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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정책연구원 출범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2월 1일 대구정책연구원이 출범하였다. 1991년 대구경북연구원으로 시작하여 31년 만에 경북연구원과 대구정책연구원으로 분리되어 각각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의 독자적 정책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단일 정책연구기관으로서 대구와 경북 협력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제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각자의 고유 여건을 반영하여 최대한의 역량을 도출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분리를 선택하게 되었다.대구정책연구원의 신념과 의지는 “글로벌 신(新)중심지 ‘대구미래50’ 중추 크리에이터”의 구현이라는 비전에 담았다. 그리고 연구원이 행동하는 근저를 일관하여 흐르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대구 경제개혁과 삶의 질 혁신을 선도하는 실용적 정책 크리에이터”라는 연구원의 기조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연구원은 ‘창의’, ‘현장’, ‘실용’, ‘소통’, ‘글로벌’ 등 5가지를 ‘금과옥조’와 같은 핵심 가치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가치들은 연구원이 추구하는 연구 목표와 시스템 구축의 골격으로 작용한다.①신산업혁신, ②신공항 등 글로벌 대구 혁신, ③메가공간혁신, ④청년대구혁신, ⑤스마트생활·인프라혁신 등 5대 혁신은 대구정책연구원이 실현을 선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공무원과 연구직원이 하나 된 팀(one team)을 구성하여 시정 주요 현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이론과 현장을 접목한 연구고도화를 강구하고자 한다. 정책연구의 적시 고품질화를 위한 조직구성으로 ①전략기획실, ②경제산업실, ③사회문화실, ④공간교통실, ⑤환경안전실, ⑥경영관리실 등 6개의 연구실을 구성하였다.대구 5대 혁신과 이를 포괄한 대구미래 50년 등 대구가 추구하는 핵심의제 6가지를 ‘슈퍼어젠더’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현장 중심의 정책연구 및 분석을 위한 조직구성으로 ①대구미래 50년 LAB, ②신산업전략 LAB, ③신공항경제권 LAB, ④메가공간전략 LAB, ⑤청년대구전략 LAB, ⑥스마트생활권 LAB 등 6개의 전략 LABs을 구성하였다. 이들 LAB의 기능은 마스터플랜(기본계획), 로드맵, 현안 이슈 대응, 데이터 계량 분석 등으로 그야말로 대내·외 변화와 현장, 그리고 시민 공감을 중시하는 정책연구를 수행한다.전국 최초로 대구시청 공무원과 연구원이 ‘연관융합형 정책 싱크 탱크 모델’을 정립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주요 정책의 계량적 분석을 위한 계량 융합 모형(빅데이터·GIS·계량 경제·디지털트윈 등)을 적용하는 ‘정책 시뮬레이션센터’를 운영한다.이제 갓 발족한 조직의 적은 인원으로 최대효율을 창출하기 위해 매트릭스형(6연구실×6전략 LABs)으로 연구인력을 적정 배치하고 각 연구부서에 이론과 현장 및 정책실무 경험 접목을 위한 공무원을 부원장, 연구실장 등 연구진으로 적정 배치하고자 한다. 이제 대구정책연구원은 출범과 함께 ‘대구 미래 50년’을 향한 대혁신을 위해 조직관리 등 조기 정착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2023-02-20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신성로마제국의 탄생

800년 성탄절 날 교황 레오 3세는 프랑크의 왕 카롤루스를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초청해 왕관을 씌워주었다. 서양의 역사에서 이 사건에는 여러 상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황이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교황은 게르만의 일파인 프랑크의 왕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고 강력한 힘을 지녔던 세속 군주 카롤루스는 교황을 지켜주었다. 카롤루스가 치세하는 동안 프랑크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문화와 학문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그의 정책에 힘입어 혼란의 중세 유럽은 첫 번째 르네상스를 맞이했고 이 때를 가리켜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814년 1월 28일 갑작스런 카롤루스의 죽음으로 왕국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왕좌를 이어받은 것은 여섯 번째 아들 루도비쿠스 1세였다. 형들이 모두 요절하는 바람에 카롤루스의 유일한 적자로서 그가 프랑크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한동안 아버지와 함께 왕국을 다스렸지만 카롤루스 사후 영지 분봉 문제로 재위하는 동안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심지어 상속 문제로 아들들이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왕위에서 축출되었다 가까스로 복귀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두터운 가톨릭 신앙을 가졌던 왕은 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도원을 후원했다. 성직자를 국가 주요 관직에 등용했고 교회와 수도원에 면세 특권을 주었다. 강한 종교적 신념으로 일생동안 가톨릭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독실한’이라는 의미의 별칭 ‘경건한(Pius)’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왕으로서 그의 정치력은 무능에 가까웠다.숱한 역경을 겪으며 프랑크 왕국을 다스리던 루도비쿠스가 840년 세상을 떠났다. 프랑크의 전통에 따라 장자 로타리우스 1세에게 왕국이 상속되었지만 이에 불복한 이복동생 카를루스 2세와 셋째 동생 루도비쿠스 2세가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의 혼란은 843년 왕국을 동, 중, 서로 나누는데 합의한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된다. 로타리우스 1세가 중프랑크를, 카롤루스 2세가 서프랑크를 그리고 루도비쿠스 2세가 동프랑크를 차지했다. 프랑크 왕국이 세 개로 나누어지면서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의 경계가 어렴풋 만들어졌다.분열된 왕국은 예전처럼 강하지 못했다. 허술한 틈을 놓치지 않고 남쪽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동쪽에서는 마자르족이 북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족이 침입과 약탈을 시작했다. 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이민족의 침략은 10세기에 이르는 동안 이어졌다. 특히 북쪽 노르만은 프랑크 왕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해안지역에 수시로 출몰해 약탈을 일삼았다. 오랜 시간 거듭된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가 쇠락했고 봉건제도라고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한다.봉건제도는 토지를 매개로 형성된 사회적 주종관계를 가리킨다. 봉건제도 아래 사람과 토지는 계급화되어 큰 권력에 종속되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었고 영주들이 토지를 권력화함으로써 왕권이 약화됐다. 영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봉신을 거느려야 했고 영주로부터 봉토를 부여받은 봉신들은 충성을 맹세했다. 약한 영주는 강한 영주를 강한 영주는 더 강한 영주를 섬겼고 이렇게 맺어진 주종관계의 봉건사회는 피라미드 구조의 계층을 만들었고 그 정점에는 왕이 있었다.이 같은 정세 속에서 936년 지금의 독일에 해당하는 동프랑크 지역에서 작센의 오토공작이 강력한 왕권을 수립했다. 카롤루스처럼 대제로 불리게 될 오토는 헝가리의 마자르족과 보헤미아의 슬라브족을 제압했고 서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이탈리아까지 정복했다. 교황 요한 2세는 962년 2월 2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오토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었고 이로써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했다.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전역을 정복한 대왕 오토는 이교도를 굴복시키며 그리스도교의 수호자가 되었고 이를 토대로 서양의 중세미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2-20

눈앞에 닥친 재난, 속수무책이었다

19세기 대구의 선비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1825~1905)는 1856년(철종7) 6월 5일의 일기에서 눈앞에 펼쳐진 폭우의 피해를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3일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전날 세차게 내리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서찬규는 이때 한천바위(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위치)에 ‘寒泉’ 글씨를 새기는 일 때문에 한천 물가를 자주 오갈 때였다. 서찬규가 남긴 ‘임재일기’는 그의 나이 21세인 1845년(헌종11)부터 37세가 되던 1861년(철종12) 5월 20일까지 17년간 기록한 것이다.“비가 많이 내림. 이날 집 앞의 시냇물이 넘쳐서 물이 문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양 제방으로 막은 것이 무너지는 환난이라도 있을까 걱정이 되어 집안 식구들을 동쪽의 이웃 마을로 모두 대피시키고 또 사랑방의 서책 등 물건을 옮겼다. 그러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촌 동생 남규 또 노비 몇 명은 남아있었다. 촛불을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북쪽 이웃에서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있었다. 급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신천(新川)이 무너져서 물이 크게 밀려와 관덕당(觀德堂) 앞까지 연달아 물에 잠겼는데, 원촌(院村)의 큰 시장 주변 그리고 비산(飛山)과 원북(院北)의 총 400여 가구가 잠겼다고 한다. 재산과 곡식, 그릇 등이 전부 떠내려 가버려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남녀노소가 서로 붙잡고 통곡하며 이리저리 재난을 피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마을 위쪽에 있었는데, 윗마을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서찬규의 ‘임재일기’1856년(철종7, 병진년) 6월 5일 일기 중에서이날 서찬규는 집 앞의 시냇물이 넘쳐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다가 급기야 둑이 무너져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켰다. 급하게 가족들을 피신시키는 중에도 사랑방의 서책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집 안의 남자들은 집에 남아서 피해를 대비했다. 촛불을 들고 상황을 지켜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이웃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서찬규는 위기를 직감하고 사람을 시켜 피해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신천이 무너져 물이 크게 밀려와 주변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으며, 40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고 했다. 곡식과 가재도구들이 물결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통곡하는 주민들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이리저리 뒤엉켜 움직이는 주민들의 모습을 서찬규는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비록 자신의 집은 마을 위쪽에 위치해 있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 거대한 물난리는 대구의 한 고을을 하천으로 바꾸어버릴 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며칠 후 서찬규는 수해를 당한 곳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기록했고, 6월 13일의 일기에서는 “전답이 하천으로 변해 버린 것이 5만118두(斗) 9두락(刀落)이고, 떠내려가 버린 집이 1천360호(戶)이며, 죽은 사람은 46명이니 이것은 대구 한 고을만의 피해이다”라며 주변 마을의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6월 30일의 일기에서 홍수로 인한 영남 지역의 피해를 기록했는데, 물에 잠긴 민가가 1만2천804가구 인명 피해는 559명이라고 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수해를 입기 직전 한천바위에 글씨를 새긴 서찬규는 7월 4일에 한천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온 사방이 물에 잠겨 바위가 있던 물가 언덕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어려웠고, 글씨를 새긴 바위도 깊이 가라앉아 평평해져 버렸다. 다만, 바위에 새긴 글씨를 손으로 더듬어가며 수해 이전의 풍경을 되새길 수 있을 따름이었다. 폭우가 내린 지 한 달이나 지났을 때였는데도, 물에 잠긴 곳이 완전하게 복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으며 그 피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 서찬규의 기록조차도 사실은 그 참혹한 실상을 다 담지 못했다. 다만 구체적인 숫자로 재산과 인명 피해를 기록했기에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하룻밤의 폭우로 5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처럼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했다고 보면, 인명피해 숫자는 부상자까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서찬규는 폭우가 지역을 훑고 지나갈 때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어떻게라도 피해를 줄여보기 위해 촛불을 들고 주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집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갔지만, 짧은 시간 동안 긴박했던 아비규환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참담한 마음을 눌러야했다.서찬규는 일기에서 10여 차례에 걸친 지진과 때마다 닥치는 가뭄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재난상황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기에 구체적인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날의 폭우는 유례 없는 혼돈을 초래했고, 서찬규는 그 속에서 두려움과 싸우며 참혹한 풍경을 마주해야만 했다. 갑자기 닥친 자연 재해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재난에 대비해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준비하지만, 그 시간과 노력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자연 재해는 얼마나 무서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구하고 극복하고 또 잊으며 살아간다.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으며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2023-02-20

역사를 바꾼 책이 독서율을 높일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4년 전쯤, 중장년을 위한 사회 교육 기관에서 강의할 때 대학원 수료 학력 수강생의 포부를 들은 적이 있다. 연세가 60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죽기 전에 서울대 추천 도서 100권을 다 읽고 싶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서울대에서 추천했으니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그런데 며칠 전 EBS에서는 역사를 바꾼 책 100권을 선정하여 전 국민에게 홍보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를 보니, 그때 수강생도 생각나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해서 서울대 목록과 비교해보았다. 과연 서울대 100권 중에는 과학책이 10권인데 비해 EBS의 과학책은 19권이었다. 두 기관의 추천 목적도 달랐다. 서울대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서울대 목록에서는 “고전이란 모름지기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보고이므로 고전에 대한 독서를 통해 판단력과 사고력을 함양하는 한편 성숙한 지성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반면, EBS는 독서율 저하 때문에 문해력이 부족하고 개인 역량이 떨어지며 사회적 소통 능력이 낮다고 보고,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역사를 바꾼 책으로 독서율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방송된 ‘당신의 문해력+’13부작에서 나온 문해력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 방송에서는 업무용 이메일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휘력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등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여주었다.그런데 역사를 바꾼 책 선정 기준이 학제 간 의미를 중시하고 특히 과학책의 비중이 높다면서 이전의 다른 목록과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해도, 서울대 목록과 25권이 겹치고 나머지 75권도 서울대 목록과 난이도는 비슷하다. 철학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인다. 칸트의 저작 중 서울대에는 ‘실천이성비판’한 권이 있는데 비해, EBS에는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 두 권이 있다. 칸트의 저작이 왜 두 권이나 들어갔는지도 의아하고,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이 ‘실천이성비판’보다 당대 사조를 바꾸는 데 더 기여했다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역사를 바꾼’을 앞세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EBS에서 기대하는 문해력 수준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판단력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그냥 읽기만 해서는 높아지지 않는다. ‘이 말이 맞는 말인가?’, ‘논리적으로 문제는 없나?’,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숙고하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전문가가 설명하는 홍보 영상까지 만든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질문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이렇게 숙고할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어떤 목적을 위해 도서를 선정할 때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고학력자의 교양 쌓기 목록 같은 고전 읽기 운동으로 독서 진흥이 잘 될지, 한 방향 홍보 영상이 문해력 향상과 사회적 소통 능력 제고라는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2023-02-19

생산 현장의 안전 체계와 개선 순서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안전(安全)이라는 한자는 ‘여인이 집안에 왕처럼 있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국어사전에서는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 모든 기업들이 직원들을 산업재해로부터 지키고 생산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을 안전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고 있으나 아직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정부도 2018년 1월부터 산업재해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2018년 971명이던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2년에는 644명을 기록하였다.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노력으로 사망자수가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근로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인 사망 만인율은 OECD 평균인 0.29에 한참 못 미치는 0.43수준이다. 독일 0.15, 일본 0.13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과 관련된 의식, 방법, 체계가 잘 구축되고 유기적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의식은 모든 활동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본인이 근무하는 현장의 법적 사항 위험물 등 안전과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을 학습하고 갖추는 자세이다. 방법은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수단을 말하며, 체계는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경영자부터 직원까지 모든 현장에서 관리되고 작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중 현장의 직접적인 작업안전확보 수단인 방법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방법은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수단을 말하며 위험요인 발굴은 작업표준의 작업 순서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작업 순서를 시작부터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빠짐없이 동작 단위로 기술하고 각 동작에 대하여 동영상이나 실제 작업하는 현장을 현물로 보면서 작업의 유해 위험 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과 사고 시 상해의 크기인 중대성을 추정·결정하여 등급을 구분하고 등급이 높은 고위험 작업에 대한 위험 요인을 도출한다.도출된 유해 위험 요인의 개선 순서는 첫째가 위험한 작업을 아예 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공정 자체를 바꾸거나 사람의 작업을 기계화 자동화 하여 대체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둘째가 어쩔 수 없이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 작업자가 처음부터 실수하지 않도록 하거나 실수를 하여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셋째가 가장 낮은 수순의 조치로 접근을 못하도록 안전시설물을 설치하거나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이다.기업의 안전수준을 이야기 할 때 ‘비료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식물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을 많이 인용한다. 그는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충분히 많은 영양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영상소’라고 하였으며 이를 나무판자들을 덧대 만든 물통에 비유하여 가장 높이가 낮은 판자에 의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즉 회사의 전체 안전 수준도 결국 소속된 개개인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전 직원이 스스로 안전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2023-02-19

‘그깟 5년 정권이… 겁이 없나’

김진국 고문 사는 과정이 아귀다툼이다. 그런데도 사회가 유지되는 건 탐욕을 규제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지배한다. 특히 힘있는 사람들의 절제가 필요하다. 힘이 세다고 거들먹거리면 더 센 사람에게 굴욕을 당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군(君)’은 딱히 최고 권력자뿐 아니다. 권력 집단 모두에 해당한다. 그나마 법이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대등하게 보호한다.‘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대안적 진실’을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도 전형적인 탈진실의 경향을 보인다. 진영으로 쪼개져 다투기만 할 뿐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다. 진영의 이익을 위해 대안적 진실을 끌어안는다. ‘뻔뻔한 진실’이다. 그러니 대화도, 통합도 어렵다.그런데도 진실은 필요하다. 진실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법 집행과 정의도 사라진다. 그러면 무엇으로 진실을 가려야 하나. 힘으로 진실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건 ‘뻔뻔한 진실’이다. 상식에 맞아야 한다. 법으로 가릴 수밖에 없다.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바둑에서 큰 말은 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힘 있는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 거물이라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의로운 사회도 아니다. 진실은 힘이 아니라 법과 상식으로 가려져야 한다.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이란 이름을 붙여 50억 원을 받았는데,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30대 초반 평범한 직장인이 6년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터무니없는 돈이다. 누가 봐도 뇌물이다. 곽 의원이 50억 원을 달라고 조른다는 녹음도 있다. 그런데도 증거가 없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경제단위란다. 증여세 없이 자식에게 재산을 넘겨 주려고 온갖 편법을 쓰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걸 완전히 외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순실 씨와 ‘경제공동체’라고 묶어 뇌물죄를 적용한 검찰과 법원은 어디 갔나.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고 믿기 어렵다. ‘50억 클럽’의 다른 혐의자들은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명백히 돈이 전달된 곽 전 의원이 무죄라면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하다. 법은 어렵다. 일반인은 겁부터 난다. 서민들도 ‘높은 분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 법 논리를 아무리 정교하게 세워도 평범한 우리 입에서는 “놀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그깟 5년 정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겁이 없나”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깟 5년’이라니. 겁이 나면 검찰이 수사하지 말아야 하나. ‘5년 뒤 내가 집권하면 어쩌려고 겁도 없이 감히 나를 수사하느냐’는 말로 들린다.힘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그는 민주당 지역위원장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수사의 대상이 된 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거나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상, 법률상 권리를 조목조목 열거했다.이 대표도 법률에 허용된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국회 1당 대표로서 검찰을 위협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수사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정치인이다. 침묵을 지키는 권리 행사에 앞서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일반인으로서 권리는 다 찾아 누리고, 정치 지도자로서 도덕적 의무는커녕 힘으로 검찰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를 발부했다. 이 요구서는 정부를 거쳐 국회에 전달되고, 국회가 동의하면 구속 영장이 발부된다. 또 이때 법원이 영장실질심사를 하게 된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구속하는 게 아니다. 법원이 동의서 발부, 영장실질심사를 한다.더군다나 최종적인 진실은 법원이 가린다. ‘감히 나를…’이 아니라 당당하게 진실을 가리고, 법 해석으로 다투는 것이 정도다.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 또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부터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2-19

에너지 전환시대, ‘태양광 농사’가 해답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1700년대 석탄과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의 대량사용은 에너지 혁명을 가져오고 산업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급격한 인구증가도 수반했다. 당시의 산업혁명은 상상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이상의 급격한 기온 상승 요인이 됐다.전문가들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농업이라고 한다. 기후 위기는 곧 식량 위기인 것이다.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후 위기 극복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식량의 자체 생산보다 수입이 더 많은 처지여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식량 수입국, 더구나 제조업 강국인 산업구조를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을 위해 어떤 나라보다도 더 노력해야 되는 입장이라 할 수 있겠다.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에 비해 재생에너지 정책을 한참 후퇴시키고 원전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은 정부와 국민들 눈치만 보며 설마설마하는 중인 것 같다.일본에서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정책에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소니가 나서서 일본을 떠나겠다고 압박하며 정부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뒷걸음치고 있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항의하는 기업이 한 곳도 안보인다. 정치권, 특히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을 가진 지자체들은 없던 규제를 만들어서 대부분 마을에서 500m, 시·군 도로 이상 도로에서 500m의 이격거리를 두어 재생에너지 산업의 씨를 말리고 있다.주민들 또한 전자파 괴담과 중금속 등 오염물질 가짜뉴스를 맹신하여 비닐하우스보다 오염이 덜 한 태양광 발전소 시설을 혐오시설 취급하며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후 변화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나라는 우리나라다. 식량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탄소중립에 국가적 사활을 걸어야 한다. 에너지 안보에 식량안보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의 산업은 탄소국경세 등으로 인해 당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산업계가 지금 고민해야 될 일은 하루빨리 RE100을 달성할 방안을 찾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은 RE100 달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세계적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평균 4시간, 연간 1,459시간의 일조량을 갖고 있다. 독일보다 38% 태양광 기회가 많다. 그리고 큰 바람은 부족해도 산과 골로 이루어진 국토는 소형 풍력 발전에도 적합하다.문제는 국민의식이다. 태양광 발전은 전자파 발생이나 중금속으로 인한 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어 주민들은 무조건 반대한다. 그러나 태양광 모듈에서는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집전 시설에서 일반적인 변압기에서 발생하는 정도의 전자파가 발생하는데 이것도 휴대폰 전자파 수준도 안된다. 태양광 모듈이 흑색이다보니 중금속 오염에 대한 그릇된 정보들이 많이 나오는데 태양광 모듈은 모래에서 추출하는 규소로써 반도체와 같은 소재인데, 쓰이는 중금속도 극히 미미하여 비닐하우스 수준의 오염이 발생한다. 그리고 소형풍력의 경우는 1kW~5kW 정도의 제품들로 지붕이나 건물 옥상에 설치하면 되는데 소음도 거의 없다.우리나라의 농지는 150만㏊에 이른다. 이 중 25% 정도를 태양광 발전으로 사용하면 원자력 발전과 에너지 믹스를 통해 탄소중립이 가능하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을 하면 농사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의 발전사들은 그간 영농형 태양광 발전에 관해 실증사업을 해왔는데, 벼농사의 경우 태양광을 정상에 비해 20% 줄여서 설치하면 벼수확량이 20% 정도 줄어들지만 영농이 가능하고 농가소득은 10배 이상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요즘 농촌에 가보면 쌀농사를 짓지 않는 농경지는 과수나 채소 재배를 하거나 아니면 묵혀두는 곳이 대부분이다. 근본적인 농가소득 변화를 위해서라도 논농사 수익의 20배에 달하는 ‘태양광 농사’를 통해 농업·농촌 문제와 탄소중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사막이나 버려진 땅이 거의 없다. 67%는 산지이고 15% 정도가 농지이며 나머지는 도시 등 사람이 사는 곳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산지를 훼손하는 일은 오히려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일이다. 도시의 주택이나 공장의 지붕에만 태양광 설비를 해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농사가 가능한 토지에 대해서는 수확이 20% 정도 줄더라도 소득은 10배정도 늘릴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을 하고, 기계영농이 힘들거나 버려지는 농지에 대해서는 ‘태양광 농사’를 통해 농촌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래야 농촌 소멸을 막을 뿐만 아니라 국토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순조로운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은 ‘태양광 농사’가 해답이다.

2023-02-19

자원! 우리가 직접 확보하자!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석탄, 석유, 철의 원광석 등은 수천 년간 삶의 인프라를 제공해 왔다. 전기, 자동차, 항공, 건물, 자재 등은 이러한 기본적인 자원의 개발이 있어서 가능했다.사실상 인간의 삶은 자원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할 정도로 자원의 중요성은 역사와 함께 해 왔다.최근 곧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는 자원인 리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백색 황금’ 리튬을 확보하려는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한국에서는 최근 캐나다에 북미산 리튬정광을 확보한 LG화학 외에도 자동차 배터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SK온이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리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포항의 포스코그룹이 있다.사실상 포스코는 지난 2010년부터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리튬으로 지목하고, 염수에서 리튬을 뽑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2018년에는 약 3천억 원을 투자해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소금호수)를 인수했고 2년 후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2020년에는 현지 시험공장 시험가동을 마쳤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2.5만t 규모의 1단계 상용화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리튬은 전기차 약 60만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매장량 잠재력으로 볼 때 호수의 리튬 매장량이 인수 당시 추산한 220만t보다 6배 늘어난 1천350만t임을 확인했고 이는 전기차 약 3억7천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대박을 넘어 초대박을 터뜨린 것이다.세계 각국의 전기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사도 리튬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가장 일찍 출사표를 던진 기업은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다. 2020년 피에드몬트 리튬과 북미 공급 계약을 하고, 현재 텍사스주에 리튬 정제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목표에 도달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판매되는 차량의 약 60%를 전기 자동차로 채워야 한다고 한다.탈중국화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과 서방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경제적인 탈중국화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탈중국화에 필수적인 방법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희토류, 리튬 등 희귀자원의 자급자족 및 공급망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희토류 채굴 허가 프로세스를 단축하기 위해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EU 집행위는 재검토를 마친 뒤 오는 3월 관련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희토류 채굴부터 공급까지 소요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미국은 희귀 자원 공급망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희귀 광물 채굴·처리시설 개발에 수 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텍사스주에선 미 화학기업 블루라인이 호주 최대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와 공동 건설 중인 희토류 정련공장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한편 자동차의 휘발유에 대한 의존도가 전기차로 대치된다 해도 여러 가지 용도로 석유의 개발도 여전히 중요하다.사실상 석유와 희토류, 리튬 등 필요한 자원개발과 활용, 변환의 일괄 공정은 이제 필연적 과제로. 정책과 인재양성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자원 확보에 필요한 외교정책, 기술, 자금지원 인재양성도 빠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학들은 기존의 자원공학을 ‘에너지자원 공학’으로 명칭을 바꾸고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대응하고 있다.서울대를 비롯한 에너지자원공학의 커리큘럼은 최근 에너지자원 개발, 처리, 변환 등의 일괄 밸류체인을 완성하고 환경 및 에너지 경제 등까지 연구 영역을 확대하면서 에너지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재 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까지 가세하고 있다. 최근에는 폐금속 발굴 재생(Urban mining)이란 분야도 등장하였다.지금도 사우디, 인도네시아 등 세계 전역을 돌면서 자원 확보를 위해 애쓰는 엔지니어들을 보면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있다. 이제는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이들을 격려하고 자원전쟁 시대에 한국이 선두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특히 이곳 포항은 포스코가 자원 확보에 절대적 선봉에 서 있는 기업이므로 그러한 분야의 연구를 포스텍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실상 자원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활에 필수품인 전기공급, 자동차도 도로를 달릴 수 없고, 공장 등이 가동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수품이 된 핸드폰도 만들 수 없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자원은 유한한 것이다. 미래는 자원전쟁과 자원외교의 장이 될 것이다포스코 자원투자의 개가를 보면서 에너지자원 기술에 대한 포스텍의 학문적 뒷받침과 인재양성, 연구투자, 기술투자들이 절실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아마도 의과학자 양성과 에너지자원 개발 처리의 연구가 앞으로 포스텍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원, 우리가 직접 확보해야 한다.

2023-02-19

다시 2월, 배웅과 마중의 행간

이희정시인 젖도 덜 뗀 어린 것이 아우를 보았던가이월 숲 아랫도리는 여전히 까칠해도보란 듯 우듬지 쪽은 핏물이 하마 돈다꽃샘이 뒤미처 와 눈을 자꾸 흘기더니날日수도 늘 모자라 무녀리만 같은 너를자투리 천 조각 이어 감침질로 안고 간다-이승은 시집 ‘넬라 판타지아’(2014) 중 ‘다시 이월’ 전문이승은(1958~) 시인이 부르는 이월의 마디는 환한 적막 속 어녹은 눈처럼 온다. ‘다시 이월’이 수록된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의 표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는 ‘환상 속에서’로 번역되며, 1986년 발표된 영화 ‘The Mission’의 주제곡인 ‘가브리엘 오보에’에 이탈리아 가사를 붙여서 부른 노래다. 뜻밖의 새하얀 늦눈을 만나는 이월은 짧게 교차하는 ‘배웅과 마중’의 환상적인 간이 구간이 아닐까.1979년 KBS 문공부 주최 전국민족시대회에서 약관의 나이로 우리 곁에 온 시인은 “하마 도는 핏물”의 생경한 언어처럼 와서는 “다시 이월”이라고 했다. 이미 시인은 앞선 시집 ‘환한 적막’에서 ‘2월’을 선창하며 “늘 못다 떼고 덮어버린 국정교과서 같은 2월 / 어정쩡한 학기 말”의 모국어를 건너왔기에. 이즈음 다시 궁금한 그녀의 “젖니의 시간, 뜯고 싶은 봉함 편지”를 기어이 뜯어보려는 것이다.모자라거나 작은 것들, 여린 것들은 언제나 눈을 시리게 한다. 첫 행을 보라, 막 첫걸음마를 뗀 어린 형이 채근 대는 아우에게 유모차를 내어주고 조막만 한 발을 소심하게 내딛는 모습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이어 화자는 유독 날수가 모자라 다리가 짧은 2월을 “무녀리”라고 했다. ‘무녀리’의 사전적 의미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 ‘문(門)+열다’의 ‘문열이’가 변하여 된 말이며, 짐승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나온 놈을 일컫는 말”로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약하다. 화자의 애잔하고 깊은 내성의 눈빛이 짙게 묻어나는 둘째 수를 주목해 보자.“꽃샘이 뒤미처 와 눈을 자꾸 흘기더니 / 자투리 천 조각 이어 감칠질로 안고 간다” 며 동적인 시상을 입체적으로 펼치며 2월을 상징하고 있다. 기실 이승은 시인은 돌연 감침질로 안고 가버리는데 능하다. 그것도 바늘땀이 밟고 간 자국도 없이 귀신같이 홀쳐 꼬리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첫 행은 오금을 박듯 오지게 들어 앉히고는 여봐란듯이 따돌리고 가는 비기(祕記)를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지점이 곧 올곧게 이어온 현대시조가 담보하는 올무 같은 정형의 탄성을 만나는 마술적인 구간일 것이다. 그녀는 근작 시집 ‘첫 이란 쓸쓸이 내게도 왔다’에서 “아직 끝난 건 없다”라고 다짐하는데 화자의 이월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월이고 곧 다가올 뭇 생명을 예고하는 옴의 구간이기 때문이리라.겨울과 봄을 여닫으며 판타지풍의 발성으로 부르는 배웅과 마중의 행간, 2월이 여닫는 문은 여느 계절과는 다르다. 이월(February) 속에는 입춘이라는 절기가 들어 있는데 입춘은 봄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봄의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직 날씨는 한겨울이지만 얼었던 땅이 서서히 풀리고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입춘에는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서 붙였다. 이는 고대 서양에서의 2월이 가진 정화의 의미와도 다르지 않을 테니 겨울을 고이 보내며 다가오는 봄을 새 몸, 새 마음으로 맞는 정결한 의식과도 같다. 어느새 햇살을 입은 생명들이 번지듯 오고 있다.“이월 숲 아랫도리는 여전히 까칠해도, 우듬지 쪽은 핏물이 하마 돈다”◇ 이희정 시인 약력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2023-02-19

공무원, 청렴하면서도 유연해야

주낙영 경주시장 ‘접시깨기 행정’이란 말이 있다.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가 “접시를 열심히 닦다가 깨트린 사람은 보호해 주고, 접시를 닦지 않아 먼지가 끼도록 두는 사람은 책임을 엄정하게 묻겠다”며 공무원들에게 적극 행정을 장려한데서 나온 말이다.접시깨기 행정이란 말은 과거에도 있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2020년 1월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신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이처럼 역대 정부마다 접시깨기 행정을 주문한 이유는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가 책임지기 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는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나서달라는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이란 단순히 ‘소극적’의 반대말이 아니다.일례로 한번 쓰고 버려지는 애물단지 ‘아이스팩’의 수거·재활용 시스템도 다름 아닌 공무원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아이디어를 낸 서울 강동구청 최병옥 주무관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아이스팩 재사용 체계를 구축한 덕분에 2년 간 아이스팩 20만1천990여개를 수거해 생활쓰레기 101t을 줄일 수 있었다.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5월 정부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국민을 위해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적이 있다. 당시 지급 3주 만에 대상자 99%가 지원금을 수령할 만큼 신속한 속도를 보였는데, 이는 민간 카드사 홈페이지와 연계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행안부 이빌립 서기관의 아이디어 덕분에 가능했다.적극 행정 사례는 경주시에도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교량 신설 대신, 보행로를 활용해 우회전 전용 차로를 신설하고 교량 측면에 보행자용 데크를 만들자는 역발상 역시 공무원의 아이디어였다. 경주시 신재목 주무관의 아이디어 덕분에 교통정체를 획기적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예산 90억원도 아낄 수 있었다.흔히들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청렴이라고 한다. 청렴해야 공정해지고, 공정해야 신뢰가 생긴다. 하지만 지나치게 청렴만 강조하다보면 유연함을 잃게 되어 적극 행정을 할 수 없게 된다.명나라 시대 ‘해서(海瑞 1514-1587)’라는 유명한 청백리가 있었다. 그는 우도어사(감찰부장)까지 오른 정2품의 고위 관료였지만, 사망 후 남긴 재산이 장례를 치르기에도 모자라 동료 관원들이 돈을 걷었다는 일화가 있다. 더 대단한 것은 해서가 평생토록 이런 수준의 청렴함을 유지하고 살았다는 것인데, 그는 평생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한번은 그가 병약한 노모를 위해 고기 두 근을 사자 “해서가 고기를 두 근이나 샀다”는 소문이 관가에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이 정도면 도가 지나치다 못해 매정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해서는 강직함으로 시기와 원성을 사 수차례 파직을 당해야 했다. 해서의 삶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엇갈린다. 탐관오리들로 가득한 부패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었다는 호평과 함께, 결벽증에 가까운 강퍅함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어 실제 큰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처럼 해서는 시대와 불화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중텐 ‘품인록’ 중)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공무원들은 해서의 어떤 면을 취하고, 또 어떤 면을 버려야 할까?만약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법과 규정만을 고집한다면, 시민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적극행정은 불가능하다. 높아진 시민들의 기대와 욕구를 감안할 때 해서가 추구했던 얼음장 같은 강직함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법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하고 능동적인 자세로 민원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유능한 공무원이다. 청렴하되 무조건 강직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들이 청렴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청렴만 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2023-02-19

동주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래전 일이다. 서관에서 강당을 거쳐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정한숙 선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선생의 자세가 이상했다. 오른손을 눈썹 위에 갖다 붙이고 경영대 방향 동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궁금증이 많은 나는 선생께 여쭈었다. “뭘 보십니까?!” “안 보이나?” “글쎄요?” 나도 선생을 따라 같은 자세를 취했으나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 특별한 건 안 보입니다.” “저기 멀리서 봄이 오고 있어.”‘뭐지?’ 하고 나는 혼잣말했다. 노교수의 눈에는 봄이 오는 것이 보였으나, 젊은 육신의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노소(老少)의 문제가 아니었다. 봄을 간절히 그리는 초로의 교수와 봄이 아쉽지 않은 청춘의 차이가 불러온 결과가 아니었나 한다. 정한숙 선생이 지금도 떠오는 것은 “시는 무조건 암송해야 한다”는 소중한 말씀 때문이다. 선생의 ‘소설 기술론’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말씀이 그것이다.신입생 시절에 나는 두 가지 일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하나는 손에 닿는 대로 시인들의 시집을 찾아 읽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외우는 것이었다. 윤동주, 이육사, 서정주, 한용운 시인의 작품이 주요 대상이었다. 여기 덧붙여 시인들의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그 둘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영어판을 아껴서 읽는 일이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어린 왕자’를 선물하곤 했다.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적잖은 시를 기억한다. 시조와 한시, 일본의 하이쿠 몇 편도 번역으로 기억하며,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도 암송한다. 정한숙 선생의 말씀은 진리였다. 암송하지 못하고 군데군데 이가 떨어져 나간 시편(詩篇)은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도 불가(佛家)의 서책이나 유가(儒家)나 도가(道家)의 경전 가운데 마음을 흔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기억하려는 자세는 그때 생겨난 것이다.지난 2월 16일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가 세상을 버린 날이다. 1917년 12월 30일 태어나 해방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세상과 작별한 동주. 그와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던 후배 정병욱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동주에 관한 안목을 넓혔던 기억도 어제처럼 선연하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모두 헤일 듯합니다.”로 시작하는 ‘별 헤는 밤’과 연관된 정병욱 선생의 글은 잊히지 않는다. 본디 ‘별 헤는 밤’의 마지막 연은 “따는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였다고 한다. 병욱은 마지막 연이 너무 허전하다는 말을 동주에게 전했고, 두어 달 뒤에 동주가 마지막 연에 새로운 부분을 덧붙였다는 것이다.“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부끄러운 자신을 부정하는 청년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시인의 면모를 아름답게 그려낸 동주. 창밖 촉촉한 빗소리가 봄을 부르는 듯하다.

2023-02-19

대구시민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21일은 대구시민의 날이다. 대개 도시마다 시민의 날을 정해 그날은 축제와 각종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대구시는 본래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을 기념해 10월 8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으나 도시 정체성을 살리는 뜻있는 날로 정하자는 여론에 따라 2020년부터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인 2월 21일을 시민의 날로 변경, 시행하고 있다.서울시는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한양 천도일인 10월 28일을 서울시민의 날로 정해 놓았고, 부산시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해전 승전일을 기념해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 저마다 도시의 특성과 시민의 자부심을 떠올릴 역사적인 날을 뽑아 시민의 날로 정하고 있다.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경제침탈에 대항해 일어난 세계 최초의 시민주도 경제주권 운동이다. 1907년 2월 21일은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군민대회를 개최하고, 국채보상운동 취지서를 낭독해 국채보상운동의 서막을 알린 날이다.이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고, 남정네는 담배를 끊고, 부인네들은 패물을 내놓아 나라의 빚을 갚는 데 앞장섰다. 2017년 10월 유네스코는 국채보상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대구시는 21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하면서 대구·경북 최초의 국가기념일인 2·28 민주운동기념일까지를 대구시민 주간으로 정해 시민들이 뜻깊은 날을 기억토록 하고 있다. 특히 2·28 민주기념일은 대구지역 젊은이가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운동이어서 시민주간 행사의 의미를 더해 준다.많은 시민이 이 날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시민의 날 제정의 의미가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19

에르진市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에르진시는 지진이 덮쳤던 튀르키예 10개 주(州) 가운데 특히 피해가 컸던 하타이 주 인구 4만2천명의 작은 도시다. 이번 강진의 진앙지로부터 직선거리 8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1만2천 채의 건물이 무너지고 수만명의 사람이 사망한 튀르키예 강진에도 건물붕괴 0, 사상자 0를 기록했다. 외신들은 기적의 도시라 불렀다.에르진시 엘마소글루 시장은 이런 결과를 묻는 외신기자에게 “나는 단지 불법건축물 시도를 일절 용납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라 말했다.이번 강진이 발생하자 튀르키예 정부도 부실공사가 피해를 키웠다는 여론에 따라 건설업자들에 대한 칼을 빼들어 100여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일본의 지진 전문가들은 튀르키예 지진이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팬케이크 붕괴 현상을 꼽았다. 팬케이크 붕괴는 건물의 바닥이 무너지고 그 위에 또다시 윗층 바닥이 무너지는 방식이다. 잔해 속에 빈공간이 없기 때문에 다른 붕괴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내진 설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5.4규모 지진에도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 피해가 일어났다. 지진은 인류가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자연재난이다. 하지만 미리 대비를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튀르키예는 1999년 북서부 대지진으로 1만7천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도 제대로 건축법을 지키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엘마소글루 시장은 선거당선 후 불법건축물에 대한 예외 적용을 요구하는 민원에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장의 법과 원칙 고수가 인명과 재산을 지킨 결과가 되었다. 타산지석 삼을 만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16

무너진 공정과 상식

홍석봉 대구지사장 기가 막힌다. 사법정의는 실종됐다. 금융권은 돈 잔치에 흥청망청이다. 국민들은 분노한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이 형편없이 무너졌다.법원과 검찰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과 기소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잇단 법원판결이 원인이다.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죄 무죄 판결이 불을 질렀다. 야당이 들고 일어났다. 재판거래 의혹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는 바닥이다.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대구지법 앞에서 규탄 시위를 했다. 곽 전 의원 아들이 받은 퇴직금이 뇌물이 아니라면 5년10개월 근무한 대리가 받은 퇴직금 50억 원이 정상이냐고 꼬집었다. “퇴직금 50억 원은 대기업 대표로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 아니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이라며 사법부를 성토했다. 대장동 일당의 뇌물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국민상식이라고 비판했다.“정상적인 퇴직금 지급액의 221배에 달하는 금액, 검사 출신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이렇게나 달라야 하는지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법치가 무너지고 공정과 상식은 휴지조각이 됐다.검사출신의 홍준표 대구시장은 “요즘 판검사는 샐러리맨”이라며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검사의 봐주기 수사인지, 무능에서 비롯된 건지, 판사의 봐주기 판결인지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야당의 특검 추진을 반기며 ‘50억클럽’ 특검을 촉구했다. 대통령실도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반응이다.앞서 법원은 무소속 윤미향 국회의원의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사건과 관련, 벌금 1천500만 원을 선고하고 주요 혐의 대부분을 무죄판결 했다. 기부금 관리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맞지 않다며 시끄럽다. 홍준표 시장은 “정신대 할머니를 등친 후안무치한 사건이라고 그렇게 언론에서 떠들더니 언론의 오보였나. 검사의 무능인가”라고 꼬집었다.고금리를 틈탄 은행의 ‘돈잔치’는 서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이 16조6천억 원에 달했다.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족’과 영세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고금리의 이자장사로 배를 채웠다. 희망퇴직자에겐 수 억에서 10억 원대의 퇴직금을 지급, 서민들의 눈이 돌아가게 했다. 학자금 등 각종 명목의 지원금까지 얹어줬다. 성과급 잔치는 불문가지다.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정치판도 공정과 상식을 찾을 길이 없다. 여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는 대통령의 개입으로 이미 난장판이 됐다. 야당은 당 대표의 사법처리를 막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민주노총은 법 위에서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약자를 무기로 국민을 불편케 한다. “정치는 실종되고, 사회는 분열되고, 자유는 위협받고 있다.” 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수 없는 좌절과 고통을 극복하고 이 자리까지 온 우리다.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틀을 부수고 알을 깨야 한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일깨우고 되찾아야 한다.

2023-02-16

흰 눈이 곱게 쌓이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겨울 오랜만에 흰 눈이 내렸다. 그동안 우리 지역 동해안에는 메마른 날이 계속되어 겨울 가뭄을 걱정했었는데 우수(雨水)의 절기를 맞아 소복하게 하얀 눈꽃이 핀 설국이 그려졌다. 최근 올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밀려왔었고 그 한기에 하늘이 얼었는지 포항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는데 15일 오전 8시까지 1cm 정도 쌓여 갑자기 대설특보로 바뀌었다. 청하에 1.6cm 영덕에 11.1cm인데 울진 평해 지역은 20.6cm로 대설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포항 외곽지로 빠지는 우현동 고갯길에서 차량들은 거북이 운행을 했고 상옥으로 넘어가는 산간지역은 교통이 통제되었으며 마을버스 운행이 중지된 곳도 있다.새벽부터 안전안내문자가 깜빡댄다.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 결빙이 예상되니 미끄럼 등 교통안전에 주의하고 대설주의보도 발효되었으니 가급적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바닷가에는 하얀 거품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하늘은 눈이 계속 내릴 듯이 온통 뿌옇다. 아파트 마당엔 모든 차량이 눈을 덮어쓰고 조용한데, 눈밭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갈거림이 사랑스럽다.며칠 있으면 차가운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인데 겨울을 마무리 짓는 빗물이라는 의미이다. 녹은 강물을 헤엄치며 수달들은 고기를 잡을 테고 기러기는 줄지어 북녘을 날아갈 것이다. 하얗게 쌓인 눈이 녹으면 땅속에 꿈틀대던 초목의 겨울눈이 깨어나고 코로나로 3년간이나 움츠렸던 우리 마음에도 이웃사랑의 눈이 트이리라. 대지를 녹이는 우수(雨水)에, 근심 걱정에 찬 우수(憂愁)를 털고 농부들은 새해의 농사 계획을 세우고 좋은 씨앗을 고르며 우수(優秀)한 싹을 틔우는 희망을 가지겠지…. 지겹도록 격돌하며 거친 말을 해대는 정치들판에도 흰 눈이 내려 덮이고 그 맑은 빗물에 봄눈 녹듯 서로의 앙금을 녹여 올해는 더욱 따뜻하게 국운을 일으키는 파란 싹을 틔우고 고운 꽃들의 잔치를 열어주기를 바란다.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인해 인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마는 이 또한 온 세계가 이웃돕기 성금으로 사랑의 빗물을 모아주고 있다. 지진 피해 아동이 700만 이상이라고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밝히고 있으며 아동피해에는 사상자뿐만 아니라 집과 부모를 잃고 또 트라우마를 비롯한 질병을 갖게 된 아이들도 있다. 새싹의 눈을 보살피는 심정으로 어린이 구호를 위한 세계 각국의 온정이 메마른 땅을 덮듯 가슴 가득 도와주었으면 한다.온 누리에 흰 눈이 내리면 세상은 하얗게 물들고 모든 더러움을 덮은 그 백설의 숲길을 걷고 싶어진다. 지인들과의 카톡방에도 눈의 노래가 들려오고 흰 눈 내린 겨울의 정경 속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있다.“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창밖을 보며 김효근 작사·작곡의 가곡 ‘눈’을 부르노라면 어느새 숲속으로 난 눈밭을 걷고 있는 마음이 된다.겨울 막바지에 내린 하얀 눈은 봄을 향한 계절의 알림이고 땅에 물기를 머금게 하는 생명의 물이 될 것이다.

2023-02-16

이 낮은 곳을 향하여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길을 걸을 때 낮은 곳을 자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가 구석진 곳이나 돌 틈, 보도의 화단, 학교 녹지 같은 곳에 나서 사는 풀들을 본다. 특히, 겨울에는 더 살피게 된다. 낮은 곳에 월동하는 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웬일일까.이번 겨울에도 섭씨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보인 날이 제법 있었다. 강추위에도 살아서 겨울을 넘길 기세였던 양지바른 석축 위의 작은 장미꽃 몇 송이와 잎들도, 산 채로 얼어 말라 박제같이 되고 말았다. 환경오염의 온난화 시대지만, 올겨울은 제 몫을 한 것인가. 그래도 이 낮은 곳의 일부 풀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얼면서도 겨울 추위를 이기며 살아냈다.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째다. 그사이 낮은 곳으로 봄이 스며 오고 있다. 오가는 학교 녹지의 소나무 밑엔 제법 연녹색을 띨 정도로 풀들이 솟아오른다. 가로수 밑엔 별꽃풀도 다른 풀들과 낮게 기지개를 켠다. 아직 2월이 두 주 이상 남았다. 겨울이 다 갔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추위가 다시 온다 해도, 저 풀들은 이겨내며 봄노래를 부를 것이다.생명은 삶은 저 높은 곳에 사는 게 아니라, 이 낮은 곳에 터 잡고 태어나 뿌리내리고 기대어 번식하며 살아내는 존재였다. 첫 생명이 높은 곳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낮은 곳 곧, 땅이 아니었다면 지구촌 생명이 살아남았을까. 이 낮은 곳은 산, 들, 시내, 강, 호수, 바다 등 온 지구촌을 다 품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같은 이론에 앞서 생명의 고향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이 낮은 곳’이란 마음의 소리가 여울진다.교회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생각난다. 삶이 괴로운 화자(話者)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그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싸우며 나아가니, 주님이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노래다. 하지만,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 낮은 곳을 향하여’가 아닐까. 그 길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주는 메시지일 것이므로….인간사회는 어떤가. 저 높은 곳의 금수저들은, 이 낮은 곳의 흙수저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지배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리라.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치르고 이룬 자유민주주의도 불의한 권력, 금력, 야합, 권모술수, 선동, 선전이 그 자정(自淨) 기능마저 잃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 사회도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쟁과 대결 구도는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같은 일들은 우리 인류가 ‘이 낮은 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생명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까.지구촌의 금수저와 흙수저가 어우러져 ‘이 낮은 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사랑을 베풀어 높은 곳 낮은 곳이 하나 되면 좋겠다. 그 힘으로 끔찍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아비규환의 고통에 신음하는 전쟁과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서, 그들이 이 낮은 곳의 생명처럼 꿋꿋이 살아낼 수 있도록….

2023-02-16

‘형제의 나라’가 겪는 고통 앞에서

홍성식 경제·기획 에디터 “당신은 형제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잖아.” 몇 해 전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도우베야짓까지 튀르키예 여러 도시를 1개월쯤 여행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형제의 나라’였다.기차에서 사과를 깎아 건네던 할머니께 “괜찮다”며 사양의 의사를 표했을 때도, 이란 영사관 가는 길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가며 안내해준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때도, 생전 처음 만난 영감님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도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니 이 정도 친절과 환대에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길 들었다.시계를 70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동족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눠야했던 비극의 역사가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 죽음과 삶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게 전쟁이다. 귀한 목숨이 한순간에 동백꽃처럼 떨어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땅이었던 한국.하지만, 튀르키예는 망설이지 않고 한국으로의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군인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고통을 겪는 한국으로 수많은 튀르키예 청년들이 온 것. 한때 지구의 1/3을 지배했던 강력한 군사제국 오스만 튀르크의 후손답게 튀르키예 군대는 용맹했다. ‘작전상 후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내장되지 않은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투 최일선에서 전진만을 거듭했다. 그래서다. 한국전쟁 참전국 중 파병 군인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튀르키예다.총탄이 쏟아지는 참혹한 전쟁터였지만, 튀르키예 군인들은 한국에서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만들어냈다.전쟁고아가 된 한국의 어린 소녀를 자신의 딸처럼 보호했던 튀르키예 군인은 눈물바람으로 이별한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소녀를 잊지 않고 온갖 노력 끝에 다시 만난다. 튀르키예와 한국이 공동제작한 영화 ‘아일라’에 그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튀르키예에선 6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튀르키예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고, 낯선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경우가 흔하다. 바로 그 튀르키예, 생명을 거는 전쟁에서 기꺼이 한국을 도왔던 튀르키예가 예상치 못한 큰 지진으로 국가 비상사태에 빠졌다. 이미 3만여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가 1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자연재해가 일으킨 홀로코스트’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70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튀르키예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제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닐지.한국인의 핏속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이 흐른다. 타인의 고통에 눈 돌리는 건 인간만의 특성인 휴머니티를 배반하는 행위다. 오늘 바로 지금,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이들을 돕는 건 인간애의 생활 속 실천이다.

2023-02-15

2월의 詩

배문경 수필가 입춘을 지나자 바람은 유순하게 변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탓일까. 봄기운을 느끼고자 온몸이 촉수를 곤두세운다. 나뭇가지에 몰아치던 매서운 바람이 산수유 꽃망울을 피우고 여기저기 매화를 깨운다.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바람에 고객의 표정도 밝아졌다.코로나의 길고 어두운 터널은 노년을 향해 집중 포화되어 건강에 적신호를 보냈다. 노인병원으로 코로나가 돌고 돌아 삶과 죽음의 이중주 앞에 노인들을 줄 세웠다. 한풀 꺾인 겨울 찬바람과 코로나가 뒷걸음치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찬 기운 가득한 농가에서는 입춘 날에 보리뿌리를 캐어 하루 묵혔다가 그 생긴 것을 보고 한 해 점을 쳤다고 한다.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개면 중간이며, 단지 뿌리만 있고 가지가 없으면 흉년으로 여겼다. 제주도에서는 입춘 날에 굿을 열었다고 한다. 이제 농사를 기본으로 삼던 세상과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지만 곡식만큼은 절기대로 움직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똑같이 삼 개월씩 나누는 것은 옛이야기다.얼렁뚱땅 겨울과 여름의 그림자 시간이 길어지면서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한없이 뜨거워진 여름과 지독스레 추워진 겨울로 바뀌어가는 것일까. 간절기 옷을 입기도 전에 계절은 꼬리를 감춰버린다. 올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나이 한 살이 주는 무게가 한겨울 가장자리 같다.종합건강검진실로 찾아오는 단골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본다 싶으면 그 사이 세월의 흔적은 시간보다 빨리 몸이 말해준다. 시력 저하나 기억력 저하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부정해진 어깨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굽은 허리는 그동안의 노동의 강도와 습관을 말해준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세월의 깊은 주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겨진 거리에서 반갑다며 손부터 잡는다. 안부의 말에는 염려와 격려가 포함되어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오랜 시간 사회봉사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며 살아온 영순씨를 보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언제 어디인지를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영혼을 데워주신다. 색종이를 접어 작은 통을 만들어 맛난 사탕을 담아 나눠 먹으라고 주신다.위와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염증도 용종도 없이 깨끗하다. 봉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생률이나 심장병도 적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뇌 속에서 기분을 좋게 해주고 통증을 가라앉혀 주는 엔돌핀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 긍정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기도 한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녀가 고운 심지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요양기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정수님은 일 년에 두 번은 꼭 본다.간염보균자인 그는 국가에서 제공되는 간암검사를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 검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한다는 아들에 대한 상담을 내게 받은 적이 있다. 외국의 의료수가가 비싸서 국내 온 김에 몸 상태를 체크한다고 했다. 무료검진과 개인부담으로 다양한 검사를 마쳤다. 다행히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다양한 혜택을 받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건강지킴이라는 나의 직업이 감사하다.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며 뒤돌아보아도 겨울 모퉁이를 돌고 있다.“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오세영의 ‘2월의 詩’중에서 )짧은 二月, 사람들은 생중(生中)에 오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2023-02-15

<3> 공매·경매 토지의 비방을 기술하다

토지개발공사도 주로 2년 장기 계약 방식으로 매각을 촉진했다. 토지개발공사에서 매각하는 토지는 주로 원시 매각이므로 명도의 문제는 아예 걱정할 필요가 없으나, 환매 조건부 매각도 있다.법원의 경매 토지는 매주 이루어지고 있는데 채권자가 법원에 강제 매각을 신청하여 법원에서 공개 경매하는 것으로 성업공사에서 매각 하는 부동산은 명도 책임을 성업공사가 지고 있는 반면 법원 경매는 매각 당사자인 법원에서 명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직 채무자가 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반드시 명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합법적으로 명도가 가능하다 해도 최소한 명도에 따른 비용은 물론 조기 명도와 다툼을 해소하기 위하여 일정한 추가 비용을 감안하여 입찰을 봐야 한다. 유치권 문제, 광업권, 관습법상 지상권, 분묘기지권, 온천공에 대한 권리 등의 전문적으로 고려해야 할 내용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농지의 경우도 조건부 매각이 된다.당나무는 박씨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는 건너 마을에 있는 미스 김과 연애를 할 때 항상 당나무 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첫 키스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용감하고 우람찬 신체의 골격이 더욱 돋보였고, 애인 미스 김은 뽀얀 피부에 통통한 몸매가 너무나 섹시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인상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지원해서 월남으로 가기 위해 부산으로 간다면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서로 이승에서는 헤어지지 말자고 몸을 나누었다, 애인 박씨는 죽었다. 그 후 미스 김도 이름 모를 병으로 앓다가 죽어 갔다. 그렇지 않아도 당나무에 쉬어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걱정이 대단했다. 그 후로 당나무와 김 사장은 몸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용마람 태수의 바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김 사장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했다. 부동산이야말로 어릴 때 가난했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는 부동산을 살 수 있는 목돈이 없었다. 그나마 공기업에서는 장기 연부로 매각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토지 개발공사, 성업공사 등에서 길게는 3~4년에 걸쳐 잔금을 치를 수 있는 방법으로 연부매각을 하고 있었다.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경기도 출신 동료 직원 강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와 같이 성업공사와 법원 등에서 매각하는 공매 부동산과 경매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김 사장은 서울의 지리도 잘 모르고 해서 강 선배의 고향인 S시에 부동산에 대해 공동으로 투자하기로 하고 자주 S시에 가고 있었다. 성업공사에서 매각하는 부동산에 입찰을 봤다. 최고가 공개경쟁 입찰 방식이었다. 좀 도시 변두리긴 했으나, 광로변이고, 주변에 구획정리지구가 있었고,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 것도 고무적으로 발전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강 선배가 설명했고, 김 사장이 봤을 때도 그렇게 느껴졌다.명당이니 양지니 음지니 하고 이론적으로 공부하긴 해도 현실적 투자 앞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우선 가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앞으로 발전 전망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돈은 3년 분할 상환이라서 좀 낫긴 했으나, 계약금과 일부 중도금 줄 돈을 제외하고는 저축된 돈이 없어서 역시 걱정이었다. 그런데 우선 나대지라서 명도 책임이 없고, 걱정 끝에 첫 작품으로 변두리 광로에 있는 대지를 입찰을 봤다. 경쟁자가 제법 있었는데 김 사장이 차하위 입찰자와 근소한 금액을 더 쓴 것으로 발표 됐다. 그러나 매입 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니 실제 거래 금액 보다는 제법 싼 금액으로 낙찰 본 것이었다.T개발공사 강 선배와 법원에서 실시하는 임야를 낙찰 봤다. 워낙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법원의 경매는 매각을 촉진시키기 위해 낙찰이 안 되면 1회 마다 25%정도 떨어진 가격으로 경매가 진행된다. 임야는 명도 문제가 없어서 강 선배와 공동으로 매입했다. 그 후에 법원에서 실시하는 신개발지 진입도로변 임야를 입찰 보기로 하고 시장조사부터 하고 권리 관계, 개발행위 관련해서 입목도, 경사도 등을 모두 점검하고 반드시 낙찰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입찰예정가보다 상당한 금액을 더 높여 입찰을 봤는데도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법원의 경매는 경매 당일 최고 낙찰자의 입찰 금액을 그 입찰 장소에서 발표하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다. 서진국 작가 김 사장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의 북쪽 변두리인 노원구 쪽에 주유소를 할 수 있는 땅을 매수 했다. 그 토지는 중랑천 건너 광로에 인접되어 있어 토지 앞 소방도로는 있었으나 중랑천 건너 6차선 큰 도로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교량을 놓아야 했다. 미리 고향 향우회를 통하여 구청에 알아보니 다행히 고향에서 오신 분이 간부로 있어 문의한 결과 가능하다고 하여 그러한 지식을 갖고 그 토지를 아주 싼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다. 주유소가 잘 되어 서대문구 이대가 있는 학사 골목 뒤편에 상가도 매입하였다.당나무는 가난한 잠수부들의 슬픈 사연도 기억하고 있었다. 김 사장 건너집 아재가 죽었다. 잠수부로 작업하다 심장마비로 30대에 죽었는데 김 사장과도 집안의 먼 친척 벌이 된다. 그 건너집 아재에게는 20대 부인과 아들과 딸이 한명씩 있었다. 그 집은 여느 다른 집들도 다들 그랬지만 너무나 가난하였다. 그 부인은 이웃 동네 아들이 없는 늙은 노인에게 씨받이가 되었다. 그 노인이 그 집에 찾아 왔을 때 집이 단칸방 밖에 없어서 그 애들은 갈 곳이 없어 밖에서 울고 있었다. 김 사장은 그들과 또래 친구였다.

2023-02-15

애도의 조건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학내 포털의 ‘경조사’ 게시판에는 부고와 결혼 소식이 올라온다. 부서의 구성원이 상을 당하거나 결혼을 하면 부서의 장이 게시판을 통해 알리는 구조다. 경조사의 주체는 정규직 교수와 직원이 제일 많다. 계약직 직원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발견되었지만, 비정규직 교수의 사례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경조사 주체의 제한이 없으니, 올리는 사람의 무의식이 작동할 결과일 것이다.게시판에 올라오는 경조사의 주체는 대부분 나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애도·축하의 마음이 생겨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부서 구성원들만 공유해도 될 법한 경조사를 학내 전체 구성원에게 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학내 구성원의 슬픔을 나누고 애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보통 슬픔에 더 많은 사연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쉽게 얻을 수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지난 2월 5일은 이태원 참사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유가족협의회는 100일 추모대회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서울시는 불허하고 경찰까지 동원해서 천막 설치를 막았다. 경찰과의 대립 끝에 시민분향소는 서울광장에 설치되고 추모대회는 간신히 개최되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부고는 한 사람의 삶이 공적으로 애도가능한 삶 및 국가적 자기인식의 상징이 되거나 되지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버틀러의 논의는 미국에 의해 발생한 전쟁 사상자에 대한 애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통찰이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찰은 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막는 것일까?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159명에 대한 애도는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장으로서 우리의 일상을 다시 인식하는 행위이다. 여전히 우리는 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예견되었음에도, 왜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를 밝혀내야 하는 국회의 국정조사특위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국가 권력이 사회적 참사 규명을 두려워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규명을 둘러싼 지난 일들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 국가 권력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참사를 우연한 사고로 위장한다. 위장을 위한 지배 권력의 작동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사회적 고통이 심화하는 공통점도 있다. 이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애도의 조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애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도는 현실 인식의 결과이다. 이태원 참사는 사고인가? 참사인가? 각각의 인식론에는 전혀 다른 힘이 개입하고 있다. 그 힘의 정치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야 희생자에 대한 올바른 애도가 가능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국가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공적 행위가 이루어진 과정이다.

2023-02-15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구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요즘 남편이 부쩍 피로해하고 매사에 의욕도 없고 모임에 나가도 금방 들어와요. 종합검진해도 아무 이상이 없대요. 왜 그럴까요?” 피로감과 우울감이 주증상인 환자의 진료 중에 남성도 갱년기가 있다고 하면 여성도 아닌 남성이 갱년기가 있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의 갱년기는 30대 후반부터 70대 이후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남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므로 증상이 완만하게 나타나고, 개인차가 많은 편이라 증상의 호소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40대부터 뭔가 몸이 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증상이 남성 갱년기와 관계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남성 갱년기는 뇌(시상하부)와 고환 기능이 저하되어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드는 것이 주 원인이다. 남성호르몬 분비를 빠르게 저하시키는 요인들은 뭘까? 과도한 흡연 음주 비만 등의 잘못된 생활습관, 지속적인 스트레스, 고혈압 당뇨 호흡기질환 등의 만성질환, 일부의 위장약 이뇨제 무좀약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에 의해서 남성호르몬은 빠르게 감소한다. 이 중에서도 만성적인 음주는 남성 갱년기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남성호르몬이 감소하면 골밀도와 근육량의 감소로 인해 여러 관절의 통증, 협착증이나 디스크 같은 척추질환, 오십견이나 회전근개 파열 같은 인대 및 근육 질환이 잘 생긴다. 성적 호기심과 성욕이 줄어들고, 발기부전이나 조루 같은 성기능 이상이 생긴다. 전신 피로, 졸림, 의욕 저하, 두통, 우울증 같은 신경 관련 증상들이 나타난다. 콜레스테롤 대사에 영향이 생겨 심장을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HDL(고밀도 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이 감소하여 심장질환이 잘 생긴다.대개는 각 증상에 따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호전이 된다. 다만, 우울증의 경우는 좀 다르다.남자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사회 통념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갱년기 우울증은 자살이나 충동적인 행동 등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 쉬워 아주 위험하며, 의욕이 저하되어 건강관리를 잘 하지 않으므로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워진다.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우울함이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게 좋다.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을 하면 뇌에서 긴장할 때 나오는 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 분비가 줄고, 세로토닌이 늘어나 갱년기로 인한 우울감이 완화된다.양방에서는 최근들어 알약, 주사제, 경피제 등의 형태로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을 쓰고 있다.한방에는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기관인 부신과 고환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약재가 많다. 녹용 인삼 구기자 토사자 등을 사용하여 체질과 증상에 따라 다양한 처방을 사용하고 있다. 효과는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되어 있다.갱년기를 거치면서 여성은 점점 남성화 되고, 남성은 점점 여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 젊은 시절 밖에서 많이 있었으니 중년부터 안에 많이 있다고 나쁠 것은 없다. 다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야 한다. 몸과 마음 중 어디라도 문제가 생긴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 그래야 바빴던 바깥양반에서 행복한 ‘안사람’이 될 수 있다.

2023-02-15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폭풍전야. 대학교육은 폭풍을 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는다. 타성과 관성에 젖어 구태와 구습을 반복하면서 개혁과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는 대학정원을 채우기에도 힘들 시간을 예고했지만,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원에 기댄 채 아무런 변화를 불러내지 않는다. 유초중등 공교육이 기른 학생들을 받아 책임있는 고등교육을 이어가야 하는데, 대학은 정원의 위기와 재정의 어려움 앞에 내실있는 교육을 일으키지 못한다. 교육부장관이 제안하는 대학교육 개선방안에도 ‘교육’보다는 ‘재정’에 높은 우선순위가 놓여 있다. 대학설립과 운영을 위해 정해진 재정적 요건을 완화하거나 대학기본역량 진단을 폐기하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생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돈 문제만 해결되면 대학교육이 제대로 될까.대학은 시대를 읽어야 한다. 디지털과 온라인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대세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챗GPT로 이어지면서 교육현장을 거세게 흔들 모양이다. 지난 세기를 휘몰았던 이념경쟁이 물러가고 실리 위주의 국제관계 형성이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다. 대학교육을 20대 초반에 마치고 평생을 사는 교육 모델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기술과 지식의 수명도 예전같지 않다. 인성의 기본을 다지는 유초중등 교육과는 다르게, 대학교육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대학개혁을 진정으로 겨냥한다면, 대학교육의 본질과 내용을 다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대학은 각자 차별화와 특성화에 나서야 한다. 모든 대학에 모든 전공과 학과가 존재하는 ‘백화점식 대학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모두 서서히 가라앉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대학마다 독특한 연구와 색다른 융합을 통하여 각자의 존립이유를 밝혀야 한다. 특정한 대학에 진학하는 특별한 까닭을 학생이 찾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학이름이 출세를 위한 간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학에서 익히는 전문지식이 삶을 이어가는 데 끊임없이 힘이 되는 ‘지속적인 전문교육의 장’으로 대학을 바꾸어야 한다.대학은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을 겨우 따라잡는 교육은 대학교육이 아니다. 내일을 성큼 앞당겨야 하고, 미래를 먼저 조망해야 하며, 오늘 보이지 않는 사조를 이끌어야 한다. 실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열하게 겨루기 위하여 토론이 일어나야 한다. 어제는 없었던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학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래지평을 향한 특별한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는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 다짐과 각오가 분명하지 않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대학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분석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 공교육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학교육이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 공교육과의 연계성을 잘 살려야 하고, 사람의 일생에 멋진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사람이 평생을 거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2-15

대구 중앙로역 기억공간

홍석봉 대구지사장 ‘여기는 기억공간입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지하철화재 참사로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현장입니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시민추모벽인 이곳을 기억공간이라 부릅니다.’18일은 대구지하철 참사 20주기를 맞는 날이다. 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 ‘기억공간’ 추모벽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참사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검게 그을린 벽과 애잔한 추모 글이 추모객들을 맞는다. 아이들의 추모 포스터와 글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20년 전 ‘그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가 더 안전한 세상을 기대합니다’라는 추모글이 가슴을 적신다.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추모위원회는 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대로 된 추모사업 추진을 대구시에 촉구했다. 이들은 참사 발생 6년 만에 조성된 추모공원은 시민 안전 테마파크로, 희생자 192명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은 안전 조형물로 불리며, 희생자 32구가 안치된 추모묘역에는 안내판 하나 없다고 했다.올해도 추모문화제와 추모식 등 행사가 마련됐다. 하지만 유족들은 20년 세월도 무심하게 당시의 아픔을 곱씹고 기억공간에서 신기루를 잡으며 배회한다. 참사를 기억해야 할 공간이 오히려 참사의 기억을 지우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는 유가족들의 지적이 귀에 따갑다.아직도 귀에 생생한, 희생자 가족들의 울부짖음. 대구는 2월만 되면 지하철 참사를 되새기며 가슴앓이를 한다. 기억공간 한 켠에 적힌 글이다. ‘고운님들이여! 생명의 별 밭에서 편히 쉬소서’/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15

대통령 안 부러운 시장·도지사 시대 열리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10일)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6개분야 57개의 ‘중앙권한 지방이양 과제’를 발표했다. 국무조정실이 작년 7월부터 TF를 꾸려 정부부처간, 광역단체간 협의를 통해 ‘지방이양이 가능한 규제’를 발굴한 내용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발표한 과제 이행을 위해 관계법령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고, 법령개정 없이 가능한 조치들은 즉시 추진하기로 했다. 후속조치는 대통령소속 지방시대위원회(위원장은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내정)가 출범하면 엄격하게 관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중앙권한 지방이양’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부터 약속한 ‘지방시대 개막’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조치여서 무엇보다 반갑다. 예산과 조직, 인력을 앞으로 지방정부에 어떻게 배분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지난 10일 발표한 내용은 혁신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양과제들이 국회 문턱을 넘어 그대로 실천되면 광역단체장들은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권한을 가지게 된다. 지난 1995년 민선 단체장시대가 열린 이후 비수도권 지방정부는 중앙권한의 지방이양을 줄기차게 주문해왔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권한이양 내용을 보면, 앞으로 광역단체장은 100만㎡(약 30만평)까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할 수 있다. 수도권은 제외된다. 교육 분야의 경우, 지역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권한도 이양된다. 지금까지는 재정 지원 사업을 할 때 교육부가 직접 대학을 선정하고 지자체는 컨소시엄 등을 통해 간접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수도권 공립대학의 정원이나 학과 조정은 교육부 장관의 사전 승인이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총 입학 정원 범위에서 자율 조정 후 교육부에 사후 보고만 하도록 했다. 다른 골프장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대중형 골프장’ 지정 권한도 시·도로 이양된다.다만, 이러한 권한이양이 ‘혁신적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전제돼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광역단체장에게 이양되는 각종 인·허가권이 실질적인 효력을 내려면, 재정과 조직, 인력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제주도를 예로 들면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수많은 정부 권한을 이양받았지만, 관련 예산과 인력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해 지방재정이 갈수록 쪼들린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중앙정부에서 권한만 이양하고 관련 예산·인력 지원에 인색할 경우, 윤석열 정부가 선언한 지방시대는 제주도처럼‘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특히 지역대학 재정지원 권한을 이양할 때 중앙정부의 예산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면, 재정지원 규모가 지금보다 줄어들 소지도 있다. 그린벨트 해제나 대중골프장 인허가 같이 자칫 이권개입 논란이 일 수 있는 분야는 세심한 예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광역단체의 전문적인 역량도 고민이다. 정부부처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해왔던 업무들을 시·도의 공직시스템에서 다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중앙정부의 권한이양이 지역균형발전과 실질적으로 연결되려면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되겠지만, 권한이양에 앞서 미비점이나 리스크, 타당성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3-02-14

만 70세

우정구 논설위원 나이 칠십을 고희(古稀)라 부른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시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따온 표현이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던 시대에는 61세가 되면 환갑잔치를 벌이며 장수를 축하했다.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어선 지금 세대에서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학문의 심화된 과정을 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살에 섰으며 마흔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를 넘지 않았다”고 했다(논어 위정편).공자가 말하는 칠십은 종심(從心)의 경지다. 이 나이가 되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틀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인데, 인생의 최고 경지를 두고 한 말이다.102세의 김형석 교수는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65∼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였고 그 나이가 됐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나이를 바라보는 세대관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건강 장수인구가 늘어난 탓이다.대구시가 70세를 기준으로 도시철도와 시내버스 무임승차 연령을 조정키로 하면서 노인 무료승차 연령 상향 논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자체에 따라 시행 시기와 방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머지않아 70세가 노인 기준의 대세가 될 전망이다.칠십 나이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어 고희라 불렀던 만 70이 이제는 노인 시작점이 되었으니 60대 노인이란 말은 사라져도 될 것 같다. 본격적인 장수시대가 열린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14

패러다임의 전환:디지털 트윈 그리고 미래항공모빌리티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고등학생 시절, 첫 해외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 같다. 거대한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는 모습, 활주로에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비행기들, 무엇보다도 커다란 소음을 내며 이륙하는 비행기의 모습에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당시에 “비행기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그 엉뚱했던 상상이 20년이 지난 지금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2019년 우버(Uber)가 지상교통 혼잡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교통수단인 도심항공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UAM)사업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한 이후 2023년 현재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미래항공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AAM) 관련 새로운 시장들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 한화시스템, 대한항공 등이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영화 혹은 공상과학 소설을 통해 상상했던 것들이 교통 수단의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실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뒤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관련 기술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디지털 트윈’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컴퓨터가 운영하는 환경에 그대로 모사함에 따라 실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컴퓨터환경에서 테스트하여 해당 현상에 따른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경우에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여 우주와 유사한 환경을 구축함에 따라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 직접 가지 않고 관련 시스템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지멘스(Siemens)의 경우에도 실제 운영하고 있는 공장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함에 따라 공장의 생산 과정에서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트윈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컴퓨터가 운영하는 환경에서 실험하여 해당 상황과 관련된 현상들을 미리 구현해보고 결과들을 미리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디지털 트윈 관련 기술들은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많은 부분들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과거 설 연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자동차에 탑승하며 반드시 챙겨야만 했던 종이 지도는 현재 휴대폰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목적지까지의 최단 거리와 같은 운행 정보에 대해서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1903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의 성공적인 비행처럼 120년이 지난 오늘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 상공에서의 AAM의 성공적인 비행을 그려본다.

2023-02-14

1표 차이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위가 누그러진 탓일까? 간간이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비가 멎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달갑잖은 미세먼지가 나타난다. 코로나의 지겨움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지만, 물가상승과 경기불황, 정국 경색이 미세먼지마냥 희끄무레 감돌면서 칙칙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나날이다. 거기에 안개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지난 주말 안동으로 가는 길은 안개 속의 유영같았다. 흐릿한 날씨에 엷거나 짙은 안개가 사방을 감싸고, 차창 밖으로 다가오는 원근의 풍경은 늦겨울의 수묵화마냥 담담하게 펼쳐졌다. 안동지역에 있는 두 개 큰 댐의 영향인지 한낮이 다 돼 가는데도 좀처럼 안개가 가시질 않았다. 하필이면 안개 잦은 지역에서 안개낀 날의 회동 탓인지, 안동에서 열리는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 제28대 임원선거를 앞두고 자욱하게 낀 안개는 모종의 암시(?)를 하는 것 같았다. 경북도내 20개 시군지부에서 모여든 400여 명의 문인들이 치열한 이파전의 경선에 뛰어들어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황에 놓인 것 같다고나 할까?경상북도문인협회는 한국문인협회 창립 이듬해인 1962년 2월 지회가 결성,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유치환, 김춘수 등 한국문단의 걸출한 문인들이 초창기 지회장을 맡으면서 기반을 다져 올해로 61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여 개 시·군지부와 시·시조·수필·소설·평론·희곡 등의 분과위원회를 두어 지역문학의 활성화와 창작활동의 증진으로 경북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한국문단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선출하는 지회장은 지역ㆍ관록을 고려해 추대하거나 후보자 간의 경선을 통해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임해 왔으며, 이번 제28대 임원선거는 초기부터 팽팽한 접전에 과열양상으로 치달아 역대 최다 회원이 참석할만큼 양 진영의 높은 관심과 뜨거운 의지를 드러냈다.과연 피 말리는 한판 승부였다. 한 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선거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검표과정만 5번 반복할 정도의 초접전에 일부 신입회원들의 선거권 미부여에 거친 항의, 투표권에 대한 모호한 정관 조항 등으로 고성이 오가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지역별 정서나 성향, 장르, 연령, 관점 등이 서로 다른 373명의 회원들을 애써 양분하기도 지난할텐데, 어떻게 극적인 한 표 차이로 갈라놓을 수 있는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선거의 무서운(?) 힘이 아닐 수 없다.한 표 차이의 신승(辛勝)에서 경북문인협회의 새로운 미래가 보인다. 화갑(華甲)에 접어든 경북문협이 이번 선거에서 보인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가히 역대급이다. 경북문학관 건립 추진, 문예발전기금 확충 등 공약과 지상과제가 많겠지만, 한 표 차이의 의미를 되새겨 배려와 포용으로 상대 측을 아우르며 화합과 성숙으로 지속가능한 경북문협의 더 큰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2023-02-14

과학이라는 타자

최근 OpenAI사에서 만든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가 화제다. 독일의 통계 자료 사이트인 Statista에 따르면 ChatGPT는 공개 이후 100만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에 단 5일이 걸렸다고 하며, 넷플릭스(3.5년), 트위터(2년), 페이스북(10개월), 인스타그램(2.5개월) 등에 비교해 ChatGPT를 둘러싼 대중의 관심은 지금껏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규모의 것이라 할 수 있다.그간 여러 유형의 대화형 인공지능, 특히 사용자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도록 설계된 언어모델형 AI가 여러 유형이 있었음에도 ChatGPT가 화제가 되고 있는 까닭은 이 프로그램이 우리의 상식을 월등히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 가령 특정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 코드를 알려달라고 하면 ChatGPT는 이에 해당하는 코드는 실시간으로 알려주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공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 ChatGPT는 답변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추가적인 생각을 덧붙여 알려준다. 흡사, 모니터 너머에 지식의 신이라도 기거하고 있다는 듯.신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ChatGPT는 아직 완벽하진 않다. 인터넷 정보를 기반으로 질문자에 답변하며 학습해나가는 탓에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답변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분야의 질문에 대해서는 제한된 지식만을 갖추고 있어 적절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 조금 평가 절하를 해보자면, ChatGPT는 모든 지식을 갖춘 신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일반 포털 사이트의 정보 검색 능력이 고도로 강화된, 그리하여 신뢰도에 있어 기존의 포털 사이트의 검색 값과 신뢰도를 월등히 뛰어넘는 강화된 검색 엔진에 가깝다.그럼에도 ChatGPT로 인한 변화는 이미 우리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사례를 말해보자면, 대학계에서는 ChatGPT를 활용한 과제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 중이다. 가령, ChatGPT를 이용해 만든 코딩 과제, 혹은 에세이 과제는 표절인가 아닌가. 이것이 표절이라면 어떤 대상을 표절한 것인가. ChatGPT를 이용한 과제물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 정당한가. 실제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는 이미 ChatGPT를 활용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는 ChatGPT 활용을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공고를 한다.아마도 대학은 학생들의 ChatGPT를 비롯한 대화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활용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아닌 것이, 인터넷의 보편화 이후 학생들의 과제물 표절 문제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해x캠퍼스’를 비롯한 과제물 판매 사이트에서부터 각종 백과사전식 지식 제공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과제물을 대신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때문에 대학 역시 학생들의 표절 여부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그와 같은 접근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오히려 대학에서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형 기술의 사용법을 학생들에게 부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대다수의 과제는 위키로 통칭되는 사전형 지식 사이트의 정보를 참고하고 있으며, 평가의 기준은 지식의 적확성이 아닌 그것을 활용하는 학생의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어떻게 ChatGPT의 활용을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기술의 윤리적 활용 방안에 대해서 말이다.여기에는 하나의 단서가 따라붙는다. 우리는 과연 ChatGPT의 답변을 100% 신뢰할 수 있을까. ChatGPT는 과연 인간과 다른 방식의 판단능력을 가진 과학이 만든 타자인가. 사람들이 ChatGPT가 내놓는 답변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ChatGPT의 성능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열광할 수 있는 대상을 기다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예컨대, 나를 대신해 정답을 말해주고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내 생의 독재자 말이다. 대상에 대한 잘못된 가치평가는 잘못된 열광을 낳으며, 잘못된 열광은 늘 비극으로 끝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열광도, 금지도 아닌 대상에 대한 적확한 지식이다.과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과학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다. 지금 우리가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재고하는 것, 그것이 가장 시급하다. 인공지능은 당신의 삶을 인도할 대타자가 아니라 다만 도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3-02-14

어떤 이별

관계 맺음에 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에 더욱 안정감을 느낀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책 읽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로 꽉 찬 공간에 홀로 놓이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둘러싼 배경이 화려하고 요란할수록 고독은 빨리 찾아온다. 쓸쓸한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면 이상하리만치 기묘한 평온함이 느껴지고 그런 상태야말로 가장 나다운 지점이라고 여기고 있다.동시에 나는 사람과 사랑을 믿는다. 누군가를 만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킬킬대는 순간 역시 소중한 일상 중 하나다. 부끄러움 없이 마음을 내놓으면 되돌아오는 진심에 위로받는다. 내가 힘들 때 중요한 부분을 붙들어주는 것도 타인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마음속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관계를 맺을 때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기대되는 면도 있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관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학생들이야말로 위태로웠던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특별한 관계다.처음 학교에 발을 디뎠던 날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 그 천진한 호기심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안의 모자람을 모조리 들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학생들이 무심히 뱉는 사사로운 말이 비수처럼 꽂혀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소한 순간에도 쉽게 주눅 들었다. 나는 더욱 기민하게 나를 의식하게 됐다. 그 난처함을 눈치챘던 것일까. 학생들은 나의 시시한 오답도 정답으로 믿었고 최선을 다하여 무한한 사랑을 건넸다.어느 날 한 학생이 물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골똘히 고민하다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다 어쩌면 지금이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예하게 삶을 바라봤다면 좀 더 필사적으로 움직였다면 뭔가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유의미한 조언이 될 것이었다. 비단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 앞에서 현명하지 못했던 일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나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무해한 역할도 꿈꿨다. 그러나 선생은 좋은 말만 건넬 수 없고 맹목적인 낙관만을 외칠 수도 없었다. 현실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끝끝내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던가.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못 되었으니까. 계속해서 의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저 거들먹거리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로 인해 어떤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리하여 어느덧 2월. 바로 엊그제가 졸업식이었다. 학교에 와서 처음 만났던 친구들이 삼 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었다. 열일곱 고등학생이 스무 살이 되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모두의 얼굴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당연하게 지속될 줄만 알았던 우리의 시간에 안녕을 고할 때가 온 것이다.이제 졸업생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자신만의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살면서 여러 관계를 맺고 다양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가끔은 아프거나 무너지는 일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건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었으니까.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해졌으니까.내가 아닌 타인의 미래를 간절히 그려본 적이 있던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글을 통해 타인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봤고 이름 붙여지기 힘든 모종의 감정을 나누었다. 그건 처음 만나는 형태의 우정이었다. 마음을 다했으므로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더 크고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게 더 많았다. 미련처럼 맺혀있는 마음을 졸업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갈무리했다.떠남으로 완성되는 관계가 있다. 헤어지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종결되었다. 어떤 이별은 만남보다 더 큰 설렘을 남긴다. 함께 나눴던 일들을 가슴에 품고 다가올 내일을 상상하는 일. 그것을 떠올리면 그제야 우리가 한 뼘 자란 것처럼 느껴진다.

2023-02-14

존재하지 않는 MZ세대와 소통하는 법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MZ세대는 없다. 없지만 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겠지만 사실이다.‘MZ세대’라는 용어는 ‘베이비붐 세대’나 ‘386세대’처럼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거의 20년에 달하는 시기를 하나의 세대로 묶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몇 년 전, 청년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가 ‘MZ-generation(MZ세대)’이라는 항목 자체가 영문 위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언론매체나 공론장에서도 몇 년 전까지는 MZ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MZ세대’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책이 처음으로 출간된 것이 2018년 말이다. 그것도 사회과학서적이 아니라 마케팅과 트렌드를 내세운 책이었다. 즉, MZ세대라는 개념은 M과 Z를 결합한 거대한 취향 공동체, 즉 소비 집단에게 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상업적 용어인 셈이다.그렇다고 해서 MZ세대라는 규정 자체가 무의미하고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꽃’ 중에서)고 노래했듯, 언어는 강력한 규정력을 갖는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신구세대의 갈등은 더 이상 ‘세대갈등’이라는 용어에 담지 못할 만큼 커지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의 게으름과 낡은 관성은 그 모든 갈등의 원인을 자세히 살피고 해결하는 대신, 시끄러운 것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MZ세대라는 더 큰 상자에 담아버리고 ‘취급주의’ 표지를 붙인 채 방치해둔 것이다.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들을 MZ세대라고 부르는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기성세대가 마음대로 ‘나’를 MZ세대라는 집단적 정체성에 끼워 넣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포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포항시 주최로 미혼 남녀를 짝지어 주는 데이트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를 받은 적이 있다. 인구유출에 대한 지역사회와 지자체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이러한 보수적 이해와 접근이 그들로 하여금 지역을 떠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는 아닐까. 지자체가 나서서 데이트 모임을 주최하기 전에 그들이 왜 연애와 결혼을 꺼리는지, 왜 학교를 졸업하면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를 지역사회가 함께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만약 당신이 MZ세대와 소통하기 바라는 기성세대라면 그들에게서 MZ세대라는 타이틀을 떼어 버리고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는 연습부터 해 보자. 당신의 직원이, 부하가, 자녀가 무언가에 서툴다면 그것은 MZ세대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일이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의와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관습과 예의가 유통기간을 지나 상해버린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보시길.

202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