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명분 없는 정치는 가라

등록일 2023-12-18 18:55 게재일 2023-12-19 19면
스크랩버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는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이 있어야 한다. 대의 없는 권력 추구는 야만이며, 명분 없는 권력 행사는 폭력이다. 정치의 이상이 대의를 구현하는데 있음에도 현실의 정치는 권력투쟁뿐이다. 대의도 명분도 없이 오직 권력에만 혈안이 된 ‘야만의 정치’ 때문에 국민의 고통이 크다.

총선이 코앞인데 아직도 ‘게임의 룰’이 확정되지 않았다. 여야가 ‘명분 없는 실리’를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손해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니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여야는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제에 관심이 있을 뿐,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의는 외면하고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견리망의(見利忘義)’하고 있으니 국민의 불행이요 국가의 위기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행태도 명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임명하여 분란을 자초했던 대통령이 그의 후임으로 또 다시 검찰 선배, 김홍일을 지명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물론 친여 언론들까지 나서서 방송통신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내 편만을 생각한 명분 없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이라는 대의는 없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내 편만 집착하고 있으니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

엑스포 유치경쟁 참패로 화난 ‘부산 민심’을 달래려고 ‘대통령의 국제시장 먹방’에 기업 총수들을 동원한 것도 명분 없는 권력의 횡포였다. 치열한 세계경제전쟁에 촌음을 아껴 써야 할 바쁜 총수들이 불려나와 떡볶이 접시를 들고 대통령 주변에 들러리서있는 모습은 안타깝고 한심하다.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쇼가 총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리석다.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윤핵관·지도부·중진 등의 희생 요구에 장재원 의원은 세력을 과시하며 반발하다가 마지못해 불출마선언을 했고, 진즉 물러났어야 할 김기현 대표는 용산의 눈치를 보다가 벼랑 끝에 몰리자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중진의원보다 더 노회(老獪)한 초선의원들이 대표 호위무사 노릇을 하다가 이제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으니 측은하다.

총선을 앞두고 분출하는 정치인들의 탈당과 창당 및 그들 간의 연대도 분명한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제3지대가 극단적 대결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고 중도의 민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명분은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권력을 목적으로 정치공학적 계산 아래 이루어지는 합종연횡은 공익을 명분으로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는 대의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면 대부분 실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실리, 즉 권력은 명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더욱이 그 실리가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해서 얻은 것이라면 불신을 자초함으로써 결국 권력도 잃게 된다. 정치지도자는 명분과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야 한다.

세상을 보는 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