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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유감

등록일 2023-11-29 19:32 게재일 2023-11-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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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하다. 봄이면 거목에서 피는 벚꽃이며 목련꽃이 장관이다. 하늘 높이 솟은 은행나무며 노랗게 치렁치렁 늘어져 담을 넘은 개나리도 눈길을 잡는다. 나는 이런 우리 아파트를 울긋불긋 꽃대궐이라 이름하고 꽃피는 봄을 만끽한다. 아파트 앞의 수성못 또한 벚꽃이 만개하면 꽃구경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꼬물거리며 싹 나고 불그스레 봉오리 맺는 것을 확인하곤 언제나 활짝 필까 맘졸이며 기다리는 일 또한 즐겁다. 팝콘 터지듯 한두 송이씩 피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눈 온 듯 옅은 분홍의 꽃이 구름같이 일렁이면 그 며칠이 환하다. 특히 밤의 벚꽃은 은은한 조명을 받아 희다 못해 눈부시고 향기까지 뿜어주니 게으른 발걸음이 이때만은 한 일주일 부지런해진다. 그러다 금세 하늘거리며 눈 내리듯 지는 꽃. 분홍 융단같은 꽃으로 내려앉은 봄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괘념하지 않는다. 여름내 짙푸른 녹음을 만끽하다 가을이 되면 봄꽃보다 더 붉은 단풍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벚꽃 단풍은 유난히 고와 해마다 찍어 저장한 사진도 많다. 높다란 은행나무의 찬란한 노란 잎을 쳐다보다 냄새 고약한 열매를 밟기도 하지만 노란 길은 더없이 아름답다. 수성못의 벚꽃길 단풍은 온갖 축제에 모인 사람들과 어울려 더욱 붉어지곤 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올해는 도무지 단풍이 들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붉지 않고 푸르죽죽한 잎으로 말라 버린 채 낙엽 지고 있다. 은행잎은 이 추위에도 아직도 푸른 잎이 성성하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잎같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 낙엽이 아니다. 늦은 가을임에도 대체 단풍은 어딜 갔나 싶다. 멀리 산들도 여느 때와는 달리 울긋불긋 단풍옷이 아니라 누르거나 회색의 거무스레한 색이어서 영 볼썽이 아니다. 비가 와서일까, 가뭄이 들었나 걱정 아닌 걱정은 나 혼자만이 한 게 아니었던지 기사가 났다. 그제서야 이유를 알았다. 푸른 잎은 가을 되어 뚝 떨어지는 기온에 놀라 단풍이 들 것인데, 늦가을까지도 계속된 더위로 색을 바꿀 기회를 놓친 탓이란다. 결국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때문인 거였다. 그렇다면 내년도 또 후년도 쭈욱 고운 단풍 즐기기는 어려워진 걸까. 너무나 무서운 자연의 징벌이 어찌 단풍뿐이랴. 봄에는 산불로, 여름엔 태풍과 홍수와 산사태로 인간을 징치하는 자연이다. 두려워하고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난 무얼 해야 하나. 일회용품을 덜 써야 할까. 편한 물티슈 대신 걸레와 행주를 써야 하나. 가방에 손수건과 장바구니는 챙겨다니고 있다. 휴지 한 장, 비닐봉투 한 장이라도 덜 쓰고 싶어서다. 플라스틱컵이나 종이컵이라도 덜 쓰게 텀블러도 넣어다닐까 싶다. 두 식구인데도 어쩜 그렇게 쓰레기가 많은지 분리하다 보면 택배상자가 그 중 많다. 종이 상자 하나라도 줄이려면 홈쇼핑을 하지 말고 수고롭더라도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봐야 하나.

단풍을 즐기지 못한 채 가을은 가고 겨울이 닥쳤다. 올겨울은 겨울다우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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