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정확한 방향 설정과 과감한 실행만이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정책을 펴고 돈을 퍼부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부어도 출생률은 점점 더 줄어들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한다.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출생률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이러한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낮은 출생률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각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었다. 프랑스는 GDP 5%에 이르는 가족수당과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볼리비아는 12개월, 에스토니아는 85주의 100% 유급 휴가를 준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0세의 아이를 둔 가정에는 매달 70만 원의 현금을, 1세가 되면 35만 원을 준다. 프랑스는 획기적인 정책의 성공으로 감소하던 출산율을 되돌린 성공적인 사례이다.저출산 문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정책의 과다로 더욱 치솟은 아파트 가격, 여성의 경력 단절과 보육 시설의 부족, 사교육비의 지속적인 증가와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회로 진출하지 못한 청년은 움츠러들고 취업 후에도 높은 집값에 절망한다.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청년이 결혼하여 살아갈 주거문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출산과 육아를 위한 환경의 미비,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경력 단절, 낳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이 득실거리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아파트값, 상대적인 빈곤만을 느끼게 하는 사교육비, 마음 편하게 낼 수 없는 육아 휴직, 이에 따라 가까스로 얻은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 언제나 비정규직을 헤매는 청춘들은 혼자 살기도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누구나 원하는 평범한 일상은 꿈으로만 머문다.아파트 분양 원가를 낮추어 거품으로 가득한 아파트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 임대 주택을 늘리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여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장기적으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산업체가 일하기 좋은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는 유인책을 마련하고 산업체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의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정책을 쏟아내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 관련 문제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흩어진 저출산 관련 정책을 모아 모든 부서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는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된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국가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주저앉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방향의 설정과 과감한 실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프랑스가 해결한 문제를 우리가 못 할 것은 없지 않은가. 가정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2023-03-13

경산 갓바위, 그 후덕하고 영험함

팔공산 관봉에는 머리에 보개(寶蓋)를 쓴 불상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산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 사이로 크고 웅장한 몸체가 앉아있는데, 얼굴은 무뚝뚝하지만 손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그린다.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로 만든 보개를 이고 있어 마치 갓을 쓴 것만 같다. 과거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부서져 내린 보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흔히 ‘팔공산 갓바위’라 불린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투박한 생김새에 비해 여느 불상보다 마음만은 후덕하다. 절실하게 빌면 한 가지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고 전해져 옛날부터 사람들이 곧 잘 찾아오곤 했다.농사가 중심이었던 농경사회에서는 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 왔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1960년대 이후에는 수능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지금도 부처님 오시는 날이나 입시철이 되면 산 아래까지 사람들로 북적여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너무 쉽게 소원을 이뤄주시면 신도들이 버릇 없어진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니 얼마나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쯤 몸체가 만들어지고 고려쯤에 팔각형의 보개를 따로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 미륵불인지 약사여래불인지 아미타불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유행하고 많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합을 지니지 않았으니 약사여래불로 보기는 힘들다.또 1821년 ‘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에서는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조성했다고 하며, 1960년까지만 해도 ‘갓바위 미륵님’·‘영험한 미륵님’으로 불렸다고 한다.하지만 항마촉지인과 불리던 이름만으로는 미륵불이라고 확정하기도 힘들다. 학자들은 통일신라 때 아미타불로 만들어졌다가 고려 때 미륵불로 불리다가 현재는 약사여래불로 개칭된 것이라 설명한다. 어떤 불상이 되었든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덕한 불상이란 이미지는 확실한 것 같다.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공산 갓바위는 불에 구워져도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있다.지금은 뽀얀 화강암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인근 주민들에게 새까맣게 타버린 불상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것은 경산의 진취적·역사적 성격이 가미된 독특한 기우제에서 비롯된다.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고 일주일이 지나도 효험이 없으면 불단에다 생돼지 피를 바르고, 인근의 솔가지·장작 등을 불상 주변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5m나 되는 석가여래좌상을 검게 태우는 큰불은 머리 위의 보개, 팔각의 판석을 부스러트렸다. 사람들은 용신이 부처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비를 내린다고 굳게 믿어왔었다. 비를 내리게 하려고 불상에 불을 놓는 이러한 호전적인 성격은 경산의 역사와 설화에서도 그 면면을 찾아볼 수 있다.경산에는 특히 용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계모의 구박을 받아 집을 떠나게 되고 금강산이 아닌 경산의 용성면 배남산에 터를 잡는다. 이곳에서 10명의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9명을 승천시키고 1명은 죽는다. 딸은 동해 용궁으로 돌아가고, 아홉용은 봄에 승천하고 가을에 하강하여 지역의 물을 다스린다.’ 김종국 박사는 당시 경산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비교 연구하면서,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은 경산에 파견나온 김유신 군수로, 계모의 구박은 백성의 요구로, 경산의 용성면은 신라의 최전방으로, 10명 중 9명은 살고 1명은 죽은 것은 전쟁 중에 전부 살 수는 없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본래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도 용은 부처를 수호하는 존재였으며, 중국에 전파되면서는 중국 전통 용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수용되었다.물이 많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믿어왔던 전통적인 용 신앙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더욱 영험함을 획득하게 되고 농사와 관련된 비를 다스리는 신으로서 추앙받게 된다. 팔공산 갓바위 기우제는 하늘과 부처와 용신 모두에게 기원하는 경산의 독특한 제라 볼 수 있다.현재 큰불을 놓던 지역만의 기우제는 사라져 팔공산 갓바위 불상이 검게 물들 일은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로 북적이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도 여념이 없는 불상은 산 정상에서 무뚝뚝함을 가장한 채 앉아있다.이만하면 여느 불상 중에서도 으뜸가는 영험함과 후덕함을 지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는 지금도 사람들의 소원으로 넘쳐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3-13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작가의 눈

원고지에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형상화한 해당 단행본의 표지. 우리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 앞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눈은 인간이 향하는 앞의 길만을 보도록 제약한다. 우리 인간은 어딘가 거리를 걷고 있으면서 동시에 걷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없는 숙명적 제약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가 속해 있는 시대나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애초에 역사나 통계처럼, 내가 속해 흘러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가늠하거나,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불투명한 군집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발달해왔던 것은 ‘자기’를 벗어난 외부 세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물론,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내 속처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가늠하고 짐작할 방법들은 존재한다. 인간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거나, 누군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 담긴 각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다 보면 우리는 ‘자기’를 벗어나 어떤 타인들의 집합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외로움도 조금은 해소된다. 과거의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통해 받았던 인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비록 SNS시대에 작가의 그런 역할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기를 둘러싼 사회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자리는 다소 변형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벗어난 타인의 집합으로서의 사회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작가 박태원이 탄생시킨 ‘구보씨’는 고작해야 대학노트를 끼고 식민지 시대 경성을 활보하는 작가의 페르소나였지만, 그것이 이후 최인훈, 주인석 등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작가’라는 존재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은, 구보씨가 전하는 별것 아닌 세상이 모두 외로운 섬처럼 놓인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응당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그 섬들로 편지를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별것 아닌 메시지라고 하더라도.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해볼 작가는 바로 빙허 현진건이다. 대구 계산동에서 태어난 빙허는 그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일본에 유학했다가 돌아와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비록 ‘운수 좋은 날’의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식민지 초기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눈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관찰했던 작가였다. 그가 처음 썼던 ‘희생화’라는 짧은 단편은 비록 당시 문단의 중진이었던 황석우에게 혹평을 받긴 했지만, 근대적인 연애에 눈뜬 누님을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적 습속을 예리하게 잡아낸 작품이었다. 이어 계속 발표했던 ‘술 권하는 사회’나 ‘타락자’ 등과 같은 작품도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편이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눈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사례였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현진건이 보여주는 사회의 ‘단편’들은 우리에게는 100년이 지난 옛 사회의 모습이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 지금의 사회에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모순,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뜸과 허위의식 등이 새겨지듯 들어온다. 가끔 스마트폰 속 ‘사회’로부터 ‘자기’가 조금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땐 사회에 대한 작가의 눈이 담긴 소설을 권한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3-13

초저출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세계 최악의 출산율 0.78명, 이것은 청년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증한다. 취업·결혼·출산·육아는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16년간(2005∼2021) 280조를 투입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돌팔이 의사가 중환자의 병을 진단·치료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은 당사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취업난과 무주택 상황에서 결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결혼을 해도 출산과 양육에는 엄청난 돈·시간·희생이 요구된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어렵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돈 몇 푼 주고 아이 낳으라’고 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청년세대의 가치관도 변했다. MZ세대는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결혼과 출산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가족주의·가부장주의와는 달리 개인주의·양성평등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자녀가 노후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내생(來生)보다 현생(現生)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이제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 있는 중·장기정책으로 삶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이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그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이를 위해 정부는 ‘매우 어렵고 힘든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들의 취업·주거·육아·교육 등 생애 전반에 대한 정부의 법적·제도적 책임이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의 극복은 ‘허울뿐인 위원회’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명무실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정부의 공식 부처로 승격하는 동시에 행·재정적 권한을 부여하고 범정부적 협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지만 인구집중에 따른 과잉경쟁과 주거불안으로 고통은 가중된다. 전국 최저의 출산율 0.59명은 서울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말해준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발언권을 강화시킴으로써 점점 더 집중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허울뿐인 위원회’로서는 국가균형발전도 어렵고 저출산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양성평등문화의 정착도 시급하다. 출산과 육아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며, 현대여성들은 ‘독박 육아, 독박 가사’를 단호히 거부한다. 양성평등의식이 절실함은 물론,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일·가정 양립을 성공시킨 영국·프랑스·스웨덴의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성세대의 낡은 의식이나 정치권의 권력 논리를 버리고 청년세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3-03-13

가창면의 선택은

홍석봉 대구지사장 가창면은 면적이 111.33㎢로 달성군의 읍, 면 중 가장 넓다. 동쪽은 경북 경산시, 서쪽은 달성군 화원·논공·옥포읍, 남쪽은 청도군 각북면 및 이서면과, 북쪽은 수성구 파동과 접해 있다.지도상으로는 달성군의 다른 읍, 면과 붙어 있지만 중간에 비슬산(1천84m)과 최정산(915m) 등 큰 산이 가로막아 달성군 내에서 섬처럼 돼 있다.하지만 가창면은 달성군내에서 대구시청, 동대구역 등 대구 중심과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는 등 교통 환경이 최고다.가창면은 신천을 끼고 수성구 파동과 붙어 있다. 7천600명의 주민들은 수성구가 생활권이다. 전화도 국 번호가 같고 우편도 수성우체국 관할이다. 학군도 대구 중·동·북·수성구와 함께 1학군에 편성돼 있다. 1957년 달성군에서 대구시로 편입돼 동 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3년 달성군으로 환원돼 현재에 이른다.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은 선거 때 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 편입 공방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했다.가창면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성구 편입 추진 의사를 밝히며 가장 핫한 곳이 됐다. 불합리한 행정구역 조정의 일환이다. 대구시와 달성군이 합의만 하면 된다. 행안부 승인과 대구시의회 의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창면 주민들의 의견이다. 찬성 의견이 높지만 반대도 적잖다. 정부의 농촌지역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부동산 투기규제가 가장 심한 수성구에 편입, 토지거래 제한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행정구역 조정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조속히 결정 짓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13

다섯 명의 죽음, 피하기만 할 건가

김진국 고문 “앞이 깜깜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2009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아 수사받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기록해놨다.그는 곧바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희 집(권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의혹 제기 차원을 넘어 실제 수사가 시작된 만큼 이제 사실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그 뒤에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 수사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어, 자기 부하와 진보 진영을 살리려 했다.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실인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지 한 달째였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총재에게 노태우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을 수사한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김총재는 몹시 당황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실을 시인하기로 결심했다. 공식회견을 통해 20억 원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결국 그는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길은 전혀 다르다. 그의 혐의에 연루된 사람 다섯 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지난 9일에도 이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형수씨(64)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뒤로 물러나 있어 그렇다”라며 “그분도 책임질 건 책임져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모두 떠안았지만, 이 대표는 혼자 빠져나간다.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 시장일 때부터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의 혐의는 이 대표의 지시를 이행한 게 전부다. 그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 네이버 관계자들로부터 성남FC 후원금 40억 원을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에 관여했고, 경기도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 시절에는 이 대표 바로 옆집을 위장 합숙소로 임차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가 받는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 주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이 대표는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위직이라 몰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동규 씨는 자신에게 모두 떠넘긴다는 배신감에 이 대표와 결별을 선언했다. 적어도 극단 선택을 한측근들은 이 대표의 혐의를 없는 사실이라고 방어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하 직원의 잘못까지 떠안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혐의를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도리다.이 문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불거졌다. 지난달 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도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더 많았다. 기권 9표와 무효 11표도 찬성에 가까운 의사 표시라고 봐야 한다.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69명이고, 무소속 의원 7명도 모두 민주당 색이다. 이 대표의 결백을 민주당 의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방법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전형수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게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고한다. 또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는 법적으로 유죄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다. O.J. 심슨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대통령이 되려던 사람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12

여야의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정당은 민주 정치의 다원주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이념이나 색깔이 다른 정당은 찾아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정당은 비슷한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여서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한다. 정당은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여 정강정책을 만들고 정권 쟁취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여기에서 당내 민주주의 혹은 정당민주주의는 당원들의 집단지혜를 모으는 핵심적이고 주요한 수단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보장 없이는 정당의 정책 개발의 역동성은 보장할 수 없다.지난 대선 이후 우리나라 여야는 모두 당 운영에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가 추락된 구도 하에서 정상적인 정책정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 민주적 의사 결정 구도도 갖추지 못하고 어찌 정당간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지난주 새 당대표를 선출한 집권 여당의 사정부터 알아보자.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징계 사태 이후 당 운영 방식은 점차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윤핵관이나 윤심이 지배했던 비대위 하의 집권여당은 여러 행태의 파행을 겪었다. 이번 당 대표 선출과정은 윤심의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비윤 진영의 유력한 경쟁자 유승민은 당헌 개정으로 선거 초반 출마를 포기했다. 당내 여론 1위였던 나경원도 윤심의 직격탄을 맞아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 3월 8일 당대표 경선 결과는 윤심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기현 당 대표가 당선되고 당 최고 위원도 완전 친윤 일색으로 선출됐다.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의혹 사건까지 불거져 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상명하복의 관계가 성립된다면 국정은 그 부메랑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내의 비주류인 이준석과 안철수가 배제된 구도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다.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역시 당내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당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진보와 개방을 표방하던 민주당은 대선 패배와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와 방탄 국회가 민주당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 대책회의는 이재명의 체포 동의안을 ‘일치단결하여 막자’고 했으나 그 결과는 의원 상당수가 이탈해 당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민주당 의원 169명 중 138명만이 부결에 동의하고 최소 31표에서 최고 38표까지 동의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당권파들은 조직적인 반대 세력 색출, 수박 찾기, 이낙연 영구 제명론 등 듣기에도 민망한 대책을 제기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그 대응책은 당내의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당론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당내의 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비극에 빠져들고 있다.이처럼 윤심 지배의 여당과 친명 지배의 야당은 공통적으로 정당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의사에 의존한 독점적인 정당 운영은 현대 민주주의 정당제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의 퇴행적인 당 운영일 뿐이다. 위로부터 명령하달 식 정당 운영 방식은 당원들의 의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할 수 없다.여야 모두 100만 당원 시대를 맞고 있는데 당 운영은 과거의 보스 중심의 운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가 단상을 점령하고 물리적으로 대결하던 정당 대결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이러한 당 운영방식은 팬덤정치를 강화시키고 내부의 갈증만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 전야 여야는 공히 분당의 위기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런 퇴행적 당 운영 방식 하에서는 정당간의 협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의 힘에서 ‘국민’이 도외시 되고, 민주당에서 ‘민주’가 배제되면 이 나라의 정당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여야 공히 정당 민주의의 본질인 당내 민주주의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정당 개혁 없는 정치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야 공히 당내의 비주류 의견도 반드시 민주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보스 중심으로 재편된 당의 당내의 곪아 터지는 갈등은 분당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 대중 정당의 구조 내에서 온건부터 과격에 이르는 다양한 당내 스펙트럼은 공존돼야 한다. 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탑 다운이 아닌 바텀 업 방식이 되어야 당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 우리 정당도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를 탈피하려면 먼저 정당의 민주적 운영 방식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도 독일처럼 정당의 재단이나 펀드를 마련해 재정적인 자립 정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천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책 개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출발과 종착점은 정당 민주주의의 안착이다.

2023-03-12

건강과 운동에 유익한 호흡법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우리 몸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흡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호흡방식도 사람의 몸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운동할 때 호흡은 에너지 공급과 근육 재생, 지방분해 및 피로회복 등에 효율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적절한 호흡법이 병행돼야 운동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일반적으로 호흡법에는 흉식과 복식이 있다. 성인의 경우 대부분이 복식보다는 흉식호흡을 하는 편이다. 흉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고, 쇄골부위는 움푹 들어가면서 어깨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복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배가 외형상 부풀다가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고, 폐 밑에 횡격막을 아래로 밀어내 상복부만 부풀어 오르는 호흡법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고 여러 연구에서 좋다고 알려진 호흡법은 복식호흡이다. 복식호흡의 장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게 해 몸 곳곳에 산소가 잘 가게하고, 신체를 이완시켜 고혈압 감소, 체지방 감소, 스트레스 완화,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적이다.그런데 최근 10년간의 연구를 관찰할 경우 운동을 할 때에는 복압호흡(IAP)이 더 효과적이다는 결과가 많다. 복식호흡과 복압호흡의 차이는 호흡을 내뱉을 때 배를 부풀리는가 마는가에 있다. 복식호흡은 횡격막을 사용하여 호흡을 지속하는 방법으로 코어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한편 복압호흡은 복강의 압력을 높여 코어 근육과 주변 근육을 강하게 조여 척추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용이한 호흡법이다 할 수 있다.게다가 복압호흡은 복식호흡에 비해 몸의 전반적인 강도와 안정성을 높여주는 호흡법이기에 피로회복과 고강도의 운동에서 몸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소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장점이다. 그러므로 복압호흡은 허리가 아프거나 매일 반복적인 훈련으로 피로가 쌓인 운동선수들에게 큰 효과를 보는 호흡법이다.물론 복식호흡도 흉식호흡에 비해 좋은 호흡법이다. 운동 시 복식호흡을 권장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으면 흉식호흡으로 가벼운 호흡만을 하기에, 우선 복식호흡으로 횡격막을 최대한 활용해 호흡하고 복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스포츠의과학자들은 복식호흡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복압호흡을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복식호흡 운동 후 복압호흡을 권장한다.이같이 운동할 때 제대로 폐의 전체 용적을 사용하고 몸자세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적절한 호흡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호흡방식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근력 운동 중에는 닫힌 입과 코에 공기를 밀어 넣는 강제 호흡과 힘을 내는 순간 숨을 참는 것 모두를 피해야 한다. 근육이 수축할 때 숨을 내쉬고 이완할 때 숨을 들이쉰다. 예를 들어 아령이나 바벨 운동 중에는 들어 올릴 때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숨을 내뱉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들이마셔야 한다. 이러한 패턴은 호흡과 움직임의 리듬을 만들어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하고, 원활한 혈액순환을 도와 몸 곳곳에 효율적으로 영양과 산소를 전달하여 손상된 근육세포 회복이 빨라져 근육 재생에도 도움을 준다.달리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의 경우 최대 산소 섭취가 필요하므로 중강도 운동에서 두 걸음 동안 숨을 들이쉬고 두 걸음 동안 숨을 내쉬는 방법이 권장된다. 이 같은 호흡 패턴은 깊고 고른 호흡이 가능하며, 옆구리통증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빠른 동작으로 힘을 내는 투기종목에서도 호흡을 내쉬는 것이 효과적이다. 힘을 내기 위해 근육이 긴장하고 수축할 때 숨을 내쉬면 부상 방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미세먼지의 잦은 발생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 및 장기화 등으로 인한 폐 기능 저하가 문제시되고 있다. 코로 숨 쉬는 들숨근 강화 운동은 심장과 폐의 능력 및 지구력의 증가와 기능적인 일상생활 활동으로 삶의 질 향상에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요즘과 같이 날씨가 쌀쌀할 때는 코로 숨 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차가운 공기는 기관지를 수축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입으로 숨을 쉬면 더 많은 세균이 목으로 들어가고 점막이 건조해진다. 잠자는 동안 입을 벌리고 호흡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코골이의 위험이 증가하고 산소 공급이 불규칙해지며 타액이 치아를 씻을 수 없어 충치의 위험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특히나 지속적인 고강도 운동 중에는 산소요구량을 충당하기 위해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독일체육대학교(DSHS) 스포츠의학연구소는 코로 흡입하는 산소량이 적을수록 운동능력도 떨어지므로 평소에 코로 숨 쉬는 호흡훈련을 권장한다.사람마다 호흡법은 제각각이다.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나 호흡하는 게 아니라,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적절한 호흡법으로 호흡을 해야 건강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 효과도 더 좋다.

2023-03-12

문화가 함께 숨 쉴때 진정한 발전 도시

조현일 경산시장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도시적인 개발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대부분이 문화행사와 축제, 유적과 스토리텔링으로 지역문화 알리기에 나서고 문화회관을 건설하거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경산은 고대국가 압독국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1천700여 기의 달하는 무덤과 2만8천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금동관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되는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에도 경산은 현대에 와서 대구광역시에 귀속된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경상북도에 속하였던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며 경산지역의 일부 지역이 편입되고 대구시의 발전에 가려 경산이라는 지역명이 빛을 잃었다. 불교의 4대 기도 도량의 중의 하나인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분명히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갓바위로 681-55)에 위하고 있어도 국민 대부분이 팔공산을 대구시의 명소로 기억하고 있다.한때 유명했던 대구 사과도 정확히는 경산 사과였다. 경산지역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 10만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문화 욕구를 해결한 곳은 대구시였다.경산시민회관 대강당을 이용하는 문화행사가 열렸지만, 오페라나 뮤지컬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영남대가 개관한 천마아트센터도 젊은 층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지역문화를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지역문화 행사나 축제도 관광객 유치에도 실패해 ‘경산’이라는 도시는 대구와 경북을 벗어나서는 ‘대구광역시 인근 도시’라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하지만, 이제 경산은 문화가 살아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도시로 발전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다.먼저 문화적인 욕구를 해결할 문화예술회관의 건립이다. 전액 민자로 상방근린공원 내에 2026년(예정)까지 조성될 문화예술회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총넓이 9천400여㎡의 건축물로 가변무대인 978석의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어떤 무대든 소화할 수 있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게 된다.또 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압독국을 조명할 수 있는 임당유적전시관은 체험과 볼거리를 넘어 지역 알림이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임당유적전시관은 2025년 준공돼 압독국의 문화유산 자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전시·관리하며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압독국은 고대국가임에도 지배계급이 금동관과 은제 허리띠, 말갖춤 등을 사용한 유력 국가였으며 출토된 유물과 인골, 동물 뼈와 생선 뼈 등을 통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임당유적에서 발굴돼 보존된 250여 개의 인골자료는 임당유적전시관의 가장 특화된 분야로 고분의 주인공과 순장자를 상상이 아닌 DNA 분석으로 성별을 구별하고 매장 당시의 나이를 추정해 복원한 인물을 통해 얼굴 생김새와 피부, 모발상태, 치아 상태, 질병의 유무도 밝힌 성과가 전시될 것이다.지역의 축제도 분석하고 때가 되면 행해지는 문화행사와 지역축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경쟁력 있는 축제로 거듭나고자 용역을 추진하고 축제 콘텐츠 개발과 성공전략을 수립해 지역문화 알림이 역할을 담당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식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문화행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경산시 문화관광 재단도 설립할 것이다.경산자인단오제의 경우 개·폐회식은 전통의 의미를 살리려고 계정 숲 일원에서 거행하겠지만 하나인 볼거리인 호장군행렬은 경산 시가지에서 시연해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할 생각이다. 특히 지역(하양) 출신으로 한국의 첫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박남옥(1923~2017) 감독이 혹독한 시대 속에서도 보여준 여성의 주체성을 살린 시대정신과 21세기를 주도한 영상 등을 조명하고 지역 콘텐츠와 스토리 발굴로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로컬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이 가진 문화유산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경산이 진정한 발전한 도시임을 보여 줄 것이다.

2023-03-12

파락호 숨은 뜻은

고택의 문턱이 낮아 선뜻 들어서는 걸음이 가볍다. 어디론가 가려는 듯 어머니와 아들 형상의 모자석이 길손을 맞는다. 그뿐인가.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앉은 천운석, 마당에 떡하니 앉아 복을 부르는 복두꺼비,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바위, 학봉선생구택(鶴峯先生舊宅)에는 형상들이 주인이다.참봉 김용환 선생은 희대의 기인이었다. 안동의 양반 부호들에게 은밀하게 자금을 받고 강제로 모금도 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던 땅 13만 평을 팔아 보태고 300년을 내려오던 학봉종가를 팔았다. 그러면 문중에서 다시 사들이고 팔기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이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 일제는 요시찰 인물로 지정하고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런 참봉이 별시(別市)가 열리면 어김없이 노름판에 나타났다. 노름판에는 전국의 한량과 노름꾼들이 모여들었다. 새벽녘까지 판돈이 부풀면 참봉은 엉뚱한 행동을 벌였다. 화가 난 듯 첫닭이 운 뒤의 갑오(9끗)만도 못하다며 판돈을 몽땅 머흐럽게 생긴 상대에게 침 한 번 뱉고 줘 버렸다. 또 새벽 몽둥이야! 라고 소리치면 누군가 달려들어 몽둥이를 휘두르며 판돈을 빼앗아 가 버렸다.참봉은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일부러 노름판에서 낯선 한량이나 투전판에서 거금을 날렸다는 소문을 냈다. 명분을 만든 셈이다. 여름에도 참봉의 사랑방에는 화롯불이 꺼지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지원한 자금을 적바림한 종이 쪼가리,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히 태워 없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노름꾼, 파락호(破落戶)라 불렀다. 김 참봉은 스스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되었다. 세간의 불명예스러웠던 온갖 소문들을 뒤로한 그는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 피를 나눈 동지가 아들에게는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을 때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의로운 일은 숨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수치스러움을 감당하고 독립을 위해서는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퍼주었던 참봉, 나라 사랑하는 일에 한 사람의 선 굵은 행동으로 우리는 백 년이 지나 그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한다.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朱木)이 고택 곳곳에 있다. 별다른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관심을 받은 나무가 주목이다. 선생도 살아서는 노름꾼, 한량, 파락호로 기억되다 지금에서야 사철 푸른 성품이 알려졌다. 선생은 살아 백 년도 못 살았지만, 그 정신은 죽어 만 년이 갈 것 같다.내 아버지도 별시가 열리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돈을 따기 위해 눈동자가 번뜩이는 날이었다. 노름꾼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났다. 종지 안에 윷을 넣고 아버지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는 종지를 흔들며 멍석 가운데로 던졌다. 아버지는 놀이로 가산은 탕진했고, 꾼들에게는 만만한 허릅숭이였다. 이순혜 수필가 오일장, 대폿집 모퉁이에 노름판이 생겼다. 화투 몇 장을 손가락에 끼우고 콧김을 불어 기를 모았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는 눈치 싸움에 배포를 부려보지 못하고 화투장을 일찍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다 털리면 개평 몇 푼 얻어 독주를 마셨다. 아버지가 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김 참봉이 교차한다. 아버지는 내일을 속절없이 기다렸지만 김 참봉은 내일을 열기 위해 돈과 명예를 다 던졌다. 아버지는 입으로 세상을 탓했지만 김 참봉은 몸으로 세상을 바꾸었다.종택을 한 바퀴 돌아 사랑채 마루에 앉는다. 마루 구석에 빛바래고 먼지 쌓인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누군가 “사랑채 제비처럼 처마 밑에라도 깃들고 싶다.”라는 글을 남겼다. 나 또한 잠시 눈을 감고 파락호, 그 숨은 뜻에 깃들어본다. 바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본다. 먼 봉우리 위에 구름 몇 점 하얗게 내려다보신다. 나는 여기서 살아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버지와 참봉을 기억한다. 이제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 아래 참봉이 품었던 때를 넘어 더 이어지길 바란다.

2023-03-12

붓다와 니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마주하는 급변한 환경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책을 고른다. 니체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그가 남긴 저작 가운데 한 권이라도 통독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선 책의 운명이 필시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약관 25세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28세인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고전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비극의 쇠퇴 원인 그리고 비극의 부활을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에서 통찰한 명저다. 니체가 제기하는 철학적-정치적-사회학적 논지는 이분법에 기초하는데, 그 출발을 알린 서책이 ‘비극의 탄생’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교수직을 사임한다.소액의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던 니체는 편두통과 가슴 통증, 극도의 근시, 마침내는 정신질환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용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일갈은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21세기 20년대에 아주 유효하다. 니체는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보았다.생로병사 외에도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의 인생 팔고(八苦)를 주장한 붓다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불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붓다가 내세운 ‘팔정도(八正道)’는 의미심장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위대한 수행자나 깨달음을 찾아 나선 ‘납자(衲子)’들에게는 맞춤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붓다와 니체는 모두 세상을 고통의 도가니로 보았다.대상을 보는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붓다는 끈기 있는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인간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삿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호수의 물처럼 평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고 깊다.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하라!’니체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짓치고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나약하고 섬약한 영혼과 육신으로 일신의 안락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삶은 무가치와 무의미로 귀결된다고 역설한다. 힘들고 괴로운 세계와 정면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이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장수와 행복을 아침저녁으로 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보면 니체는 뭐라고 할 것인가?!

2023-03-12

자살률 1위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지만 자살률로만 보면 아직은 우리는 후진국 수준이다.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26명에 이른다.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해 1만3천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10∼30대 등 젊은 층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도 충격이다.세계적으로 자살자가 많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도 자살률이 높은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다.전문가들은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빈곤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률을 2027년까지 30%이상 낮추기로 하고 자살위험 요소감소 대책 등을 발표했다. 특히 자살위험 요인감소 대책으로 산화형 착화제인 번개탄 생산 금지안을 두고는 논란도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번개탄을 금지한다고 자살이 예방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등의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살 원인에 대한 대처보다 수단에 초점을 맞춘 편협한 발상이란 비판이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가 자택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사회의 자살률이 또한번 주목받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낯처럼 돼 버린 자살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2

일류기업으로 가는 길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철강 전문 분석기관 ‘월드 스틸 다이내믹스’(WSD)가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포스코를 13년 연속 1위로 선정하였다. 35개 글로벌 철강사를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여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친환경 기술혁신, 고부가가치 제품, 인적 역량 등 7개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평균 8.5점으로 종합 1위에 선정됐다.한 기업이 13년 동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 철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한다. 평가받은 경쟁력의 결과는 2022년 9월 한반도에 상륙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냉천이 범람하여 포항제철소 압연지역 대부분이 수해를 입었을 때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정비부서의 이상 조치 능력, 조업 부서의 내재화된 프로세스 지식, 그리고 그룹사를 포함한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수해를 조기 복구한 위기관리 능력은 그 어떤 위기도 포스코를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그렇다면 포스코를 포함한 일류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창의적인 기술력’을 들 수 있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문구를 창업 초기부터 게시하고 있다. 70년대 1차 석유 파동 때 석유자원이 2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산업 혁명 전 6억 명의 인구에서 현재 80억이 넘었지만 석유자원 고갈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70년대는 탐사도 시추도 초보적 기술이었고, 대륙붕 연안에서만 석유 생산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심해에서도 캐내고 셰일가스는 바위 틈 사이에 있던 가스와 석유를 녹여서 캐어내니 유한한 자원이 창의적 기술에 의해 무한해지고 기술은 자원이 된다.다음으로 ‘임계점’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달리기만 한다고 뜨는 것이 아니다. 활주로를 벗어나기 전 시속 300km에 이르러야 이륙할 수 있다.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마흔아홉 번의 숟가락의 밥이 들어가서 마지막 한 숟가락에 배가 부르는 것처럼 임계점을 넘어야 비로소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입장의 순서가 오기 직전에 자리를 뜨고, 대어가 미끼를 물기 직전에 낚싯대를 걷어 버리고, 땅의 제 임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급매물로 처분해 버리니 더 큰 성과와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실패에서 얻어야 한다.다음은 현장 관리를 위한 ‘생각의 중요성’이다. 부분적인 것만 보면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전체의 성능이 복원되고 유지돼야 한다. 현장의 소음이나 진동에 익숙해지면 불합리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익숙함이 쌓이면 당연시되고 누구도 의문점을 가지지 않게 되어, 불합리란 싹이 트고 자라 설비는 결함에 의해 고장으로 이어진다. 제품은 고객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사라지며 기업도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산은 기도로 옮길 수 없고 반드시 삽과 곡괭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03-12

박사님, 박사님

유영희 작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에 굽히지 않고 불굴의 도전으로 대표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머슴으로 살기 싫다며 직원이 주주인 독립 대행사를 차렸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특히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몇 년 전,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던 H 생협에 박사 학위가 있는 남자 실무자가 들어왔는데 모두 그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보다 못해, 나도 박사인데 왜 내게는 ‘박사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약간 난처해하면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 관행은 계속되었다.그런데 문제는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게 항의한 것은, 다른 실무자들과 구별되게 그에게만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해서 한 말일 뿐, 나를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그 실무자는 그의 연구 분야와 연관 있는 업무를 하고, 나는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던 중 며칠 전, SNS에서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두어 달 전, S여대 교수가 내게 능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며 몇 가지 제안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가면 증후군’을 다룬 것인데, 가면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붙였다고 한다.가면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의 재능과 성취를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자기는 형편없는데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재능 있고 어느 정도 성취도 한 사람들이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하면 ‘거봐, 남들이 알고 있는 나는 가짜거든. 나는 실패할 만해.’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가면 증후군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르네 젤위거도 밤에 일어나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준 거지? 내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밸러리 영은 먼저 ‘가면 증후군’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인식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게 ‘박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다는 의심하는 것이나 낙제 한번 없이 학위를 받은 것, 유명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것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면 증후군’의 작동 방식이다.더불어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내게 능력이 있는지 자신을 의심할 시간에, 그동안 내가 성취한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서 균형 감각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니,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자들이여,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만 거두자.

2023-03-12

망월지 두꺼비

우정구 논설위원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양서류다. 몸길이는 10∼12㎝ 정도 된다. 피부는 두껍고 등에는 불규칙한 돌기가 많이 나 있다.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긴 등 생긴 모습이 얄궂다.낮에는 돌이나 풀 밑에 숨어있다가 저녁이 되면 지렁이와 파리, 모기 따위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적을 만나면 몸을 부풀려 등위에 돋아 있는 독샘에서 하얀 독액을 내보낸다. 아시아와 유렵 등지에 많이 서식한다.우리나라는 두꺼비를 주인공으로 만든 우화나 민담, 민요 등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다. 삼국사기 신라본에는 애장왕 10년 6월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는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민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꺼비는 대체로 슬기롭고 의리있는 동물로 형상화된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며 신비한 능력의 동물로 묘사된다.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망월지는 1920년 자연적으로 조성된 전국 최대 두꺼비 산란지로 유명하다. 2007년 수십마리 두꺼비가 이곳에서 로드킬 당하면서 산란지로 알려졌고, 201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하면서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이곳에는 매년 2월부터 3월 사이 두꺼비가 산란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지를 향해 이동하는 두꺼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한 두꺼비는 망월지에서 마리당 1만개의 알을 낳은 뒤 산으로 되돌아 간다.2∼3개월 뒤 망월지에서 부화된 두꺼비 새끼들은 서식지인 산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데 그 수가 수백만마리에 이른다. 자연상태 그대로 노출된 그들의 이동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이 준 장관이다. 올해도 봄 소식과 함께 찾아온 망월동 두꺼비 대이동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09

홍준표의 SNS정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얼마 전 이문열 작가의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엄석대’가 정치판에서 화제가 됐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기자회견이 발단이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 경쟁 상황을 두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빗대 비판했다. 곧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 치받으면서 이준석 전 대표와 SNS 공방이 이어졌다. 뜨거운 논쟁이 오갔다.홍 시장은 천하람 후보와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홍 시장의 “무명의 정치인이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에, 천 후보는 “대구 온돌방에 앉아 계시니 따뜻하시냐”며 되받아쳤다.전당대회 전날엔 안철수·황교안 후보와 이준석 전 대표가 타깃이 됐다. 홍 시장은 전당대회에서 분탕질을 친 정치인은 앞날이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정치권에선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당 상황을 꾸짖는 홍 시장 특유의 사이다 화법에 시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 옹호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미·일 동맹을 위한 고육지계라고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홍 시장은 아니라고 판단하면 상대를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사정없이 깎아내리고 면박 준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수 차례 당했다. 준엄하게 꾸짖었다. 선배로서 적절한 훈계라는 평가와 ‘꼰대’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공존한다.홍 시장의 SNS 행보는 차기 대권을 꿈꾸는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이란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현 정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홍준표 시장의 SNS정치가 불을 뿜고 있다.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대구시장이 된 후 간헐적으로 올리던 SNS글이 최근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SNS를 통해 시국과 대구시정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시의적절한 평을 쏟아낸다. 짧은 코멘트는 촌철살인의 글로 상대방을 저격한다. 성역도 없다. SNS정치는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어느 정치인도 범접키 어려울 정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홍 시장의 SNS정치는 정치 9단의 훈수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노련하고 거침없는 촌평을 한다. 숱한 정치평론가들의 평론을 압도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국민들의 관심사를 캐치해 내놓는 촌평에 젊은층은 열광한다. 짧은 글과 촌철살인의 평은 젊은층의 취향에 딱 맞다. 반면 너무 잦은 글 게재에 식상해 하는 이들도 없잖다. 당 원로로서 기강을 잡고, 인생 선배로서 사랑의 매질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칫 개인의 정치 성향 및 신념을 바꾸라는 꼰대질이 되어선 곤란하다.대구시정은 신경쓰지 않고 중앙정치만 바라본다는 비판도 많다.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여 시간도 적고 그외 시간은 대구 시정에만 전념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역의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본업에 충실하고 중앙정치에는 훈수 정도에 그치라고 한다. 대구시정을 등한시할 경우 시민들이 한순간에 등 돌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유불급이다.

2023-03-09

철새는 떠나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고니와 청둥오리들이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날이 풀리자 겨우살이를 끝내고 귀로에 오른 모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의 경우 약 석 달에 걸쳐 북한과 중국 단동, 내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큰고니는 평균시속 51㎞ 정도로 약 923km를 비행하여 출발한 다음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하천에 도착했다. 거기서 14일간 머물다가 다시 365km를 날아서 중국 내몽골자치구 퉁랴오 인근 습지에서 도착, 16일간 지낸 다음 다시 이동해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습지와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호수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도착했다.9월 29일까지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머물던 큰고니는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해서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바이칼호 인근 습지와 내몽골자치구 퉁랴오에서 머물다 11월10일 주남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월동하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큰고니의 이동경로를 거리로 측정해보니 갈 때는 4천36㎞, 돌아올 때는 4천229㎞, 합해서 8천265㎞를 왕복한 것이었다.고니의 평균 수명이 30년쯤 된다고 하니, 20년 이상 이 들판을 찾아온 녀석들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아직도 회색빛이 남아 있는 어린 고니들 말고는 대부분 먼발치로 지나다니는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인간과 야생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아니다. 사계절을 함께 사는 참새나 까치 같은 텃새들도 사람을 경계하는데 하물며 철새들이겠는가. 나는 반려동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야생동물들과의 그런 긴장관계를 좁혀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하지만 겨울마다 찾아와 주는 그들이 반가운 마음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매년 찾아오는 겨울 손님인 고니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를 알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그들에 대한 이만한 정보라도 알아야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손님이 되는 게 아닌가. 여름에만 습지가 되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을 하지만 거기서 보내는 기간도 서너 달에 불과하다니 여기서 겨울을 나는 기간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몇 군데 머무는 기간이 한 해의 절반가량이어서 그야말로 노마드의 생태를 가진 철새들이다. 텃새인 참새나 까치처럼 토박이인 나에게 시베리아 툰드라의 한 자락을 끌고 오는 그들의 등장은 삭막한 겨울을 한결 풍성하고 웅장하게 한다고 할까.나는 평생 이 고장의 붙박이로 살아왔지만, 고니와 청둥오리를 이웃으로 두어서 저 광활한 내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마음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올 때는 시베리아의 겨울을 끌고 왔지만 갈 때는 한반도 동남쪽의 바다와 들녘의 봄기운을 끌고 가는 셈이다. 그 들녘을 날마다 지나가던 촌부에 대한 기억도 지금쯤은 중국 단둥의 어느 벌판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2023-03-09

한민족 디아스포라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3일 KBS가 공영방송 50주년 기념방송을 하며 되돌아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유난히 나의 기억에 남아있던 것이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다. 1983년 6·25 특집으로 시작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6월30일부터 시작하여 138일간이나 계속되어 1만189건의 상봉을 이루게 하여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이 아직도 가슴에 멍하다.‘이산가족’이란 ‘헤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이란 뜻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남북분단으로 흩어져 만날 수 없거나 소식을 모르는 북쪽 가족이란 의미가 깊다. ‘이산(離散)’이라는 말을 들으니 디아스포라(diaspora)가 언뜻 생각난다. ‘~너머(dia)’와 ‘씨를 흩뿌리다(spero)’라는 고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멀리 흩어지다’를 뜻한다.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만의 규범과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하지만,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거주지’를 말한다. 그 원인으로 정치적 탄압에 의한 난민, 무역이나 노동 등에 의한 이민 등이 있으며 옛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으로 이집트 등으로 이주한 유대인이 원류이다.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 재외동포는 약 750만 명이며, 1902년 12월 102명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건너간 것이 한국이민사의 시작이고, 일제 강점기 식민지를 떠난 재일 조선인,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등이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이다. 1963년부터 15년간 독일로 간 약 8천 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정착하며 나라를 알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재외한인들은 정착지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일이 많이 발생하였고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한인 거주지역 보호를 외면했던 일이 대표적 예이다.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우리의 풍습과 언어를 전파하고 거주국 내의 권익 신장과 역량을 강화하는 등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이산가족 찾기운동을 벌였던 40여 년 전, 한밤중까지 TV중계를 보면서 수많은 아픈 사연을 듣기도 했었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도 있었고 공연을 통해 교류하기도 했다. 5월에는 인천에서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도 열린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난민, 이민, 실향, 추방 등 수많은 이주민의 희로애락을 다룬 영화들이다.우리에게는 특별한 디아스포라가 있다. 38선의 분단과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반도 내에서 철조망 하나로 인해 왕래하지 못하고 먼 해외보다 더 가기 어려운 현실에 민족적 비극을 안고 사는 것이다. 형제들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한다.이제부터 우리는 진정한 남북대화를 통하여 가깝고도 먼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서로 만나 껴안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2023-03-09

‘대화형 챗봇’ 열풍

홍석봉 대구지사장 챗GPT 열풍이 거세다.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앞다퉈 행정업무에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이 정도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인스타그램은 2년 반, 틱톡은 9개월이나 걸렸다. 이 대화형 인공지능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 챗GPT가 가져올 변화와 충격은 발전 속도만큼이나 상상을 불허한다.챗GPT는 미국의 오픈AI사가 개발한 대화형 챗봇 인공지능(AI)이다. 사용자가 채팅창에 질문이나 요구사항을 적으면 AI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각종 문서 작성과 번역, 코딩 작업 등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컴퓨터나 인터넷 못지않다.경북도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챗GPT 행정 활용 전담부서를 구성했다. AI 전문가를 초청, 강의도 들었다. 경북도는 정책 연구 용역 및 업무 계획, 통계 자료 등 활용방안을 찾고 있다. 정보통신 기업, 대학 등과 협력해 AI 기술을 행정에 접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기초지자체도 챗GPT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와 남구는 최근 챗GPT 행정 활용을 위한 직원 교육에 나섰다. 달서구는 챗 GPT 관련 정보 공유와 활용 사례 등을 발굴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는 챗GPT를 행정업무 기초자료와 시정 홍보자료 등 생성에 활용키로 했다. 관련 교육도 강화한다.챗GPT를 업무에 활용하면 공무원은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등 활용 영역이 무궁무진하다.하지만 챗GPT가 만능 도우미가 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실시간 학습 불가, 논리력 부족, 기억력 한계, 저작권 침해 위험 등 한계를 지적한다.챗GPT를 과신하다가는 탈이 날 수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8

그걸 못하면 모두 죽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 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나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자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 판이니 나라가 도와주는 걸로만 버티기에 힘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아직도 홀로 일어나 보겠다는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대학은 그전에도 망해 있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거의 모든 학과가 있다. 같은 종류의 청년들을 모든 대학이 만드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마다 바라보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무늬로만 존재하는 대학들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같은 전공은 같은 내용을 담는다. 교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건 핑계일뿐, 같은 껍데기가 같은 영역을 다루지 않겠는가. 모든 대학이 같은 전공학과들을 모두 가진다는 건, 대학마다 특성이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이미 죽어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하면서 오래도 버틴 셈이다. 이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순서대로랄 것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다.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모방하고 추격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혁신하고 창조하며 달려야 한다. 대학은 더이상 무엇인가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게 아니라 작은 무엇이라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암기반복형 인재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인성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도 강의 중심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거친 물결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이 실전과 검증을 경험해야 한다. 성공의 짜릿함도 느껴봐야 하고 실패의 쓰라림도 일깨워야 한다.지방대학은 지역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대학은 지역에서 문제를 탐색하고 지역담론에 참여하여 지역과 더불어 호흡해야 한다. 교수들이 지역에서 연구프로젝트를 발견하고 학생들이 지역에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몇 년을 보내며 가르치고 배운다면서 지역과 담을 쌓은 모습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대학이 지역사회와 문화에 흠뻑 젖어야 하고 지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위기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있으면서도 지역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지역은 함께 부끄러워야 한다. 젊은이들로 넘치면서 젊은이가 없다는 불평이 말이 되는가. 지역이 대학을 품고 대학이 지역으로 나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지역도 대학과 함께 죽는다.

2023-03-08

사이에 빠진 날

양태순 수필가 신선이 쉬는 별장에 갔다. 도심을 벗어나 점점 좁아지는 도로를 지나 굽이지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들길을 지나 산자락을 올라 가파르다 느낄 때쯤 이정표가 멈췄다. ‘사람과 산 사이에 선유산장’ 간판이 걸려 있다.입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간판 아래 제주도의 정낭을 옮겨놓았다. 누구든 들어와도 좋으나 예의를 지키라는 무언의 안내처럼 보였다. 주위에는 나무를 이용한 귀여운 다람쥐인지 도깨비인지 모를 조각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다. 주인의 유머스런 감각이 느껴졌다. 산장은 길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건물 지붕이 산 앞에 살짝 엎드린 듯 안긴 듯 헷갈린다. 초록 지붕과 너와 지붕, 길옆에 피어 있는 청하국이 어울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을 연상시켰다. 높이 솟은 솟대에 앉은 오리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려는 듯 한껏 고아한 모습이다.이름만 산장이지 실상은 브런치카페에 가깝다. 차를 마시며 풍경을 음미했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었다. 찾아오는 이를 붙잡기 충분했다. 가을이 산을 떠나고 있는데 창밖에서 단맛을 키우는 곶감과 잎을 떨군 나무가 빚어내는 정취는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멍때리기 좋은 장소였다.사람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시간의 거리와 공간의 거리가 있을 듯하다. 산은 우리의 일상생활 반경에서 좀 멀리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런 탓인지 산을 찾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행인이 있어야 안심이 되기도 한다.또 사람과 산 사이에 길이 있다. 사람이 산을 만나러 가는 일방통행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사람이 산이 보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산을 오르며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코앞에 펼쳐진 야생화나 나무 열매, 새 소리 정도다. 더듬는 발밑을 보거나 힘이 들어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쉼터에 다다르거나 앞서 걸어간 이들이 와! 감탄사를 쏟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상에 선 순간 올라오는 길의 험난했던 과정이 잊혀질 만큼 멋진 풍경을 맞이한다. 산이 우리에게 곁을 내주는 것은 정상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살면서 던지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마지막으로 상상의 공간이 존재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 같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산 깊은 곳에는 눈 맑은 이에게만 보이는 신성한 바위 혹은 그 산에만 있는 특별한 식물이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산이든 멀리 있는 산이든 가보지 않았을 때는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한다. 봄이면 산비탈에서 화사하게 인사하는 진달래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의 날갯짓 소리, 여름이면 쑥쑥 자라난 나뭇잎들의 재잘거림과 무성한 숲에 빛살을 뿌리는 태양의 넓은 씀씀이. 철마다 다른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본다. 그리고 그 산을 찾아 묵힌 속을 토해내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가 메아리로 숨어 있음직하다.선유산장의 주인은 무슨 뜻으로 이름을 붙였을까. 산장은 깊은 산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이제 본격적인 산에 오를까 신발끈을 점검하는 지점에 있다. 마당 끝에 서면 아래로 절벽이 있고 계곡이 있어 귀를 기울이면 바람을 타고 물소리가 안겨 온다. 슬그머니 시름을 내려놓으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계절이 그리는 무늬도 한몫했지 싶다.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서로의 삶이 얽혀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는 발 없는 소식에 놀이판이 더해지고, 도시와 시골 사이에는 사람이 오가고 문화가 따라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와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사이와 사이를 이어주는 줄은 일방적이지 않다. 노력 정도에 따라 약해지기도 하고 튼튼해지기도 한다. 갖가지 사연과 시간이 베틀 위의 씨실 날실처럼 차곡차곡 쌓일수록 고와진다. 사이에는 보이는 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삶이 섞여 물살처럼 굽이치며 흘러간다.사이는 정서영역인 동시에 탐독영역이다.

2023-03-08

임진(壬辰)

육십갑자 중 스물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진(壬辰)이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지혜를 상징하고 총명하고 속이 깊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은 음력 삼월이라 습기를 머금은 땅으로 초목을 잘 자라게 한다. 동물로는 변화가 다양한 흑룡이다.임진일주(壬辰日柱)는 이무기가 물을 만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지도자 기질이 있어 스케일도 크며, 성격에도 흔들림이 없다. 겉은 냉정해보여도 마음은 온정이 많고, 독창적 재능이 있다. 신체가 건장하며, 자유 분망하고, 언변도 좋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능력이 있다.임진일주의 임수(壬水)는 깊은 강물이기에 드러내기보다는 비밀스럽게 행동하여 속을 알 수 없는 성격이다. 진토(辰土)는 물에 잠긴 땅이니, 조용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활동적이고 전진하는 성격이다. 진토는 권력 지향적이으로 명예를 중시하여 상, 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에 잘 어울린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꽁하니 감추고 있으니 뒤끝이 있다.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있어 손해 보거나 방해 받으면 공격적인 기질이 드러난다. 복잡한 감정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사고치는 경우가 생기고 다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물 만난 용처럼 자신감이 가득하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흠이다.중국 공자의 6세대 자손인 공천이 지은 ‘난언’ 유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나라 사람 공자고가 한때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그는 조나라 임금인 평원군에 의지하여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던 추문과 계절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공자고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조나라에서 사귄 친구들이 송별을 하러 찾아왔다. 송별식을 마친 뒤에도 추문과 계절은 공자고와 사흘 동안이나 동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은 맞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추문과 계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그러나 공자고는 단정하게 자기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헤어져서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자, 공자고의 제자가 “저 두 분들과 선생님은 너무나 친하셨습니다. 저분들이 깊은 정을 보이시는 것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는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주 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헤어질 때 그저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이시고 마는군요. 혹시나 그렇게도 가깝고 서로 아끼시던 친구를 가볍게 보시는 것은 아닌지요?”공자고가 “처음에는 나도 저 두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나이들인 줄로 알았으나, 지금 와서 보니 아녀자 같은 사람들이로구나. 사나이는 마땅히 뜻을 사방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사슴이나 돼지들처럼 언제나 뭉쳐서 다녀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제자가 또 다시 “그렇다면 저 두 분이 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고가 “저 두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본래 타고난 성품인 인자함이 잘 남아 있다. 그러나 맺고 끊는 면에서 그들을 판단한다면 아직 좀 모자라는 구나”라고 대답하였다.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 타인이 베푸는 호의를 자기 잣대로 판단한다면 스스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임진일주는 괴강살이 있다. 괴강(魁7F61)이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다. 우두머리 즉, 대장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확고한 신념이 있어 타인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따라서 상대가 보기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을 수 있고, 약간 삐딱함까지 느낄 수 있다.과거에는 여성이 괴강살이 있으면 좋지 않게 보았다. 기본적으로 능력과 총명함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경시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성향이 강했다. 괴강살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있기에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남녀가 많고, 여자의 경우는 미인이 많고 일처리 능력도 탁월해 현대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활동할 여지가 많다. 결벽증이 있는 것이 흠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2운성으로 묘(墓)에 해당된다. 묘(墓)는 생명이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운이다. 감정표출이 적어 겉으로 봐선 표정을 알 수 없고 좋고 싫어하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괴강살이 있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향이 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가 있다.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역사다. 천민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다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갑작스레 죽자 정국이 혼란한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시킨 뒤 조선과 명을 정벌한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후계자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두고 내분에 휩싸여 2년 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였다. 마침내 1603년에 에도막부시대가 시작되었다.명나라 황제 만력제(신종)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 지원했다. 그 당시 명의 원군에 의한 조선의 피해도 심각했으나, 전쟁에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명나라 황제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로 인해 결국 24년 만에 후금에 의해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조선왕조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혹자는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라고 말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반드시 몰락한다. 인간의 삶에는 반복이 없지만, 역사는 반복한다.

2023-03-08

모두의 집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 집에 봄채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남편은 홍매실, 청매실, 자두, 사과, 샤인머스켓, 블루베리 등의 과일나무를 잔뜩 사서 집안 곳곳에 심었다. 난 올망졸망한 다육이를 30개나 들였다. 화분에 옮겨 심었으나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를 못 이길까 염려되어 방안에 모셔두고 있다. 엔간히 따뜻해지면 댓돌 옆에 가지런히 내놓을 참이다. 마당 뜨락 한켠에 심을 꽃은 무엇으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꽃잔디, 채송화, 패랭이와 같이 땅에 납작 엎드려 피는 잘디잔 꽃이 이쁜 걸로 구상 중이다. 우물이 있는 경사진 너른 터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쉽게 심고 가꾸기 좋은 종류를 폭풍검색. 처음엔 청보리를 심으려 했다. 다 자란 후의 뒷처리가 힘들다니 패스. 유채꽃은 비교적 수월하고, 3월 초에 씨 뿌리면 5월초부터 노란 꽃을 즐길 수 있단다. 바로 꽃씨를 주문하고 심는 법을 찾아 숙지했다. 심기 1~2주 전 미리 땅을 한 번 갈아엎은 뒤 퇴비를 뿌려 주란다. 지난주 이틀을 잡초 뿌리를 뽑고, 돌을 가려내었다. 제대로 할지 걱정이지만 일단 씨는 뿌려봐야지.작년 6월, 육신사가 있는 달성 하빈의 이 집을 얻었다.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였다. 처음 소개받았을 땐, 순천박씨 집성촌인 이곳에 타성받이로 와 사는 것에 주저했다. 높은 기와담장이 있는 주위의 다른 집과는 달리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한데집이라 다소 휑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마루에 걸터앉아 앞의 산을 바라보는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비 오는 날, 기와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 패는 마당이 예뻤다. 아파트살이가 슬슬 싫증나던 참이기도 하고, 한창 흙장난하며 놀고 싶어할 손주들을 위해서도 좋을 듯 싶었다.며칠 뒤 손자를 데리고 왔다. 무작정 들어온 집이 누구집이냐고 묻길래 네 집이라고 했다. 내 집 아닌데 하더니 그럼 ‘모두의 집’이라고 하면 어때요? 제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와 동생의 집. 그리하여 이 집은 ‘모두의 집’이 되었고 이름 대로 정말 우리 가족 포함한 모두의 집이 되었다. 서울의 손녀들도 하루를 묵더니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두의 집이니 언제든 올 수 있다며 겨우 달랬다.울도 담도 대문도 없으니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들어와도 되니 모두의 집이기도 했다. 모두의 집이니 누구든지 와서 묵어도 좋다고 지인들에게 광고했다. 육신사의 내력과 동네 자랑도 했다. 내친김에 육신사와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상화기념관을 엮어 ‘대구명문가기행’이라는 프로그램도 짜서 뿌렸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며칠을 묵었다. 또 아름다운 동행이라 이름한 성인학습자동기들도 다녀가고, 기업체모임도 가졌다. 함께 여행지산책을 하는 지인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가쪽 동기간 모임도 밤새워했다. 손주 친구도 초대하여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제 모두의 집에 봄꽃이 환하게 피면 모두가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육신사를 찾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어도 좋겠다는 야심찬 바램으로 열심히 봄단장을 할 일이다.

2023-03-08

이 꽃은 먹을 수 있나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이 꽃은 뭐예요? 이건 먹을 수 있어요? 이건 어디에 좋아요?’산과 들에 허드러지게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한의사이지 식물학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건조되어 있는 한약재를 구분하고 각 약재의 효능은 잘 알지만, 산에 피는 작은 꽃의 이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봄에 피는 꽃들 중에서 누구나 이름을 아는 몇몇은 오래전부터 훌륭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개나리는 진달래와 함께 봄을 알리는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나리 꽃과 비슷하지만 나리 꽃은 ‘아니다’는 의미로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개나리는 암술이 긴 꽃과 짧은 꽃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둘 사이에 수분이 이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도시에서는 꽃이 크고 이쁜 암술이 긴 꽃만 주로 심기 때문에 개나리 열매를 잘 볼 수가 없다. 개나리 열매는 ‘연교’라고 하며, 한의학에서는 여드름을 포함한 피부 염증 치료의 핵심적인 약재로 쓰인다.매화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매실 액기스나 매실주를 안 먹어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매화의 열매인 매실은 한약재로는 ‘오매’라고 부르며 신맛이 아주 강하다. 중국 삼국지에서 조조가 길을 잃어 해매다가 갈증으로 탈진하는 군사들을 보고 저 산을 넘으면 매실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군사들이 그 말을 듣고 매실의 신맛을 떠올리자 입에서 침이 돌아 갈증을 이겨내고 산을 넘었다는 ‘매림지갈-매화 숲이 갈증을 멈춘다’의 고사가 있다. 실제로는 장내유산균을 안정화 시켜 설사를 멈추고 술로 인한 주독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봄이 되면 이천, 구례, 의성 일대에서는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자생종 식물이라고 한다. 신라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 같았는데, 이 비밀을 안 모자장인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배어내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산수유는 씨앗을 제거한 과육을 한약재로 쓴다. 산수유는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허리와 무릎을 튼튼하게 해주고, 염증은 없는데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련이 활짝 피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러나 목련 꽃이 떨어지면 왠만한 쓰레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하다.꽃이 피기 전 꽃봉우리는 ‘신이’라는 약재로 쓰인다. 코 점막의 혈관을 수축시키고 항알러지 작용을 해서 봄철에 알레르기 비염 등으로 콧물과 재채기가 많은 증상에 아주 효과가 좋다.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꽃도 많고 약초도 많다. 다만, 병증에 맞게 적절한 양을 옳은 방법으로 먹어야 약이 된다. 모든 약은 약효와 부작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터넷의 어설픈 상식이나 소문으로 먹다가는 건강을 망치는 일이 생기기 쉽다.

2023-03-08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프로게이머를 불러다 면박을 주는 일들.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실제로도 사람을 죽이고 싶으냐고 묻고, 게임 머니를 얼마나 가지고 있냐 묻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고 묻고. 물론 그때엔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시기였긴 하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들을 던져댄 패널들의 모습이란, 무지가 얼마나 사람을 무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런 질문들은 흡사 도박 중독자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지금은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의 흥행과 맞물려 한국 게이머들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이제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냐는 등의 무례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문화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됐다.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하지만 정말 그럴까? 게임 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종종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얼마 전 문제가 됐었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조작 문제나, 과도한 과금 유도, 사행성 논란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나 NFT를 융합하여 게임을 통한 수익 모델을 홍보하는 경우들을 보라. 이런 게임 시장의 세부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이 게임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문화의 융성이나 즐거움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부 게임이라 하기엔 대다수의 한국 개발 게임들이 비슷한 루트를 걷고 있기에 우리가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게임은 문화인 동시에 산업이다. 더불어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익 모델을 구성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돈이 벌려야 다음 게임도 만들고 할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왜 게임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가. 게임으로 돈을 벌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흔히 캐시 카우로 불리는 일부 게임을 통해 게임사는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물론 모든 게임사가 그렇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분명 적지 않은 회사들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사들은 게임을 단지 돈으로 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익명 게시판에 달린 수많은 게임회사 직원들이 게임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라. 그들은 게이머들을 단지 호구로만 바라볼 뿐, 자신들이 이끌어가는 문화의 향유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의 게임 회사들이 이런 관점으로 유저들을 바라본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대만 해도 동아시아 게임 산업을 이끌어간다고 평가받던 한국 게임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가. 이제 한국 게임은 더 이상 동아시아 게임 업계의 강자가 아니며, 단지 뽑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과 과도한 과금 유도에 주력할 뿐인 도박성 게임만이 판치는 국가란 인상이 강하다. 그 10년 사이, 중국과 일본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꾸고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것과 대조된다.그와 같은 국가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게임 회사가 유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국 게임 회사는 좀처럼 유저들이 왜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단지 유저들이 비교 우위를 통한 우월감을 원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근 10년 사이에 변화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이라기 보단, 게임 회사가 자신들의 상품의 목적과 판매 방식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으니까. 그건 단지 비교 우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사적, 시각적, 청각적 재미나 손맛이라 불리는 컨트롤의 재미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게임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그처럼 다양한 재미지,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아니다.그래서 한국 게이머들은 점점 한국 게임을 떠난다. 재미의 요소는 보강하지 않으면서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한국 게임 회사들에 지쳐서. 유저를 단지 돈주머니로 바라보는 게임회사들에 정이 떨어져서. 이게 단순히 게임의 문제뿐인 것은 아니다. 문화를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볼 때는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 게임 업계의 몰락은 이런 태도의 부재가 어떻게 시장을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선례가 될 것이다.

2023-03-07

우연과 필연 사이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 책장을 덮은 후에도 꼼짝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뭔가를 손에 쥐었다는 감각인데 그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본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를 읽고 쓰는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필립 로스의 소설을 처음 읽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대던 스무 살이었고 도서관의 책장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나는 젊은 날을 휘발시키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우울, 무기력,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발붙이고 서 있다는 죄책감과 세상을 향한 묘한 분노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날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 필립 로스의 ‘울분’이었던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울분’의 주인공인 마커스는 신중하고 책임감 있으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마커스에게 말한다. “너는 창창한 미래를 앞에 둔 청년이야. 네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것은 어쩌면 자식을 둔 흔한 부모의 염려일지도 모르고 시대적인 필연성이었는지도 모른다.아버지는 마커스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집착을 멈추지 않았다. 마커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선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마커스의 발악에 아버지는 대답한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마커스는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고 어떤 규정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의 목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전쟁에 끌려가지 않고 법대에 진학해 법률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신중했고 조심했다. 어떤 부분은 미성숙하기도 했고 또 어느 부분은 놀라우리만치 자기중심적이기도 했다.그런 마커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단 하나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채플 수업에서의 대리 출석이 발각되었을 때, 반성문과 매주 수업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학생과장의 말을 수용할 수 없던 것 역시 일순간의 치기가 아니다. 삶의 이면에 고요히 잠복하던 어떤 울분이 그의 마지막 선택을 추동하게끔 했던 것이다. 마커스는 퇴학당하고 징병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 결과 마커스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했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그렇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의 룸메이트나 애인이 아니었다면, 채플 수업이 아니었다면, 마커스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비극으로 향하지 않는 길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는 것, 감정을 억누른 채 어떤 것도 분출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커스는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좆까, 씨발.”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만약 마커스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학생과장의 뜻대로 하여 무탈하게 대학을 졸업했다면 그는 윤택한 삶의 법률가가 되었을 수 있다. 여러 선택의 끝에는 무수한 마커스의 미래가 있고 그것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삶을 살든 그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가 외쳤듯이. “내가 옳았잖냐, 마커스. 내 눈에는 그게 오는 게 보였단 말이다.”위대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전혀 다른 결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아주 사소하게 벌어지는 우연적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운명으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그러했듯이.미국의 작가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던 스무 살의 청년에게 닿게 된다. 청년은 작품을 읽으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매우 평범한 어느 날의 사건이 삶의 어느 곳에 잠복해 있다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게 될지는 끝내 두고 볼 일이다.

2023-03-07

‘퇴근후 카톡금지법’

우정구 논설위원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연결차단권’은 2016년 6월 ‘퇴근후 카톡금지법’이란 이름으로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노동자의 사생활 보장을 위해 노동시간 이외 시간에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다.실제로 법제화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후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퇴근 후나 주말, 심야에 디지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토록 하는 조치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최근 정부가 근로자에게 근무시간 외 시간에 회사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인 이른바 연결차단권 보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다. 유럽 등에서 시작한 이 법이 드디어 국내에도 상륙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프랑스는 연결차단권에 관한 법률을 최초로 입법해 2017년부터 시행해왔다. 노동자의 휴식 보장과 사생활 보호가 목적이다. 디지털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에 맞춘 입법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시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국내에서 이 법이 처음 논의될 무렵,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착에 대해선 6명이 부정적 의견을 표시했다. 이유는 카톡상 직장과 가정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을 들었다.정부가 관련 법안을 준비하자 벌금까지 부과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 일이 바쁘면 주말이라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여론이다. 법이 능사일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07

‘이데올로기전의 도구’가 된 도심거리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권의 진지전(陣地戰)이 갈수록 가관이다. 국회와 언론을 넘어 이제는 도심거리도 이데올로기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최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 전봇대를 가리지 않고 걸려있는 정치현수막 때문에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대단하다.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원치 않아도 봐야하는 시민들로선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들을 향해 “깡패”라고 한 말들도 길거리 현수막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초등학교 근처 현수막에 적힌 적대감이 가득한 문구 때문에 학부모들의 민원도 쇄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정당이나 정치인이 외연을 확장하고 표를 얻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마치 선거철처럼,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은 것은 작년 연말, 정당이나 정치인의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허가 없이 최장 보름 동안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이 슬쩍 개정됐기 때문이다. 정당현수막은 15일이라는 기간만 지키면 신고 의무, 위치나 내용에 대한 제한이 없다. 국회가 도심 길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일반 시민의 경우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걸려면 자치구 지침에 따라 약 한달 전에 접수하고, 당첨이 되면 일정 금액을 지불한 후 ‘지정게시대’에 약 10일정도 설치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총선을 의식해 또 다른 ‘자기특혜’를 만든 것이다.현수막 공해를 차단하기 위해 인천시는 정당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조례 개정을 통해 현수막 게재 기간과 전화번호를 크게 명시하도록 하고, 자치구의 현수막 게시시설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서울시와 창원시는 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정식 건의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과시성 현수막은 도시 미관만 해칠 뿐이니 바로 철거하겠다”고 말했다가, 민주당 대구시당으로부터 “대구시가 홍준표 시장의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장소 제한 없이 난립하는 현수막은 안전사고 발생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대구 달서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상처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인천 송도에서도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여성이 현수막 끈에 목이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수막 줄은 어두운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현수막을 이용한 이데올로기전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지금까지는 공직선거법이 선거일 6개월(180일) 전부터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오는 7월 31일까지 법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8월부터는 해당 법 조항은 효력을 잃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선거 현수막’을 내걸 수 있다. 예비후보가 범람하는 총선일이 다가오면 아마 전국이 현수막으로 도배될 것이고, 시민들은 이에 비례해 정치환멸을 느낄 것이다.

2023-03-07

봄 마중 춤사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날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다. 황량하던 무채색의 대지엔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이 봄의 길목을 단장하고, 양지 바른 둔덕엔 가녀린 새싹들이 음표마냥 돋아나며 때 이른봄을 알리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 감추며 멀어져가는 겨울의 뒷자락으로 피어나는 아지랑이의 아른거림 속에 인동(忍冬)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내온 만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생동의 봄 채비를 하는 듯하다.약동하는 봄날은 색깔과 움직임으로부터 온다. 봄의 초입에 피어나는 복수초나 산수유는 노란 몸짓을 일찌감치 내세우는가 하면, 앙상하던 가지에 희거나 붉은 매화꽃이 등(燈)처럼 달리기도 한다. 또한 가볍게 불어오는 남풍 결에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개구리가 깨어나 땅 위로 나온다는 경칩을 즈음해 온갖 생물들은 스프링(Spring)같이 조금씩 톡톡 튀는 생장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줄기차게/뿜어대는 해의 입김/굿거리장단에//파아란 춤사위판/땅김의 너름새로//수액을/두레박질하는/간지러운 마파람’ -拙시조 ‘춘신(春信)’ 중(1995)자연만이 봄을 맞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과 리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지난 2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는 봄 마중 같이 설레고 활달한 춤자리가 의미있게 열렸다. 경북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전통연희컴퍼니 예심과 포항향토무형유산원이 전통춤의 명인 스승과 제자, 문하생이 3대를 잇는 춤사위로 활기찬 봄을 알리는 ‘2023 춤, 세대를 잇다’의 정기 발표회가 신명나고 멋스럽게 펼쳐진 것이다. 수준 높은 전통춤으로 지역 간의 문화교류와 전통문화의 계승을 알리고, 당대 최고의 세 명무가 직접 무대에서 ‘태평무’ ‘손소고춤’ ‘버꾸춤’ 등의 춤판을 벌이는,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들며 세대를 아우르는 장단과 추임으로 깊은 울림과 몸짓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귀하고 보기 드문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가녀린 듯 거침없이 가락을 타는 나비의 분방한 나풀거림 같고, 뻗었다가 휘감듯 접으며 휘영청 두드림 결에 유유히 날갯짓하는 학의 비상 같은 춤사위는, 과연 율려(律呂)의 응축과 침잠, 분출과 절제의 미학 같은 그윽하고 유장한 몸짓 언어로 다가왔다. 어쩌면 격정의 소용돌이 같고 바람 속의 회오리 같이 날렵하고 교태있는 몸동작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경탄하는 내내 심금이 울려지고 액운은 얼씬조차 못했으리라.생명의 춤판이 벌어지는 봄날은 모두 부지런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운과 움직임이 있어야 새싹이 돋고 물이 오르듯이, 아름다운 움직임은 춤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예술이다. 가무(歌舞)의 민족은 흥이 일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덩실덩실 팔 다리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른봄 마중하듯이 신바람 나게 펼쳐진 전통춤의 무대는, 변화무쌍한 율동성이 생명인 ‘춤’이 역동성을 강조해서 쓴 붓글씨 서체의 생동감과 어우러져 한결 묘미를 더했다. 대지 위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잔치를 추임새 삼아 저마다의 삶을 춤추듯이 살아보면 어떨까?

2023-03-07

챗GPT, 어디까지 할 수 있니?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챗GPT 이야기 말이다. 작년 11월 말에 오픈AI라는 회사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이다. 어지간한 보고서쯤은 뚝딱 써낸다. 이런 질문을 챗GPT에 던져보았다. 한국의 한반도 통일전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600자 정도로 단계에 대한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1. 상호 연락과 문화 교류 강화, 2. 경제적 통합, 3. 제도 및 법률 통합, 4. 정치 및 안보 통합, 5. 문화, 사회, 교육 통합. 고등학교 학생의 과제 보고서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이뿐 아니다. 챗GPT에게 코딩을 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코딩의 오류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교육 기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나 규정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 내용인 교육과정은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특정 주에서는 챗GPT 사용을 전면금지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챗GPT를 활용한 과제에 0점을 부여한 학교도 나왔다. 전자계산기가 나왔다고 해서 수학교육이 없어지지 않았고, 컴퓨터가 나왔다고 단순업무가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검색 포털이 나왔다고 컨설턴트 직업이 없어지지도 않았다.그러나 우리가 통찰하고 인정해야 할 것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컴퓨터 없는 세상, 인터넷 없는 세상, 휴대폰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앞에 인공지능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제 인공지능 없는 세상은 없다. 우리가 모두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아도, 각자의 수준에 맞게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런 일들을 참 잘하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챗GPT,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정보를 모으고 조합하고 정리하는 세상 친절한 개인비서다. 문제는 이 비서에게 무슨 일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비서의 능력이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에서 ‘반복적인 것 잘하기’는 좀 덜어내고, ‘새로운 생각 다듬어가기’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은 개념 이해에 집중하고 반복되는 일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맡기면 좋겠다.챗GPT, 만능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편견도 있고 오류도 있으며, 상황을 반영할 만큼 구체적이지도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인간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의 길이 있다. 챗GPT는 모른다. 통일의 단계는 언급했지만, 언제 어떤 단계의 일을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 여러 단계의 일을 어느 정도로 동시에 추진해야 할지, 정부가 바뀔 때는 어떤 조정이 필요한지. 챗GPT는 못한다.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디테일이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문가이며, 의도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챗GPT 두려워하지 말고, 재미있게 유익하게 사용해 보자. 좋은 질문을 하자, 그러면 우리도 오늘 비서로 요술램프의 지니를 가질 수 있다.

2023-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