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연대와 위로의 시공간 ‘무코리타’에서

등록일 2023-10-16 18:20 게재일 2023-10-17 17면
스크랩버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강변의 무코리타’
‘강변의 무코리타’포스터.

무더운 여름,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수산물 가공공장으로 청년 야마다가 들어선다. 오징어 배를 따고, 말끔히 손질을 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그에게 사장은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법이야”라는 말을 건네며 무코리타 연립주택을 소개하고 평화로우며 무료한 이곳 마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살다보면 쌓여가는 짐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또 다른 짐을 만들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다.

잊고 싶었던 그곳의 인연이 다시 이곳으로 소환되고,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들과의 사연이 연립주택의 현관문을 넘나든다. 어느 날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는 한줌의 유골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으로 오게된다. 유골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 잊는다는건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리하여 그곳으로 돌려 보내는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그것에는 절차가 따르고 그 절차에 따른 남아 있는 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보여준다.

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야마다에게 1년, 5년, 10년을 살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우고 비워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입주민들에겐 무엇인가를 채우는 삶보다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듯한 결핍의 삶을 살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펼쳐질 때면, 결핍이 아니라 집착이며, 쉽게 떠나 보내지 못하는 감정을 담아 둔 유골함 같은 삶이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방마다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불교의 시간 개념에 찰나(刹那)와 겁(劫)이 있다. 찰나는 극히 짧은 시간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이뤄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75분의 1초, 0.013초의 상상하기 힘든 짧은 시간이다. 겁은 한 세계가 만들어져 존속하다 파괴돼 무(無)로 돌아가는 한 주기를 말한다. 찰나와 겁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지극히 짧은 순간과 인간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무코리타(牟呼栗多)는 이러한 찰나와 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시간이다. 30분의 1일, 48분이라는 길이를 가지며,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노을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그 어디쯤의 시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 바로 ‘강변의 무코리타’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면 또 다음 달이 오고 그러다 내년이 오고 순식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지”라고 야마다가 일하는 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말한다. 수없이 많은 찰나의 순간으로 채워지는 무코리타의 시간. 10년쯤이면 잊혀질 것은 잊혀진데로 비울 것은 비우고 또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순환의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야마다의 질문에 “하지만 그 의미는 10년을 경험해보지 않곤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이라고 대답한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엔 모두 죽음이라는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시간, 즉 삶과 죽음이 서로 교차하는 그 시간의 어디쯤 물리적 공간으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이 존재한다. 결핍의 공간에 결핍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여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간다.

야마다는 첫 월급으로 밥을 짓고, 공장에서 얻어 온 오징어 젓갈로 밥을 먹는다. 혼자 시작된 밥상엔 이웃의 침범(?)으로 젓가락이 놓이고 그가 싸들고 온 반찬으로 조촐한 식탁은 정서적 풍성함이 쌓여간다. 채우고 비우는 식사의 과정처럼 각자의 상처와 상실의 감정들이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되어 간다.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중심에 두고서 살아가야하는 의미를 말한다. 특별할 것없는 일상과 단촐한 밥상, 반복되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 찰나는 채워지고 1년, 5년, 10년의 무코리타가 흘러갈 것이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에서 무코리타의 시간은 흘러가고, 이별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절망은 어떻게 극복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강변의 무코리타’에서.

/김규형 (주)Engine42대표

김규형의 영화 읽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