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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과 젖소는 죄가 없지만

등록일 2023-11-26 18:28 게재일 2023-11-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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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나오자, 나경원 대변인이 주어가 없었다고 해서 온 국민이 국어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요즘 그와 비슷한 언어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암컷과 젖소 이야기다. 암컷은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민형배 의원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최강욱 의원은 동물농장에도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는 건 없다면서, 암컷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에 비난이 일자, 여성비하 발언이 아닌 동물에 비유한 표현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젖소는 23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동두천, 연천) 보좌관이 SNS에 올린 글에 나온 말이다.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가 그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보좌관이 자신의 SNS에 개나 소나(앗, 젖소네) 지역을 잘 안다는 사람이 넘쳐난다고 쓴 것이다. 손수조 대표가 항의하자, 개 이모티콘 다음에 소 이모티콘을 치는데 젖소길래 그냥 ‘앗 젖소네’라고 덧붙인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김성원 의원 측에서도 그 글 어디에도 손수조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며 손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모두 옹색한 변명이다.

화용론이라는 언어학 분야는 상황과 맥락에 따른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화용론 연구 주제 중 하나인 함축은 발화된 것에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을 말한다. 발화에 직접 나타나진 않지만,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여러 증거를 통해 발화의 의미를 생각해낼 수 있다.

암컷 발언의 경우, 최강욱 의원의 발언 직전에 박구용 교수가 현 정치 상황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어 말했고, 최강욱 의원 역시 이를 받아서 동물농장조차 암컷이 설치는 경우가 없었다고 했으니, 이는 현재 상황이 동물농장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그가 변명으로 내놓은 동물에 빗댔다는 말은 동물이 아닌 사람을 겨냥했다는 뜻이다. 젖소 발언 역시 이미 손수조 대표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한 후에 나왔고, 해당 지역구 출마 도전자가 손수조 한 명뿐이므로 다른 의미를 가질 여지가 없다. 그러니 암컷과 젖소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개만도 못하다고 하면, 듣는 개가 기분 나쁘다는 말이 있다. 암컷과 젖소는 죄가 없지만, 그가 누구든 간에 여성을 가리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발화자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막말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항의와 반박에 대응하는 태도다. 그들의 변명은 비겁한 궤변에 지나지 않고, 국민의 합리적 추론 능력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이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정의당 류호정 의원처럼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최강욱 의원은 인간이 되긴 틀렸다고 하거나 북콘서트 한다면서 이런 이야기나 하는 것은 한심해 죽겠다고 비난하는 방식 역시 정당 정치인의 품격에 맞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인물을 보고 제대로 투표하는 품격 있는 국민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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