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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인제’를 만들 건가

등록일 2023-12-17 20:10 게재일 2023-12-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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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얘기가 계속 나온다. 집권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분당(分黨)과 신당(新黨)이 유행병처럼 퍼진다. 넉 달도 안 남은 국회의원 선거가 실감 난다. 선거를 앞두고는 정해진 순서처럼 신당 바람이 분다. 정당이 공천할 자리가 한정돼 있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떳다방’처럼 창당 바람이 분다.

요즘 신당은 그보다 심각하다. 공천장을 받기 위한 대안 정당 정도가 아니다. 내부 갈등으로 양대 정당을 쪼개려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했지만, 선거판이 그렇다. 득표 비율로 의석을 나누는 정당 비례투표나, 연동형 선거라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대 정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다.

피부에 확 와닿는 사례가 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출마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다. 이 전 지사는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그는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김대중 후보가 40.27%를 얻어 38.74%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이인제 후보는 19.20%, 492만여 표를 얻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이인제 전 지사가 경선에 승복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 표를 가져갔다.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들 김영삼·김대중, 양 김 씨가 단일화했으면 정권 교체했다고 믿는다. 또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를 0.73%(24만7천77 표) 차이로 눌렀다. 이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0.83%)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회의원 선거는 더 하다. 특히 수도권은 1천표 이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쪼개나가면 당선은 안 돼도, 떨어지게는 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도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 창당, 진짜로 할 거냐’라고 묻자, “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방향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을 1인 체제로 굳혔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이낙연 전 대표의 기반을 깡그리 없애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쪽 사람은 총선에서 공천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죽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당이 몰아낸다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도 탈당은 주저하고 있다. 탈당하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일부 호남 의원들이 새천년민주당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사라졌다.

호남 유권자들은 영남과 다르다. 전략적 투표에 익숙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이듬해 19대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를 더 밀어 당선시켰다. 2022년 대통령선거 때도 막판까지 안철수 후보에 미련을 가졌지만 결국 이재명 후보로 몰아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줄곧 영남 출신 후보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영남 정치인을 ‘호남 후보’로 만들었다.

영남 유권자들은 직선적이다. 인구가 더 많다. 선거구도 더 많다. 그러나 아주 적은 표 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은 다르다. 대체로 보수정당이 열세다. 그런데 여기에 전체 의석의 절반이 걸려 있다. 자기 지역에서처럼 기분대로 하려면 정권을 넘겨야 한다. 집권하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처럼 전략투표까지는 아니라도 세력을 넓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비주류, 중도 세력을 끌어안는 건 기본이다.

이준석 전 대표도 연말에는 신당을 만들 듯이 바람을 잡고 있다. ‘싸가지없다’고 진저리치는 사람이 많다. 대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집권당의 업보다. 선거가 코앞이다. 거저먹을 순 없다. 또다시 ‘이인제’를 보지 않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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