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가운데 19번째가 입동(立冬)이다. 태양이 황경 225도에 위치하며, 태양의 복사량이 점점 줄어들어 날씨가 차가워진다.
한자어로는 설 입(立), 겨울 동(冬)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다. 올해는 11월 8일(음력 9월 25일)이 입동이었다. 낙엽이 모두 지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사주명리학에서 입동과 소설을 포함한 양력 11월(음력 10월)은 해월(亥月)이다. 입동은 지지(地支)의 해(亥)에 해당하며, 해월(亥月)이 시작한다. 해월부터는 양(陽) 기운이 사라지고, 음(陰) 기운만 지배하여 천지 간에 차갑고 어두운 기운만 가득 차게 된다. 만물이 활동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기다.
회남자(淮南子) 권3 ‘천문(天文)’에 의하면 “추분(秋分)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동면하는 동물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풀도 겨울을 나기 위하여 잎의 수분을 빼내고 누렇게 말라간다. 나무는 겨울에 대비하여 잎을 떨어뜨린다. 벌레도 알을 까놓고 자취를 감추는 때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입동 전에 밀, 보리와 마늘 양파 파종을 모두 끝내야 한다.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무를 캐서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고, 덜 자란 무로 동치미와 짠지를 담근다. 총각무는 수확해서 총각김치를 장만한다. 그리고 무말랭이와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등 기나긴 겨울을 지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입동에 하는 가장 큰 일은 김치 담그기와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볏짚으로 묶어 걸어두는 메주 만들기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치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이때 만든 김장 김치를 독에 넣어 구덩이를 파고 땅에 묻어 보관해 오랫동안 먹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짐에 따라 김장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김장할 때 사용하는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로,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에 소개되고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전후로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조선 초기까지 먹은 김치는 동치미에 가까운 무로 만든 발효식품이었다고 한다. 배추는 1850년경 청나라에서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되어 우리가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미꾸라지는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한다.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고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고 한 듯하다.
특히 입동에는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벌였는데, 이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고 하였다. 또한 시루떡을 장만하여 나누어 먹었다. 팥의 붉은 색이 액운과 귀신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농가에서는 행운을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던 풍속이 이제는 추억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입동은 주역에서 중지곤(重地坤) 괘에 해당한다. 곤(坤)은 만물을 시작하게 하는 근원이며, 만물을 성장시킨다.
만물을 증진시켜 이롭게 하고 완성시키는 유순함으로 올바름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크게 형통하는 모습이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 만물을 포용하여 모든 것을 낳고 기르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땅이며, 어머니다. 땅의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중지곤(重地坤) 괘는 6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으로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이 음으로 가득한 완전한 음(陰)의 상태다. 음(陰)이 지극하면 변화한다. 변하여 또 하나의 양(陽)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명리학에서 11월은 해월(亥月)이다. 해수(亥水)는 수(水) 기운이 강해 음(陰)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해(亥)는 동물로 돼지며, 강한 수(水)의 힘과 지혜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주에 해(亥)가 있으면 끈질긴 인내심이 있어 자기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하며, 혼자 묵묵히 실력을 쌓는 경향이 있고 지구력도 남다르다.
입동은 나무의 죽음이 아니라,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고 스스로 땅속으로 되돌아가는 비장한 시기다. 나무가 죽어가는 모습은 아름답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가을 단풍놀이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행복을 만끽하는 한편, 나무는 화려한 모습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상태다.
저녁놀의 아름다움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태양은 지지만, 또다시 떠오른다. 아름다움과 추함, 태어남과 죽음은 다름이 아니다. 음양의 구분이 없는 차원이 무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