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가 싶은데, 절기는 어느새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가을의 본색이 만산홍엽으로 몸살을 채 앓기도 전에 겨울의 입김은 벌써부터 조락(凋落)을 채근이라도 하듯이 돌풍을 내두르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이 오버랩 되는 미틈달은 잠시 쉬어가도 좋을 여유와 안식의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빠듯한 삶의 여정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옆도 뒤도 둘러보며 성찰과 되새김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망중한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곳은 문경시 호계면의 ‘시(詩)가 있는 뱃나들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항아리나 나무, 기와 등에 지역출신 시인의 작품을 써서 전시해놓은 이색적인 곳이다. 간결하고 명징한 감성의 시에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하나하나씩 시의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놓은 손길에서 문향과 인향이 결 고운 단풍 잎새로 피어나는 듯하다. 문경의 젖줄 영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촌에 큰 느티나무와 죽림정 정자가 운치를 더하면서 아기자기한 시화작품들로 감칠맛이 더해지는 그곳에서 지난 주말, ‘커피시인’ 윤보영 시인의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이 소소하고 오붓하게 열렸다.
전국적인 규모의 이번 행사는 지난 4월, 뱃나들마을(우로2리)을 ‘윤보영 시(詩)가 있는 마을’로 조성하면서 약속했었던 농촌에서의 문화축제 개최 후속편으로 ‘윤보영 시인과 함께 하는 제1회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에 팬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마을의 예비 사회적기업인 ‘영강나루터’에서 제공한 따끈한 국밥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은 동이 날 정도로 구입하여 호응이 컸다.
이어 팬클럽 회원과 주민들은 인천 무형문화재인 부평 두레놀이패의 흥겨운 풍물을 시작으로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시 낭송과 장기자랑, 윤 시인의 감성시쓰기 특강 등으로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한 켠에서는 ‘윤보영캘리랜드연구소’ 회원들과 지방의 서예가가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윤보영 시를 캘리그래피로 써주거나 가훈·명언 등을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며 시향과 묵향에 젖어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시인의 팬들은 강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뱃나들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즉흥시를 지으며 담소하는 등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전국에 8만여 명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의 팬클럽은 이같이 상생으로 함께하는 도농의 문화행사를 통해 도시인들에게는 문화적 만족감을 주고 농촌주민에게는 팬클럽회원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직거래해 농가소득에도 도움을 줘서 윈윈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명시가 시인의 고향마을을 찾아가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명소가 되고, 또한 시를 사랑하는 팬들이 명소를 찾아 음악과 시낭송 등의 테마로 작은 축제마당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번성해지는 새로운 지향점과 성장 가능성이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