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가운데 열 번째가 하지(夏至)다. 태양의 황경이 9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6월 21일(음력 5월 16일)이다. 음력으로는 5월의 절기다. 하지는 망종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다.
하지(夏至)는 여름 하(夏)와 이를 지(至)를 써 ‘여름이 다 왔다’라는 뜻이다. 지구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때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뜨지 않는다. 태양이 황도상 가장 북쪽인 하지점에 이르게 되며, 지구 표면이 받는 열량이 가장 많아진다. 더위가 지속되기에 하지 이후에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온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무렵이면 모두 끝난다. 하지가 지나도록 모심기를 하지 않으면 그해 농사에 큰 지장이 생긴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는 다르다’고 할 정도로 못 미기를 서두를 시점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므로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다.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농촌에서는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는데, 조선시대에는 3~4년에 한 번씩 한재(旱災)를 당했기에 조정과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가 성행했다.
장마가 오면 뿌리채소들이 상할 수 있기에 미리 수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에 수확하는 작물로 대표적인 것은 감자다. 3월 중순에 감자를 심으면 하지 무렵 알이 굵고 단단해진다. 이때 수확한 감자를 햇감자 또는 하지감자라고 했다.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여름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속하고, 확산하는 기운이 강한 오행이다. 화(火)는 오장 중 심장을 관장하고, 토(土)를 생(生)하므로 맛으로는 쓴맛과 단맛을 적당히 취하는 것이 좋다. 쓴맛이 더해진 채소와 단맛이 풍부한 과일을 섭취하는 것이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다. 이 무렵에는 매실 수확이 한창이다. 이 시기에는 사슴의 뿔이 빠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무궁화가 꽃을 피운다.
하지(夏至)부터는 낮이 서서히 짧아지고, 음기가 점차 생겨나면서 음과 양이 서로 그 기세를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음과 양이 다툰다’고 말한다. 또한 하지에는 생성을 주관하는 양(陽)이 극성의 상태에 이르지만, 그와 동시에 죽음을 주관하는 음(陰)이 점차 자라나게 된다. 때문에 생과 사의 경계가 갈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는 오(午)에 해당하는 달이며, 오(午)는 주역으로 천풍구(天風姤)괘에 해당된다. 천풍구(天風姤)는 위로는 양효가 다섯 개 있고, 아래로는 음효가 하나 있다. 구(姤)괘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음효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는 형국이다. 마치 새로 등장한 소인에 대한 경계와 스스로의 반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음효가 제일 아래에 있어 바람기 있는 여자로 비유한다. 힘없는 초효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머지 다섯 효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역시 바람기 있는 여자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 흐름으로 볼 때 음효가 자라나면 상대적으로 양효의 세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일종의 비유로, 음기를 의인화한 것이다. 음기가 앞으로 왕성히 자라날 것인 만큼, 적어도 음기를 북돋우는 어리석은 일은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는 구(姤)괘의 괘사에 대해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것이 구(姤)괘니, 제후는 명을 내려 사방에 알린다’라고 했는데, 다분히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바람은 세상 모든 것과 빠짐없이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나아간다. 이런 바람의 모습에서 윗사람의 뜻이 아랫사람에게 파급되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 상전의 내용이다. 허나 바람이 엉뚱한 방향으로 불게 되면 나라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경고도 담겨져 있다.
오월(午月)은 음양의 문(門)으로서 일음시생(一陰始生)의 음양이 교체하는 시점이다. 또한 오(午)는 ‘교착하다’, ‘거스르다’, ‘거역하다’는 뜻도 있다. 오(午)는 동물로는 말(馬)이다. 말은 이러한 변동과 변화에 약하기 때문에 잘 놀라는 특성이 있다. 말은 주인을 잘 몰라보기 때문에 아무나 올라타면 달리는 기질이 있다. 말(馬)은 겁이 많고, 낮에 주로 활동하는 동물로 누워서 자는 법이 없다.
사주에 오(午)가 월(月)이나 일(日)에 있는 사람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성과를 낼 때는 파도가 밀려들 듯이 실적을 내지만, 하강곡선에 이르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특성도 있다. 그러나 강한 기운이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굳세고 꿋꿋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
오화(午火)의 기본 성격은 도화(桃花)를 가지고 있고, 활동영역이 넓은 반면 성격이 급하다. 오화가 잘 발달하면 적극적이고 예의가 바르고 인간관계가 좋다. 화 기운이 많으면 자신감이 넘치고 적극적이나 성격이 급해서 싫증을 빨리 내는 단점이 있기에 차분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하지에는 낮이 길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습관은 건강과 부와 지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적 미덕이나 탁월함은 훈련과 습관을 통해 얻어진다. 우리는 미덕이나 탁월함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던 일을 한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