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길 위의 작품, 청송 객주문학관

등록일 2023-11-27 19:44 게재일 2023-11-28 17면
스크랩버튼
객주문학관 전시실

소설 창작을 위해 5년 동안 전국의 장터와 옛길을 다니며 자료를 조사한 소설가가 있다. 김주영 소설가는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객주’를 신문에서 연재하면서, 한 달의 절반 이상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길 위의 삶을 살았던 조선 말 보부상들을 주인공으로 삼기 위해 작가 스스로 옛 보부상의 길을 따라 쫓으며 길 위에서 작품을 써 내려갔다. 그에 대한 자료는 청송의 객주문학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소설 ‘객주’는 총 3부 9권과 2013년 10권을 발간하면서 완간되었다. 1부에서 3부로 갈수록 폐쇄적 배경이 열린 배경으로 변화하고, 개인적 사건이 국내·국제적 사건으로 확장되고, 인물의 인식이 개인에서 민족주의까지 변화하게 된다. 1부는 보부상들의 걸음에 맞춰 그려낸 그들의 옛길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 작은 언덕부터 소소한 갈림길 그리고 ‘밥때’에 머물던 장소까지, 실제로 걸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가 소설 속에 들어 있어 작가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문경·상주·안동·예천·연산·강경·전주·군산포·하동·구례·전주 등 삼남을 종횡무진 다님에도 결코 ‘삼남’을 벗어나지 않는다. 신분도 사농공상 중 가장 낮은 ‘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루어지는 사건들도 상행보다는 개인적인 복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설 속 최돌이의 살인사건이 지역의 권력층에 의해 위조되고 덮이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건 또한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폐쇄적인 배경에서는 시간적 배경도 큰 의미가 없다. 소설에서도 3권의 “무인 섣달(1878년 12월)”을 보고서야 거꾸로 유추하여 1권이 1878년 가을이고, 2권에서 “6월 수해”가 언급되므로 그해 겨울임을 확인할 수 있다.

2부는 서울과 송파를 오가는 길이 배경이 된다. 서울은 과거에도 우리나라의 모든 것의 중심이자 전국을 연결하는 심장이었다. ‘객주’에서는 서울과 송파를 오가는 길을 다양하게 드러내면서 길이 한정적이지 않고 서울로 이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서울은 민씨 일가가 세력을 떨치는 곳이자 거상 신석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신석주는 세곡선을 운항하면서 민씨 세력의 곳간을 책임지고, 민씨 세력은 신석주의 뒷배가 되어준다. 1부에서 일개 보부상에 불과했던 길소개는 신석주의 아래에서 성장하여 민씨 세력에 기생하는 상인으로 성장한다. 그 대척점에는 마찬가지로 일개 보부상이었던 천봉삼이 있다. 천봉삼은 길소개의 악행을 보고, 나라에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은 모두 권력층의 탐욕으로 인한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또한 2부의 시간적 배경은 1부에 비해 비교적 쉽게 유추할 수 있다. 4권은 “기묘년 3월 중순(1879년 3월)”에서 약 보름의 일을 기록한 것이고, 5권은 “세곡선이 군산포를 떠난 것이 4월 스무사흘날”이라 명시하였다. 7권에서 “경진년(1880년)”으로 바뀐 부분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6권은 1879년 겨울까지 그려져 있다. 2부는 소설의 3부에 발생하는 임오군란 전에 상인 세력이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므로 비교적 1부보다는 시간적 배경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부는 다른 권에 비해 역사적 사건이 드러나 시간적 배경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영남 만인소 사건(1881년 2월)·이재선의 역모(1881년 8월)·임오군란(1882년) 등 실제 사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대비되게, “민영익이 부보상을 이용하여 군란을 제압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온다는 소문과 대원군이 서울 백성을 무장시켰다”는 실록의 간단한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이 가미한 사건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에서 민씨 세력은 보부상을 이용하여 서울군란을 진압하고자 하지만 천봉삼은 그와 반대되는 선택을 하여 보부상과 민의 부딪힘을 무마시킨다.

객주문학관 동상
객주문학관 동상

보부상의 조직이 임오군란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조직으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길소개는 몰락하고 천봉삼의 세력은 원산진까지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9권은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지로 선정된 원산진이 배경이다. 원산진은 근대의 상징이자 조선 침탈의 기지가 되는 곳으로, 왜상이 곡물을 해외로 반출하여 국내 쌀값을 폭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천봉삼 일행은 왜상에게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다 도리어 타격을 입고 투옥된다. 사형은 면하나 9권은 1883년 추분 이전에 끝을 맺어 아쉬운 결말을 남긴다.

청송 객주문학관은 ‘객주’를 중심 테마로 삼아 공간을 꾸민 곳이다. 소설가가 소장했던 자료나 간행되었던 책 등이 있고, 그의 작품을 소재로 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필체로 쓰인 옛 원고 일부와 전국의 시장을 누비던 카메라 등과 같은 개인 소장품을 통해 집필하던 당시의 환경을 상상할 수 있다. ‘객주’체험 영상과 민속관도 흥미를 더한다. 길 위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객주’의 발자취를 따라 전시실을 돌며 소설의 장면들을 되돌아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대구·경북 문화 메모리즈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