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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융합의 사건에 대해서

등록일 2024-01-23 18:08 게재일 2024-01-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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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포스터

불을 사용하던 인간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서 불을 빼앗기게 된다. 이후 인간들은 문명의 씨앗과도 같은 불을 빼앗기고서 어둠 속에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애처롭게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해준다. 이것을 계기로 프로메테우스는 카프카스의 바위산 정상에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게 되고, 제우스에 의해 질병과 재앙의 고통이 인간들에게 내려진다. 인간은 신에게서 불을 얻음과 동시에 그에 따른 재앙과 고통을 받게 된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의 시작 장면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에서 거대한 화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앨라모고도의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읊조린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거대한 전쟁인 세계2차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개발된 무기는 비록 전쟁의 불을 꺼뜨렸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괴력을 인지하게 되면서 커다란 근심을 떠안게 된다. 물과 불, 죽음과 파괴, 전쟁과 평화, 신으로부터 불을 얻은 인간이 직면하게 된 재앙이 충돌한다.

불을 처음 발견한 인간에게 있어서 불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후 불을 다루게 된 인간은 빠르게 번식했으며 지구 곳곳으로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이를 이용하여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숱한 멸망과 재앙의 과정을 겪게 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디뎠던 오펜하이머는 전쟁의 종식과 함께 종식을 막기 위해 헌신한다. 이런 면에서 오펜하이머는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그 간극이 극과 극을 달린다.

영화 속에서도 오펜하이머가 겪는 여정은 이와 다르지 않다. 양자역학의 성립에 기여했던 닐스 보어는 영화 속에서 케임브리지의 한 강연장에서 “아인슈타인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에너지와 역설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세계의 최전선에서 오펜하이머는 핵분열이라는 “우주의 본질적인 힘을 이용”해 폭탄을 만든다. 바로 핵폭탄이다.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 참여한 원자폭탄 개발이 진행된다. 1946년까지 극비리에 진행된 계획은 약 13만명의 고용인원과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인 약 2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오펜하이머는 핵분열을 위해 모든 인력과 역량들을 융합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물리학자 중 한명이 헝가리 태생의 에드워드 텔러였는데, 그는 핵융합의 프로젝트 안에서 끊임없이 핵분열의 수소폭탄 개발을 주장한다.

영화는 ‘분열’과 ‘융합’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컬러와 흑백으로 이어지는 화면 전환은 현재진행과 과거로 나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적인 영화구조인 레이어가 쌓여간다. 그의 전작인 ‘덩케르크’ ‘인셉션’에서 레이어가 플롯의 깊이와 풍성함에서 사용되었다면, ‘오펜하이머’에서는 플롯의 모순과 역설, 대립과 충돌의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성공적으로 투하된 이후 오펜하이머는 핵통제주의자이자 반(反) 수소폭탄의 아버지가 된다. 모순과 역설, 분열과 융합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존재가 오펜하이머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6년 핵무기는 7만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핵폭탄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닌 수소폭탄도 개발된다. 전쟁의 종식을 위해 인간의 손에 쥐어진 핵폭탄은 인류 전멸이라는 재앙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핵폭탄의 개발은 과학자의 일이었고, 그것의 사용은 정치인의 몫이었다. 전쟁과 평화는 과학과 정치의 역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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