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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방이라는 관

“요즘 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시내에 있는 고시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자 마음먹었죠. 믿을지 모르시겠지만 사실 4년 전 제가 지금 가진 돈으로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답니다.” (황수아 희곡, ‘가로묘지 주식회사’ 부분)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인 황수아의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집값 폭등으로 고시원 임대료마저 감당 못하게 된 무주택자들이 관에 세 들어 산다는 내용의 세태 풍자극이다. 미친 주거난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관마저 구하기가 어렵다.‘관(棺)’은 육체의 노화, 질병, 불의의 사고, 절망감에 의해 삶에서 죽음으로 떠밀린 인간의 최후 거처다.황수아는 관을 더 이상 밀려날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방’으로 묘사하며 고시원의 하위 주거 형태로 두는 핍진한 상상력을 펼치지만, 사실 그 관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원룸, 옥탑, 반지하, 고시원, 달방에 뚜렷하게 나타난다.그곳들에서 발생한 무수한 고독사들을 떠올리면 1인가구의 좁고 습하고 냄새나는 방은 확실히 관이다.지난해 여름, 폭우에 침수된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방이 관이 된 것이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김성규,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던 2004년의 시는 18년 지나 시참(詩讖)이 됐다. 한국사회의 외피는 화려해졌지만, 찬란한 빛은 더 짙은 그늘을 키웠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쓰러졌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하동굴’에 산다. 관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침실과 거실과 부엌과 현관의 구별이 없는 방, 좁은 공간에 억지로 문 하나 끼워 넣어 화장실을 겨우 둔 방, 그마저도 없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방, 집이라고 하기엔 거기 사는 그 자신도 민망해서 ‘방’이라고 부르는 방, 여기 계속 살다간 죽을 것 같은 방, 이미 내가 죽은 방, 사람이 죽어도 사람이 모르는 방, 닦아내고 긁어내고 집게로 건져서 사람이었던 주검을 수습해야 하는 방, 관인지 방인지 모르겠는 방, 아니 관. 그곳이 바로 한국사회의 원룸이다.원룸은 집을 포기하고, 집 비슷한 것을 포기하고, 그나마 집 같은 것을 또 포기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사는 곳이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씨 없는 수박 김대중, ‘300/30’)라는 노래에서 무주택자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방을 구하러 다닌다.신월동에서는 옥탑 투어를 하고, 녹번동에서는 지하실 탐사를 한다.고작 “삼백에 삼십”으로는 옥상 연탄창고나 지하 방공호 같은 방 밖에 빌릴 수 없다.“삼백”은 사회초년생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지닌 전재산이고, “삼십”은 한 달에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의 거주비용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공간은 계급이 된다. 이제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에게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라고 부르는 세상이다.이 계급사회에서 원룸은 가장 비천한 세계다. 브랜드 아파트, 단독주택, 고급 빌라, 역세권 오피스텔이 카스트를 이룬다면, 계급 바깥의 원룸에 사는 장애인, 독거노인, 미혼모, 청년 예술가, 취업 준비생은 불가촉천민들이다.모두 다 소중한 생명이자 존엄 있는 인간, 하나의 개별적 우주이지만,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입장권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어 소외된 자들이다.심리적 문제, 취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사회 진출을 포기한 채 외출 없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 청년’이 서울에서만 13만명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6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설 연휴에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지만, 이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떠나갈 집도 없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틈입을 차단한 그 방들이 부디 관이 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복지는 늘 사각지대를 향해야 한다.

2023-01-24

연두가 주는 믿음

기나긴 겨울이다. 겨울의 낮은 짧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면 일부러 짬을 내어 산책을 한다. 귀한 겨울 볕을 맞으며 몸을 움직여보지만 급하게 밀어 넣은 점심 식사 때문인지 속은 더부룩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다.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모를 안양천 주변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갈 때 쯤, 어느덧 시계는 12시 50분을 가리킨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커피 한 잔을 사서 다시금 자리로 돌아갈 때엔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를 불현듯 검사 받는 듯한 시큰둥한 기분이 더해진다. 그럴 때엔 자연스레 손바닥에 말랑하게 잡히는 책 한권을 떠올린다. 연두색 표지 속 콜리플라워와 와인잔 그리고 아티초크가 그려진, 소설가 한은형 작가님의 ‘오늘도 초록’이란 책이다.‘오늘도 초록’은 한 손으로 들고 읽기 좋은 작은 판형과 자유자재로 잘 구부러지는 부드러운 표지, 모난 곳 없는 둥그런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무광 재질의 얇은 종이는 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겨 종이를 펄럭일 떄마다 기분 좋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인 만듦새가 마음에 들어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책이지만, 물론 가장 좋은 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는 글의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은 완두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식물의 연두색에 꼼짝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완두콩 때문에 알게 되었다. 슈퍼에서 완두콩을 보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자고 망사 주머니도 연두색인지… 연두색 망사 틈으로 보이는 완두콩의 꼬투리… 색과 형태가 완벽하다. 이 꼬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가르고, 벌려, 콩알들이 얼굴이 내미는 순간을 보는 건 도무지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다.’ (본문 중에서)‘그리너리 푸드’의 주제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다보면 금새 배고파진다. 맛의 묘사와 음식의 생김새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전개되어 희미하던 입맛을 깨우고 눈빛을 반짝이게 한다.‘연한 낙지와 함께 먹는 은은한 미나리의 맛’, ‘달고 시큼한 장아찌의 냄새’, ‘말랑하고 순수한 아보카도의 맛’, ‘입 안을 자극하는 포도잎 쌈의 쌉쌀함’이나 ‘입맛을 돋우는 민트와 쿠민의 색’ 등 책에 등장하는 식재료들은 얼핏 보아도 비슷한 연두와 초록색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초록주의자라 칭하며 값나가는 필레미뇽의 소고기 스테이크보다 함께 곁들어 나오는 구운 야채를 더 좋아하고, 몸과 마음이 초록의 기운에 반응하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초록을 먹지 않고 두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초록과 연두를 대하는 열렬한 예찬은 깊고 풍요로워 단숨에 연두의 세계로 몰입되게 한다.또한 저자는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연두빛의 서양호박인 주키니를 맛있게 먹고 나선 다음날 주키니를 사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후 때에 따라 주키니에 버터를 넣거나 오일을 넣거나 새우를 넣어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재료의 조화와 조합에 신경을 쏟는 것은 물론, 먹는 시간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넣어 새로운 요리를 구상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낯선 식재료를 더 맛있게 연구하고 요리해 결국 내 입맛에 꼭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끌림을 끌어와 나의 것으로 누리어 삶의 애정을 더하는 자세가 무척 근사해 보였다. 저자가 정성스레 내어 놓고 이야기하는 모든 연두와 초록으로 이루어진 음식 외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생한 숨이 방울방울 매달려 부지런히 반짝이는 것 같달까. 봄을 알리는 색이라 불리는 연두는 메마른 겨울을 뚫고 새로운 생명을 틔워 자라난다는 점에서 싱그럽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지녔다. 또한 노랑과 초록의 중간색에 자리한 연두는 일상 속에서 새싹, 어린이, 자연 등의 색채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정신의 평화를 갖게 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책에서 연두를 발견한 이후로는 이제 막 고개를 드는 연두를 느긋이 바라보게 되었다. 연두가 품은 조용한 평화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다가오는 계절을 기대하게 되는 기분 좋은 믿음을 갖게 한다.회사 옆에 자리한 안양천의 산책로는 물길을 따라 고르게 깔려 있다. 퇴근 시간 이후 러닝을 할 때에 주로 택하는 장소기도 하다. 걷고 달리는 이 땅은 머지않아 새로운 연두의 세계가 펼쳐질 테니, 겨울 내내 쌓아 왔던 습관과 생활에 대한 애정을 착실히 들고선 새로운 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2023-01-24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까치 까치 설날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르는 동요가 귓전에 맴도는 설날이 다가왔다.올해는 일요일이라 작은 설이라는 ‘까치설’과 대체공휴일을 더해서 4일 연휴이기에, 10여 년 만의 설날 한파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가족 모두 한데 모여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바라는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음력 정월 초하루는 일제 강점기 때 구정(舊正)이라 했고, 국민 모두 땀 흘리며 일했던 박정희 시절에는 신정·구정 2중 과세(過歲)를 하지 말라고 공휴일에서 제외시켰고 전두환 때인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가 4년 후 ‘설날’ 명절 이름을 되찾아 고향의 부모님 뵙고 가족과 친척의 만남으로 정을 나누는 4대 명절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그러나 세대의 변화로 고유한 민속 명절로서의 가치와 풍습을 이어나가려는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설’이라는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새해가 되니 ‘낯설다’, 묵은해를 보내니 ‘서럽다, 섧다’, 한 해의 시작이니 몸과 마음을 ‘사리다’, 새로운 기운이 ‘서다’ 등이 있지만, 새해를 맞아 마음을 곧게 가지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서게 한다는 뜻에 설날의 의미를 찾고 싶다.정월 초하루이기에 원일(元日) 원단(元旦) 등 처음이라는 뜻을 많이 쓰지만, 신일(愼日) 달도(601B5FC9) 등 삼가고 조심하자는 것도 있으니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하고 매사에 신중하는 삶의 자세로 설날을 맞이하자.올해는 코로나 방역 조치 해제 후 첫 설 연휴이니만큼 교통 정체가 심할 것이 예상되지만, 버스·철도·항공기·연안여객선 등 교통수단을 증편 운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4일간 면제한다고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고향을 찾아 가족의 안위를 묻고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다.설날 아침, 고운 설빔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차례(茶禮)를 지낸 후 웃어른께 세배드리고 세뱃돈과 함께 안녕과 건강을 바라는 덕담(德談)을 주시면 그 속에 가족의 훈훈한 정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보는 것도 설날의 행복이다.그리고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긴 가래떡 맛있게 먹고 구들목에 둘러앉아 윷놀이도 하다가 밖으로 나가 남자애들은 제기차기 딱지치기하고 아가씨들은 널뛰기하며 담장 너머를 살피기도 했었다.어른들은 들판에서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액운을 날려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자취일 뿐, 요즘은 보기 어렵다.설날 새벽에 복조리 장수의 외침에 일어나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를 몇 개 사서 부엌 기둥에 묶어두었던 추억이 있다. 지금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예쁜 끈으로 묶은 장식용 복조리를 사서 문간에 걸어두어야겠다.새해 첫날 새벽에 처음 듣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풍습에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 소리는 흉조라 하니, 고운 댕기 들이고 예쁜 설빔 차려입은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 던져주면 할배 할매 부르며 깔깔대고 안겨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치 소리가 아닐까….

2023-01-19

제2의 바라카 기적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유명해진 바라카 원전을 우리는 ‘기적의 원전’ ‘사막의 기적’이라 부른다. 한번도 원전 수출을 해본 적이 없는 한국이 세계 최강 원전기술을 자랑하는 프랑스를 제치고 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막의 모래 폭풍과 50도가 넘는 열사의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원전을 온전히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4년동안 한국측은 약속한 기일과 예산 범위 내에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고도의 안정성이 요구돼 툭하면 늦어지기 일쑤인 원전 준공일을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은 이를 지켜낸 것이다.UAE 모하메드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 치켜세웠고 “바라카 원전을 통해 쌓은 양국의 신뢰”라 언급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폴란드 원전 수주전이 벌어졌을 때도 우리나라가 제일 강조한 장점은 예산과 공기를 정확히 지킨다는 사실이었다. 폴란드 일부 언론은 “한국이 덤핑하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을 수용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으나 UAE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신뢰는 한국 원전의 대외 신인도를 올리는 데도 한 몫할 전망이다.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이 주계약자로 사업을 총괄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두산, 현대, 삼성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공정 전과정에 참여하는 팀코리아 형태로 일하고 있다.한국기업들의 팀워크와 끈질긴 근성, 땀 등이 모여 국가의 신뢰를 높인 것이나 다름없다. 열사의 사막에서 선전한 우리기업의 투지가 제2의 바라카 기적을 다시 만들지 국민적 기대가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9

여당의 폭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박감별사’가 정치권에 재소환됐다. 국민의힘 내홍이 여당의 아픈 상처인 ‘진박감별사’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현재의 여당 상황은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이 전당 대회를 앞두고 내홍이 깊어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친윤세력으로부터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나경원 전 의원이 코너에 몰리자 친윤계를 공격하며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나경원 전 의원은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됐다”고 했다. 장 의원을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칼자루를 휘둘렀던 친박계 중진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공천 파동’과 ‘옥새 파동’이 터지면서 압승이 유력했던 새누리당은 패하고 만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판세가 급격히 불리해지자 대구 지역 새누리당 후보들이 두류공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 퍼포먼스까지 벌였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회초리를 들어주시라”며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극약처방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는 결국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친윤계 초선 의원들이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며 나 전 의원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친윤, 비윤, 반윤, 진윤, 멀윤으로 분화됐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 당시와 흡사하다. 배경엔 차기 총선 공천권이 자리하고 있다. 차기 총선을 위한 ‘줄서기’다. 이 줄을 놓치면 공천은 물건너가기 십상이다. 현역 의원들이 동아줄을 잡기 위해 줄 서는 모습이 역력하다.대통령 바라기는 점입가경이다. 거대야당의 횡포를 나무라던 여당이었다. 그런 여당이 한 솥밥 전 동료 의원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다. 초선들까지 집단 가세, 마구 핥퀴고 있다.나 전 의원의 발언이 정부 기조와 다르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대표 출마를 막기위해 벌떼같이 덤벼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경선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꿔 반윤인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 논란이 됐다. 다시 나경원 솎아내기로 눈총받고 있다. 여당의 잇단 비상식적인 폭주에 국민은 머리를 젓고 있다.당 분열을 우려하는 내부 위기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자해정치’라는 비판까지 나온다.친윤계의 대응에는 나 전 의원 간판으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나 전 의원이 대표가 될 경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공천권을 쥐고 당을 장악해야 다음 총선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윤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할 우군 확보도 절실하다. 하지만 유승민과 나경원 등 비주류의 대표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당의 일사분란한 모습이 국민에게는 온당치않다는 느낌을 준다.현재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다한 사람들이다. 국민의힘의 내분은 정치 불신을 더할 뿐이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국민의힘의 분열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2023-01-19

나목(裸木)을 읽다

배문경수필가 팔다리가 앙상하다. 바람 한 점 붙들 힘조차 없다. 겨울바람이 팔과 다리 사이로 쌩쌩 지나간다.남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 서있는 나무들이 한결같다. 하나같이 헐벗은 노인의 몸피 그 자체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탁발승의 모습이다. 아! 모두 다 내려놓고 서있는 나무가 고행하는 성자 같다.나무가 서 있는 길가를 벗어나면 들판은 바람소리로 가득하다. 날아온 까마귀 떼들이 낟알을 주워 먹는지 전선위에 앉았다가 떼로 몰려와 논을 새까맣게 수놓는다. 저들도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몸피로 수십 킬로를 날아다닌다. 겨울의 풍경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다 버리지 않고 어찌 가벼워 질까. 허공을 날아야하는 새들의 숙명이다. 저 가벼움을 위해 부리로 씨앗을 쪼아 먹고 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빨리 나는 생존을 몸속 깊이 유전(遺傳) 받았을 새. 새들도 나목처럼 뼛속을 비워 겨울을 난다.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은 새 위에 얹힌 그림자로 상상의 새처럼 크다. 그것 또한 가볍기만 하다.새는 자유를 찾아 난다지만 서있는 겨울나무는 제 뿌리로 단 한 보를 옮기지 못한다. 그래도 살아남아 내일로의 순환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바람이 사지를 흔들며 멱살을 잡고 비가 온몸을 적셔도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그 무엇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도 변함없는 것으로는 나무만 한 것이 있을까.장기유배지를 다녀왔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포항 장기 유배지인 장기숲(장기임수)을 보았다.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 곳에는 송시열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다산이 머물던 곳에는 유림(儒林)인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 우암은 가정과 향당과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다. 큰 눈으로 보면 그가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의 세상이었다.“….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는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의 부분이다. 두 거장이 내 몰린 곳에서 나무는 귀향 살이 하던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고뇌로 메말라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메마른 삶을 산다는 것은 힘들다. 정년을 앞둔 직장생활은 편치 않다. 활기차고 진취적인 젊은 날과는 달리 경기의 후반을 뛰는 선수처럼 승부에 마지막 온 힘을 부어 스스로를 태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수강했던 인생 재설계 과정이 생각난다. 백세시대,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삶의 욕망과 집착을 접어 몸과 정신을 가볍게 비워내야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다.내일을 채울 또 다른 준비는 젊은 날과는 다른 생각과 대책이다. 좀 더 깊어진 인생의 연륜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주위에 서서히 정년을 맞아 자신의 의자를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늘어나는 노인의 숫자와 더불어 실버가 실버를 간호하는 세상이 왔다. 젊은 노인세대가 세상의 빈 곳을 채울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꽃과 잎을 다 털어낸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자신을 향해 깊게 파고들어 기도하는 저 나무가 나의 저변에 깔린 손톱크기 밖에 안 되는 자존심과 깜냥을 비웃는 듯하다. 단단함과 고요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수묵화처럼 배경과 나무색만으로도 그 깊이를 짐작할 명작(名作)이다.추사의 세한도는 귀양길에서 만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그림이다. 그 당시 제주도에 유배를 간 그에게 제주도라고 덜 추웠으랴.이번 겨울은 조금 더 춥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 한계를 체감한다. 나이만큼 무거워지는 여건은 저 겨울나무가 묵언처럼 제시하는 침묵(沈黙)과 구도(求道)만이 답이 아닐까.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나무가 오늘 아침, 안부를 묻는다.“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2023-01-18

<1> 당나무의 예언으로 공매에 참여하다

경북매일은 계묘년 새해를 맞아 서진국 작가의 단편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를 연재합니다. 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 는 1950년대 삶의 각오를 1980∼1990년대 부동산 투자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기업체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격주 목요일 6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입니다.1. 껄껄껄,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고, 허참! 동네 입구에 목 좋은 요지 땅에 서 있는 당나무가 말했다. 귀신도 빌딩은 쳐다봐야 한다고 또 깔깔댄다. 옛날 같으면 빙의가 된 당나무 앞에서 감히 여자들이 깔깔 되다니, ‘세월 이긴 장사 없다더니….’ 하면서 당나무가 혀를 찼다. 선돌가 마을 입구에는 수백 년 된 수령을 알 수 없는 당나무가 있다. 주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위치에 따라 당나무가 될 수 있는데, 마을입구나 신당 곁에 서 있으면 당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킨다. 당나무는 그 나무에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 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어지는 나무를 말한다.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태백산맥 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 밑에 강림하였다. 신목 신앙이 한민족의 태초부터 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고조선 이래 신목에 대한 신앙은 무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옛날부터 땅의 정기가 하늘과 통하는 곳에 신당을 지어 놓고 제사를 지냈다. 마을을 수호하고, 마을 주민들의 긴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당나무도 결국 그가 서 있는 토지 위치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된다.태백산맥이 동해바다에 다다라 다시 불끈 솟은 선돌가, 마을 입구 최고 요지에 서 있는 신목이 된 당나무는 마을은 물론 국가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꿰뚫고 있다. 소박맞은 여자가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잠시나마 당나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나무 위에 모여 있던 학들을 총으로 쏘려 던 포수를 벼락 맞게 한 것도 그랬다. 남남쪽 월남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맹호부대를 따라 떠났던 박씨도 여기서 애인과 포옹하다 끝내 떠나고, 슬프게도 전사했다는 통지만 돌아왔다. 가난해서 목숨을 담보로 한 머구리의 슬픈 애환의 사연도 서글프다. 선돌가 당나무에는 또 다른 큰 비밀이 있었다.선돌가에서 친구같이 자란 당나무는 김 사장과 반드시 지켜야 할 운명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당나무가 지금처럼 자라 신목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김 사장의 역할이었다고 당나무는 생각하고 있다. 날씨가 가물어 목이 말라 갈기갈기 말라 죽어 갈 때도 그렇고, 도로가 새로 나게 되어 당나무가 대형 포크레인에 베어 쇠톱으로 동강동강 잘릴뻔 한 것 모두가 김 사장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여 우회 도로가 나게 한 것이다. 당나무는 김 사장에게 신목의 주술을 걸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태수의 빙의를 씌워준다. “태수 태수 비게 태수 용마람에 대장” 지붕 위에 있는 용마람 최고 태수 대장에게 도술을 부려 달라고 맡겼다.김 사장은 용마람 태수 대장의 신령으로,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라는 한편의 신의 계시를 서술한다. ‘부동산 신화’는 부동산으로, 인생역전을 이룩한 생생한 실제 체험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 한 것이다. 김 사장은 지난 밤에 당나무의 신령스러운 꿈을 꿨다. 당나무가 자기 자리를 내놓으면서 거기에 앉으라고 한 것이다. 평소에도 김 사장은 마을의 수호신인 그 당나무를 믿고 있었다. 김 사장이 A토지구획정리조합으로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합이 마련한 회의실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웅성대고 있었다. 민간 조합에서 체비지를 공개 추첨을 통하여 매각하고 있었다.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기저기서 몇 명씩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으나 대부분 초조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김 사장도 이번에 조합에서 매각하는 체비지 공매에 참여하기 위해 5일 전에 미리 입찰보증금을 입금하고 오늘 공개 추첨을 통한 매각 절차에 참여하고 있었다. 입찰방법이 감정가로 해서 입찰 통에 넣고 입찰표를 공개적으로 뽑는 방법이었다. 복불복이었다. 김 사장은 조합이 매각하는 토지 중 가장 요지 중의 요지의 두 필지에 참여했다. 먼저 한 필지에 87명이나 투찰한 토지부터 공매 절차를 진행했다. 조합에서 입찰에 참여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여한 필지부터 개찰했다. 서진국 작가 민간이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행정기관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지정한 곳에 토지소유자들이 민간조합을 만들어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보면 토지소유자들이 일정한 동의 형식으로 구성한 조합이 시행사이고, 조합이 직접 택지개발을 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러한 능력을 가진 건설업체 등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를 시공사라 한다. 일반인들이 토지구획정리지구에 부동산을 투자하면, 대체로 안전하면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자의 방법 중 하나이다.구획정리 방식의 토지의 변화는 당초 자연녹지 상태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 계획이 지정될 때 가장 가격이 폭발적으로 뛴다. 그 후 조합이 구성되어 개발 계획이 승인되어 큰 도로망이 나오면 다시 한 번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긴다. 산을 깎는 등 본격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실시계획이 승인되면 필지별 감정을 하여 환지예정지를 지정하는데 이때가 되면 자기 토지의 위치를 알 수 있어 또 한 번 토지의 신분이 변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완료되어 환지처분이 되면 모두 건축이 가능하고 신번지가 나와 등기가 된다.

2023-01-18

건강하고 오래 사는 법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예전엔 노인이 하는 ‘어휴, 죽어야지’라는 말이 삼대 거짓말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아파서 힘들다 하는 하소연이지만 그럼에도 내심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일 것이다.옛 원전에도 이러한 장수와 관계된 구절들이 있다.‘상고시대에는 도를 알았기 때문에 음식에는 절도가 있었고 생활에는 법도가 있어 함부로 힘을 쓰지 않아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이다.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박수가 늘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동공은 확장되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소화기로 도는 혈액을 근육으로 보내어 빠른 판단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문제는 요즘 우리가 겪는 생활에서 이러한 상황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업무에 대한 부담, 가족들과의 불화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신경 쓸 일은 자꾸만 늘어간다. 스트레스에 과다 노출되면 자주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지며 불안감도 심해지고 불면증도 생긴다. 소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만성 위염 등이 생길 수 있고 이런 건강 악화는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졸이 분비되는데 이는 일종의 면역 억제 상태를 유지시켜 감염성 질환이나 암 등의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받는 것이다.‘황제내경’에서는 ‘뜻을 가라앉혀 욕심을 적게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수고롭게 하여 게으르지 않게 하면 기가 순조로워져서 각기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모두 원하는 바를 얻었다’라 하여 스트레스의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욕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음이 편안할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행동하면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동의보감’에는 장수하는 섭생법으로 고치법(叩齒法·치아를 부딪히는 것)과 호흡법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이는 일종의 명상법으로 편향 집중된 생각을 환기시키고 고치, 호흡 등의 부담없는 동작들로 주의를 돌림으로써 만성 스트레스의 상태를 빠져나오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를 실천하는 것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다른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 훨씬 쉬운 것이다.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의 관심사였던 오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우리는 진시황이 찾아 헤매던 불로초를 곁에 두고도 먹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아 그간 너무 오래 달리기만 하여 내 마음이 지친 것은 아닌지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나를 좀 더 아껴주는 한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3-01-18

예정된 미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방대학에서 근무하다보니 출산율에 민감한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국가거점국립대학으로 주변의 사립대학에 비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조금씩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우리 대학은 ‘탄력정원제’라는, 경쟁력이 없는 학과의 정원을 인기 있는 학과에 배분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인문대학에 정원 미달인 학과가 있는 까닭에, 입시철이면 경쟁률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났다.1인 가구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출산율이 1이 안 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출산율 감소는 한국 고유의 문화인 셈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5년 이후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연도별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후 급감하여 2022년 25만 명 수준이 되었다. 출생아 수가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시절 태어난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2016년 출생아가 대학에 입학하는 2035년 이후의 상황은 상상조차 두렵다.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라는 한국적 문화 현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때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에 따라 사직하면서 널리 알려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2005년 출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5년은 40만대 후반을 유지하던 출생아 수가 43만으로 급격히 떨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다. 이후 현재까지 단체는 유지되었지만, 출생아 수는 20만대로 진입했다. 이 정도면 진작 해체해야 마땅한 조직이다.2023년에 출생아 수는 어디까지 또 떨어질까? 어쩌면 출생아 수를 늘릴 고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편이 현명한 것일 수 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어울릴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점점 심각해지는 ‘고독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뭐 하나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우리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을 준비가 되어있나.입학정원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앞두고 대학개혁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산업 동향과 취업률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현재의 방향성이다. 그런데 한국 대학은 20년 전부터 비슷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문학은 20년 전에도 지금 현재도 위기다. 산업과 자본의 시각에서 인문학은 언제나 불필요한 지식이었기 때문이다.‘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의 수단으로 저출산 문제를 다루어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개혁은 눈앞의 산업 동향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변화 방향에 대한 협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앞서 제기한 미래 사회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나 고독사 문제에 대한 질문과 그 해법을 찾는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시각을 바꿔야 예정된 미래를 조금이라도 웃으며 맞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1-18

고교평준화제도의 명과 암

홍석봉 대구지사장 중학교 교육이 고교입시 위주로 과열되자 교육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별로 선택 지원하는 고교입시를 폐지했다. 고교평준화제도다. 교육격차를 줄이고 교육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반계 고교는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지역별로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는다.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첫 시작됐다. 1975년에는 대구·인천·광주가 1979년에는 대전·수원·마산·전주·제주·청주에서 시행된 후 중소 도시까지 확대됐다.하지만 학력 저하, 교육여건 미비 등 문제가 발생했다. 학부모 등이 반발하자 일부 지역에서 평준화를 해제했다. 2000년대 이후 다시 적용지역을 확대했다. 2008년에는 포항에서 고교평준화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고교 진학을 위한 입시 과열을 막고 학력 격차를 줄이며 학생 간 위화감을 없앨 수 있었다. 반면 교육의 하향평준화,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교육의 획일화, 사립고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2023학년도 대입수시합격자 발표 결과 비평준화 때 한해 30여 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던 지역 명문 포항고가 고교평준화 이후 쇠락을 거듭, 올해는 단 한 명의 서울대 합격자도 내지 못했다. 대신 포항영신고와 동성고는 각각 4명씩 합격했다. 평준화의 명암이다.기대됐던 사교육비 감소와 과열 교육 해소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학습 부담을 줄이지도 못했다. 보완책으로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이 도입됐지만 또 다른 1류고를 낳았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평준화제도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경쟁을 통한 수월성 추구라는 상반된 이념을 조화시킬 방안은 없을까./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8

일자리만큼 문화가 급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 위기가 전국뉴스에까지 다루어졌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누구도 신통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가히 대학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역에서도 졸업과 함께 젊은이들이 사라진다. 뉴스에 등장한 청년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걸 첫째 이유로 꼽는다. 혹 두 번째 까닭을 물어는 보았는지.필자가 대학에서 발견한 또 하나 중요한 까닭은, ‘지역에는 재미가 없다’였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고 삶을 풍성하게 할 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혹 수도권과 비슷한 무엇이 있다고 해도 규모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같은 값이면 지역이 아닌 큰 도시에서 즐기고 싶다고 한다.무엇이 있어봤자 수도권에는 이미 있었던 게 뒤늦게 펼쳐진 정도라고 평한다. 4년 이상 머물러 공부했던 지역에 대하여 그들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대학이 지역에 있어도 ‘지역의 대학’은 아닌 셈이다. 짧지않는 시간이었음에도 지역은 대학생들에게 비전과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터이다. 대학생들이 재학 중에 지역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고 졸업 후에도 머물러 삶을 이어가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역에 문화가 있다는 말은 타지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 타지에도 있는 걸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모방 또는 추격이면 몰라도 지역의 문화라 부르기엔 부족한 게 아닐까.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만나보지 못한 볼거리, 맛보지 못한 먹거리와 찾을 수 없는 놀거리가 우리 지역에 있어야 한다. 문화가 힘이 되려면 차별성과 독립성이 느껴져야 한다. 달라야 하고 여기에만 있어야 한다. 놀라워야 하고 타지에는 없어야 한다. 비슷한가 싶어도 다르게 만들어야 하고 이곳이 아니면 찾을 수 없어야 한다. 희소성이 있어야 문화가 되고 독창성이 보여야 사람이 모인다. 지역의 분위기에 문화의 상상력이 넘실거리면 재미를 느낄 발길이 머물게 된다.문화에 젊은 감각을 실어야 한다. 대학생 청년층과 다음 세대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를 ‘옛 모습을 복원하는 정도’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고 멋진 이야기를 재현하는 일이 소중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기고 누릴 만한 재미를 싣지 못하면 구태를 찾아낸 이상의 의미를 건질 수 없다. 멋진 옛이야기와 오랜 전통에 오늘의 감각을 실어 쉽고 재미있게 나눌만한 문화상품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어린 세대가 반기는 문화가 만들어질 때 문화에도 비전이 실리고 미래가 열린다. 멈춰선 느낌을 가져야 문화라 여기는 생각을 벗어야 한다. 문화를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지역은 또다시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문화의 마당에 젊은 감각이 흐르고 청년문화가 깃들며 다음 세대가 호흡해야 한다. 굳이 붙들지 않아도 찾아와 머무는 지역이 되려면 문화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다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문화콘텐츠에 젊은 감각을 입혀야 한다. 문화가 지역의 내일을 당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01-18

블랙아이스(Black Ice)

우정구 논설위원 2019년 12월 14일 새벽 상주~영천간 고속도로에서는 43중 충돌사고로 차량 40여 대가 부서지고 7명이 숨지고 3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고의 원인을 블랙아이스로 지목했다.블랙아이스는 겨울철 도로 표면에 얇은 얼음막이 생기는 결빙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 도로 위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얇은 빙판으로 얼어붙게 되는데, 이때 자동차가 급제동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얼음막이 아스팔트와 비슷한 색깔을 띠고 있어 운전자도 빙판 여부를 잘 구별할 수 없어 겨울철이면 자주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블랙아이스 사고는 일어났다면 대형이어서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지난 15일 밤 경기도 포천시 구리포천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40여 대의 추돌사고도 당국은 블랙아이스를 유력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도 오전부터 포천에 내린 눈으로 도로가 얼어붙어 사고수습에 애를 먹었다고 전하고 있다.언론이 고속도로상에서 발생한 빙판길 사고를 블랙아이스로 부른 것은 불과 10년 전부터다. 살얼음이나 빙판길 같은 우리말을 두고 굳이 블랙아이스라 표현한 데 대해 일부 학자는 외래어 남용이란 지적도 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살얼음이나 빙판길이란 표현보다 블랙아이스란 표현을 씀으로써 일반인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주었다는 주장이다. 국립국어원이 블랙아이스 대신 살얼음으로 다듬어 쓸 것을 제안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블랙아이스가 통용어다.블랙아이스를 겨울철 침묵의 암살자로 부른다. 그만큼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겨울철만 되면 발생하는 블랙아이스 사고 근본적 대책은 없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3-01-17

‘친윤계’만의 리그전, 민심은 뒷전인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정치권 뉴스의 블랙홀이 돼 버렸다. 3·8전당대회 당권레이스 출마여부를 저울질하면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거론했다가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매일 실황중계를 하는 것처럼 공개망신을 당하고 있다.지난주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 자리까지 ‘해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파면’ 다음으로 센 중징계 처분이다. 대통령실은 “다양한 해임 사유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불쾌감이 액면 그대로 노출된 인사다.이러한 노골적인 인사조치는 나 전 의원이 지난 9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 촉매가 됐다고 한다.나 전 의원은 이날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사표를 낸 후, 윤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해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격성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읽고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서 ‘제2의 유승민’이라는 죄목을 붙여 해임조치를 했다는 소문이다.나 전 의원 해임에는 장제원 의원이 총대를 멘 것 같다. 장 의원은 지난 주말 나 전 의원을 향해 “마치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전형적인 약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反尹)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연속해서 그를 공격하고 있다.나 전 의원은 그동안 당권레이스에서 가장 앞서왔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장 의원과 ‘김장 연대’를 맺은 김기현 의원에게 2등으로 밀려났다. 친윤계 의원들의 당 장악력이 그만큼 세다는 의미다. 특히 대표적 ‘윤핵관’으로 통하는 장 의원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정치권에선 만약 김기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될 경우 장 의원이 차기 총선의 공천을 주도할 것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지금도 장 의원은 여러 현안에 대해 ‘대통령 의중’을 대변하는 메시지들을 내놓으면서 권력자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전형적인 예를 한 개 들자면, 얼마 전 ‘한동훈 당대표 차출론’이 나왔을 때 그는 “우리 대통령께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장 의원의 여권내 위치는 그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공감’에 당 소속 의원 115명 중 절반이 넘는 65명이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윤 대통령도 지난해 11월말 당 지도부 회동을 며칠 앞두고 대통령 관저에 장 의원을 비롯한 측근 4인방(윤핵관) 멤버들을 가장 먼저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만찬을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장 의원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윤심(尹心)’을 둘러싸고 당권레이스가 과열되는 것은 내년 총선민심을 고려하면 지극히 좋지 않은 모양새다.만약 전당대회가 현 판세대로 진행돼 친윤계가 당권을 장악한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들만의 리그전을 하기 위해 울타리를 쳐놓고 내년 총선에서 국민에게 어떤 명분으로 ‘다양한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

2023-01-17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ChatGPT의 출현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2022년 11월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인공지능 연구조직 오픈에이아이(OpenAI) 가 인공지능 기반의 언어 생성 모델인 챗지피티(ChatGPT) 서비스를 무료로 출시하였다. 해당 서비스는 출시 5일만에 100만명의 사용자를 달성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혹자들은 “구글과 같은 전통적인 검색 서비스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주장과 함께 검색 엔진의 새로운 미래기술로 챗지피티를 지목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챗지피티가 기존의 검색 서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과연 챗지피티는 어떠한 서비스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필자는 202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팀과 지피티-2(GPT-2) 언어 모델을 활용하여 펌웨어(Firmware) 제품에 적합한 코드 자동 완성 기능을 개발하는 공동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당시에도 지피티-2 언어 모델의 성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불과 3년이 지나 출시된 이번 챗지피티의 서비스를 필자가 직접 실험해보니 현재 많은 외신들이 해당 서비스에 대하여 대서특필하고 있는 이유가 쉽게 납득이 되었다. 실제로 필자와 같이 많은 이용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실험해보고 다양한 후기들을 남기고 있다.가령, 사용자가 특정 질문을 했을 때 완성된 형태의 글로 답을 내놓는 경우, 컴퓨터공학 관련 종사자가 작성한 코드를 입력했을 때 해당 코드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된 코드를 제공하는 경우, 대학생들의 작문 숙제를 대신 수행해주는 경우 등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의 여러 가지 맥락과 조건을 고려해 맞춤형 대답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다.이제 인류는 기존의 검색 엔진을 통해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보다는 챗지피티와의 소통을 통해 적절한 질문을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챗지피티의 성공적인 데뷔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챗지피티의 악용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학교의 몇몇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컴퓨터 관련 과제물을 해결하거나 작문과 관련된 과제물을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기자들을 통해 보도되고 있으며, 챗지피티가 한국어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대한민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1956년 다트머스 학회를 통해 처음으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소개된 이후로 인공지능 관련 기술들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칼럼을 작성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막을 수 없다면,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들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칼럼을 수정하고 있는 필자를 그려본다.

2023-01-17

44년 時調의 보법, 맥시조문학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슨 일이든지 마음먹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어렵다. 시작의 첫 마음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꾸준히 지키고 지탱하며 실천해 나가기는 더더욱 만만찮다. 누구나가 마음먹은 바를 무난하고 순조롭게 이루고 싶어도, 현실의 여건이 녹록찮고 의지와 상황의 변화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 뜻한 바들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니, ‘창업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그러나 요새는 작심삼일을, 마음먹는데 3일씩이나 걸린 것으로 보고 최소한 30일 정도는 해봐야 일의 지속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여기기에, 일단 무슨 일이든지 부딪치며 시작하려는 결단과 시도가 대세인 것 같다.어떤 일을 계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처음 시작의 결심 못지않은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와 자세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마음만 먹고 이어가지 못한다면 시작하지 않음만 못하다고들 한다. 이른바 ‘중도포기’란 물 속에서 수영을 하다가 자맥질을 멈춘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페달링을 못하는 것과 비슷하여, 멈추는 순간 그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길바닥에 쓰러짐을 의미한다. 그만큼 어떤 일이나 목표를 향한 계속적인 몸놀림과 실행력이 중요하고 지속가능한 추동력이 관건임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시작하고 출발해도 낙오되거나 주저앉는 것은 결국 과정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의 차이가 아닐듯 싶다.그런 측면에서 한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40년 이상 해마다 발간, 작품활동을 하며 문학적인 교감과 소통으로 문학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노력은 가상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바뀌는 동안 몇몇의 동인들이 오고 가거나 활동의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44년째 명맥을 유지하며 시조창작과 작품발표의 소신을 이어오고 있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율격이나 음보, 자수 등의 제한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우리나라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時調)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문학활동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세상에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대에 애써 전통을 고수하며 시조의 튼튼한 맥이 되기 위해 시를 향한 외로운 보법(步法)을 꺾지 않고 유장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포항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맥(脈)시조문학회 동인들이다.맥시조문학회는 1979년 창립 이래 회원 모두가 시조와 문학을 사랑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문학적 소신으로 현재까지 끈끈한 결속력과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시조문학 단체다. 치열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정갈한 언어의 형상을 단아하고 팽팽한 율과 격이 흐르는 시조 3장에 담아내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시조문학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한 맥시조에서 최근 동인지 42집을 발간하고, 동인 중 한 명이 빼어난 작품으로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장 본상까지 받게 돼 한층 고무적이다. 시조의 굳건한 맥이 줄기차게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2023-01-17

꼬리 없이 사는 사람들

‘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있다. 공동체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명에게 책임을 지울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꼬리를 자르는 대표적 동물은 도마뱀이다. 이규리의 시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 아무렇지도 않게 / 몸이 몸을 버리지요” 포식자가 나타나면 도마뱀은 별 쓸모없는 꼬리를 먹이로 내어주고 본체는 그사이에 도망간다. 꼬리는 꿈틀거리며 적을 유인한다. 마치 여전한 생명력이 있다는 듯이. 온전하게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일부를 내어준다는 것이 ‘꼬리 자르기’의 핵심이다.인간에겐 꼬리가 없다. 대신 꼬리가 있었다는 흔적은 있다. 꽁무니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있었어도 꽤 멋졌을 텐데. 왜 없어졌을까.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게 되면서 꼬리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빨리 달리거나 앉을 때 꼬리가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이젠 쓸모가 없어져 흔적으로 남은 기관. 그런 것이 인간에겐 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지금 남은 신체 기관들도 모두 유의미하진 않다. 이를테면 사랑니. 뽑아버려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이빨은 유용성은커녕 고통만 안겨주는 기관이다. 맹장이야말로 없어도 되는 대표적인 장기다. 잡식성으로 주식이 변화한 인간에게 식물성 먹이를 분해하는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다.그러니 지금 인간의 형태가 완전하다고도 할 수 없다. 손가락이 열두 개였다면 더욱 빠르게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을 것이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면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당장 내일 새로운 신체 기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당장엔 불편할지 몰라도 금방 적응하게 될 것이다.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발전해온 생명체는 끝끝내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순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인류가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지는 결코 모를 일이다.동물의 꼬리, 그중에서도 강아지의 꼬리는 감정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강아지는 확실한 감정적 동요가 있을 때 꼬리를 움직인다. 기쁘거나 반갑거나 신나거나 화나거나 슬플 때. 움직이는 모양은 기분에 따라 다르다.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흔들 때도 있고 꼿꼿하게 세우기도 하며 축 늘어뜨리기도 한다. 이토록 선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존재라니. 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사랑스럽단 말인가.만약 인간에게도 꼬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의사소통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그러한 신체 기관으로 인해 감정을 결코 속일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고 진정성을 외치는 정치인의 발화가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상대의 꼬리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선이 되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힘으로 작동했을 것이다.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언어는 얼마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통제할 수 없는 꼬리를 붙드는 것보다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의 꼬리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감정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이니까. 꼬리가 없어야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인간에게 여전히 꼬리가 남아있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꼬리 자르기’를 할지도 모른다.거침없이 자기의 신체를 자르는 도마뱀은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숭고한 지점이 있다. 자기 살을 내어주고 심장을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자른다. 그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된다. 문제는 잘려 나간 사람들, 그러니까 불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버려진 사람들이다.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이 유일한 미래인 자들. 혹은 자신이 잘린 꼬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꿈틀거리는 자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건 이런 것이다.단단한 꼬리뼈를 만져본다. 꼬리가 사라진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당연하게 여기던 내 육체에 진실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잘린 꼬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2023-01-17

어린 어른은 운전을 배운다

사람들은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운전을 할 줄 알아야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언어’를 배움으로써 상징계에 진입하듯이, 운전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도로에 진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소리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이제껏 어른이 아니었다는 얘기. 그런데 이렇게까지 ‘고작 운전’을 힘줘 말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도로’ 위의 암묵법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의 과장이 섞였을 따름이지.조금 별개의 얘기지만, ‘올 해엔 노력하지 않겠다’고 말한지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운전을 배우고 있다. 사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파주와 화전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쯤 걸리고, 퇴근 시간에 막히기라도 했다간 3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다.가뜩이나 차가 많은 한국에서 나까지 차를 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거니와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나까지 힘을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껏 차를 끌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건 학생의 치기어린 생각이었고, 막상 사회 초년생이 되어 1년을 살아보니 시간 강사에게 자가용은 필수에 가깝다. 가끔 특강이라도 할라치면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걸리기 십상이니, 하루가 그냥 슥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 시간이 아까울 때도 많았고. 솔직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도 계속 쓰고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롱패딩을 입은 사람이 많아 앉으나 서나 고욕이다.그렇다보니 ‘올 해엔 노력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올 해엔 기필코 차를 사리라’로 바뀌고 말았다. 일단 마음먹은 김에 곧장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을 들을 때 든 생각은 ‘운전 못 하겠다’.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에 대한 설명과 도로 위에서 좌회전, 우회전 하는 법, 표지판 보는 법, 차에 대한 기초 지식 등등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데 정말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문과-인문대로 이어지는 순수혈통 문과생인데다, 그간 차에 관심도 없었다보니 선생님들이 하는 소리가 무슨 기계공학의 정수에 대한 설명쯤으로 느껴졌다.그렇게 학과 수업을 3시간 듣고, 다행히도 필기시험은 한 번에 합격. 무슨 패기인지 오전에 필기시험을 보는 날 장내 운전 연수를 신청해놔서 바쁘게 면허학원으로 직행해 처음으로 차를 몰았다. 엑셀도 밟아보고 브레이크도 밟아보고 좌회전도 해보고 우회전도 해보고. 옆에 선생님이 앉아있어 마음은 편했지만 머리속으로는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못하겠다. 나 같은 놈은 도로에 풀어놓으면 절대 안 돼.’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에는 선생님의 교습 스타일 탓이 크다. 나는 이론을 배우고 그걸 적용하고 해석하는 소위 먹물형 인간인데, 선생님은 자꾸 나보고 ‘감을 익히세요. 외우려고 하지 마세요’ 따위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닌가. 참고로 나 같은 인간은 ‘감’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 무언가를 할 때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실수할까봐 벌벌 떠는 인간이라 그렇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내 질문에는 ‘감’이라는 마법의 단어만 난사했다. 그리고 그건 도로 연수 때에도 이어졌다. 나는 우회전이 ‘도로 상황에 따라, 다른 차량의 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진입’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뭐라고? 그냥 상황 봐서 ‘감’으로 하라구요? 제 감을 어떻게 믿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제 감을 모르면 어떡해요?그렇게 어찌어찌 연수를 다 마치고, 다행히 시험에도 합격해서 2종 면허를 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어떻게 내가 시험을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면허를 따는 것과 실제 자차로 운전하는 건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면허를 따면서 느낀 게 있다면, 한국 사회의 운행 방식은 도로 위의 ‘차’의 운행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 이론이나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감’과 ‘상황’을 중시하고, 타인의 상황에 자신을 맞춰서 움직이면서도 급할 땐 ‘빵!’ 하고 클락션 세게 눌러주고 등등. 한국 사회의 도로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 사회의 도로 위의 관습이 사회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걸까. 어쩌면 선후 관계는 없는 걸지도. 마침 ‘태계일주’라는 프로그램에서 볼리비아의 교통상황이 나온다. 와. 저긴 더 개판이네. 한국은 양반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한 해의 시작이다.

2023-01-17

‘2030 미래 전망’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는 전 세계가 극심한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고,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대부분의 관련 연구기관에서 지난 연말 예상보다 더 낮게 전망치를 수정하고 있다. 아마도 2023년 내내 암울한 저성장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해 시작을 임하는 마음이 비장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져 오듯이 새벽 넘어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지혜로움이 더없이 필요한 것이 지금이다. 아마도 지금부터 그다지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미래 시점으로 2030년이 많이 올려지는 것 같다.2030년에는 어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어떤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탄소중립 사회로 더욱 진전되어 축전지, 수소, CO2 재이용 등 탈탄소를 실현하는 요소기술의 개발과 이용이 진행될 것이다.우리나라는 2020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이 큰 추진력이 되어 에너지 산업은 물론 제조업이나 유통업 등 대부분의 업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수소경제 활성화는 화석연료가 주용도였던 전력, 연료, 원료를 대체하여 탈탄소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기대가 높다. 아울러 공급망과 응용해서 활용하는 다양한 수소관련 요소기술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IoT 주택이라는 신개념주택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loT와 AI를 활용하여 주택용 전력제어나 엔터테인먼트 등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소비의 시각화와 거대 IT기업의 참가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며, IT와 통신부터 자동차, 주택, 전력·가스까지 다양한 업역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IT를 이용한 모니터링이나 조명 그리고 보조식품 등으로 밤잠이나 낮잠의 질을 높이는 행동방식 개혁으로 인해 생산성 향상과 치매예방의 큰 요소로서 수면관리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건강이나 IT, 식품에 의한 서비스 제공에 더해 건강경영 대책으로 이 업역은 크게 주목받고 있다.AI 기술의 진화로 태어난 많은 스타트업 기업에 의해 응용 분야가 넓게 퍼지고 있다. 화상인식이나 음성인식에 더해 마케팅 등의 데이터 해석 기술 개발도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의료, 금융, 제조, 유통 등 폭넓은 분야에서 파괴자로서 기존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AI벤처가 부상하고 있다.하늘을 나는 자동차, 하늘과 땅 모두에 적용되는 신형차량을 활용해서 사람의 이동이나 화물의 배송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비행기와 무인드론 사이에 위치하는 수직이착륙기나 에어택시서비스 개발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차량과 서비스의 개발, 효율적 운항을 위한 각종 제도의 도입 등으로 정부와 기업 간 연대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앞에서 열거한 새로운 기술과 업역 외에도 미래 2030년까지 상상도 못한 다양한 기술과 직업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미래가 계묘년을 미래 50년을 향한 ‘대구굴기’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대구광역시와 ‘동해안의 기적, 낙동강의 기적’으로 지방 성공시대를 펼치고자 하는 경상북도에 먼저 오길 바란다.

2023-01-16

문화재관람료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2021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 사찰을 ‘봉이 김선달’로 비유해 불교계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후폭풍이 거셌다. 결국 정 의원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해야 했다. 정 의원은 2022년 4월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문화재 관람료 감면 지원 예산이 반영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정 의원이 불을 지르고 직접 끈 셈이다.문화재 관람료 전면 폐지가 추진되고 있다. 조계종은 오랫동안 논란을 빚어 온 문화재 관람료의 전면 폐지를 추진키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없애고 문화재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사찰 문화재 구역 입장료 징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 관리 비용을 사찰이 관람료 징수로 충당해 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소유자는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금액 책정 규정이 없어 그동안 사찰마다 관람료가 들쑥날쑥했다. 특히 문화재 관람과 상관없는 산행 때도 사찰에서 통행료처럼 걷는 일이 적지 않았다. 곳곳에서 마찰이 일었다.결국 나랏돈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나왔다. 문화재청이 올해 확보한 예산은 421억원이다. 관람료를 징수해 온 전국 57개 사찰이 오는 5월부터 정부 지원을 받을 전망이다.이젠 전국의 모든 사찰이 무료 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주차료는 별도다.일각에서 입장료 대신 세금을 지원하는 방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원금이 사찰의 유지보수와 관리에 쓰일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6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두 나라의 전쟁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유가 약세와 식량 가격 상승 등 다방면에서 직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는 이 전쟁이 조속히 끝나길 고대하지만 전망은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두 나라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들면서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저마다 다른 셈법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당분간 평화적 협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경상북도 예안 오천리(현재 안동 와룡면 오천리) 출신의 선비 계암(溪巖) 김령(1577~1641)은 1627년(인조5) 3월 18일의 일기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조선과 후금이 정묘화약(丁卯和約)을 체결한 직후였다. 아민(阿敏)이 이끄는 후금군 3만은 정묘년(1627) 1월 8일 조선 땅을 침공해 보름 만에 의주성 · 정주성 · 안주성 · 평양성까지 차례차례 점령했다. 이에 인조는 강화도로 옮겨 전쟁을 대비했고,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신했다. 후금은 평산까지 밀고 내려왔지만,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는 못했다. 명나라와의 대치 상황 속에서 조선과 장기간 전쟁을 벌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데다가 조선 깊숙이 내려와 싸우기에는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건을 걸고 조선에 강화 의사를 표시했다. 3월 3일 조선이 이 제안을 수용하면서 정묘호란은 일단 끝났고, 후금군은 철수 길에 올랐다. 전쟁이 일어난 지 3개월 만이었다.적군 병사가 비록 물러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주(海州)와 수안(遂安) 등 여러 곳에 머물면서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약탈하니 절대로 돌아갈 뜻이 없는 것이다. 적군의 장수 이왕자(二王子·아민)가 진창군(晋昌君) 강인(姜絪)과 서로 헤어질 때 말을 멈추고 손을 잡으며 조정에 말을 전달하길 ‘나는 마땅히 이번 달 내로 압록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장수들은 이곳에 머무르며 반드시 모문룡(毛文龍)을 사로잡은 뒤에야 돌아갈 것입니다’고 했다고 한다. (‘계암일록’ 1627년(인조5, 정묘년) 3월 18일 일기 중에서)이 말대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예안에 거주하던 김령이 후금군의 변방 침공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1627년 1월 20일이었다. 마침 자신의 숙부와 조카들이 산송 때문에 감영을 방문했다가 선전관(宣傳官)이 급하게 당도해 변방의 전황을 전달하는 것을 전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전쟁이 일어나자 비교적 거리가 먼 예안 지역도 타격과 동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당장 다음 날부터 군사를 징발하는 문제로 마을이 소란스러웠고, 김령 개인적으로는 집안에서 추진 중이던 이장(移葬)을 중단했다.이후 김령은 전쟁의 경과와 동향을 수소문했고, 듣는 만큼 상세하게 일기에 기록했다. 어떤 날은 전쟁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더불어 영남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과정과 성과에 대해서도 듣고 보는 대로 생생하게 기록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3월 18일, 정묘화약을 맺고 적군이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김령은 전쟁의 정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불안 속에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랐지만,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김령이 일기에서 기록한 것처럼, 아민은 자신이 이끄는 후금군은 3월 안에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빠져나갈 예정이었지만 다른 몇몇 장수들은 모문룡을 사로잡기 위해 조선에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서북 변경 지역에서는 소규모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4월 16일의 일기에서 김령은 용골산성 전투의 승리에 대해 기록했다. 난리 이후로 승전한 것은 처음이라며, 3월 20일에 있었던 일인데 이때에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적군이 여전히 안주의 서쪽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장차 사태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정묘호란 이후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과 후금은 충돌과 갈등을 수반한 긴장 관계를 지속했다. 김령 역시 이와 관련해 조정과 서북 변경의 동향을 드문드문 기록했다. 그러나 우려하고 또 불안해하면서도 당장 겪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가끔 들리는 소식을 기록할 따름이었다. 오히려 그가 걱정하고 분노했던 것은 혹독한 세금 수탈과 전쟁 및 흉년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직접 보면서 김령은 자주 분통을 터뜨렸다.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파괴, 인명 참사와 같은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곳에서는 잊으려면 또 잊는다. 한참 떨어진 곳의 전쟁이라 물리적 피해를 몸으로 겪지는 않으니 그렇게 잊고 산다. 전쟁이 초래하는 경제적 위기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했음에도 경제적 곤란에 따른 고통과 불편함을 되새길 뿐 참혹한 전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종종 잊고 있다.

2023-01-16

카롤루스 대제와 카롤링거 르네상스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를 마르텔(c.690-741)은 약해진 왕권을 틈타 나라의 실권을 손에 넣으면서 카롤링거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카를 마르텔의 권력을 물려받은 것은 둘째 아들 피핀이다. 키가 작아 ‘단신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용맹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카를 마르텔이 카롤링거 왕조의 문을 열었다면 피핀은 카롤링거 왕조의 첫 번째 왕으로 754년 교황 스테파누스 2세가 자리한 가운데 그를 위해 생-드니 대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768년 피핀이 쉰 넷으로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이 왕좌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카를로스이다.유럽의 역사는 특별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에게 ‘위대한(magnus)’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카를로스의 이름에도 명예로운 수식어가 따라붙어 우리는 그를 ‘샤를마뉴’라고 부른다. 샤를마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체계적인 행정제도를 도입해 정국을 안정시켰으며, 안으로는 문화와 예술이 융성하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샤를마뉴는 재위하던 45년 여 동안 무려 60여 차례나 전쟁을 치뤘다고 한다. 그 결과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여 국경을 곤고히 지켰고, 강력한 적군 색슨 족을 엘베 강 유역에서 완전히 제압했다. 영토 확장과 국내 정세 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던 샤를마뉴가 놓치지 않았던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문화와 예술, 학문의 부흥이었다.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서유럽은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 때문에 문화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국운을 좌우하는 것이 강한 군사력과 넓은 영토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샤를마뉴는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펼치며 중세문화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이 시기를 가리켜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샤를마뉴는 각 수도원들이 교육에 앞장설 것을 명했다. 왕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수도원에는 학교가 세워졌고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샤를마뉴는 잠자리에 들기 전 라틴어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안정적인 통치를 위하여 정치적 중심지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샤를마뉴는 게르마니아 지역과 가까운 아헨(Aachen)을 수도로 정했다. 아헨에는 왕궁이 지어졌고 부속교회와 왕립학교가 함께 세워졌다. 왕은 고대 그리스 학문을 장려하였는데 이를 위해 당시 최고의 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알쿠인(Alcuin)을 영국 요크로부터 초청하는 등 각지에서 인재들을 불러들였다.중세시대에는 당시 교육의 근간으로 볼 수 있는 ‘일곱 가지 자유학’(septem artes liberales)이라는 것이 있었다. 여기에는 수사학과 문법, 논리학과 음악, 기하학과 수학 그리고 천문학이 포함된다. 이것 역시 샤를마뉴가 동력을 불어 넣은 고대의 재발견의 결과이다. 일곱 가지 자유학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교양으로 습득했던 지식들로 중세 혼란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잊혔고 샤를마뉴의 문예부흥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샤를마뉴는 건물을 짓고 도시를 정비하는 등 자신의 제국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가장 중요했던 건축사업으로는 수도 아헨의 왕궁과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마인츠에는 라인 강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교량이 설치되었고, 낡은 교회들은 보수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연결하는 운하가 건설되었고, 바닷가에는 등대가 세워졌다.프랑크 왕국을 이끌었던 두 번째 왕가 카롤링거 가문이 배출한 샤를마뉴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밖으로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지키며 국토를 넓혔고, 문화, 예술, 학문을 장려함으로써 중세의 정신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1-16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성공적인 스토리텔링 조건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슬램덩크’는 ‘드래곤볼’과 함께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지만 그 인기는 한국에서도 대단히 뜨거웠다. 우리가 ‘사쿠라기’와 ‘루카’가 아니라 ‘강백호’와 ‘서태웅’을, ‘쇼호쿠’(원작에서 강백호의 소속 학교명)가 아니라 ‘북산’을 기억하고 또 추억한다는 것은 ‘슬램덩크’가 단지 수입된 일본 문화가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의 일부분으로 녹아들었음을 의미한다. 강백호를 비롯한 북산고의 주전 5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초심자가 노력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라는 소년만화의 왕도를 따르면서도, ‘모두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라는 스포츠 세계의 냉혹함을 잘 보여주었다. 그 냉혹함은 비단 스포츠 세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독자들이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의 속성과도 닮아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 최강 산왕고를 제압한 북산이 토너먼트의 다음 경기에서 탈락하는 ‘슬램덩크’의 이야기를 가슴 시리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현명하게도 연재 종료(1996년) 후 27년이라는 시간이 흐를 동안 단 한 번도 산왕전 이후의 스토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수많은 후속작을 쏟아냈던 ‘드래곤볼’과 비교하면 대단히 인상적인 행보이다. 이러한 인내와 절제가 있었기에 ‘슬램덩크’의 이야기는 독자의 상상력이라는 영역에 머물렀고, 덕분에 원작의 메시지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채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2023년에 재탄생할 수 있었다.‘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산왕전 이후, 혹은 강백호의 재활 성공 이후의 이야기를 섣불리 건드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산왕전의 스토리라인을 송태섭이라는, 주연 5인 중 하나이지만 원작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캐릭터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취했다. 송태섭이 현대 일본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지역색을 띠는 오키나와 출신이고,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이라는 설정을 추가함으로써, ‘열정과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슬램덩크’의 메시지를 수도권 지역(원작의 배경인 가나가와 현은 도쿄 인근에 위치한 지역이다)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 보편적으로 확장 시킨 것이다.이러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 스토리텔링, 도시 스토리텔링, 마을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사업들이 한동안 유행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토리텔링은 ‘기존에는 없던 것’,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열심히 찾아내어 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철 도시’ 포항과 같이 강렬한 스토리를 이미 갖고있는 지역이라면 굳이 ‘더하기(+)’ 방식의 스토리텔링 전략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산왕전의 메인 스토리를 건드리지 않고 그 맥락과 배경(context)만을 풍부하게 만들었듯이, ‘제철 도시’라는 스토리를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노동, 여성, 생태, 문화와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 보다 풍부하게 이야기해내면 된다.

2023-01-16

인류와 역학

오낙률 시인·국악인 검정 털빛의 암컷 토끼를 상징하는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뜀박질을 시작했다. 필자에게도 송구영신의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건 아직도 심장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거니와 가슴에 소망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탓이 아닐까 싶다.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이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한해 운수를 가늠하려 한다. 그러나 한두 달쯤만 지나면 연초에 가진 궁금증은 뒤로하고 역학(易學)과 관련된 이야기는 깡그리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고 귀담아듣지 않으려 한다. 해서 필자는 나름의 조그만 지식으로 역학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짧게나마 더듬고자 한다.역(易)이란 해와 달의 운행에서 생기는 기운과 변화를 뜻하고 역학이란 易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易은 자연이라는 포괄적 개념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그 범위는 해와 달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자연계가 도표처럼 구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역의 기운 변화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역(易)의 종속 자연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하고 당연한 사실마저도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사는 것이 보편적 현대인의 삶이고 보면, 그것은 필자가 새삼스레 역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역을 연구하고 학문으로 계승 발전시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다만 그렇게 발전해온 역학이 언제부턴가 점성술과 그 개념이 혼동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학문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우선적이어야 하는 학문이 역학이며 오늘날의 찬란한 문화발전을 가능케 한 것도 알고 보면 역학에 기초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역학은 곧 자연학이며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것에 있어서 기본학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보편적 의미에서의 역학이 이용되는 예는 수도 없이 많은데, 집마다 한두 개쯤 걸려 있는 달력이 그 대표적 예이며 세계인이 사용하고 있는 숫자의 개념 또한 역학의 기원이 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부터라고 전한다.달력은 역학이 만들어낸 인류 생활 최고의 도표이다. 언젠가 필자는 달력에 적힌 요일의 배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월(日月)의 운행 법칙이 남북에 해당하는 화(요일)와 수(요일)를 기준 축으로 해서 동서에 해당하는 목(요일)에서 금(요일) 방향으로 회전하듯 운행한다는 사실을 달력에서 읽어 낸 바가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동기의 원리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의 생성 원리가 남북을 그 축으로 하고 동에서 서로 회전하는 일월의 운행 원리에 있다는 나름의 해석을 가져 본 기억이다.계묘년은 도약의 해이자 다산의 해이다. 토끼라는 짐승은 여타 동물처럼 한쪽 발씩 번갈아 내딛지 않고 두 발로 도약하듯 껑충껑충 뛰면서 이동하는 동물이며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계묘년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 토끼 걸음처럼 껑충 도약하는 해가 되었으면 싶고, 출산에 의한 신생아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예년보다 더 많이 울렸으면 좋겠다.

2023-01-16

당 대표를 임명하려 하나

김진국 고문 국정이 비틀거린 지 한참 됐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압박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힘겹다. 법안 처리가 어렵고, 예산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국정을 정상화하려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와 내년 총선을 잘 넘어야 한다. 임기 중반 총선은 중간평가다. 패배하면 국회 주도권만 놓치는 게 아니다. 대통령 임기 전반기의 실패를 의미하고, 레임덕을 앞당길 각오를 해야 한다.총선을 지나면 당내 세력 판도가 완전히 바뀐다. 이기려면 좋은 후보를 내야 하지만, 정파적 이해는 좋은 후보보다 ‘내 편 후보’다. 그러니 공천권을 쥔 당대표에 목을 맨다.그런데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불안하다. 취임 이후 줄곧 ‘배제의 정치’를 한다. 국정 지지도가 조금 올랐다고 만족할 일이 아니다. 기존 지지층을 조금 회복한 정도다. 그것만으로는 총선 승리가 불확실하다. 물론 이준석 전 대표의 ‘내부 총질’은 참기 힘들었으리라.유승민 의원이 또 그 길을 갈까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행보는 지나치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밀어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해 선출 방식을 바꿨다. 그것도 부족해 이제 당내 지지율이 가장 높은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히려 한다.지난 11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 지지 1위는 유승민 의원,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1위는 나경원 전 의원이었다. 다른 조사도 대부분 비슷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참조)결국 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대표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고, 당 대표를 임명하던 민정당 시절을 떠올린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나 전 의원 처신이 옳다는 건 아니다. 당 대표로 나서려면, 석 달 만에 물러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았어야 했다. 당헌을 바꾼 뒤 지지율이 앞서가자 갑자기 욕심이 생겼겠지만, 저출산 고령화는 그렇게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그렇더라도 나 전 의원을 대놓고 저격하는 대통령실 언행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중앙일보에 “나 전 의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애정이 여전히 크다. 사의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나 전 부위원장을 전격 해임했다. 애정을 가졌는데, 나 전 의원이 자기 구상을 내놓자마자 공개 반박하나. 그런데도 그 일을 계속하라는 건 뭐며, 그만둔다고 발끈해 해임하는 건 또 뭔가. 공개적인 모욕 대신 윤 대통령이 직접 만날 수는 없었나.이중재 평민당 수석부총재는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양김씨(김영삼·김대중)의 통합을 추진했다. 평민당 회의 도중 쫓겨난 이 부총재가 당료들의 구타와 야유를 받으며 9층에서 옥외 비상계단으로 쫓겨 내려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6대 국회에서부터 무려 25년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한 정치적 동지였다.박근혜 대통령 시절 ‘친박’, ‘진박’은 어디로 갔나. 위기의 순간 어떤 역할을 했나. 가진 것이 많을 때는 쉽게 버린다. 그러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다.정치에서는 51대 49에서 49대 51로 바뀌는 건 쉽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건강한 정당은 여러 가지 의견을 품는다. (和而不同) 다른 의견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정치다.이준석 사태의 충격이 정치 초보 윤 대통령에게 힘겨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손아귀에 쥐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쪼개고 버리면 ‘윤핵관’만 남는다. 의견이 조금 다르다고 ‘반윤’으로 만들 이유가 뭔가. 안아야 한다.나 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절대 화합”을 공개적으로 외쳤다. 굳이 사정이 있다면 ‘제2의 이준석’으로 낙인찍을 게 아니라 대화로 풀었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자신이 낙점한 사람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다.당장 껄끄러워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지도자다. 경쟁자를 다 쫓아내고 낙점받은 후보가 당 대표가 된다면 그 모양은 또 어떻게 되나.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3-01-15

실리콘밸리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 최대 IT융복합 박람회인 CES가 끝나고 미국 최대 첨단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로 참가자들이 대거 몰렸다는 소식이다. 한국 스타트업기업 대표와 투자자, 대기업, 정부 관계자 등에 이르기까지 CES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이 실리콘밸리를 찾아 미국의 최첨단기술업계의 상황을 살펴봤다는 것이다.올해는 한국기업들이 미국 다음으로 CES 박람회에 많이 참여한 것을 보면 이번 실리콘밸리 방문도 글로벌 테크에 대한 한국 기업의 관심도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은 CES 박람회에서도 역대 최대인 111개의 혁신상을 받아 벤처산업에 대한 우리기업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지난 10일 포스코홀딩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체인지업그라운드 실리콘밸리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포스코는 포항, 광양, 서울 등에서 운영 중인 스타트업 공간을 미국으로까지 확장한 것이라 했다. 대구시와 포항시 등에서도 단체장과 많은 스타트업 관계자 등이 참여해 올 CES 박람회는 지역에서도 유난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샌프란시스코만 남쪽 산타클라라 계곡에 위치한 공업지역이다.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최첨단산업이 발달해 이름도 실리콘밸리로 붙여졌다.실리콘밸리가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의 온화한 날씨와 이곳에서 1시간 이내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등 명문대가 많이 포진해 인력 조달이 쉽다는 것이다. 또 규제없는 지방정부 정책 등도 성공 이유로 꼽힌다.글로벌 과학기술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는 세상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점을 찾아 벤치마킹하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5

오지선다와 확증편향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의 끝에 독자에게 다섯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것은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로 나뉜다. 이것은 하나의 기사를 두고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예를 들어보자. 2023년 대학입시에서 정시 지원자가 하나도 없는 학과가 26개에 이르렀는데, 이들 학과의 공통점은 지방대라는 것이다.지방대 위기가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지방대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대학재정 지원 권한을 2025년까지 모두 지방자치단체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장기 간의 대학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재정 악화, 서울과 경기도 소재 대학과 지방대 격차 심화 같은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지방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정책이다.이 기사를 본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추천해요 1, 좋아요 1, 감동이에요 2, 화나요 7, 슬퍼요 4였다. 좋아요와 추천해요를 누른 독자는 이 기사의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논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화나요와 슬퍼요를 누른 독자는 지방대 위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응 방안에 부정적인 태도와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난해한 대목은 감동이에요를 누른 사람들의 내면세계일 것이다.감동적이라는 말에는 ‘어떤 대상이나 정황에 마음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뜻한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평균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자기희생이나 지고지순한 행위를 경험할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그런데 지방대 위기의 현황과 해법에 관한 정부-여당의 대응에 관한 기사에서 감동적인 구석은 찾기 어렵다. 사정이 이럴진대 감동이에요를 선택한 사람들은 평균인의 사유와 인식을 초월하는 지경에 있다.2차대전 이후 일본 영화의 중흥을 이끈 영화인 가운데 한 사람이 구로사와 아키라다. 그가 1950년 연출한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1915)과 ‘덤불 속’(1922)을 결합한 것이다.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쇼몽’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엇갈리는 세 가지 시선을 보여준다. 백주(白晝)에 벌어진 사무라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각이 극명하게 나뉘어 관객을 전율케 한다.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와 태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이나 사회·정치적인 상황 등에 따라 개인의 사유 방식과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이렇게 형성·고착된 의식을 확증편향이라 한다. 확증편향은 편견과 선입관으로 강화되며, 그 결과 나이 든 세대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아냥거리는 풍조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민주주의에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공론장이다. 나와 당신, 우리와 너희의 엇갈리는 견해와 태도를 열린 공간에서 말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우리는 단 하나의 관점, 획일적인 동조, 편파적인 정파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감동이에요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2023-01-15

생산 현장의 안전 확보와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2003년 192명이 사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와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최대 인명 사고이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로는 502명이 사망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최대의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로 159명의 안타까운 청춘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으며 정부는 특별수사 본부를 설치하여 74일간의 수사를 실시 6명을 구속하며 종료되었다.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막지 못하고 일이 터진 이후 뒷북 치는 것을 꼬집어 말한 것이다. 늘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한 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미흡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기업도 마찬가지로 어느 회사나 공장에 가도 안전제일을 외치는 간판, 깃발, 포스터 등이 가장 눈에 띄고 안전을 무엇보다도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아직도 안전 대책이 중요하고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해는 하면서도 돈이 들뿐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남아 있다. 또한 직원들 스스로가 안전 개선에 참여하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지금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그러나 좋은 활동을 이미 실행하고 있으면서 또 다른 곳에서 획기적인 방안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생산현장에서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변화하는 4M(재료, 설비, 사람, 방법)의 변동이며 이 변동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며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재해 발생률이 약 5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4M을 잘 관리하여 변동 요인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면 많은 재해는 줄일 수 있는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P사의 QSS활동을 추천하고 싶다. 먼저 재료의 경우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은 정돈을 통해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찾기 쉽고 사용 후 되돌리기 쉽도록 표시하여 작업 동작을 줄여 안전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으며, 설비는 전원이 참여하여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위드 마이머신 활동을 통해 고장을 예방하고 있고, 사람은 작업표준의 세부 작업에 대하여 위험의 빈도과 강도를 파악하여 위험도를 낮추는 개선을 하고 있다. 방법은 사람의 수작업을 기계화 자동화하여 기계와 접촉을 줄이고 있으며 설령 접촉을 해도 사고로 연결되지 않도록 개선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법을 강화하고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직원들이 참여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 밖에 없다. P사와 같이 직원들 스스로 자기 담당 구역에 대하여 주인의식을 가지고 현장의 관리 요소인 4M의 개선을 지속한다면 작업은 더욱 편해지고 안전은 지속 향상될 것이다.

2023-01-15

가난해져도 우아하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평생 정규직이었던 적은 없어서 월급을 받아본 적도 없고, 재테크에 눈이 밝은 것도 아니어서 근로 소득으로만 살아왔으나,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그럭저럭 소득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강의가 줄기 시작하더니 3년 전부터는 코로나까지 겹쳐 강의가 더 줄었다. 그렇다고 수입이 괜찮았을 때만큼 일할 자신도 기회도 없으니 이제는 이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역시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한 모양이다. 작가는 기자로 일하다가 해고된 후 전업 작가로 살아가면서 적은 돈으로 우아하게 사는 법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그는 절약을 몸소 실천한 부모님의 모습에서 실용성뿐 아니라 우아함을 발견하고 현대 소비문화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은 돈으로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다.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에서 정한 기준에 연연하다 보면, 항상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알면 사회적 인정 여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 큰돈 없이도 자신의 멋을 누릴 수 있다. 폰 쇤부르크 역시 진정한 가난이란 물질적 결핍이라기보다는,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을 좇으면서 그것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니 내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작가가 생각하듯이 값비싼 헬스클럽에서 화면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을 경멸할 생각은 없다. 부자의 삶은 부자의 삶이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일 뿐이다.작가의 관점에 가장 많이 동의하는 부분은 집에 대한 생각이다. 집이란 손님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아름다워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런던이나 파리, 빈 같은 도시에서는 집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스파게티뿐일지라도 친구들 몇 명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단다. 음식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매개일 뿐, 음식이 조촐하든지 화려하든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고성능 음향기기나 대형 텔레비전, 디자이너 가구가 있다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것은 아니라면서 친구들이 모여드는 집을 가진 사람,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이 부유하다고 한다.나 역시 수입이 줄다 보니, 소비에도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 세워두기만 하던 승용차도 팔았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할 상황을 대비해서 책도 계속 없애나가고 있다. 책으로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지금처럼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김밥과 소금빵을 먹는 공간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굳이 숲을 고집하지도 않으니 어디로 이사 가더라도 동네 골목을 더 많이 걸을 것이다. 특히 은퇴하면 대부분 현업에 있을 때보다 줄어든 돈으로 살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상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활 양식을 자신의 척도로 삼지 않고’, ‘불필요한 일을 피하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존중’하다 보면, 참된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노년에 우아해지는 지름길일 터이다.

2023-01-15

맞춤형 운동이 곧 성장호르몬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인간의 키 성장은 유전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영양, 운동, 수면, 스트레스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많은 연구에서 유전적인 요인이 30%, 환경적인 요인이 70% 정도로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성장환경조건 중 키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 중 적절한 영양공급과 운동이 대표적인 환경요인이다.운동을 하면 키가 잘 자라는 이유는 운동이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여 성장호르몬의 양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실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하지 않는 아이들보다 혈중 성장호르몬 농도가 2배 정도 높게 나타난다. 성장판을 자극할 수 있는 운동의 형태는 중력 방향으로 누를 수 있는 것이 좋으며, 같은 강도로 지속하는 것보다는 강도의 변화를 주는 것이 좋다.성장호르몬의 분비를 높이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강도와 빈도 못지않게 운동의 시간과 방법도 중요하다. 키가 크기 위해서 하는 성장촉진운동은 특정한 어떤 종목이 아니라 과학적인 운동부하 및 수행능력 검사에 따라 운동의 강도, 빈도, 시간, 형태를 개인에게 알맞게 설정한 맞춤형 운동을 실시해야 효과적이다.대개 줄넘기나 농구 등 점프 운동이 키 크는데 좋은 운동이라고 추천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런 운동을 했을 때 하체 근기능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피로를 누적시키고 육체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다시 말해 특정한 종목의 운동을 많이 한다고 키가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약이 되는 운동이 오히려 병이 될 수도 있다.줄넘기 및 농구는 점프운동이며 역학적으로 본인 체중의 열배 이상이 다리와 허리에 운동 부하로 주어진다. 다리와 허리 근기능이 좋을 경우에는 성장판 자극으로 키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능이 약한 경우 근육 및 관절에 무리를 주어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성장호르몬이 키 성장보다는 피로회복을 위해 사용하게 되므로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그러므로 줄넘기나 농구가 키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의 근기능 향상과 자세 교정부터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운동을 할 때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과 체력 및 신체기능 수준을 평가하여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운동량을 알고 운동의 강도와 빈도, 시간과 유형을 결정하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운동 시 성장호르몬의 분비는 시간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운동 시작과 함께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운동이 끝난 30분 후에도 성장호르몬은 계속 증가한다. 특히 성장호르몬은 운동을 하고 있을 때보다 운동을 한 후에 더욱 증가한다. 운동이 끝난 후 약 30분이 지났을 때 성장호르몬양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운동 후 90분까지도 안정시보다 상당히 높게 성장호르몬이 유지된다.운동 시 강도는 자신의 최대산소섭취량의 60~70% 정도의 달리기나 실내자전거 등 유산소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키가 자라는데 꼭 필요한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높이게 되고 성장판에도 충분한 자극을 주게 되어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강도의 운동을 할 때도 이미 다리나 허리의 근기능이 약화되어 있으면 운동의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오히려 피로만 가져오고 관절이 손상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과거에는 아이들에게 근력운동을 시키는 것이 키 성장에 해가 된다고 권장하지 않았으나 많은 연구에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근력운동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주 1~2회 정도 실시하도록 권장한다. 근력운동을 하고 나면 최소 48시간 정도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삼일에 한 번씩 하거나 부위를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한다. 관절을 움직여서 근육의 길이 변화가 생기는 근력운동이 효과적이며 7, 8세부터는 본격적인 근력운동을 시작해도 괜찮다고 알려져 있다.근력운동이라고 해서 어른들처럼 역기를 든다거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능도 하지만 중강도 이상의 무게를 일 년에 2~3개월 이상을 들다보면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이 경우는 반드시 스포츠과학자나 트레이닝 전문가의 감독 아래 실시해야 한다.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근력운동에는 밴드를 이용한 운동, 체중을 이용한 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펴기, 턱걸이 등이 활용될 수 있다.키가 자라는데 있어서 이것만하면 된다고 하는 절대적인 운동은 없다.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맞춤형 복합운동을 하게 되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안정시보다 25~45배까지 증가하여 성장기 아이들의 키 성장을 더욱 촉진하게 된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맞춤형 복합운동은 아이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체력 수준을 평가하고 진단해서 유산소운동, 근력운동, 유연성운동을 기능적으로 조합해서 하는 것이다.이같이 키 성장 운동은 아이들의 건강과 체력 및 신체기능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해야 스트레스와 상해를 방지하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더 촉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성장기 아이들의 몸에 최적화된 맞춤형 운동이 곧 성장호르몬인 것이다.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