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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주 목걸이 꿰기

등록일 2023-11-28 17:55 게재일 2023-11-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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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거의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언스플래쉬

급작스레 떨어진 기온 탓에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겨울날. 느릿느릿 산책하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게 되었고, 캄캄한 어둠으로 잠긴 아침은 평소보다 더 눈을 뜨기 힘들게 되었다. 급작스런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의 기분도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나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몇 날 며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속의 스터츠 박사는 ‘나약함을 드러내라’며 말을 건네 왔다.

영화는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필 스터츠(Phil Stutz)와 ‘머니볼’, ‘더 울프 오브 윌 스트리트’로 얼굴을 알린 배우 조나 힐(Jonah Hill)이 등장한다. 조나 힐은 스터츠 박사와 만나 습득한 심리 치료 기술을 소개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가능을 상징하는 목소리를 스터츠 박사는 X-파트로 명명한다. X-파트는 비판하는 자아이다. 반사화적이며 불가능을 상징한다. 스터츠는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X-파트를 없앨 수는 있지만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X-파트를 제거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삭제가 불가능하다면 이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는 있어야 한다. 이를 마주하면서 인정하게 된다면 성장을 이끌어오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 불확실성, 끝없는 노력의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가지 측면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비로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 끝없는 노력을 인정하고 행하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그럴 때 스터츠는 ‘진주 목걸이 기법’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진주는 행동이고 목걸이는 행동을 계속 이어가는 행위다. 아침에 일어나는 행위도 진주알 하나이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도 진주알 하나다. 진주알 하나하나에 일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닌,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진주알로 대입해 계속 행동하며 나아가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찌저찌 진주알을 실에 꿰었지만 진주알 속에 이물질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이물질 탓에 진주알은 매끄럽지도 못하고 거무튀튀한 탓에 유독 튀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진주알 꿰기는 성공과 실패라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 진주알 속엔 이물질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진주알은 진주알이라는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주알 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계속 진주알을 꿰어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다. 그 의지를 발판 삼아 진주알 꿰기에 의미를 찾고 스스로의 믿음만 있다면 삶이라는 진주 목걸이는 꽤 그럴 듯 해 보일 것이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급격하게 변화는 환경 탓에 혼란스러웠고, 현재까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성공했고 실패했느냐의 초점에 맞추어 오랜 고민을 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빠른 흐름에 맞추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X-파트에 가두어 더욱 나약해지기만 했다. 다행히 이 시점에서 습득한 ‘진주알 꿰기’ 기술은 X-파트를 마주하는 데에 진취적인 태도를 지니게끔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아가기 위해선, 외면했던 과거의 나 자신과 화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 했다. 숨기고 싶은 과거의 나는 그림자 속에 잠겨 있다. 거의 대부분 수치스러운 기억이거나 타인은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내가 저 그림자를 꺼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다시 뒷걸음치게 된다. 스터츠 박사는 그림자는 결국 ‘나’이기에 그때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과거의 수치가 현재까지 이어져 스스로 파괴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터츠 박사 또한 외면하고 싶은 나 자신과의 화해가 어렵다. 그 또한 어린 스터츠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X-파트가 있었고 그 속에선 그저 힘없이 나약한 인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스터츠 박사 또한 이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취약성을 더 세밀하게 마주한다. 그는 취약성을 마주하며 마치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만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을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내가 발견한 건, 그는 그림자를 드러내어 인정하였다는 것이고 거듭 진주 목걸이를 꿰어가며 고통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찰나의 장면에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을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용기가 생겼고 동시에 삶의 방향이 묵직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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