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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확실성을 위협하는 불길한 어둠의 공포

등록일 2023-11-27 19:44 게재일 2023-11-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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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앨런 포는 미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특색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최초의 전문 탐정인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했던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하고, 특유의 기괴하고도 섬뜩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들을 다수 써서 이후 소설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셔가의 몰락’은 포가 1839년에 쓴 단편소설로 직계로만 이어진 어셔 가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그것의 목격자가 된 나의 기록을 담고 있다. 어셔는 자신의 쌍둥이 누나를 죽여야만 하는 충동과 그로부터 얻게 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사진은 에드가 앨런 포.
에드가 앨런 포는 미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특색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최초의 전문 탐정인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했던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하고, 특유의 기괴하고도 섬뜩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들을 다수 써서 이후 소설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셔가의 몰락’은 포가 1839년에 쓴 단편소설로 직계로만 이어진 어셔 가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그것의 목격자가 된 나의 기록을 담고 있다. 어셔는 자신의 쌍둥이 누나를 죽여야만 하는 충동과 그로부터 얻게 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사진은 에드가 앨런 포.

우리의 삶은 단단한 현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대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그럴 것이라고 알고 있고,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 대상은 금방 그 존재를 잊어버리지만, 도무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것, 도무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공포를 집어 먹는 존재이다.

내가 익숙하게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 도시 알 수 없는 요소들이 끼어들어 그것이 더 이상 낯익은 대상이 아니게 되면, 그 관계는 공포가 된다. 철근콘크리트나 나무 같이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단단한 공간들 사이에 존재하기 마련인 빈공간의 어둠은 인간의 태연한 앎을 빨아들여 불안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낸다. 간단하게 ‘보이드(void)’라고 말해버릴 수 없는 공간과 관계의 공동은 내가 딛고 서 있던 단단한 실재의 토대를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이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공간과 공간, 때로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비어있음에 주목했던 최초의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1849)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 이전에도 그 세계를 바라보았던 작가들은 존재했지만, 언어와 글쓰기라는 도구로 그 세계에 대해 그려냈던 혹은 그 빈공간을 부조해냈던 사례는 아마도 그로부터 기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전에는 ‘어둠’이라는 주제조차 빛을 비춰서 반사된 윤곽을 그려냈던 것에 불과했다면, 빛과 빛 사이, 단단함과 단단함 사이에 존재하는 불길한 어둠에 대해 최초로 그려냈던 것은 바로 포였다.

에드가 앨런 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셔 가의 몰락’은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작가가 이 실마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걸어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그 어둠의 세계는 깊고도 깊다. 모든 불길한 예감들이 그렇듯 책을 덮은 이후에도 어셔가가 내뿜는 어떤 기운은 독자를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다.

구름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적막한 가을날, 시골길을 따라가던 나는 황혼이 내릴 무렵 옛 친구인 로데릭 어셔의 집이 보이는 곳에 다다른다. 그 황폐한 집을 보면서 나는 시적인 감정이 떠오르기는커녕, 대체 어디에서 솟아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침울함과 불안함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이 음울한 집에서 몇 주간 머물기로 한다. 친구인 어셔는 오랜만에 나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며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몇 주 동안 어셔의 저택에 머물면서, 나는 어셔의 쌍둥이 누나인 마델린이 지각불감증과 전신경직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가 어셔는 자신의 누나가 죽었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누나의 시체를 관에 넣어 지하실 깊은 곳에 넣어둔다. 그 이후 나는 신경과민 증세를 겪게 되고, 어셔와 마찬가지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와 어셔는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소설을 읽는데, 그들은 저 지하로부터 들리는 둔탁한 소리들을 듣는다. 어셔는 그 저택을 휩싸고 있던 공포의 실체에 대해 말해주고, 결국 그것에 잡아먹힌다.

포의 이 ‘어셔가의 몰락’은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한 공포로 가득한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집의 망령과 하나가 되어 누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에 넣어 지하에 매장했던 어셔는 저 깊은 무의식에서부터 보내오는 강박과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기겁해서 놀라 집을 뛰쳐 나온 내 뒤로 그 저택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았던 그 분명하고도 명확한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무너져 내린다. 그것을 흘깃 본 사람만이 그것의 존재를 증언할 수 있다. 그 불길하고도 강박적인 어둠이 그곳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송민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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