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가 소만(小滿)이다. 태양의 황경이 6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5월 20일(음력 4월 13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芒種) 사이다.
소만(小滿)은 한자로 ‘작은 것이 가득찬다’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조금씩 여름 기운이 차올라온다는 뜻으로 지난 겨울에 심었던 밀, 보리, 마늘, 양파 등의 열매가 영그는 때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찬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번에 뿌려놓은 싹이 이제 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벼농사를 위한 모내기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소만이라는 말은 모든 만물이 자라나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의미인데, 소만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다. 햇볕이 가득하고 모든 식물의 색깔이 연초록으로 변한다. 가을에 심어놓은 보리를 베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를 하는 때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밭농사는 김매기를 하고, 벼농사는 모판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농사 준비에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이 시기가 가장 불행했던 때다. 바로 보릿고개의 아픈 추억이 있었다. 작년에 수확한 밭작물도 다 먹었고, 들나물과 산나물도 씨앗을 맺으니 먹을 것 없고, 보리 수확은 아직 더 기다려야 했으니 모진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지금은 먹을 것이 차고 넘친다. 추수한 보리, 밀, 죽순, 봄나물인 씀바귀, 냉이, 시금치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봉선화가 피면 잎과 꽃을 찧어내고 백반을 넣어 손톱에 물을 들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과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래 이 풍속은 오행설에 붉은색(赤)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리고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속담으로는 ‘소만(小滿)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가 있다. 계절상으로 봤을 때 여름이라 따뜻한 시기이지만, 이따금씩 차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노쇠한 사람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가 있기에 경고의 의미가 있다.
소만은 사월(巳月)의 중앙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사월은 양기가 힘차게 활동하는 시기로 만물이 힘찬 에너지를 뿜어내며 정열적으로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시기다. 사월은 모내기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는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
동물로는 뱀이다. 뱀은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꺼림과 끌림의 이중성으로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사화(巳火)의 특성이다. 그 매력에 가까이 가서 친하게 지내려고 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다가 갑자기 변덕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단정하고 잘 다듬어진 용모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화끈해 보일 수 있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세밀하고 침착하고 논리적이고 예의가 바르다. 주어진 환경 변화에 따라 업무를 파악하고 전체를 장악하며, 업무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놓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장애물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뱀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물러서는 점이 없는 것처럼 이런 기운이 넘치는 달이 사월이다.
사월의 뱀은 양기의 상징이다. 성질이 급하고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성향에 어울린다. 주역으로 보면 중천건(重天乾)괘에 해당한다. 여섯 효(爻)가 모두 양(陽)으로 64괘 가운데 가장 강하고 튼튼한 괘다. 주역을 대표하는 괘다. 초구(初九)는 물에 잠긴 잠룡(潛龍)에서 시작하여 상구(上九)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
‘문언전’에서는 항(亢)자를 ‘나아가는 것만 알고 물러서는 것을 모르며, 존속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사실 나아감과 물러섬을 항상 잊지 않고 동시에 살필 수 있다면, 분명 보통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한창 잘나갈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뛰어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언전’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진퇴와 존망을 알고서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분은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이 있어도 다스릴 백성이 없으며, 어진 이가 아래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가 뒤따른다. 다시 말해 ‘지극히 융성할 때 그 지나침을 살핀다’라는 말이 주역의 큰 뜻이다.
초구 잠용은 물에 잠긴 용은 배우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상구 항룡은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겸손히 은퇴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이다. 부족한 것이 충족되면 얼마 있지 않아서 권태에 빠진다. 권태를 벗어나고자 다른 무엇을 욕망하면서 다시 고통에 빠지게 되니, 인간의 삶이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인간은 맹목적인 애욕이 있어 부족한 것을 취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욕망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같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