ 건설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관심경제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상품화해도 괜찮은가?

2023-04-03

베이비부머 은퇴, 보고 있어야만 하나

김규인 수필가 베이비부머가 은퇴한다. 한국의 산업사회를 이끌고, 소비를 주도하던 700만 명이 빠르게 산업 일선에서 물러난다. 경제 호황기를 누린 축복받은 세대이지만 그들의 노년은 밝지만은 않다. 자꾸만 미루어지는 자녀의 결혼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늦게까지 뒷바라지해야 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그러기에 자신들을 위한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린다.총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의 산업사회 진입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다른 나라보다 압축적인 고동 성장을 이루었다. 늘어난 인구로 국력은 커졌고 집을 짓는 건설과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도 소비도 늘었다.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했던 자리가 컸기에 은퇴로 야기되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가뜩이나 부족한 산업인력의 공백은 더욱 커지고 사회적인 각종 부담도 늘어난다. 대중교통의 무임승차는 부족한 지방정부의 재정을 압박하고 눈에 띄는 속도로 늘어나는 국민연금의 지급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늘어난다. 돈이 필요한 그들이 가진 부동산이 매물로 나올 것이고 부동산시장의 하락은 우리 경제를 힘들게 할 것이다.저출산과 고령화는 대한민국의 성장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성장률이 문제인데 이제까지의 어려움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량은퇴에 따른 대량 실업은 베이비부머의 지갑을 얇게 하고, 소비의 진작을 통해 그나마 이어지던 낮은 성장마저도 어렵게 한다.이런 가운데에도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젊은 청년들은 보수는 낮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은 중소기업의 취업을 기피하고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에서 근로자들의 유입도 여의찮다. 설사 해외에서 근로자들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베이비부머의 은퇴에 따른 사회 비용의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을 계속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여야 한다. 다행히도 의학의 발달로 베이비부머들의 건강 상태는 아직도 산업체에서 일을 할 만하다. 그러하기에 정년을 늘리고 임금은 피크제를 도입하며 각종 연금의 지급 시기는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더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을 두고 해외 인력으로 부족한 일자리를 메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다윈의 진화론인 용불용설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쓰지 않는 몸은 퇴화하고 마침내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병원에 드러누워 치료받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의료비는 온전히 사회의 부담으로 남는다. 이는 그 누구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우리보다 먼저 사회문제를 겪은 선진 여러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 순간에도 은퇴의 시간은 흐르고 산업사회의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고급 인력들이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 우리 사회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세워둔 기계도 사람도 고장이 나기 쉽고 우리 사회도 그러하다. 시간이 지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2023-04-03

외교는 완승 아닌 상생이다

김진국 고문 의원 외교를 흔히 ‘외유(外遊)’라고 한다.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닌다’라는 비난이다. 그만큼 부정적이다. 말로는 ‘초당(超黨) 외교’를 외치지만, 외교마저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고 의심한다.사실 의원 외교는 중요하다. 상대국 정권은 수시로 바뀌는데, 집권당만 상대할 수 없다. 정부가 야당을 상대해도 문제가 된다. 야당의 반대를 상대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지렛대로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의 ‘외유’는 사진 찍기와 관광지 밖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국제 관계에 특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유신 때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했다.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됐으나 미국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5·18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미국이 도와 살아났다. 그는 즉자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신군부 시절 그의 비서 한화갑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 박종웅 전 의원은 미국 문화원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검열이 심하던 시절 정확한 해외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DJ는 수시로 외국 언론인·정치인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취임 이후에도 협상에 앞서 해외 언론·전문가집단을 먼저 설득했다. 그는 자서전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윤보선 총재의 ‘한일회담 무조건 반대’에 동의하지 않았다. … 국제 사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미루면 자칫 세계의 흐름을 놓치고, 결국 우리만 고립될 것을 우려했다.”강경파가 한일 협정에 반대해 야당 의원이 모두 사퇴하자고 주장했을 때도 그는 반대했다. 강경파로부터 ‘여당 첩자’, ‘왕사쿠라’라는 비난을 들었다는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정을 위해 한국·미국·일본의 3국 안전 보장 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중국·소련에 둘러싸인 우리 나라가 일본까지 잠재적 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야당 강경파는 국제적 고립을 스스로 불러왔다. 세계 여론이나 국가 장래의 이익에 눈을 돌렸어야 했다. …무엇보다 안보와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을 우방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어제도 ‘핵 공격력’을 위협했다.1998년 DJ는 대통령이 된 뒤 일본으로 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했다. “두나라의 20세기 역사에 박혀 있는 원한과 상처를 21세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 악화된 대일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했다. …강경 대응은 또 다른 강경책을 불러왔다. 그러다 보니 한일 양국의 외교 채널은 끊겨 버렸고, 정부 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는 두 나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었다.” 그가 자서전 회고는 최근 상황과 닮았다. 그때 그는 일본 대중문화에 문을 열었다. 문화계가 거세게 반대했지만, 그는 문화 쇄국주의를 거부했다. 그것이 한류와 K컬처의 토양이 됐다. 한일어업협정도 체결했다.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어 영토권을 포기했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결단했다.최근 일본에 많이 양보했다고 논란이다. 너무 서두르긴 했다. 국민과 당사자를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렇더라도 야당 선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제 관계는 상생이 최선이다. 완승은 언젠가 돌려받는다. 미국처럼 제재 수단이 많은 나라가 아니면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진짜다. 강요된 사과를 받은들 후련해지겠나. 그렇다고 오부치 총리를 비롯해 50번이 넘게 한 사과를, 우리는 안 받았다고 기록할 이유가 없다. 돈 몇 푼에 자존심 팔 필요는 더더구나 없다. 우리도 그 정도는 감당할 힘이 있다.갈 길이 멀다.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이 원한이 없어 과거를 묻고 가자고 한 게 아니다.중국이 힘이 없어 일본의 배상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중국이 6·25 침략, 북한이 남침,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사과할 때까지 외면할 수도 없다. 국제 사회는 냉혹하다. 힘이 말한다. 차가운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02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온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소설이 나이 들어 다시 읽을라치면 전혀 새롭게 읽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시절 나는 ‘어린 왕자’와 ‘윤동주 평전’,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야말로 ‘문청(文靑)’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게다. 문학적 재능도 강고한 끈기도 없던 나는 시인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러시아 문학 공부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기로 영어판 ‘어린 왕자’를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책방에 ‘어린 왕자’를 주문해 단숨에 읽었다. 모자와 어린 왕자 그림이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없는 나는 천상 상상력을 잃어버린 천덕꾸러기 어른인가 보다. 하기야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 같은 인간이 순수 동심의 세계를 꿈꾸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리라.‘어린 왕자’를 읽다가 작년 8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교수의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가 필시 어린 왕자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는 웃음, 앞과 뒤를 재지 않는 흔쾌하고 여유로우며 당당한 웃음. 약간 높은 어조의 전염성 강한 웃음소리를 가졌던 이 교수가 생각난다. 삶에 허여된 시간의 순차성이 무의미해질 때면 잠시 막막해지곤 한다.많은 이가 ‘어린 왕자’의 기막힌 구절에서 삶의 위로나 작은 등불을 찾았을 것이다. B612 소행성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 오기 전에 여섯 개의 별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왕과 사업가, 술주정뱅이와 가로등 켜는 사람, 허영심이 강한 남자와 지리학자를 만난다. 권력과 돈, 알코올과 무의미한 노동, 자만과 학식으로 무장한 어른을 만난 왕자는 상심한다. 지리학자가 추천한 지구별에 1년 동안 머물던 왕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비행사다.왜 그들은 여섯 개의 별에서 하나같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돈과 권력과 노동과 학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작가는 묻는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인간이 각자의 소행성에 유폐된 채 홀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지만,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하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왕자가 여우와 뱀을 만나서 지혜와 신생(新生)을 얻고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갔음은 다행한 일이다.‘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름다운 몇 구절을 소개한다. “어른도 처음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우리는 자연과 담을 쌓고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간다. 오늘날 자연은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망각(忘却)된 지 오래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지만 별을 헤아리고 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3-04-02

1천원의 가치

우정구 논설위원 포항 한동대가 운영하는 ‘한동 만나’는 3천원짜리 식사를 100원으로 먹을 수 있게 고안한 학식 프로그램이다. 한동대 학생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학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학부모가 기부금을 내놓으면서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은 학생, 교수, 동창회 등 한동대 공동체가 십시일반 동참하면서 어려운 이들의 식사를 후원한다.이 식사 프로그램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꼭 필요한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서로가 배려하고 있다. 가계 곤란을 겪는 이도 다른 이를 위해 매번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천원의 행복’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총 객석 중 30%를 문화예술 향유가 어려운 이에게 나눠주고 있다. 17년째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누적 공연관람객이 36만여명이다. 영천시와 경주시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주민을 위해 읍면동 소재지까지 1천원이면 이동할 수 있도록 한 행복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영천시는 임산부가 병원에 갈 때도 택시비 1천원만 내고 다녀오도록 정책 배려를 한다.농림식품부 등이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천원짜리 아침식사 사업을 시작하자 학생들 반응이 짱이다. 학생의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고 쌀소비를 증대하는 한편 고물가시대 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정책인데, 인기가 폭발적이다.1천원짜리 하나로 뭐하나 할 게 없는 요즘이다. 분식점 가도 김밥 한줄에 1천500원은 주어야 하고, 편의점서도 1천원으로 끼니를 떼울만 한 게 없다. 1천원의 가치가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우리사회가 힘을 모으면 1천원도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02

지속가능한 미래 신산업 도시 포항의 미래를 위해

이강덕 포항시장. 혁신적인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의 육성이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 향상, 경제 발전의 핵심 열쇠로 자리 잡고 있다.나아가 혁신 기술은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에서 ‘기술 주권(主權)’은 물론 ‘국가 안보’의 원천으로, 국가 전략 기술 개발과 확보에 주요국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우리 정부도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 육성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하며 반도체, 이차전지, 첨단 바이오, 수소, 첨단로봇·제조 등 ‘12대 전략기술’ 분야에 향후 5년간 25조 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초격차·초일류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포항시는 이러한 정부의 신산업·혁신 기술 육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선제적으로 깊이 인식했다. 정부 정책 방향성에 부합하며 미래 먹거리로 이차전지·바이오헬스·수소 등 혁신 신산업 육성과 연구 개발 인프라 구축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먼저,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며 글로벌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이차전지 분야에서 포항은 최적의 산업 생태계와 인프라로 ‘K-배터리 일등도시’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함께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글로벌 이차전지 선도기업 집적화로 소재 양산 밸류체인을 완성해가며 대한민국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특히, ‘배터리의 심장’으로 불리며 가장 중요한 핵심소재로 꼽히는 양극재의 생산을 2030년까지 100만t까지 늘려 글로벌 생산기지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차원의 지원을 통한 초격차 경쟁력 확보와 혁신기업 유치의 기폭제가 될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포항시는 또 다른 국가 핵심 전략산업인 바이오헬스의 혁신적인 육성과 발전의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 연구시설인 3·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세포막단백질연구소(세계 3번째 설립), 국내 최초 식물백신 상용화 시설인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등 우수한 R&D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했다.축적된 토대 위에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 ‘해양바이오메디컬 실증연구센터’ 등 포항의 특성과 장점을 살린 바이오 관련 정부사업에 연이어 선정되고 기업 유치가 이어지면서 ‘포항형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여기에 ‘마지막 퍼즐’로 의료를 전공한 기반으로 신약 개발 등 연구를 수행할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에 지역의 역량을 함께 모으고 있다. 지방도시가 주도하는 바이오헬스 강국 도약의 초석이 될 연구중심 의대를 반드시 설립해 ‘제철보국’에 이어 ‘바이오보국’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여기에 친환경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 산업’의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북 지자체 중 최초로 선정된 국토교통부의 ‘수소도시 조성 사업’과 함께 산업부의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를 사업 선정 추진을 양대 축으로 삼아 도시 전반에 수소에너지 도입과 수소연료전지 산업 육성 기반 조성에 나서는 등 수소경제를 선도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포항은 국내 유일 로봇분야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비롯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 등 로봇산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강소 로봇기업 ‘뉴로메카’가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이전한 데 이어 로봇관련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등 차세대 K-로봇산업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해가고 있다.이와 함께 포항 과학관 건립과 경북 디지털 혁신거점 조성, 이차전지 인력양성 플랫폼 등 다양한 R&D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이를 이끌 인재 양성 등 신산업의 선순환 성장 체계를 만들어 갈 방침이다.기술 패권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전환 시기에 추격을 넘어 초격차를 만드는 과학·신산업 혁신 기술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포항시가 이러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K-신산업 심장 도시’이자 ‘혁신적인 첨단과학 도시’로서 ‘제2의 영일만의 기적’을 실현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도록 시민, 구성원들과 함께 힘을 모으겠다.

2023-04-02

소멸하지 않는 봄, BTS 정류장

이희정 시인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주문진 향호해변에 BTS정류장* 푸르다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발길 닿는 대로, 성근 마음 이르는 대로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수수께끼 풀어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정류장 만원이다―박희정, ‘BTS 정류장’ 전문*강릉시 주문진읍 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봄날’ 앨범 촬영지.우리나라에서 집단이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된 예로 BTS(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Bulletproof Boy Scouts)만큼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이들이 또 있을까. 몇 해 전 ‘타임지’에선 그들이 세운 “최초, 최고, 최단기간의 기록들은 세상에 대한 위로이자 희망”이라고 올해의 연예인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여태껏 세계의 미의 기준은 서양의 기준이었고 팝 시장의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것은 방탄소년단 이전의 이야기일 것이다.박희정 시인이 그리는 대상은 자신이 다녀온 BTS의 2017년 발표 앨범, ‘봄날’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주문진 향호해변이다. 시적 화자는 첫 행에서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며 단정적인 프레임을 내건다.뮤직 앨범 ‘봄날’은 편지 형식의 노랫말로 복수(複數)의 메타포를 거느리고 있다. 상징의 귀재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의 노래에는 몇 가지 은유적 코드가 숨어 있다. 화자는 “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 그곳을 발길 따라 성근 마음에 기대어 왔다고 고백한다. “푸르다”, “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이 상징하는 것은 청춘이고 희망이고 잊어서는 안 되는 특정한 시공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어 동일한 대상에 대한 묘사지만 “수수께끼 풀어 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으로 이 시의 중심에 핫플(명소) BTS의 상징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이 땅의 모든 청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바다가 보여 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흐르는 움직임 자체다. “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으므로 ‘공간의 이동은 시간의 이동’이라는 명제, 이는 예술사적으로 ‘동시대적인 명제’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의 시간은 노매드(nomad)로서의 화자 자신을 위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BTS의 ‘봄날’ 앨범은 특별한 사건(세월호 침몰)에 대한 기억을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메타포를 환기하고 있어 청춘, 그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그리움의 연서로 품어도 무방하다. 뮤직비디오에선 그날의 상징을 9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통해 암시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시원(始原)처럼 화자는 봄날의 “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 정류장은 만원이다”라며 그리움의 현상학을 보여 주며 맺는다.언제나 시계의 방향은 후진이란 없다. 마치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어 반사경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에겐 지난 시간을 비춰줄 지난 시간의 기억이 필요한지 모른다. 비록 그들의 봄은 중단되었지만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에 생명으로 온 모든 것, 하물며 바다를 다녀간 새들조차 소멸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을 기록하곤 한다. 모래사장에 흐릿하게 찍힌 새 발자국이 쉬이 잊히지 않는 까닭이다.후렴구 “보고싶다, 보고싶다,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그들은 고통과 냉소가 지나온 시기를 잊지 않겠다며 자신에게 주문 걸듯 노래한다.시인의 “주문진 향호해변에 BTS 정류장 푸르다”에 방점을 찍으며 그들을 불러 본다.

2023-04-02

조직의 행동변화와 균형있는 혁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 마음 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있다.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나쁜 늑대가 착한 늑대보다 힘도 세고 뚝심도 있는 것 같아 이길 것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먹이 주는 쪽이 이긴다가 우솝이야기에 나오는 답이다. Top(톱)이 어느 쪽에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흐르고 조직 운영에 영향을 준다. 조직 내에서 사람의 행동은 어떻게 결정될까? 일반적으로 사람의 행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나 미국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조직 내에서 ‘개인과 환경의 상호 작용’이라 정의 한다. 조직의 변화는 ‘해동-혼란-재동결’단계로 변화해가는 것이다.제1단계 ‘해동’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내면에 확립된 관점이나 사고를 바꾸는 데 저항감을 느낀다. ‘왜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는 안 되는 걸까?’‘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해 설득이나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제2단계 ‘혼란’에서는 예전에 갖고 있던 견해와 사고, 또는 제도와 프로세스의 새로운 변화되는 현실에 혼란과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역시 예전 방식이 좋았어”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단계를 잘 극복하려면 변화를 주도하는 측에서 구성원들을 실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지원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제3단계 ‘재동결’은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이뤄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하는 단계로,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어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지하려는 항상성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 단계에서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실제로 성과를 일궈 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어떤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해동-혼란-재동결’의 과정을 거쳐 변화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의 일하는 방식과 이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것은 계층별 생각하는 차이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보면 환경변화를 바라보는 안목이 경영자는 10년 앞을 내다보지만 간부는 5년, 실무자는 1년 후의 일만 내다볼 뿐이다. 경영자는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의 일에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실무자는 방향과 방식을 바꾸라는 것에 충분한 해동시간을 갖지 못한 채 혼란기로 돌입하게 되어 혁신의 큰 빙점이 생기는 것이다.최근 기업은 중대재해 3법이 발효되면서 안전에 집중하다 보니 제조업의 특성상 설비관리와 균형을이루지 못해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경영여건과 대내외 변화에 맞춰 혁신 중장기 플랜을 수립하는 것에는 조직내 사람의 행동3단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한쪽에 먹이 주는 편향적 조직 운영이 아니라 혁신의 진화 원리에 맞게 누구나 공감하는 방향과 구조, 균형 있는 혁신 운영체계를 정립하여 사랑받는 혁신활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4-02

쓸수록 또렷해진다

유영희 작가 그동안 주먹구구로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몇 달 전부터 가계부를 착실히 쓰고 있다. 그런데 앱에 기록해서 그런지 갑자기 유튜브에서 소비 생활 관련 영상이 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고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뜨더니, 요즘에는 무조건 아끼기부터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뜬다.그러나 어디까지가 자기 계발인지 경계를 정하기가 어려워 투자인지 과소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무조건 아끼다 보면 궁상맞거나 인색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인 데다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소비 잘하기가 쉽지 않다. 얼핏 보면 두 가지 주장이 달라 보이지만,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든 알뜰 소비든 모두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래서 조회수가 엄청난가 보다.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농부 빠홈이 땅 욕심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빠홈은 바쉬끼르라는 곳에 아주 싸고 좋은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간다. 바쉬끼르의 이장이 하루치 걸은 땅값이 1천 루블뿐이라고 하자, 빠홈은 무리하게 걸어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죽는다.그러나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린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빠홈은 가난하기는 해도 일확천금에는 관심 없는 소박한 사람이었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지주에게 수확을 다 빼앗기는 러시아 농노가 땅 욕심 좀 냈기로서니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오히려 빠홈에게 동정이 갈 지경인데다, 설사 빠홈이 많은 땅을 탐냈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적은 땅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많은 땅을 원할 수도, 필요할 수도 있다.빠홈의 문제는 오직 하나, 자기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뿐이다. 다만, 그 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로 걸어야 하는지, 중간에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내게 필요한 땅은 얼마만큼인지,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하는지,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보인다.어디 가계부뿐이야? 사실은 모든 쓰기가 다 그렇다. 가계부 쓰듯이 그저 있는 그대로 쓰면 보이는 것이 많다. 기록학 전문가 김익한 교수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법 하나는, 들은 것, 본 것, 맛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쓰라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반성하는 글쓰기는 죄책감만 늘고 자기 비하에 빠지니, 그것만 경계하면 된다.삶이 팍팍할수록 욕심만 크면 불행해진다. 나에게 맞게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내 삶의 지향과 규모를 잘 알기 위해서는 가계부든 일기든 10분 쓰기든 무엇이든 쓰는 것이 좋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로 10분만 글을 써도 문제가 보이고 답이 보인다. 쓸수록 삶이 또렷해진다.

2023-04-02

ADHD, 일부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질 수도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요즈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이들 중 상당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를 가진 경우다.ADHD는 말 그대로 주의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행동이 부산하며 충동적인 것이 특징이다.아동이 뭘 하는지 늘 바쁘게 보이고 수업시간 등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상황에도 유난히 혼자서 딴 짓을 하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깐에도 손발이나 몸을 꼼짝거린다.식사도 한자리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치 모터를 달아놓은 아이처럼 늘 부산하다.준비물을 잊어버리고 소지품을 잃어버린다.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일이든 하는 충동성을 가져, 자기 차례나 규칙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대답은 질문이 끝나기 전에 불쑥 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한다.증상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지만,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낼 때면 무심코 지나치다가, 단체 생활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문제는 뚜렷해진다.아마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어수선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도 있을 것이다.ADHD를 가진 아동은 지능이 나쁘지 않더라도 주의집중이 안돼 공부를 못하며, 과잉행동으로 사고(事故)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충동적 행동으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을 귀찮게 해 소위 ‘왕따’를 당하기 쉽다.또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기 쉽다. 따라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이로 인해 학습장애, 사고(事故)의 증가, 대인관계 악화, 우울증, 비행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우리나라의 경우 학령기 아동의 6.5% 정도가 ADHD로 추정되며,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3∼4배 많다.이 장애는 아동의 학습능력과 인격발달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에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그러나 부모님의 ADHD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애들이 다 그렇다’,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 등으로 생각한다.부모님이 알아야 할 것은 ADHD를 가진 아이들의 증상은 심리적이라기보다는 뇌의 주의·집중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기능 이상에 기인하는 의학적 병이라는 사실이다.ADHD를 가진 아이를 단지 ‘말 안 듣는 아이’, ‘딴청피는 아이’, ‘종잡을 수 없는 아이’, ‘게으른 아이’, ‘사고뭉치’라고 생각하고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는 다리에 골절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 “정신을 차려서 걸으면 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리에 골절을 입었는데 제대로 걸을 수 있나? 제대로 치료해서 골절이 치료돼야만 걸을 수 있다.ADHD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아동들이 과거에 비해 늘고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ADHD 치료율은 여전히 낮은 1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학습능력만 저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ADHD 아동의 약 50%에서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동반되며,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25~33%에서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발전하며, 성인이 돼 약 18%가 반사회성 문제(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반사회적성격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ADHD 증상이 있는 아동의 경우 도파민계·노르에피네프린계 약물치료를 하면 전두엽의 뇌기능을 개선해 주의·집중력과 과잉행동은 약 80% 정도에서 호전이 되지만,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는 50%에서만 호전된다.아동기의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청소년의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나타나 탈선이나 범죄로, 성인의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ADHD의 빠른 진단과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이는 아동의 의학적 문제를 넘어 인생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ADHD를 치료함에 있어 보호자에게 희망을 전달해야 하나, 반사회성 발전 가능성의 문제만큼은 민감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치료전략을 제시해주어야 한다.전형적인 약물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감정조절·충동성 문제는 필요한 경우 그에 적절한 추가의 약물처방과 함께 어떻게 훈육의 틀을 잡으면 좋을지 문제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관된 훈육 태도를 제공하는 방법 등 교육적 행동치료에 대해 반드시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자녀가 ADHD를 피해갈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의 소중한 자녀에게 ADHD가 왔다면 당당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 자녀의 소중한 건강과 미래가 걸린 일이다.

2023-04-02

춘맹(春盲)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봄바람은 한 점도 낭비하지 마라. 어느 저녁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죽은 것 같은 가지에 새싹이 피어나 파릇파릇 다시 시작하는 걸 보면 바람이 날라 오는 봄기운은 낭비하고 싶지 않다.그래서 고영민시인은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안도현 시인은 봄날 나무에 귀 기울이면 ‘그렁그렁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지금도 휴대폰에는 많은 등록된 친구들이 봄 사진을 올리고 있다. 피는 꽃 옆에서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다들 ‘좋아요’를 누르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투의 댓글을 단다.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라는 책을 보고 난 뒤로는 ‘좋아요’를 누를 수가 없다.우리가 봄을 퍼 나르는 디지털세계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고, 게임도 즐기고, 은근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곳이다.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물질을 소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에 불을 켜둘 때 전력이 소모되는 것을 알면서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이를테면 종이책을 사면은 나무가 베어져야 하지만 e-북을 이용하면 가격도 싸고 물질낭비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정보통신망 전체가 소비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 어느 만큼의 물이 소비되는지 해저케이블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휴대폰을 충전하는 이 전기는 화력인가, 원자력인가, 재생에너지인가와 같은 질문을 하며 충전을 하지 않는다.휴대폰을 만드는 금속 때문에 서식처를 잃어가는 고릴라는 더욱 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 휴대폰 때문에 고릴라의 서식처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마찬가지다.“‘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를 쓰기 위해 기자이자 피디인 저자 기욤 피트롱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금속, 지구상 가장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들, 해저테이블 가설현장 등을 누볐다고 한다.그는 단순히 ‘좋아요’를 한 번 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기욤 피트롱이 빠르게 확산하는 디지털 오염 속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먹어대는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 이리저리 이송되고 저장되며 처리되는 그 데이터들은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로 만들어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게 된다….세계 디지털산업은 너무도 많은 물과 자재,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기는 생태발자국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가 남긴 생태발자국의 세배에 이른다.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10%를 끌어다 쓰며,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총 4%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민간항공업 분야의 배출량의 두 배라고 기술했다. 기욤 피트롱의 이 말도 불편한데 해마다 그 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석탄, 석유, 희귀금속. 인류는 이런 에너지의 전환을 통해 가공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시대의 최고 이용자는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기후세대’ 들이다.세계의 기후혼란에 맞선 운동은 SNS상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대기업들은 녹색디지털을 홍보하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에너지는 모두 재생에너지, 탄소제로의 에너지임을 강조한다.하지만 디지털세계는 대부분 지구를 구하거나 기후혼란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식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도록 퍼 날라야 많은 사람들이 알 텐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우리 나라의 샹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세계의 대표적인 수단인 스마트폰 보급률, 속도 등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세계 27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19년을 기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으로 조사됐다.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는 봄날. 그 환한 기운을 나누기 위해서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옆자리의 동료가 ‘좋아요’를 누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고 소모되고 있는가.지구의 봄을 위해서 ‘좋아요’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모른 채로 우리는 이 봄을 퍼 나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비극이요, 얻어도 비극인 세상이 되었다. 컴맹, 생태맹을 너머 우리 모두는 지구의 봄을 보지 못하는 춘맹(春盲)이 되었다.

2023-04-02

검찰공화국, 의사 나라

홍석봉 대구지사장 #1. “클린스만? 의외네 어디 지검장 출신이 올 줄 알았더니.” 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을 국가대표팀 새 사령탑에 앉히자 SNS에서 뜬 비아냥 댓글이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중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윤석열 정부를 두고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만사검통, 검찰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 생각인가”라고 비난한다. 검찰 출신 인사 편중을 비판한 것이다. 정부는 ‘능력과 전문성’을 내세워 인사를 정당화했지만 자격과 자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에 장관급 4명을 포함, 전·현직 검찰공무원 136명이 근무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 핵심 요직은 물론 금융감독원장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도 검사 출신이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정부에서 특정 집단이나 인맥 등이 주목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 문재인 정부 때도 다수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로 입방아에 올랐다.대통령과 뜻이 같은 이들이 주변에 있으면 조직은 잘 돌아갈런지 모른다. 하지만 경직화 되기 십상이다. 정책의 다양성도 결여될 수 있다. 검사들은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기술과 역량은 탁월하다. 업무 역량이 뛰어난 이들도 많다. 검찰 조직문화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다. 대화, 타협 등 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인재풀이 좁은 대통령이 주변 사람을 쓰다 보니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2. 대치동에서 수능은 ‘메디컬(medical) 고시’로 불린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와 서울대 나머지 학과로 나뉜다. 의치한약수는 전문직으로 고소득이 보장된다. 고용안정성과 일자리 측면에서 이런 순서로 꼽는다.의대가 성공 보증수표로 인식되면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몰린다. 이미 대학에 합격하거나 졸업한 인재들까지 앞다퉈 달려간다. 재수는 필수고, 삼·사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가려고 한다.최상위권 수험생의 80%가 의약학 계열 진학을 꿈꾼다. 서울 학원가는 초등생부터 의대 진학반이 개설돼 있다. 서울대 자연계는 ‘의대생 양성소’라는 푸념이 나온다.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가 학비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원과 영재·과학고의 이공계 인재들까지 의대행에 줄섰다. 의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합격한 대학도 쉽게 포기한다.불경기에 믿을 것은 의사 자격증 뿐이고, 의약학 계열 졸업만이 ‘성공 보증수표’라고 믿는다. 고소득과 정년이 없는 의약학 계열 전문직 선호현상은 신드롬 수준이다. 자연계 우수생이 의대로 쏠리면서 과학인재 양성은 물건너가는 형국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드는 반도체 산업은 인재난이 심화되고 있다. 계약학과까지 만들었지만 등록 포기가 쏟아진다. ‘의대 블랙홀’이 대입 제도 마저 왜곡시키고 있다.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검사가 나라를 다스리고 교육은 의사가 지상목표인 나라가 됐다. 최종 종착지가 검사와 의사다. 편식은 위험한데도 말이다.

2023-03-30

기로에 선 저출산정책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대책회의가 7년만에 대통령 주재로 열리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특별히 주목을 끈 이유는 두가지다. 먼저 윤석열 정부가 내놓을 저출산 대책에 새로운 묘안이 나올지에 대한 관심이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과거 15년동안 정부가 280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예산을 붇고도 합계출산율은 거꾸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작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꼴찌다. 2005년 1.08명이래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손꼽힌다.저출산 대책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은 “육아 문제는 국가의 기본책무”라며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다시피 저출산의 문제는 육아, 주택, 취업, 교육, 집값, 균형발전 등 매우 복잡한 문제와 얽혀있다. 어느 하나 해결된다고 풀릴 문제도 아니다.전문가들은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실패한 것은 단편적이고 단기적 정책을 내놓았던 탓으로 지적한다. 새 대통령마다 임기에 집착한 땜질식 처방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15년 동안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무려 200개가 넘으니 정부 정책의 방향이 없다해도 과언은 아니다.얼마 전 여당이 30살 이전에 자녀 3명 이상을 둔 남성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안을 꺼내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아무리 아이디어 차원이라 하지만 이런 내용이 정책으로 거론되면 정부 신뢰는 제로가 된다.학자들은 앞으로 10년을 초저출산으로 나라가 인구소멸로 가느냐 아니면 이를 극복해 강국으로 가느냐하는 갈림길에 있다고 말한다. 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국가의 흥망을 가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30

만우절(萬愚節) 거짓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공식적인 기념일도 휴일도 아닌데 ‘절(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날이라 가벼운 장난으로 서로 속이고 즐거워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지만 남에게 해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그 유래를 찾아보면 부활절 얘기,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 날린 얘기, 춘분 설법 등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새해 첫날을 바꾼 역법 얘기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曆)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면서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4월 1일 선물을 보내거나 축하하는 등의 거짓 행위를 했고 그 언행에 속은 사람들을 ‘4월 바보(April fool)’라고 했다는 설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에는 첫눈 오는 날이면 궁인들이 임금을 속여도 되는 낭만적인 설화도 전해진다. 어쨌든 동서양 모두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를 즐겨온 것이다.요즈음의 우리 사회는 거짓이 난무하는 듯한 판국이어서 여유롭게 농담하고 장난칠 마음들이 아닐 것이다. 절박해지는 일상과 치열한 사회의 경쟁을 겪으면서 삶이 팍팍해진 탓인지 모르겠다. 사실 90년대 까지만 해도 119 장난 전화 때문에 소방서가 골머리를 앓았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거짓말 장난으로 선생님들이 난감했던 일들이 이제 먼 추억이 된 듯하다. 20여 년 전 ‘흔들바위 추락설’로 설악산 사무소가 확인 전화로 곤욕을 치렀었고 한때는 빌 게이츠가 피살됐다는 오보를 보고 놀랐던 일들이 웃음으로 삶의 긴장을 풀곤 했던 만우절의 기억도 있다. 90년대부터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헛걸음을 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장난 전화로 피해가 클 경우,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기도 하고, 경범죄 처벌법의 ‘거짓신고’로 60만 원의 벌금을 낸다. 이러한 강력한 조치로 장난과 허위 신고 등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만우절 거짓말에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4.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데, 그 이유로는 상대방이 진실로 받아들여 심한 상처를 받기도 했고, 본인도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이 찍혀버렸다고도 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심한 거짓말을 하면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만우절 거짓말은 오전까지이고 오후에는 장난임을 밝혀야 한다.‘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말처럼 ‘리플리 증후군’이 요즘 우리의 정치계를 만연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학위 경력 위조, 기억 등을 서로 거짓말이라고 싸워대고 있으니 국민으로서 마음이 쓰리다. 거짓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진실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는 모양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있고, 남을 배려하면서 위로하는 듯한 착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고 어쭙잖게 허세를 부리는 말을 ‘파란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제 코로나도 해제 분위기에 들어온 듯하니 우리의 일상에도 유쾌한 장난으로 삶의 피로를 풀어보는 하루가 되어도 괜찮겠다. 하얀 벚꽃이 절정을 이룬 보경사에 나들이를 가서 거짓말 한번 해볼까. “조용한 만우절에 왔더니 뜨락에 하얀 눈이 쌓였네”

2023-03-30

목련 축제

강길수 수필가 춘분을 사흘 앞둔 토요일 오후. 하늘이 유리알이다. 오랜만에 할아비 집에서 고사리 형제가 만났다. ‘동기(同氣)가 없는 두 아이가 친형제처럼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내 소망이 작동했나 보다. 동네 공원에 함께 갔다.예전엔, 아이들이 많이 와 시끌벅적하던 곳이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드물다. 오늘은 아이라고는 우리 손자 둘 뿐이다. 아동들과 청소년들도 없다. 기구 운동을 하거나, 정자나 벤치에 앉아 쉬는 나이 든 분들만 여남은 돼 보인다. 어딘가 텅 빈 느낌이다.다섯 살, 세 살 난 우리 집 사촌 형제는 얼마간 미끄럼틀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신이 나서 깔깔댔다. 나와 큰손자 아비는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 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적막강산 같던 공원이 손자 두 놈이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어른들도 두 아이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만일 이 시간에 우리가 안 왔더라면, 공원은 사그라지는 봄날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저쪽 화단에 날개 하나인 하얀 목련 나비가 유리 하늘을 난다. “얘들아, 자전거 타고 놀면 좋겠네!” 하는 내 말에, 둘은 어린이 자전거 앞뒤에 타고 공원 마당을 휘돌았다.한참 후, 목련 나비 나는 화단 앞에서 동생이 내렸다. 녀석은 화단 위로 올라가, 떨어진 하얀 꽃잎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야?”하고 물었다. “목련이야!”라고 대답했더니, 목련 꽃잎을 한 움큼 주워 미끄럼틀로 뛰어가 회전 미끄럼관 안에 들어갔다. 그 꽃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모양이다.형이 뒤따라가 미끄럼틀 위에 오르자, 동생은 나와 목련 꽃잎을 회전 미끄럼관 입구에 놓아두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형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동생의 목련 꽃잎을 손에 들고 짓궂게 하늘로 뿌렸다. 이를 본 동생은, “내 거야!”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주우면 된다고 달래며, 덜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 동생에게 주었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이 광경을 보던 형이 다시 목련 나무에 뛰어갔다. 꽃잎 한 줌을 주워 와 미끄럼틀 위로 올랐다. 갑자기 큰 소리로, “목련 축제!”라고 외치며 손에 든 하얀 꽃잎을 하늘에 흩뿌리며 좋아했다. 동생도 덩달아 제 손의 목련 꽃잎을 뿌리며, “목련 축제!”하고 소리 지르고 웃었다. 미끄럼틀은 졸지에 형제의 ‘목련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두 아이는 축제 놀이를 반복 즐긴다. 어른 둘도 추임새를 넣으니, ‘3대(代)의 목련 축제’로 피어났다.큰손자가 ‘목련 축제!’하고 외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창의력과 순발력, 기억력이 어른을 뺨치는 현장과 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목련’이란 말도 오늘 처음 배운 녀석의 어디에서 ‘축제’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복했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동영상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이른 봄날, 난데없이 어린 손자 형제가 베푼 ‘목련 축제’ 행복 마당…. 거기서 또다시 깨닫는 말이, 하얀 목련꽃 나비가 되어 유리알 하늘에 날아오른다.‘어린이는 역시, 어른의 아버지야!’….

2023-03-30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 예방수칙 기억하고 사이버범죄 예방하자 매년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이다. 2015년 4월 사이버범죄 예방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4월 2일은 사이버(Cyber)의 ‘사(4) ‘이(2)’를 따서 선정한 것이며, 사이버범죄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로 ‘사이버안전’ 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사이버범죄는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여 피해범위가 광범위하고, 비대면·익명성으로 범인특정 및 검거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등 피해 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라는 말이 있다. 사이버범죄라고 하면 예방하는게 크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이버범죄의 유형을 파악하고 예방법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다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의심하기! 링크 클릭 금지! 전화해서 확인하기! 이 세 가지만 기억하고 잘 지켜도 피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첫 번째 예방수칙은 고액 알바나 고수익 투자권유 등 달콤한 유혹을 의심하여야 한다! 포인트환전사기는 ‘고수익 성인채팅 알바’(성인 채팅사이트에서 남성들과 대화만 하면 큰 수익을 주겠다고 하며 알바비로 포인트를 지급한 후 환전 등으로 금원 편취), ‘카지노 대리베팅’(SNS에서 부업 등을 미끼로 접근하여 자신이 대리로 베팅하여 큰 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여 포인트 환전 등으로 금원 편취), ‘로맨스스캠’(소개팅어플, SNS 등으로 호감을 쌓은 뒤 환전부탁) 등으로 피해자들을 현혹하여 포인트 환전을 빌미로 금원을 편취하는 사기이다. 포인트환전 수수료, 선입금 등을 유도하면 반드시 의심하여야 한다. 두번째 예방수칙은 ‘링크 클릭 금지’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인터넷주소(URL), 문자 속 링크, 첨부파일 등은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한다. 스미싱 범죄의 경우 교통범칙금, 택배주소 확인 등을 사칭하여 문자를 보내 인터넷주소나 전화번호를 클릭하도록 유도한다. 사이버사기의 경우 중고거래를 하면서 가짜 결제창이나 결제 사이트를 만들어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한다.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해킹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권아름 경사 경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마지막으로 ‘엄마 나 핸드폰 고장났어’처럼 자녀나 지인을 사칭하여 금원을 편취하는 메신저피싱의 경우 휴대폰 파손 보험처리를 해야한다며 링크를 클릭하게 하거나 어플을 설치하도록 유도한다. 클릭하는 순간 ‘팀뷰어’와 같은 원격제어앱이 설치되고 △계좌개설 △대출실행 △휴대폰 개통 등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좋은 예방법은 자녀나 지인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경북경찰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 사이버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자주 발생하는 사이버범죄 피해유형과 예방수칙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적극 홍보하고, 사이버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유관기관과 협업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학생, 노인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예방교육을 지속 실시해 안전한 사이버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사이버범죄 예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이버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이버범죄예방의 날을 맞아 잠깐 시간을 내어 사이버범죄 예방수칙을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3-30

국가소멸위기, 이민과 다문화로 극복하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비어간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모든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17년에 5천136만명이었던 한국인구는 2047년에 4천771만명, 2067년에 3천689만명, 2117년에는 1천51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백 년 후에는 나라인구의 70%가 사라진다는 셈이다.지역소멸이 문제라지만, 이쯤 되면 ‘국가소멸위기’라 불러야 하는게 아닐까. 인구가 국가성장동력의 한 축이라면 대한민국은 특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10위를 넘나든다는 국위와 국격도 인구가 실제로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리 오래가지 못할 터이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실효적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많은 나라들에서 인구정책으로 골치를 앓는 가운데, 캐나다 인구는 1년 만에 100만명 이상 증가하여 인구증가율 2.7%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의 인구가 14% 감소한 데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캐나다 정부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한다. 이같은 증가세가 지속된다면 약 25년 후에는 캐나다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된다는 예측마저 한다.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이민자의 나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인종갈등과 여론동향에 따라 이민정책이 그리 유연하지 않았다. 이민자들에게 유리한 다문화정책(multiculturalism policy)과 동등기회정책(equal opportunity policy)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면서 미국 이민사회와 인구추이는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중이다. 캐나다와 미국에도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지만, 유입되는 이민인구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성향을 장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보다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이민정책을 시도하는 셈이다.우리는 어떤가. 5천1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다문화배경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서고 결혼하는 10쌍 가운데 1쌍은 다문화가족이라고 한다.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동안, 초중고교에서 다문화 학생수는 한 해 1만명 이상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민과 다문화정책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배경 시민들의 70% 이상이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단일민족을 내세우는 고루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이미 글로벌 환경으로 변하였는데 우리만 폐쇄적인 구습에 머물 수가 없다. ‘다’문화를 ‘다른’ 문화로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하고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다문화는 낯설고 다른 문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의 새로운 얼굴로 받아들여야 한다.글로벌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환영받으려면 나라 안에서 글로벌을 환대해야 한다.추세로 보아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인구감소위기에 반전의 계기가 솟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민을 신성장동력의 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보다 포용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는 이민과 다문화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

2023-03-29

혼돈 속의 봄꽃

홍석봉 대구지사장 봄꽃은 순서대로 개화하는 게 자연의 섭리다. 봄꽃은 동백과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으로 핀다. 하지만, 요즘 봄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핀다. 몇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봄꽃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때문이다.기상청은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의 개화일이 최근 30년 동안 짧게는 4일에서 길게는 21일까지 빨라졌다고 했다.한창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주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자태를 자랑한다. 꽃비를 뿌리는 곳이 많다. 라일락이 보랏빛 향기를 뿜어낸다. 도로변에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은 열병식을 한다. 성급한 철쭉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한다. 올해 대구지방의 벚꽃 개화일은 21일이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24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르다고 한다.통상 봄꽃의 개화시기는 순서대로 열흘 넘게 차이가 났다. 식물은 저마다 일정 온도가 돼야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상고온 현상은 개화시기를 헝클어뜨렸다.동시개화는 한번에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을 주지만 저마다 피는 시기에 누리던 인간의 즐거움을 앗아가버린다. 더 큰 문제는 생태계 교란이다. 꿀벌의 수분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곤충의 활동 시기도 바꾼다. 꿀벌 실종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꿀벌이 없으면 과일과 채소 등의 수분 작용이 차질을 빚고 농작물 작황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칫 인간의 식생활을 위협할 수도 있다. 봄꽃 축제를 준비 중인 지자체마다 행사 개최시기를 두고 큰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도 들린다.지구온난화가 초래한 결과다. 자칫 봄꽃과 여름꽃이 동시에 피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9

지역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수업시간에 ‘지방-대학생’이란 정체성에 대한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다. 어느 학생의 발표 요지는 이랬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보통의 학생들처럼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오게 되었고, 속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대한 애착으로 곧 극복할 수 있었다.문제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발생했다. 진주 출신임을 밝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이 경상국립대를 다닌다고 하면 쏟아진 것이다. 그 학생은 대학생이 되고 학벌주의를 체감한 것이다. 서울 명문대 출신의 사람을 진주에서 만난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어떤 어른의 말에, 자기 위치를 실감했다는 경험담은 강의실을 침묵으로 이끌었다.정부가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한 글로컬 사업에 지역 대학의 존폐를 건 경쟁이 시작되었다. 처음 추진 계획이 발표되고 두 달도 되기 전에 공모를 마감하는 등 졸속 추진에 대한 비판이 다각도에서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대학 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의지와 인식, 지역 국립대와 사립대의 규모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면 글로컬 사업의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글로컬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책임회피이다.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연합해서 혁신의 방안을 찾으라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지역 대학이 외면받는 원인을 분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의 실질적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학벌주의가 여전히 득세한 우리나라에서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서울로 가는 학생들을 막을 수 있을까? 출생률 감소로부터 시작한 지역 대학의 위기는 ‘학벌주의’가 상징하는 서열화 된 의식 구조를 해결해야 극복할 수 있다. 20~30대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서열화된 사회의 구조로부터 생겨난 불안과 분노라는 정서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서열화된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는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맡아야 마땅하다. 사회의 여러 측면이 중층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시선이 마련될 때, 지역 청년이 지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지자체와 대학이 연계해서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생긴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채우기 위해 서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서울대 100개 만들기’와 같은 대학 서열화를 뒤흔들 수 있는 정책과 그 정책이 시민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경제문제로만 소급되지 않는다. 급조한 정책으로는 문제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2023-03-29

환절기 감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왔다. 점점 날이 따뜻해지고 화창한 날씨엔 얇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나 한국의 봄은 만만하지 않다. 오늘 내일 기온이 다르고 아침과 점심 저녁의 기온이 다르다. 아침에 애들과 등교 할 땐 온도가 영상 한자리 수지만 오후가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여름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춰 봄옷 겨울옷 반팔을 번갈아 가며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많은 이유로 환절기에 인체는 급작스런 온도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것이 누적되면 인체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고 면역력은 저하되고 감기에 걸린다. 나만 그렇게 겪는 온도 변화가 아니라서 내가 감기에 걸리면 가족과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역시나 감기에 걸린다.감기에 걸리면 목이 아프고 몸살기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함께 맑은 콧물이 며칠 나온다. 사람에 따라선 열이 나거나 땀이 난다. 그후 기침과 가래가 나오고 콧물의 색깔이 노래진다. 일 이주 고통을 겪게 되면 감기는 서서히 물러난다. 그러나 몸조리가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기침과 가래가 끝이 나지 않아 고생하기도 한다. 한달 넘게 감기를 앓고 나면 골골대고 힘이 없다. 이상하게도 힘이 나지 않고 밥맛도 없어서 검사를 해보면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잘 아는 사람은 이럴 때 한의원을 방문해 보약이나 면역을 높이는 약을 지어가서 복용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회복되겠지 하고 기다리지만 몸의 회복은 기약이 없다.온도 변화가 심한 환절기엔 옷을 너무 얇게 입는 것은 좋지 않다. 겨울만큼 두꺼운 옷은 아니더라도 너무 얇거나 짧은 옷은 피하는게 좋다. 특히 바람이 싫거나 추위를 많이 타는 마른 사람과 여자들과 노인들은 옷을 한겹 더 입어 갑작스런 추위를 피하는게 좋다. 잘 때도 보일러를 적당히 틀고 긴 옷을 입은 다음 이불을 덮고 자는 게 좋다.한의원에선 감기를 초기감기와 중후기 정도로 나눠서 처방을 한다. 초기엔 찬기운을 날리고 땀을 낼 수 있게 하는 약들 위주로 처방을 한다. 계지탕, 시호계지탕, 갈근탕, 마황탕, 대청룡탕, 패독산류의 처방으로 감기 초기 증상인 몸살과 발열, 오싹오싹 추운 느낌, 맑은 콧물 등을 치료한다. 감기 중후기에 기침과 가래를 제거하고 기관지의 기운을 높여 기침을 줄어 들 수 있게 하는 시함탕 시함박탕 맥문동탕 등을 한의원마다 고유의 처방으로 처방한다.보통 감기는 치료약의 선택을 잘하면 7일 전후로 증상이 소실되고 컨디션도 점점 회복이 된다. 그러나 가끔 컨디션이 회복이 안되고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로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기운이 없는 것과 더불어 마른기침을 몇 달 할 수도 있다. 보통 체력이 약한 아이나 여성 노인들에게 가끔 생기는 증상이다. 이럴 경우는 사람에 맞게 면역을 올리는 처방을 먹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컨디션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언젠가 낫겠지 기다리지 말고 주변 한의원에가서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2023-03-29

벚꽃, 그리움

정미영 수필가 경주 보문단지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산들바람을 따라 꽃잎이 날아오른다. 나비떼를 보는 것 같은 황홀감에 한참을 서 있었더니, 앞서가던 일행이 내 이름을 부른다.일행은 꽃나무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그런 연유로 기어이 산책로 가운데로 진입했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중심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는 것보다 양지바른 한쪽에서 전체 풍경을 내 눈에 가득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돗자리를 깔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벚나무에게도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나무가 기특해 쓰다듬었다. 그 순간 뚝, 하고 봉인되었던 그리움 하나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대학시절,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 위치한 보육원에 방문했다. 자원봉사를 해보자는 친구의 말에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한때가 나에게는 존재했었다. 더군다나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더더욱 책임감이 느껴졌다.그러나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던 친구의 말에 용기를 냈다. 어린이들에게 말벗이 되어 주는 일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야지, 머릿속으로 너무 오래 고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육원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어린이가 있기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숙련된 손길로 세탁을 하고 청소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서툴러도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주말에 몇몇 친구들과 보육원을 방문했다. 먼저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도운 뒤, 어린이들과 산책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가장자리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바라보는 이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동행할 어린이를 찾다가,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던 소녀에게 다가갔다.아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틈을 두고 앉았다. 소녀는 나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들지 않았다. 자신이 하던 일에 묵묵히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그냥저냥 너무 귀여워 같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동안 꽃잎을 줍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나하고 산책할래?” 머뭇거리지도 않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제야 나도 일어서며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내 손에 꽃잎들을 쥐어주며 책갈피를 만들면 예쁠 것이라고 했다. 꽃잎에 아이의 선한 마음이 담겨 내게로 건너왔나 보다.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나도 모처럼 순수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그즈음 나는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불투명한 현실에서 겪는 내 심리적 압박과 우울한 기분을 조교에게 토로하는 일이 잦았다. 숱한 번뇌와 좌절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푸를 것 같던 젊음이 점점 시들해지고, 마음은 흔들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그런데 아이의 앙증맞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동안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보육원을 방문했던 것은 어린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다니.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나는, 처음에 보육원을 찾아오기 망설였던 내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 아이와 재방문을 약속하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었다.나는 그 아이를 면면히 만나러 갔다. 우리는 꽃잎을 주워 색지에 붙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낱말을 써서 책갈피를 만들며 놀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와 그 아이의 만남은 두 계절 동안이었다. 내가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벚나무 꽃잎들이 리드미컬하게 춤사위를 이어간다. 그 끝자락을 소녀에 대한 내 그리움이 바투 잡고 따라간다.

2023-03-29

<6> 당나무가 김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다

선돌가 당나무가 검붉은 산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남서풍의 하늘 바람을 타고 시꺼먼 안개를 머금은 불똥이 날개를 달고 삽시간에 주위를 온통 화염으로 삼킨다. 뜨거운 산불 연기가 메케한 냄새를 사방으로 진동시키고 있다.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춤을 추면서 바람을 타고 먹이를 따라 흐른다. 김 사장과 고향 마을 주민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겼다.당나무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첫 번째가 김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그 두 번째 약속은 대의와 더 큰 공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나무는 신목이면서도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선돌가 당나무는 신목이 되기까지 태백산맥이 힘차게 뻗어 마지막 머무른 묵은봉과 김 사장이 생명의 은인이었다. 당나무는 묵은봉의 배려로 선돌이 된 명당의 끝자락 요지에 자리하여 신목이 될 수 있었다.한편 묵은봉은 국제선 비행기 항로로서 태평양을 거친 숨을 토해 내면서 건너와 동해에 이르면 처음으로 보이는 육지의 첫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산림이 헐벗어 전국에서 시범적으로 사방사업을 하였던 곳이다. 1970년대 초에 대통령이 묵음봉에서 사방사업을 격려 한 바 있고, 급기야 당나무가 스스로 불탄 자리에 사방기념공원이 건립되었다. 드라마로 유명세를 탄 묵은봉 봉우리에는 항구에 있던 어선을 봉우리에 올려놓아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묵은봉은 당나무와 김 사장이 어릴 때 뻐꾸기가 뻐꾹, 뻐꾹 운다하여 일명 뻐꾹산이라 했다. 어선이 놓인 산봉우리에는 실제로 뻐꾸기가 살았는데, 뻐구기의 전설에는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설화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나무꾼이 짝이 되었다가 영원히 이별 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얘기가 있다.명당에도 호사다마가 있는 것일까? 소박 맞은 여자가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잠시나마 당나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나무 위에 모여 있던 학들을 총으로 쏘려던 포수를 벼락 맞게 한 것도 그랬다. 남남쪽 월남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맹호부대를 따라 떠났던 박씨도 여기서 애인과 포옹하다 끝내 떠나고, 슬프게도 전사했다는 통지만 돌아왔다. 가난해서 목숨을 담보로 한 머구리의 슬픈 애환의 사연도 서글프다. 모두 명당 뻐꾹산 선돌가가 낳은 슬프고도 애잔한 얘기들이다.묵은봉 정상에는 고려시대 밀직부사와 대언의 관직에 이르렀고, 문신이며 시인이기도 하였던 석재 박효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바다와 하늘구름과 파도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무아지경이 된다고 했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뻐꾹산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이곳이 천하의 명당으로 좌청룡, 우백호이고, 배산임수인 곳이다.당나무는 스스로 불태워져 산림 복구를 필요하게 하여 묵은봉에서 전국으로 사방사업을 성공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불씨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더욱 신령스러운 묵은봉의 은혜를 갚고, 가난하여 살기 어려웠던 김 사장의 고향 마을 위해, 학을 위해 상처를 입었듯이 스스로 희생하였던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대의를 위해 살신성인 하였던 것이다.S시 변두리에 강 선배와 공동으로 법원에 입찰 봐서 매입한 임야가 구획정리지구에 편입 되고, 그 경계선에 잔여 토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 당시는 자연녹지이었으나, 정부의 주택난 해소책 일환으로 녹지가 풀려 택지로 편입되었다. 그 임야의 보상금으로 혜화동 지하철 인근에 있는 2층 상가를 구입하여 그 2층 일부를 김 사장이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김 사장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민간 토지구획정리조합에서 시행한 공매에 수많은 입찰자를 제치고 2필지가 낙찰되어 그 낙찰 보증서를 그 자리에서 조합장으로부터 받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얼마 후 김 사장은 혜화동 2층의 조그마한 사무실 벽에 걸린 병원 사진을 보면서 회한에 잠겼다. 이 사진은 최근 조합에서 공매로 매입한 토지에 ‘당나무 메디칼’이라는 병원의 청사진이었다. 서진국 작가 김 사장의 고향 마을 당나무가 서 있는 선돌가는 태백산맥의 큰 줄기가 뻗치다 못다 한 아쉬움이 남아 마을과 바로 이어진 넓은 바위 덩어리들이 다시 솟구쳐 있는 곳이다. 산맥의 마지막 묵은봉의 줄기가 명당 중 명당인 것이다. 태어남은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듯이 명당을 품고 태어난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인 것이다. 당나무는 용마람 태수 대장을 김 사장에게 빙의로 보내 어릴 적 약속을 지켰다.조합사무실은 열기와 흥분의 도가니였다. 당선자를 발표할 때마다 손뼉치고 기뻐하기도 하고 탈락자는 실망한 모습으로 희비가 극렬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첫번째 입찰 통에 투찰표를 뽑아 이름을 부르는데 그의 이름이 불리는 것이 김 사장은 마치 무슨 꿈이나 꾸는 것처럼 들렸다. 500명 중 첫 번째 부른 한 명의 이름이 김 사장이었다.조금 후 두 번째 넣은 입찰 통에서 투찰된 명단을 뽑았는데, 조합장이 그 많은 사람 중 호명한 이름의 낙찰자가 또다시 김 사장이었다. 뭐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신화가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그 병원 청사진은 그 명당을 이용하여 어려운 환경에 있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서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 당나무와의 약속이었던 것이다.끝

2023-03-29

꿈의 물고기를 만나다

세상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인생이 나를 배반한다. 노력의 결과는 허망한 실패이고, 뜻밖의 고난에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린다.올해 마흔이 됐는데, 내 꼴이 딱 그렇다. 한 대학교의 전임교수 공개채용에서 최종 3인까지 올라갔지만 공개강의와 면접까지 치르고서 탈락했다. 내 나름으로는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다시 기회가 있을까? 찢기고 패인 마음을 우선 달래야만 했다. 구두와 양복을 눈에서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고 낚시 장비를 챙겼다. 제주도에 열흘쯤 내려가서 아무 생각 없이 낚시만 하다 오려고.낚시에서 마음을 비우면 인생도 좀 달관하지 않을까? 하지만 넙치농어만큼은 꼭 잡고 싶었다. 6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꽤 오랜 세월 낚시를 하면서 바다와 강에 사는 온갖 물고기들을 만났다. 2019년에는 러시아 아무르강에 가서 타이멘과 파이크, 레녹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늘 마음 한켠엔 어두운 방이 있고, 그 어둠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리한 은빛 섬광이 어른거리다 사라지곤 했다. 그 매혹적인 섬광은 넙치농어의 것이다. 2017년 초, 제주 현지 전문가의 넙치농어 낚시 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저렇게 멋진 물고기가 있다니!그 당시 겨울 제주도에 가 ‘맨땅에 헤딩’을 감행했다. 넙치농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회유하는 성질이 있는데, 제주 남쪽인 서귀포 일대와 가파도, 지귀도, 마라도 등에서만 잡을 수 있다. 그 위쪽으로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어렵다는 넙치농어 낚시에 도전한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언 손이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실수로 낚싯대를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4박5일간의 넙치농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건 내가 할 낚시가 아닌가보다 하고 단념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서귀포에 넙치농어가 꽤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6년을 기다려 넙치농어에 재도전하는 날이 밝았다.몇 개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겨우 포인트에 진입했다. 거센 파도가 사방을 뒤덮는, 야성적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첫 캐스팅(낚시를 던지는 행위) 후 릴을 감으며 지형을 파악했다. 그리고 두 번째 캐스팅, 천천히 릴을 감는데 퍽! 하는 입질, 넙치농어를 걸었다.꾹꾹 처박으면서 암초를 향해 돌진해 낚싯줄을 끊으려는 질주가 굉장했다. 어느 정도 힘을 빼 거의 제압했다고 생각한 그때, 그만 놓쳐버렸다. 넙치농어의 필사적인 바늘털이에 당하고 만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경계심이 강한 넙치농어는 잡았다가 놓치게 되면 다른 개체들까지 예민해진다. 나는 또 다시 교수 채용 탈락 통보를 받았을 때의 심정이 돼 버렸다.포기할 수는 없었다. 부지런히, 아니 처절하게 두드려보기로 했다. 우측에서 좌측, 좌측에서 우측 부채꼴 모양으로 30분쯤 캐스팅을 반복했을까? 흰 포말에 덮였다가 검은 이마를 드러내는 암초 옆에서 또 한 번의 강력한 입질을 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넙치농어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챔질을 확실하게 하고 낚싯대를 옆으로 눕혔다. 수중 암초를 향한 폭발적인 질주가 몇 차례 있을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녀석이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했다. ‘오냐, 살려는 몸부림이 처절하구나.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 네 얼굴을 봐야만 내가 살겠다. 그러니 오너라!’끌려오던 녀석이 마지막으로 거칠게 저항했다. 발 앞 바위틈으로 처박는 바람에 낚싯줄이 날카로운 바위에 쓸리기 시작했다. 줄이 끊어질 것 같아 서슴없이 물로 들어가 바위 반대편에 서서 침착하게 릴을 감았다. 한 평생 같은 십 초가 지나고, 드디어 은빛 실루엣이 수면에 넘실거렸다. 빛나는 은린 갑옷을 입은, 6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 넙치농어였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8센티미터. 큰 사이즈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인생고기다. 대학 교수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대학 교수보다 넙치농어를 잡아본 사람의 수가 훨씬 적을 것이다. 누가 더 귀한가? 나는 넙치농어를 잡은 사람이다. 거친 제주바다가 내게 준 선물은 넙치농어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용기와 의지,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다.

2023-03-28

절망적인 희망

착하다는 말이 싫다. 나는 3자매 중 장녀이면서 동생들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 동생들은 늘 보살펴야 하는 존재였으며 가장 소중한 물건은 거듭 양보해야만 했다. 자연스레 나는 물건과 사람에 대한 애착을 줄였다.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친구가 생기게 되는 순간 얼마 못 가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동시에 동생들을 보살핌으로써 착한 언니, 착한 딸로 인정받는 것이 당시엔 큰 칭찬으로 여겨졌다. 타인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인정받는 사랑은 동생들뿐만 아니라 늘 타인에게 베풀어야 하는 나의 덕목이자 행동지침이 되었다.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그들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과장하여 행동했다.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지만 나쁜 길로 빠져 부모의 마음을 속 썩이는 나쁜 딸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엄마와,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착하게 커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아빠의 말을 제일 좋은 칭찬으로 여기던 때였다.나는 착하다는 말이 정말 싫지만, 사실 지금도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극도로 말을 아낀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타인의 하는 말의 처음부터 끝까지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며 행동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을 쓴다. 조금이라도 나의 허점을 보이게 된다면, 그래서 실수가 많은 허무맹랑한 사람이라고 여겨져 결국 쟤는 참 괜찮은 애야, 라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또는 감정에 대해 주도적으로 사고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을 착한아이 콤플렉스라 부른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란 늘 위축되어 있으며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원하고 느끼는 것을 지속적으로 억누른 것을 말한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나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쌓이고 결국 나조차 스스로를 인정해 주지 못하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 단절이 찾아온다. 실은 타인을 위한 진짜 호의가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그 가식적인 비좁은 마음이 드러났을 때에 내면이 위축되고 쓸쓸함만이 남아 자리한다.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닮고 싶은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닮고 싶은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만18세 나이에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가수 이상은의 ‘담다디’는 밝은 멜로디이지만 가사를 뜯어보면 그대는 나를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다. 그대가 나를 떠나려고 하는 원치 않는 상황임에도 이상은은 나를 떠나지 말라며 쾌활한 노래를 부른다. 곡에서 가장 명랑한 부분이면서 계속 반복되는 가사인 ‘담다디’엔 의미가 없다. ‘담다디’의 뜻을 정확히 모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떠나려는 커다란 상실을 열렬히 해석하여 젊은 날 이별의 슬픔을 자유롭게 노래하기 때문이다.강변가요제 당시 날씨는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많은 이들에게 쾌청한 날 속의 밝은 무대로 오래토록 기억된다. 실연의 아픔과 슬픔을 행복한 멜로디로 표현하여 신나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 흐린 곳에서의 밝고 환한 멜로디는 얼마나 닮고 싶어지는지 모른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프랑스 문학가이자 ‘슬픔이여 안녕’으로 알려진 프랑수아즈 사강은 삶은 하나의 끔찍한 농담이며, 인간이 공포에 질린 고통에 가장 좋은 해독제로 유머를 꼽은 바 있다.사강은 사람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희망이며, 삶은 공연이 끝난 희극처럼 그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유쾌한 극으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여기서 사강이 말하는 희망은 생존을 희망하라거나 고통을 극복하자는 단순한 희망이 아닌, 절망적인 희망이다.절망적인 희망이란 용납할 수 없는 타인이 있을지라도 그의 입장을 이해하여 유쾌한 농담으로 희망을 지향하는 것이다. 유쾌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엔 이유가 없으며, 때문에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동이라 말한다.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무런 대가도 보답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동일지 모른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펼치고서 이상은의 ‘담다디’를 듣는 주말 오후, 괴로움 속에서 무상의 ‘담다디’를 흥얼거려 본다.

2023-03-28

미식여행

우정구 논설위원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을 흔히 미식가(美食家)라 부른다. 이때 미의 한자가 맛을 뜻하는 미(味)가 아니고 아름답다는 의미의 미(美)를 쓰는 게 특별하게 눈에 띈다. 음식을 단순히 맛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다.언제부턴가 우리 생활주변에도 이런 미식가들이 놀랄만큼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종의 취미처럼 생활하는 이들이다. 맛있는 한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몇 시간도 기다리고, 심지어 수백㎞도 이동해 찾아 나선다.맛을 주제로 한 TV 오락물이 넘쳐나고 여행을 하는 데 있어 그 지역의 대표 맛집을 찾아보는 것은 이제 필수다. 그 지방의 아주 오래된 노포(老鋪)식당이 주목받는 것도 미식문화 확산의 영향이다.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총리가 만찬 회담을 했던 장소인 도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도 128년 된 노포식당이다.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원조식당이다.내 지방 전통문화를 이해시키는 데는 음식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방마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문화의 차이이자 특성이다.일본의 전문 미식가를 포함한 미식여행단이 경북을 찾았다. 지난 21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청도와 영천, 영덕, 울진, 청송, 경주 등 7군데를 방문, 그 지역의 특산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청도에서는 미나리와 삼겹살, 영천의 육회비빔밥, 울진에선 대게, 청송에서는 닭요리 등을 맛보고 귀국했다. 경북의 매력적인 문화와 음식이 일본에 소개될 좋은 기회였으면 한다. 잘만하면 미식여행이 경북관광의 효자가 될지도 모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8

헌법재판소가 날개 달아준 ‘입법폭주’

심충택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에 대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절차를 어긴 이 법을 무효로 해달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 11개월 만이다. 헌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적 사고를 수용한 것이다. ‘절차상 하자가 있으면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모순된다.민주당은 작년 4~5월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안건조정위에 넣어, 이 위원회를 무력화했다. 안건조정위는 국회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악용해 법안을 함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제도다.상임위에서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소속 의원 수가 가장 많은 민주당 조정위원 수와 비민주당 조정위원 수를 같게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탈당한 민 의원을 조정위원에 포함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여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회기 쪼개기’ 수법도 동원했다. 헌재는 이런 행위를 위법으로 판단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전면 차단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라고 했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이번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어떤 불법과 편법, 꼼수를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졌다. 이와관련 법원장 출신인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이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더이상 지켜지지 않아도 되고, 절차에 어떠한 위헌·위법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다수결 원칙만 지켜지면 된다. 입법절차의 위헌·위법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했다.현재 국회에는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야당이 본회의 직회부(법사위 패싱)를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주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호 법안으로 불린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모든 의사가 투사가 돼 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혀, 또 한번의 국가적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노란봉투법’도 본회의에 직회부할 계획이다. 상임위 의석수를 보면, 민주당이 직회부할 수 있는 상임위가 전체 17곳 중 6곳에 달한다.헌재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입법 폭주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민주당은 이제 국회에서 여야합의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입법 과정마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 강행 카드를 남발할 경우,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2023-03-28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요즘 일제 강제징용 배상금 처리 문제로 벌집을 쑤신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도 선진국인 일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니, 미쓰비시, 혼다, 토요타 등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던 1980년대에도 그랬다. 그 기업들이 만든 제품은 사용하면서, 정작 그 제품을 만든 기업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었고, 저변에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을 훌쩍 지난 일본,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고 과학기술 강국이다. 다른 편 이웃 중국은 어떤가. 시진핑 집권 이후 등장한 표어, 중국 굴기. 2004년 독일회사 지멘스에서 일할 때 종종 듣는 질문이 있었다. 세계시장에 등장한 화웨이라는 중국기업의 기술력과 사업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는 중국기업들이 내수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막 진출할 때였다. 나도 궁금했었다. 그러나 궁금함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풀렸다. 화웨이는 무섭게 성장하여 이미 세계 최고를 다투고 있었다. 중국은 그 이후로도 괄목할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이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경제 강국이다.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대륙 세력과 일본의 해양 세력 사이에 놓여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2022년 발표된 국내총생산(GDP) 자료에 의하면, 미국 25.03조 달러, 중국 18.32조 달러, 일본 4.30조 달러. 우리나라는 1.73조 달러 13위 수준이다. 국가경제력이 국가경쟁력의 매우 중요한 지표라는 점에서 볼 때,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잡지 못했고 중국은 진작 우리를 추월했다.중국은 14억의 인구 대국이다. 그렇기에 개인 소득은 낮지만, 국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은 우리나라의 10배 이상이다. 2023년 중국의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7.2% 증액한 293조 원으로, 우리나라 57.1조 원의 5배 이상이다. 올해 일본의 국방 예산 규모도 한국보다 많다. 냉정히 볼 때 국가가 전략적으로 동원 가능한 경제력 면에 있어서, 한중일 삼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떨어진다.우리 이웃들은 세계적 경제 강국이고 기술 강국이다. 중국과 일본, 더이상 무시하거나 도외시할 수 없는 이웃이다. 세계정세는 우리에게 중국과 일본, 다시 말해 중국과 미국 중 어디에 더 긴밀하게 연결될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선택은 한반도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미 19세기 말 시작되었고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이어질 듯하다.중일 양국과 규모로 경쟁해서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우리는 내용으로 내실로 뛰어나야 한다. 우리는 이미 몇몇 분야에 세계 최고를 경험했다. 초격차, 이제 우리의 세계 최고는 더 깊이 있고 더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어느 한 편으로 떠밀려 속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균형의 중심에 설 수 있다. 2023년의 한중일 삼국지, 우리에겐 생존하고 번영할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2023-03-28

영웅을 기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벌써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면서 3월이 저물어 가고 있다. 새봄과 함께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하게 되는 3월은 언제나 설레고 희망차다.지천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의 자태에 마음이 쏠리기도 하지만, 유난히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되는 3월이기도 하다. 삼일절을 비롯 3·8민주의거, 3·15민주의거기념일, 서해수호의 날 등과 함께 필자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인 3월 26일을 짐짓 기억하며 경건한 마음을 되뇌어본다.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은 올해 3월에 본 영화 ‘영웅’은 벅찬 감동과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 준비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를 담은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촬영 이후 거의 3년만인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로 뮤지컬로도 동시 개막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나라를 위해 싸웠다면 과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영웅일까? 냉혹하고 암울한 시대에 단지동맹(斷指同盟)까지 하며 혈서를 쓰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의 유지에 힘쓰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 숨막힐 듯 긴장되고 급박한 상황을 드라마틱한 연기와 완급의 뮤지컬로 풀어내며 박진감과 호소력을 더한 보기 드문 걸작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 부분의 연출과 각색을 곁들였지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의 숨겨진 이야기가 원작 뮤지컬 영화 출연진의 열연과 음악, 노랫말의 힘으로 되살아나,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과 뮤지컬의 깊은 울림으로 절절한 감동과 자긍심을 선사했던 것 같다.오로지 구국의 일념,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으로 군인의 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다한 안중근 의사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풀고 바로잡아야 할 과제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순국 직후 일제가 자행한 안 의사 주검의 비밀스러운 은닉으로 현재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해 안 의사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된 조국의 품에 잠들지 못하고 있으며, 여순 옥중에서 집필하다가 만 미완성의 동양평화론 원본이나 이등박문의 저격장면을 담은 원본필름 등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해도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사형집행이 예정된 날에도 담담하게 휘호를 하며 안중근 의사를 경외한 일본 간수에게까지 유묵을 전하는 등 현재 70여 점 남아 있는 묵적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와 의미부여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빈에서 총성을 울린 지 딱 다섯달만에 평화와 독립을 부르짖으며 가장 치열하게 빛나는 서른 한 살의 생을 마감했다. 생명을 바쳐 독립운동을 실천한 애국자요 한국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자 살신성인의 애국선열을 길이 기리며 기억해야 하리라.

2023-03-28

계절근로자

홍석봉 대구지사장 영농철이 다가왔다. 청년들이 씨가 마른 농촌에는 영농 인력 구인난이 심각하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확보에 목을 맨다. 이들이 없다면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무단이탈,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농촌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필수적인 존재다.경북 의성군은 지난 23일 입국한 필리핀 시닐로안시 계절근로자 26명을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투입했다. 의성군은 농가주와 계절근로자 대상 근로조건, 인권 침해 방지 등 안전과 범죄예방교육을 했다. 김천시는 캄보디아 51명, 라오스 49명 등 100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오는 4월부터 지역 농가에 투입한다. 농업기술센터는 김천의료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마약검사 비용을 지원한다.정부는 올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2만4천418명을 배정했다. 지난해 1만536명에 비해 132% 증가한 규모다. 체류기간도 현행 5개월에서 10개월로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농어가에는 산재보험료 부담도 줄여준다. 하지만 무단이탈은 ‘혹’이다. 체류기간이 끝나고 잠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당국이 단속인력 부족과 계절근로제 위축을 우려, 적극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지자체마다 주거 및 의료혜택 지원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생활편의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언어 소통 도우미를 배치해 사회적응도 돕는다.외국인 근로자 말고 대안은 없을까. 대구 남구와 고령군이 내놓은 노인일자리 부족과 농촌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도-농 상생을 위한 노인 일자리 창출’이 눈에 띈다. 도시 노인의 잉여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계절근로자와 도시 노인이 농가에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7

봄이 정치인에게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의 암흑기에 시인 고영민은 ‘봄의 정치’라는 시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봄의 희망으로 국민의 분노를 위로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과 희생은 민주화시대를 열었지만, 권력정치의 퇴행은 또 다시 주권자의 봄을 빼앗아가고 있다.봄은 왔건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춥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소명을 망각한 권력은 봄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 봄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오관(五官)으로 봄을 접촉하지만 감각기관의 뿌리에 있는 마음으로 꿰뚫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이 봄으로부터 배워야 할 그 첫째는 ‘유능제강(柔能制剛)’, 즉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봄은 폭염의 여름, 혹한의 겨울과는 달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계절이다. 봄은 권력에게 ‘온화하고 따뜻한 정치’를 하라고 말한다. 팬덤(fandom)에 의존하는 강성정치는 상대의 적대심만 불러올 뿐이다. 합리성을 상실한 극단의 정치로서는 온건한 합리정치를 결코 이길 수 없다.정치인들의 강성 발언은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한다. 타협을 거부하는 독선은 반민주적 태도다. 정치인의 사고가 합리적이고 유연할 때 비로소 정쟁은 사라지고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 유연한 정치는 자신을 낮출 때 가능하다. 겸손은 자기성찰을 통한 능력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나온다.둘째, ‘인고(忍苦)’의 가르침이다. 봄꽃들의 곱고 여린 모습의 뒤에는 모진 겨울을 견뎌낸 인고의 시간이 숨어있다.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는 혹한의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을 낼 수 있다. 새 봄을 열기 위해 애쓴 꽃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한국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야 정치인들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정치는 독재정치와 달리 정치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결과(result)보다 과정(process)’을 중시한다.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대화와 타협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숙성된 장이 맛있듯이 우리의 정치도 숙성되어야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마지막으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가르침이다. 활짝 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것처럼, 천하를 호령하던 제왕적 권력도 한 때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이다.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봄에도 멀지 않아 가을이 찾아오고 혹독한 겨울이 오면 끝난다. 정도(正道)정치는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때 가능하다. 게다가 권력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이니 목에 힘주지 말고 늘 겸손해야 마땅하다.봄은 사계(四季)를 시작하는 계절이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도 봄이다. 이제 여야 정치인들은 ‘전쟁 같은 정치’를 멈추고, 봄의 가르침에 따라 유연한 정치, 겸손한 정치, 그리고 대화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202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