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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다움의 4가지 조건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신년간담회에서 꺼낸 화두가 ‘대통령다움’에 대한 고민이었다. ‘윤석열다움’이 아니라 ‘대통령다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실천하겠다는 의미다.윤 대통령은 이제 취임한지 7개월 되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다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겠다는 것은 대통령과 정치인으로서 윤 대통령의 고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깜(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끝난 뒤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라는 보고를 듣자마자 국무총리에서부터 내각까지 2배 수의 인재를 적어낼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 김 전 위원장이 말한 대통령감이 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윤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다움을 ‘국민이 든든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대통령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첫째, 대한민국 수준에 대한 인식의 정도이다. 우리나라를 시대적, 세계적, 역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며칠 전 미국의 US월드리포트지에서 국가 역량 평가를 하였는데, 우리나라가 지난해 8위에서 일본을 제치고 6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에서 10위 이내에 들어 있다. 개량적으로 분석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현재 우리나라 국력은 단군 이래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 10위권 강국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세계 6위든 8위든 그 국격에 맞게 대통령이 처신을 할 때 국민들은 대통령다움을 느끼며 든든해하고 뿌듯해할 것이다. 미국의 한 교수가 며칠 전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너무 북한 문제에 매몰되어 국격에 걸맞은 역할을 못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참고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개발도상국 한국이 아니라 세계 6~8위 대국(大國)의 국격에 맞는 대통령의 처신을 기대해 본다.둘째, 지금은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에 못지않은 거대한 ‘에너지전환의 시대’이다. 대통령이 이러한 시대 현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이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느냐는 국가장래를 위해서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다.유럽의 선진국은 이미 1760년대에 내연기관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200년이나 뒤진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서야 산업화가 시작됐다. 산업혁명의 낙오자인 우리는 그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와 6·25 전쟁이라는 큰 민족사적 불행을 겪었다.이제 세계는 또 다시 ‘탄소제로’라는 제2의 에너지 대전환시대에 직면해 있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시대를 대통령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이미 선진국보다 20여 년 뒤처진 에너지 전환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해답은 대통령이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이 안정된 가운데 세계 기업들과 수출경쟁을 할 수 있다.셋째,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불안에 휩싸인 우리 사회를 어떻게 희망의 사회로 전환시키느냐는 대통령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인구사회학적으로 여성이 많이 배우고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4명의 여성 중 2명만 결혼하고, 결혼한 2명의 여성 중 1명만 자녀를 가진다는 보고서가 있다.정부의 현금지원이 출산의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출산정책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한국을 제2의 미국으로 만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미 국가의 젊은이들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이들이 한국에 정착해 일하도록 대통령이 나서서 적극 지원한다면 ‘대한민국 시민권’이 미국시민권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마지막으로 대통령다움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문화, 예술, 스포츠, 국방, 과학기술, 첨단산업 등 모든 분야에 K자만 붙이면 세계 최고가 되는, 최고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이제 경제력 또한 북한의 2천배에 달해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대통령은 통일이 막연한 것이 아니고 분명히 가능하다는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더 많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겠지만, 이 네 가지를 바탕으로 야당과도 협치하고, 북한을 패주든 어르고 달래든 우리 주도하에 이끌어 가고, 미국·중국·러시아·일본과도 대등한 대한민국, 꿈과 희망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나는 것이 정치 초년생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이 풀어갈 ‘대통령다움’이라고 생각한다.

2023-01-15

구미, 징크스를 깨다

김장호 시장 학창 시절 100m 달리기는 필자에게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또래에 비해 키는 큰 편이었지만 별로 날쌔지 않았고, 계주에서 넘어진 흑역사까지 더해 육상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공직생활을 하며 마라톤 하프코스까지 뛰면서 육상과 친해지고자 노력했지만 징크스를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이번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도 그런 개인적인 징크스와 함께 중국 샤먼(XIAMEN.厦門)이라는 막강한 경쟁도시와 겨루어야 하는 긴장감으로 징크스에 빠지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도전을 앞두고 실패를 걱정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기에.중국 경제특구 중 하나인 중국 샤먼시는 인구 528만 명의 경제특구 도시답게 2023년 완공되는 신설 경기장, 국제공항, 30개가 넘는 호텔 등 풍부한 인프라를 가진 도시다. 우리는 아시아육상연맹 이사 한 명 없지만 중국은 투표권을 가진 이사회 18명 중 두 명의 위원(중국, 홍콩)도 있어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었다.이에 필자는 구미가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발전한 도시라는 점과 아시아 각국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 경상북도와 구미시 차원에서 새마을세계화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점, 아시아 각국에 지역의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해 있는 점, K-POP 등 한국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점 등을 강조했다. 또한, 집약된 경기시설과 뛰어난 접근성, 코로나 팬데믹 상황 시 우수한 대응 능력을 부각시키며, 안전과 신뢰를 대회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이러한 구미의 적극 구애가 이사들의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20년 만에 국내에서 세 번째로 제2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어쩌면 구미도 최근 징크스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구미 1공단을 조성한 이래 구미는 지난 50년 동안은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구미에 터전을 잡은 삼성, 엘지, 코오롱과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고, 구미는 대한민국의 수출을 견인하며 낙동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도권이 비수도권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구미발전이 정체돼 왔다. 많은 이들이 구미가 계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지, 성장 동력을 지속 마련하고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 혹자는 ‘이제 구미는 어렵다’라는 심한 말까지 하기도 한다. 구미의 징크스다.필자는 이번 대회의 성공 개최를 통해 구미의 징크스를 날리고 싶다. 이제 구미는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통해 다시 미래 50년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시민의 역량을 모아 구미 브랜드를 아시아 전역에 알릴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높다. 마침 구미는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이전으로 공항 경제권 중추도시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고, KTX 이음 열차로 구미에서 수서까지 2시간대 이동도 가능할 전망이다. 올해 예산 확보액도 경북 도내 증가율 단연 1위다.지난주 구미는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를 위한 포럼’을 열고 유치에 힘을 모았다. 방산클러스터 유치와 메타버스 산업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도 착실히 하고 있다. 구미 미래발전 50년에 걸림돌을 제거하고 지속적인 도시발전과 성장을 다져가고 있다.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징크스에서 벗어난 감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구미 역시 이제 징크스를 깨고 뭔가 될 것 같다는 분위기와 희망이 감지되고 있다.구미시는 23년 상반기에 조직 위원회를 설립하고 사무처 조직을 구성해 만반의 채비를 해나갈 예정이다. 기초단체인 구미시 혼자서는 성공시킬 수 없다. 중앙정부와 경상북도, 대한육상연맹, 구미시체육회 등 모든 기관들이 찰떡궁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조직위도 광역 차원의 격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협의 중에 있다.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구미라는 도시브랜드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성공적인 대회가 되길 기대한다.

2023-01-15

‘이름’이라는 생애의 시

이희정 시인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어머닌 눈 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상처 많은, 때 묻은, 이름의 비애여천지에너는 걸려서거울처럼나를 비춘다.-‘이우걸 시조전집’(태학사, 2013) 중 ‘이름’현대시조에서 이우걸 시인(1947년~)의 위상은 각별하고 돌올하다. 이 시를 보며 오래전 초등학교 입학 사진 한 장을 떠올린다. 가슴에는 네모반듯하게 접은 하얀색 면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고 입학식 운동장에 코흘리개들이 줄을 맞춰 서 있던 장면 말이다.화자는 “자주 먼지 털고 / 소중히 닦아서 // 가슴에 달고 있다가 /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니의 유언을 회고하며 이름에 부침하는 생의 의미를 환치하고 있다.어린아이의 콧물 닦기 손수건은 자라면서, 세상의 먼지를 닦듯 자기 삶의 먼지를 터는 용도로 바뀐다. 그렇게 이름을 잘 간수해서 명예롭게 가져오라는 어머니의 귀한 당부가 담겨 있다. 하나 실상은 이름에 먼지 묻히지 않고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상처 많고, 때 묻기 쉬운” 이름의 비애다. 이름은 인생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리라.시간이 빚어놓은 인생, 그 안에는 고난도 있고 실패도 있다. 가족이라는 품에서 처음 사회라는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단 것은 공교롭게도 은유로 읽힌다. 이제 생필품이 된 티슈 같은 것이 없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가슴에 달린 이름표와 손수건은 완벽하게 짝패다. 삶은 어쩌면 성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실패가 만들어낸 개인의 역사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화자는 이름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티끌 같은 한 생을 이름이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볍지만 무겁게 한 번 왔다 쓰고 가는 그 이름에 이름값을 한다는 것, 맨 처음 부모로부터 받은 생애 첫 시(詩)라고 불리는 이름은 어떤 뜻이 있을까.“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에 입구(口)가 붙은 뜻과 뜻이 합쳐진 문자로 결국 저녁에 부르는 이름이 된다. 해가 떠서 날이 환할 때는 사람의 얼굴이 표식이 되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될 터인데 날이 저물면 사정은 다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름이며, 이름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표식”이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이름은 나와 타자와의 식별이고 관계 속에서 이름은 다르게 호명된다.사람은 결코 아름답지만도 추하지만도 않다. 지상의 생명체라는 독특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불릴까. 유년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놀고 있을 때면 골목마다 아무개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들의 긴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회적 관계에서 부르는 누구 씨의 짧은 스타카토 음이 아닌 길게 메아리쳐 돌아오는 이름이 귓가를 지난다. 그렇게 어머니의 긴 호명은 더 깊은 여음으로 거울을 거느리고 되돌아오는 것이다.여명이 밝은 날 아침이면 거울을 닦듯 소중히 이름 석 자를 써 볼 일이다. ◇ 이희정 시인 약력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2023-01-15

불경기 신호탄?

우정구 논설위원 연초부터 복권 판매점이 인파로 붐빈다고 한다. 이른바 복권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은 몰려든 사람들로 줄을 서거나 교통정리까지 해야 할 판이라니 복권 인기가 대단하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4천억원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전년보다 7.6%가 증가했다. 복권 판매액으로 환산한 복권 구매자 수만 2천40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의 절반이 복권을 한번 쯤은 구매한 셈이다.복권 판매액으로 발생한 수익금은 저소득층과 사회복지 증진사업 등에 사용된다. 개인적으로는 복권 구매를 통해 대박의 꿈을 기대하나 알고보면 내가 사용한 돈이 우리사회의 어두운 계층을 돕는 일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섭섭할 것은 없다.기획재정부가 성인 1천20명을 상대로 복권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해 보니 “복권이 있어 좋다”는 응답이 74%나 됐다. 또 복권이 있어 좋다는 응답자의 40%가 “기대나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복권발행이 사행성 조장과 노동의욕 저하 등의 역기능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 기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한편으로 당첨 기대감도 안겨주고 있으니 긍정적 면도 무시할 수 없다.중세기 유럽의 국가들이 복권을 처음 발행할 때도 국가 공익사업의 재원 조달이 목적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다른 어떤 방법보다 모금도 쉬워 오랫동안 존속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인 1947년 런던올림픽 참가경비 조달을 위해 복권을 처음 발행했다. 올림픽 후원권이 그것이다.연초부터 동네 복권 판매점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소식이 행여 불경기 탓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12

‘CES’와 ‘화공’이 열어준 상상력

홍석봉 대구지사장 #1. “신세계였다. 제품을 투자자와 대중에게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엔지니어들이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자리였다.”최근 폐막한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23’에 참가했던 포스텍 학생은 안계를 확 넓혔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 세계 3천여 개 기업들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55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대구경북 스타트업 기업들도 뛰어난 기술력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대구시와 경북도, 포항시는 투자를 유치하고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찾아 협력 관계를 모색했다.특히 지역 대학생과 청년 창업가들이 대거 참여, 주목받았다.대구시는 CES에 대학생과 청년 창업가 등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30명의 ‘청년체험단’을 파견했다. 청년체험단은 대구시가 청년들에게 글로벌 신기술을 맛볼 기회를 제공하고 도전정신과 창의적 활동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9박 11일 동안 라스베이거스와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기업 견학과 신기술 및 창업 노하우를 습득하는 기회를 가졌다.포스텍도 180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참가했다. 학생과 동문이 POSTECH 이름으로 21개의 부스를 운영했다. 학생들은 스타트업과 가전 등의 다양한 부스를 찾아 전공 공부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경험했다. 업계의 기술 트렌드를 확인하고 배웠다. CES는 젊은 과학도와 스타트업계에 상상력과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원천이 됐다.#2. 2018년 11월 자기계발과 공직사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작한 경북도의 ‘화공 굿모닝 특강(화공)’이 200회를 돌파했다.지난 3일 열린 201회 특강에선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정부의 지방시대 핵심과제와 추진방향을 제시했다. 오전 7시 이른 시간이지만 139석 좌석이 모두 찼다. 일부 직원들은 선 채로 강의를 들었다.‘화요일에 공부하자’는 의미의 ‘화공 굿모닝 특강’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이 지사는 지방소멸 위기의 경북 현실에 다급해졌다. “변해야 살고 변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며 화공을 시작했다.대학총장·연구기관장·기업인 등 국내 유명 인사들을 초빙해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통합신공항, 메타버스,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이차전지, 원자력, 양자기술, 그래핀 헴프 등 다양했다. 경북도의 역점사업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강의는 메타버스 등 신정책 발굴로 이어졌다. ‘화공’이 정책의 샘 역할을 했다.‘한국 대중문화사’를 쓴 김창남 교수는 BTS와 ‘기생충’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온갖 역경을 자양분 삼아 키워 온 우리 문화 저력의 산물이라고 했다. 개화기에 도입된 전차와 기차는 충격이었다. 신문이 보급되고 출판과 독서가 확산되며 대중이 각성했다. BTS와 ‘기생충’의 뿌리가 신문과 기차라고 봤다.배움을 갈구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여 재창조하는 슬기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번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CES에서 시대 흐름을 짚고 지식인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길 바란다.

2023-01-12

새 일기장을 펼치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해가 바뀌면 새로 마련하는 것이 일기장이다. 예전엔 그냥 대학노트에 썼었는데 약 20여 년 전부터 표지가 고급 양장으로 된 같은 규격의 다이어리를 사용해 오고 있다. 올해는 ‘검은 토끼해’라 표지가 검은 것을 택했다.처음 다이어리에 쓸 때는 그야말로 계획과 일정을 간단히 적어두고 실행 여부를 첨부하는 일과의 기록이었으나 차츰 아래 여백에 그날그날 느낀 마음을 기록해 두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나의 인생 기록물이 됐다. 지난해 일기장을 정리하며 몇 장을 넘겨보면 잘 기억나지도 않는 무수한 일들이 적혀있고 설핏 뇌리를 스친다. 또 펜글씨는 글쓰기 훈련이 되어 필력도 향상됐다.매년 해 오던 대로 새해의 바람과 다짐을 담아 맨 첫 장에 토끼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생활환경 속에서도 마음 흔들림이 없이 내가 선택한 일들에 긍정적 사고를 견지하려는 몇 마디 덕담을 써 본다. 나름대로 새해에 알맞은 사자성어를 골라보는데 올해는 무엇으로 할까? 수처작주(隨處作主)를 하려니 칠순 넘은 나이에 어디 뻗대고 나서는 게 미안하고, ‘토끼해’라고 교토삼굴(狡FA32三窟)로 하려니 위기 대책이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수산복해(壽山福海)를 마음에 담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각 지자체나 단체들도 신년 사자성어를 공모하는 곳도 있는데 포항시는 춘색만성(春色滿城) 즉, ‘추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따뜻한 봄기운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뜻을 택했으니, 지방소멸과 경제위기 등의 불안함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의 도시 포항을 만들겠다는 희망찬 표현이다.책꽂이에 꽂혀있던 50여 년 전 옛 일기장을 정리하며 펼쳐보니 빈칸이 많다. 매일 매일 쓰지 않았고 글의 길이도 몇 줄의 짧은 것에서부터 2페이지가 넘는 날도 있다. 우연히 그중 한 권을 넘기다 보니 시 한 편이 눈에 띈다.“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하루의 끝에 서서/ 하루를 반성하며// 어제의 ‘나’와 함께/ 지금의 ‘나’를 쓰고/ 또 내일의 ‘나’를 위해/ 조금씩 모래성을 쌓아가는 것이다”또박또박 펜글씨로 쓴 나름의 일기가 사회에 익숙해지기 전의 젊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이렇듯 일기는 시가 되기도 하고 짧은 수필이 되기도 한다.매일 밤,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그날 일정의 결과를 정리하며 일기를 써 내려 가면서 ‘참 잘했구나’하고 칭찬도 하고 ‘이건 해결하지 못했네’ 하는 반성의 표시를 하기도 한다. 수년 전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하루 다섯 가지 감사를 적는 것을 10년간 반복했다는 ‘감사 일기’의 사연을 알고 나서부터 나도 그 흉내를 내고 있다. 좋았던 일들, 잘 처리된 일들을 쓰고 나서 그 끝에 ‘….감사’라고 덧붙여 두곤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에도 예상외로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경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요즈음은 카톡이나 문자 또는 밴드와 같은 SNS를 이용하여 손글씨 보기가 쉽지않지만 나의 일기장엔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썼고 또 펜글씨로 정성껏 펼쳐나갈 것이니 올해도 풍요로운 일상들이 가득히 쌓이기를 바라며 작가 이태준의 말을 되뇌어본다. ‘일기는 사람의 훌륭한 인생 자습서다.’

2023-01-12

희망의 나라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미국 시사전문지 US뉴스월드리포트가 지난 달 31일에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이 6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것으로,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작년보다 두 단계 오른 성적이다.대한민국 현대사에 윤석열 정권의 출범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좌파정권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더이상 연장되지 못하게 막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과 0.73% 차이였지만, 지난 대선의 승리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아직은 반쪽짜리 혁명에 불과하다. 절대다수의 국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에다 언론과 사법부 등을 장악한 전 정권 관련 세력들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은 태생적으로 반공을 기반으로 한 나라다. 이승만 대통령의 투철한 반공정신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도 반공을 국시로 한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인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정신의 해이가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초래하는 지는 문재인 좌파 정권 5년 동안 뼈저리게 실감을 했다. 반공의 기반 위에 세워진 나라는 종북좌파들이 득세하면 그 체제와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식을 갖지 못한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개발독재로 불리는 밀어붙이기식 경제정책의 추진과정에 부작용이 없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저항도 민주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문제는 반독재 민주화라는 명분 속에 친북용공세력이 스며든 것이다. 더이상 민주화운동의 명분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는 그 좌파세력이 정치권력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당면한 국가적 난국을 타개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좌경화된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고 명실상부 세계 굴지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그 과정의 최우선 과제는 주사파와 같은 오열의 척결이다. 모조리 색출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국민 대다수가 반공정신으로 무장해서 그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한 호소에도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코웃음 치는 국민이 상당수인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혁명이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정당하지도 못했고 성공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 작년의 대선에서 과반수 국민들이 내린 평가다. 좌경화된 나라를 바로잡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완수해야 할 혁명과업이다. 부디 새로운 희망의 나라로 순항하길 바란다.

2023-01-12

은퇴 후 버킷리스트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코로나19가 다 망쳤다. 은퇴 후의 찬란한 삶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심혈을 기울여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또한 아름답고 원대하다. 그러나 모두 이룰 수 있는 리스트라고 벅차게 짰다. 25년간 몸담았던 학교엔 할 만큼 했다. 자타가 공인한 바였다. 조금의 후회도 미련도 없으니 이젠 내 몸과 마음 모두 나를 위해 쓸 것이다.우선 한 나이라도 젊을 때 전공을 살려 해외봉사를 할 것이다. 코이카에 입회해두고 일정을 수시로 확인했다. 한국어강사 전문가그룹을 선발할 때 신청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그 봉사를 2년 한 후엔 해외여행을 할 것이었다. 지인과 친척 동생이 있는 미국, 독일, 일본, 제자가 있는 베트남과 네팔에서도 언제 올 거냐는 성화가 빗발같지만 순서를 기다리라고 간신히 주저앉힌 상태였다. 어느 곳이든 한 번 가면 한 달 이상씩 살기를 할 거라면 협박을 해도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태세다. 그 계획조차도 구체적으로 짜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선 튀빙겐을 거점으로 해서 오스트리아, 스위스 헝가리까지, 일본에선 시코쿠 오헨로 108순례길, 네팔에서는 4월의 트레킹, 이런 식이다.엄청 바쁘게 살긴 했지만 게으른 천성 탓에 몸을 돌보지 못함을 반성하며, 몸만들기 프로그램도 오지게 짜봤다. 요가배우기, 필라테스배우기, 실내클라이밍 도전, 자전거 타기, 하루 5천 보 이상 걷기, 차 팔고 대중교통 이용하기….해외 봉사 실행되기 전, 틈을 봐서 국내 봉사도 가능하면 해 봐야겠다. 가정복지관도 기웃거려 보고, 지역 주민센터나 문화센터에서 자원봉사할 것을 찾기 위해 집으로 다달이 배달돼 오는 구청소식지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오히려 배울 정보들이 더 많았다. 재봉, 그림, 서예, 피아노도 쳐볼까….그래도 공부가 체질인데 공부 계획도 세웠다. 이참에 천자문 쓰기 1년 완성, 오래전 잠시 배우다 만 일본어기초, 영어회화기초도 배워야지, 외국여행을 위해서도 유용할 테니, 그보다 먼저 한국사능력시험도 도전할 거야…. 제일 먼저 수험서를 두 권이나 사고, 유튜브에 한능검 채널도 구독했다.무엇보다도 난 온전히 할머니 역할을 하고 싶었다. 바빠 이따끔 얼굴 보고 밥 먹는 할머니 말고, 최소 일주일에 하루이틀을 데리고 자고 보살펴 주는 할머니, 내가 직장 다닐 때 내 아이들을 할머니께 맡겨두고 잠시 망중한을 즐겼던 때를 생각하며 며느리에게 숨구멍을 주고 싶기도 했다.실제 주위의 많은 이들이 나의 은퇴 후가 궁금한지 더러 물었다.“퇴직후에도 뭔가 더 하실 거지요?” “아뇨. 할매만 할 거에요. 사회에서는 잊혀진 여자가 되고 싶어요.”이렇게 격정적으로 할머니이고 싶었다.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면 딱 좋은 거, 밤새워 영화를 보면 될 것이었다. 비싸지 않은 영화채널을 구독해 두고 장르별로, 국가별로, 감독별로, 배우별로 묶어 보아도 좋을 것이었다.이렇게 연도별, 순서별로 짜놓은 나의 찬란한 버킷리스트 24개가 전면 수정될 지경이 온 것이었다. 코로나19때문이었다.

2023-01-11

코로나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나기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코로나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확진자가 2천700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2명 중 1명은 걸린 셈이다.작년에는 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 변이가 대유행하면서 코로나 발생 초기의 위험성과 공포감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린 후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일반 독감은 타미플루(알약)나 페라미플루(주사약)라는 특효약이 있어서 비교적 후유증 없이 빨리 회복할 수 있으나, 코로나의 경우는 치료제가 일반화 되어 있지 않아서 해열제 등으로 나을 때까지 버티다보니 후유증이 심하면서 오래 가고 있다.코로나 후유증은 단순한 ‘불편감이 남아 있다’가 아니라, ACE2 수용체를 통하여 전파되는 염증 반응과 섬유화 반응에 의해 실제적인 손상이 일어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혈액 응고 체계에 작용하여 혈전 형성을 촉진하는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코로나 후유증을 ‘시간 지나면 나을거야!’라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적절한 조치를 해서 손상된 조직의 빠른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피로감은 가장 흔한 후유증이다. 여러 가지 염증으로 인해 피로감이 지속된다.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염증 반응이 남아 있다는 얘기이므로 꼭 치료를 해야 한다.호흡곤란, 기침, 가래 증상은 코로나 급성기에 폐와 호흡기관의 내피세포에 일어난 손상 때문에 생긴다.심장 불편감은 심근염 등으로 심장 근육에 무리를 주어 맥박이 너무 빨리 뛰거나, 가슴 답답함, 가슴 통증 등으로 나타난다.머리 증상은 신경염증 증상이 낫지 않으면, 머릿속에 안개 낀 듯이 멍한 느낌이나 두통 등으로 나타난타.후각 및 미각 기능 장애는 후각 신경과 맛을 느끼는 수용체에 손상을 주어 냄새와 맛을 못 느낀다.한의학에서는 대병(大病) 후에 소진된 기력과 진액을 보충하여 인체가 스스로 정상 기능을 회복하도록 해 주는 방법이 있다. 인삼 황기 숙지황 당귀 녹용 등의 약재가 주로 사용된다. 아울러 항염증 작용이 강한 황련 황금 시호 등의 약재, 폐와 호흡기관의 손상된 내피세포의 회복을 도와주는 맥문동 천문동 사삼 등의 약재, 심장 근육의 기능을 돕고 혈전 생성을 막아주는 삼칠근 단삼 등의 약재, 신경염증의 증상을 완화하여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천마 백지 박하 등의 약재, 후각과 미각 기능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신이 유근피 창이자 등의 약재를 후유증의 종류에 따라 적절히 가미하여 처방한다.개인의 체질과 후유증의 종류에 맞게 처방된 한약을 복용한 분들은 증상이 빠르게 소실되어 쉽게 일상으로 복귀한 경우가 많았다.코로나 후유증은 인체 내부에 실제적인 손상을 일으킨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냥 쉰다고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격리가 끝나면 가까운 한의원을 방문해서 후유증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한약 처방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새해에는 코로나가 종식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코로나가 계속 된다면 몸에 좋고 부작용 없는 한약 전문가인 한의사와 친해져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 해를 잘 보내시길 기원드린다.

2023-01-11

대숲 바람

윤명희 수필가 장구채 끝에서 노랫가락이 춤을 춘다. 그 춤은 휘어졌다가 슬금슬금 바닥을 기다 요동치듯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대숲 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촌락의 따뜻한 작은 방은 흥으로 그득하다. 두레밥상 위에는 반쯤 남은 막걸리의 잔이 가늘게 떨리고 나는 숨죽여 손가락 장단을 맞추고 있다.퇴근 후, 차를 몰고 밤길을 달렸다. 산 중에 대숲으로 둘러쳐진 친구의 친정집은 우리의 놀이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은 늘 비어 있어, 이른 봄이면 막 연초록의 키를 키우기 시작하는 앞산을 보며 수다를 떨기에 그만이다.여름 낮에는 다슬기를 잡고, 밤이면 마당에 나와 별을 센다. 가을이면 뒷담을 기대선 늙은 감나무가 궁금하고 오늘 같은 겨울에는 따뜻한 방바닥이 그리워 찾아가는 곳이다. 출발할 때부터 눈발이 흩날리더니 저수지를 지날 무렵에는 안개까지 자욱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당산나무를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자 멀리서 대숲 바람이 먼저 맞이한다. 경로당 앞에 차를 세우고 언덕에 누워계시는 친구의 부모님께 눈으로 인사를 했다. 얼마 전까지 장구 장단에 어깨춤을 추시던 구순의 동네 할아버지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 친구가 미주구리가 제철이라고 하는 말에 급조된 만남이다. 오늘은 집주인인 친구가 소리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는 소식에 걸음이 바쁘다. 어떤 분이실까 궁금증이 먼저 마당을 들어섰다. 방문을 와락 열고 들어서자 매번 만났던 냥 전혀 낯설지가 않다.작은 두레밥상에는 미주구리 무침에, 익어가는 김장김치가 막걸리를 유혹하고 있다. 두어 잔이 오르내리자 우리는 소리가 담긴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선생님이 방 한 귀퉁이에 있는 장구를 끌어당겨 따 닥 장구를 두드렸다. 제자인 친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자 우리는 매번 듣는 소리가 아닌 명창의 가락을 듣고 싶다며 졸라댔다. 따다닥 딱딱 쿵 딱. 소리가 장구를 껴안듯이 착 달라붙었다.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눈을 깔고 두레밥상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에 젖어들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노래가 친구에게로 넘어가고 노랫가락은 끝없이 이어졌다.매끄럽게 넘어가는 친구의 음률 따라 은근슬쩍 우리의 거친 목소리도 끼워 넣었다. 얼쑤! 선생님의 추임새에 신명이 올라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차르르’ 뒷곁에 대숲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집을 한 바퀴 돌아가고, 박자를 맞추듯이 그 사이로 ‘따그락따 딱딱’ 다른 소리가 들린다. 친구는 댓잎 바람의 마지막에 따라가는 것은 죽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그들도 따라 장단을 보태어 흥겨운 노래판이 되었다. 막걸리 몇 잔에 우리의 흥은 어깨까지 오르고, 장구 장단에 눈발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산골의 동짓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장구 장단을 멈춘 선생님이 우리를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아이고 얄구재라, 가만히 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구마는 어째, 하나 같이 똑 같을고. 앞으로 나도 이 모임에 끼워 줄거라?”우리는 손바닥을 쫙 펴고 독수리 오형제가 된 것을 선포했다.권주가를 부르며 다시 또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허공에 그려지는 장구채의 그림과 맺고 끊는 장구 장단에 따라 우리의 가락도 달라져 갔다. 역시 고수였다. 나는 장구 장단에 노래가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장구가 노래를 받쳐주고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와는 달리 우리의 노래는 원곡과는 상관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가 튕겨 올라붙었지만, ‘촤르르’ ‘따그락따 딱딱’ 댓숲 바람이 사이사이를 채워주었다.밤은 깊어가고 마을은 어둠에 잠긴다. 작은 방에 언니 동생 옹기종기 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던 어린 시절처럼 따끈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내일 아침이면 잰걸음으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랬듯이 누구 하나 쉬 잠들지 못한다. 흥얼흥얼 다하지 못한 노래가 나지막이 깔리더니 방안은 조용해지고, 대숲도 잠이 든다.

2023-01-11

경인(庚寅)

육십갑자 중 스물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경인(庚寅)이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큰 바위나 산을 뜻한다. 지지(地支)의 인목(寅木)은 생동적인 양(陽)이며, 계절로는 음력 일월이다. 큰 산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 위에 노니는 호랑이 형상이다.경인일주의 천간 경금은 가을이다. 수확과 결실의 기운이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의리를 중요시하지만 혁명의 기운도 내포하고 있다.또한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어 엄격하고 강한 기운이다. 불의에 참지 못하는 용맹함과 의협심이 강해 지도자 기질이 있다. 단점으로는 성질이 다소 급하고 민감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벌해진다. 행동은 거칠고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에 외로운 신세가 된다.지지 인목(寅木)은 이른 봄기운이다. 차갑게 언 땅을 뚫고 치솟는 기상이 있어 추진력이 강하고 역동적이다.인(寅)은 동물로는 호랑이다. 사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지만, 호랑이는 홀로 다닌다. 고독하지만 영혼이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다. 용맹함과 권력을 쟁취하는 우두머리 기질이 있다. 명예욕이 많기 때문에 남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밝고 명랑한 모습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거칠고 사나운 성격이다.경인일주를 칼 맞은 호랑이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한번 날뛰면 살벌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친다. 활발하고 강직하나, 지기 싫어하는 성질로 변화가 많다. 집착하고 투쟁심이 있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한다. 12운성의 절(絶)궁에 있어 불행을 딛고 일어나는 힘이 강하다. 전화위복의 횡재수가 있는 일주다.‘세설신어’ 자신편에 나오는 글이다. 중국 전국시대 진(晋)나라 때 의홍마을에 주자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싸움을 좋아했다. 고을사람들이 그를 화근덩어리로 여겼다. 의홍마을 강 속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교룡이 살고, 산속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있어서 마을사람을 괴롭혔다.의홍사람들이 이 같은 세 가지 골칫거리를 ‘의홍의 삼대 화근’이라 불렀다. 그 중에서 주자은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어떤 사람이 주자은에게 호랑이와 교룡을 없애 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우선 두 가지만이라도 없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주자은은 이에 산에 가서 사나운 호랑이를 죽이고, 다시 강으로 가서 교룡을 올라타고서 칼로 찔렀다. 교룡은 물 위로 떠올랐다 물 밑으로 가라앉다 하면서 몇 십리를 떠내려갔다. 사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주자은도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 시원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며칠 후 주자은이 교룡을 완전히 죽이고 물 위로 치솟아 올라왔다.오랜 싸움으로 기진맥진해진 주자은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잘 되었다고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 자기가 교룡이나 호랑이처럼 이웃사람들로부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 뒤 육손의 손자이며 유명한 문학가인 육기와 육운 형제를 찾아갔다.육기는 집에 없었고, 육운을 만나 마을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려고 생각한다는 것과 이미 나이가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도 말했다.육운은 “옛사람은 아침에 도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고 생각했소.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오. 사람이 걱정해야 할 것은 아직도 나아갈 길을 정하지 못한 것이오. 일단 가야 할 길이 정해진다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든 말든 마음 쓸 필요가 뭐 있겠소”라고 말했다.그의 말을 듣고 난 뒤 주자은은 진심으로 지난 잘못을 고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후에 진나라에 어사중승이라는 벼슬을 맡았고, 임금의 명을 받아 전쟁터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는 충신이 되었다.인간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기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완성을 향한 구체적 방향이나 내용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인일주는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체적으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 고생하다가 결국 윗사람이나 귀인의 도움으로 성공을 거두는 운의 소유자다. 하지만 큰일을 추구하는 용기가 과하다 보면 실패를 자초할 수도 있다. 자칫 오만하기 쉬워 주위에 미움을 받기 때문에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인일주는 본디 그 외모가 화려하다. 피부색도 화려하며, 치장하는 모습이나 본 모습이 화려하다. 편인과 편관의 힘으로 남에게 돋보이기를 좋아하며 꾸미기를 좋아 한다. 남자는 단정하고 깔끔한 얼굴로 세련되게 꾸민다. 여자는 피부가 하얗고 매력적인 외모를 자랑한다.경인(庚寅)에는 편관(偏官)이 있어 무인처럼 엄격하고 칼을 쓰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전쟁에서 적과 마주했을 때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下)’ ‘칼을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이다’는 글이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져 있다.1950년 경인년(庚寅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성 잃은 호랑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은 참혹하고 냉정하다. 풍요로운 생활과 습관으로 전쟁의 상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 혼란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올 한 해도 냉정한 판단으로 어떤 재난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겠다.

2023-01-11

불만을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면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 새해시작과 함께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시는 이례적으로 정기인사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효율적인 행정 운영을 위해 조직개편과 지난해 12월 완료한 경산시 맞춤형 인사조직혁신 컨설팅 용역을 바탕으로 공정한 보상과 성과 중심의 인사를 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또 민선 8기 목표인 ‘시민 중심 행복 경산’을 위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해 시민이 행복한 공직문화 실현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반영해 승진과 신규임용, 전보를 단행했다고 덧붙였다.특히 승진 인사에서 민선 8기 역점시책사업을 완성해 나갈 추진력과 능력, 시민을 위한 성과, 시민과의 소통 및 공감 능력 겸비, 시정 기여도와 관리자로서의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상당수의 발탁 승진을 단행한 의미 있는 인사였다고 자평했다.중앙무대와 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서울사무소장에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개방형 임기제를 도입해 경쟁력 있는 국책사업 유치와 대외협력을 강화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설명도 했다.경산시는 시민과의 소통과 지역 알림이 역할의 홍보업무를 강화하고자 시민소통담당관을 신설하고 시민고충상담TF팀을 정식기구로 개편하기도 했다.조현일 경산시장도 “일 잘하는 공무원이 공정한 보상을 받는 조직문화를 조성해 우수직원에게 특별승진, 특별승급, 실적가산점 부여, 성과상여금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조 시장은 이어 팀장에게 고유업무를 부여하고 희망 보직 신청제도와 직원 공감 고충 심사제도 운용 등의 추진 의지를 밝혀 다음 정기인사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경산시의 노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평가는 단기간이 아닌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 한 발 앞이 아닌 멀리 내다보고 특히 인력 운용은 단기간 승부수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많은 사람이 시간이 흐른 후에 고개를 스스럼없이 끄덕일 때 그 결과가 존중받는다. 정기인사에 대한 불만을 느낀 공직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도 내일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만을 공격용으로 삼지 말고 시민과 지역민을 위하는 사랑으로 변화시킨다면 자신이 맡은 일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shs1127@kbmaeil.com

2023-01-11

방탄국회 속앓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방탄국회’ 논란이 계묘년 첫 임시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9일 야당 단독으로 임시국회 문을 열었지만 ‘방탄국회’ 공방으로 여야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오전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피의자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했다. 민주당 지도부 등 당 소속 의원 20여 명이 동행했다. 개선장군을 보는 듯 보무당당했다. 보수와 진보측 지지자 수 백 명이 현장에서 서로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1월 임시국회는 방탄 논란만 벌이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국회는 지난 연말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바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맹비난했었다. 결국 연달아 방탄국회가 열리고 체포동의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하지만 검찰의 성남FC 후원금 사건 관련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2탄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는 김용·정진상 두 최측근의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 사건 수사로 이 대표에 대한 출석 조사 요구와 구속영장 청구를 또 할 수 있는 것이다. ‘방탄 국회’가 거듭될 경우 민주당의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례없는 연속 방탄국회에 국민들은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방탄국회는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 특권’을 이용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소속당에서 임시국회를 여는 것을 말한다. 사법당국의 불법적인 억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불체포 특권이다. 또 이를 이용한 것이 ‘방탄국회’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이 쓰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1

대학에게, 위기는 기회일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학이 많다. 일반대학, 전문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사이버대학, 기술대학 등 모두 합치면 400개도 넘는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대학진학율이 42%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69%로 단연 일등이다. 미국이 47%이며 유럽국가들도 40% 초반에 머문다. 독특한 교육열이 배경이 되고 정책이 뒤를 밀어 대학들이 많아졌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다가온 인구감소현상은 급기야 대학교육의 지평에 위기를 불러왔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도모해도 시원치 않을 터에, 우리 대학들은 과감한 변화와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우선 지방대학.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현실에서 이전에도 지역의 대학들은 쉽지 않았다. 지역소멸까지 예상되는 형국에 지방대는 가히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위기가 기회라지만, 그간에도 교육부의 재정지원에 기대어 근근히 버텨오던 대학들이 지역에서 활력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지역대학들이 시들해지면 지역에 젊은이들이 사라져 역동적인 기운마저 없어지면서 지역은 소멸의 동력을 부추길 뿐이다. 대학들이 지역에서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회복하여 지역과 함께 일어설 방도를 찾아야 한다.먼저, 평생교육. 20대 초반까지 교육을 마치고 평생을 그에 의존하여 살았던 교육패러다임은 수명을 다하였다.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다시 배울 필요는 점증해 간다. 인공지능과 코딩역량, 온라인과 디지털은 이전에는 없었던 교육수단과 전달방법으로 습득해야 할 덕목이 되었다. 20대 초반 학생들만 상대했던 대학교육 대상모델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백세시대에 걸맞게 대학의 문을 더욱 넓게 열어야 하며 학기제, 학과제, 학위제로 제한된 교육과정패러다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상품이 변화된 소비자 트렌드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디지털문명과 함께 의미가 없어야 할 지역격차를 활용하여 지역과 대학은 분명하게 특화된 교육모델을 제시하면서 돌파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상상과 창의는 21세기 지역에서 대학이 쏘아올릴 신호탄이어야 한다.수능을 기반으로 하는 대입제도를 이제는 손을 보아야 한다. 시험결과에 의존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의 경직성도 극복해야 한다. 재기발랄한 MZ세대의 고등교육이 30년도 넘은 제도에 묶여 휘둘리는 게 말이 되는가. 전국이 학생들에게 동일한 시험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획일성도 문제다. 지역대학의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여 지역에서 비전을 가지고 꿈을 키워갈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객관식으로만 디자인된 시험방식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학생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각하고 분석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지역과 대학에게 닥친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20대 청년층만 상대하던 대상마켓을 성인 전 연령층으로 넓혀 바라보고 개인과 지역에 필요한 교과과정을 융통성 있게 기획하여 대학이 살아날 뿐 아니라 지역도 함께 일으키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01-11

청년이 한해 200명이나 孤獨死한다니…

심충택 논설위원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리현상 중 하나가 고독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고독사에 대한 공식 통계가 처음으로 나왔다. ‘가족, 친척, 지인과 단절된 채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정부가 처음 집계한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쓸쓸한 죽음인가.보건복지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7∼2021년 5년간 국내 전체 고독사 수는 2천412명→3천48명→2천949명→3천279명→3천378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해 전체 사망자 30만∼32만 명의 1%가 넘는 수준이다. 50·60대 중장년 세대가 58.6%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지역도 고독사 연평균 증가율이 10%대에 이를 정도로 위험수준이다.놀라운 것은 5년간의 전체 고독사 중 2030세대가 1천여 명이 넘는다는 점이다. 매년 200여 명의 청년이 어느 누구의 임종도 없이 홀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참한 통계다. 특히 청년 고독사는 극단적 선택 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50% 가까이 됐다.한국의 고독사 문제는 지난 연말 미국 CNN방송도 다뤘다. CNN은 “한국에 문제가 있다. 해마다 중년의 고독한 남성 수천 명이 홀로 사망하고 있다. 며칠, 몇 주씩 사망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이 방송은 고독사라는 단어를 ‘godoksa’로 표기하면서, 이 연구의 사례분석 대상자 대다수가 쪽방이나 반지하에 살았다고 했다. CNN은 쪽방을 ‘jjokbang’으로, 반지하를 ‘banjiha’로 표기하면서 한국사회만의 특유한 병리현상인 것처럼 설명했다.고독사한 청년의 유품정리를 하는 업체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청년이 마지막까지 혼자 있었던 공간에는 공통적으로 복용하던 우울증 약들과 배달음식, 널브러진 옷가지, 술병이 나뒹굴고 있어 마치 도시 속 외딴섬과도 같았다”고 한다. 특히 휴대전화를 보면, 통화기록이나 메모장에서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겪었을 정서적 고립감이 너무나 가슴아프게 드러난다고 했다.청년 고독사는 학업·취업 스트레스와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이혼한 청년 남성의 경우 자살위험이 엄청 높다고 한다. 고독사는 결국 사회적 고립이 불러오는 병리현상이어서 분명히 사전징후가 있을 것이다. 자칫 하나하나의 죽음을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등으로 일반화해버릴 경우 개별적인 원인들을 간과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청년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처방을 하려면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과 징후를 다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고독사는 사회병리현상이니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현실적인 예방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인가구를 잘 파악해서 지역사회와 연결 고리를 다양하게 구축해야 한다. 안부확인이나 이웃에 우편물·배달물건이 계속 쌓이면 주민자치센터에 연락하는 사회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2023-01-10

깡통전세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형 주택 임대차 방식인 전세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주로 월세로 집을 빌려 사용하나 우리나라처럼 월세없이 목돈의 전세금을 주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100% 전세금을 돌려받는 방식은 잘 없다고 말이다.조선총독부 관습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전세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세가 활성화된 것은 산업화가 극도로 빠르게 진행되던 1970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농촌인구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오면서 주택공급이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자 민간차원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제도라는 것이다.집주인은 전세자금을 무이자로 활용할 수 있어 좋고, 세입자는 매매보다 적은 돈으로 거주하면서 월세가 없어 부담이 적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정부 개입 없이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계약이라 전세금을 떼이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아 그동안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폭락하자 깡통전세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표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의 추정’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하반기 전세 계약만기가 도래하는 주택의 12.5%가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깡통전세는 매매가격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 주택을 매매하더라도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특히 대구와 경북의 깡통전세 확률이 전국 최고라고 한다. 대구 33.6%, 경북 32.1%다. 10채 중 3채가 깡통전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분석인데, 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깡통전세로 눈물을 흘릴 서민들의 피해, 정부가 미리 막아주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0

AI 시대의 평등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리는 것처럼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국가의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ICT 기술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AI 시대에 적응해 가고 있다.AI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의 접근성과 기회의 측면에서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핵심인 ICT 기술의 발전은 지식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지식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을 이제는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다양한 웹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또한 AI 시대에서는 가치 창출의 수단이 더욱 다양해졌다. 데이터는 더 이상 지켜야하는 대상이 아닌 공유의 대상이며, 데이터와 유휴 자원의 공유 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파급력은 이미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서비스들을 통해 입증되었다.이처럼 AI 시대에서는 이전보다 더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기대해 볼 법하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발도상국가들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이로 인한 세계 부의 평준화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국가와 지역간에 존재하던 교육과 정보의 불평등 문제는 이미 상당 부분 해소되어가고 있다.하지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모습이다. 원격 교육이나 원격 근무가 기술적으로 활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들은 해외 선진국이나 대도시로 떠나려고 한다. 아직 완전한 AI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이는 우리가 낙관하는 AI 시대의 모습이 아니다. 이는 현 시점의 우리 사회가 AI 시대의 기술적인 장점만 있을 뿐, 이외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 또는 문화에 대한 변화나 정책적 개선은 미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023년의 AI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기성세대들은 앞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AI 시대의 참 가치, 즉 보다 평등하고 차별 없이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AI 중심의 산업 또는 RD 정책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 초점을 맞춘 정책 또는 시스템 개선이 아닐지 모르겠다. AI 시대의 평등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보다 차별 없이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2023-01-10

아름다운 도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로운 희망과 기대 속에 또 한 해를 맞았다. 오고 가는 무수한 세월 속에 맞이하는 새해는 늘 그렇듯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열리는 것 같다. 새날이나 새해가 열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하루나 일년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새로운 배역으로 삶의 새로운 사연이나 작품을 써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거나 눈 덮힌 광활한 벌판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롭게 남기며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부터 현인(賢人)은 ‘눈밭을 걸을 때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고 했던가. 처음의 시작과 꾸준히 내딛는 발걸음의 자취가 그만큼 중요함을 설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사람들은 새해가 바뀌는 시점에 새로운 일년을 설계하고 목표와 희망을 다짐하며 보다 밝은 내일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가 새롭고 진보된 모습으로 더 알차고 나은 삶을 희원함은 당연지사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의 반복 속에 버물려 살아가지만, 사람이나 지역, 이념이나 시대마다 각양각색 삶의 단면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그 가운데 분명한 것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삶의 질이나 방향이 편리하고 윤택한 각도로 꾸준하게 변화,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의 연륜에 지식과 지혜의 깊이가 더해지고, 숱한 시행착오 속에 세상은 해마다 조금씩 유토피아적인 이상세계(理想世界)로 나아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대의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풍부하고 가치롭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정진하는 것이리라. 어제보다 더 낫고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준비하고 계획하며 행복을 가꿔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소박한 꿈이나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사소하고 미약한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듯이(事雖小 不作不成), 몸을 움직여 길을 나서고 생각이 향하는 곳으로 마음을 쏟아야 최소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성취할 수 있다. 노력하고 인내하며 위험을 범하고 모험을 시도하면서 미지의 길을 걷듯이, 새로움을 위한 탐험과 호기심으로 내딛는 첫발은 아름답기만 하다. 열정으로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듯이, 나이와 형편을 떠나 작심하고 입문해서 시도한다는 것은 갈채를 받을 만한 일이다.작년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은 윤 대통령 부부의 연하장에 사용된 칠곡할매글꼴은,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았던 7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애환의 삶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도전의 결실로 여겨진다. 이렇듯이 새로운 도전은 작고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큰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어렵거나 큰일도 쉽거나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고 했으니, 작은 목표라도 토끼 같이 귀를 쫑긋 세워 주변에 귀기울이며 영민한 걸음으로 도전하고 꾸준히 실천해보자.

2023-01-10

지구의 눈물, 팜유

팜유 채취로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는 오랑우탄. /언스플래쉬 얼마 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의 베트남 여행기가 그려졌다. 세 사람은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해 얼굴이 자주 붓고 기름기가 번들번들한데, 이 공통점을 가지고 그룹 이름을 ‘팜유 라인’으로 지었다. 팜유 라인은 베트남 달랏의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레스토랑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장장 스무 시간에 달하는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모인 세 사람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방송에서는 팜유라는 단어가 수백 번 등장했다. ‘팜유즈’, ‘팜유 라인’, ‘팜유 원정대’, ‘팜유 세미나’ 등등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 검색창과 연예 기사란은 온통 팜유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급격히 팜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팜유에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팜유는 정감 있고, 유쾌하며, 무해한 것이 됐다. 출연진들과 작가, 피디가 신중했어야 하는 지점이다.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쓰였지만, 팜유의 진실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지난 70여 년 동안 오랑우탄 개체수는 지구상에서 전체 80퍼센트 감소했다. 그 결과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30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숲 4천 만 헥타르가 사라졌다. 우리나라 면적의 네 배다. 가구, 종이, 선박 제조 등에 쓰이는 목재를 얻기 위해 대규모 벌목이 자행됐다. 벌목보다 더 심각한 건 야자유, 바로 ‘팜유’ 채취다. 식용유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는 공산품들 중 식품, 샴푸, 치약, 비누, 화장품 등의 원료명에 팜핵유, 팜올레인유, 팜스테아린이 적혀 있으면 야자유가 함유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보르네오섬에서는 인간이 암컷 오랑우탄을 포획해 화장을 시키고 란제리를 입힌 후 인간 남성들을 고객으로 하는 매춘 학대를 저지르기도 했다.‘나 혼자 산다’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다. 1인 가구 시대에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던 초기의 취지는 이제 사라지고, 유명인들의 럭셔리 라이프가 전시되거나 친한 연예인들끼리 어울려 노는 친목 과시만 남았다. 그래도 전에는 환경 문제나 사회적 약자의 소외 양상 등 시의성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미만 남았다. 시청자들은 ‘나 혼자 잘산다’라든가 ‘너희들끼리 산다’라고 비꼬는 중이다.이번 ‘팜유’ 에피소드는 ‘나 혼자 산다’의 문제와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음’이야말로 ‘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수십만 명 환경운동가들의 간절함보다,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가 훨씬 더 파급력이 크다. 팜유는 ‘지구의 눈물’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금 배달된 장미 한 다발/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설마 이 꽃들이 케냐에서부터 온 것은 아니겠지/ 장미 한 다발은/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주로 고속도로에/ (…) 도시의 사람들은/ 장미 향기에 섞인 휘발유 냄새를 눈치채지 못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칠에서 십삼 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휘발유가 필요하겠지/ (…)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나희덕,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부분) 꽃의 아름다움을 잠시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탐욕은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결국 세계를 황폐하게 한다. 시인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 희생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생각해보자고 설득한다.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된다. 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삶이 자연과의 촘촘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함께 잘산다’가 될 수 있다. ‘팜유 라인’ 멤버들은 생각해야 한다. 팜유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를. 물론 우리도 알아야 한다.

2023-01-10

편지를 쓰는 일

2023년의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 아침에는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고, 한가로운 오후엔 집에만 누워 있기 심심해서 동네 대형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새로 나온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편지지가 놓인 작은 매대를 발견했다. 딱히 편지 보낼 일이 없지만 무언가 편지지를 꼭 사야만 할 것 같았고, 왜인지 무엇이든 써야만 할 것 같아 가장 화려한 색의 편지지를 골라 샀다.편지에는 다양한 말들이 적히지만 주로 안부나 소식, 간단한 용무 따위를 적어 상대에게 보낸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 방식이었으며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는 직접 종이에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전하는 중요 통신 수단이었다.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편지는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간단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고, 중요한 업무 내용을 전달하면서 손으로 적는 편지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소중한 이와 다툼이 있거나 중요한 회의를 나눌 때에는 문자보다는 반드시 만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한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불가능한 단순한 텍스트는 오해를 낳기 쉽고 정확한 소통을 나누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으로 적어내는 편지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특히나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편지에는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일정하게 적어낸다. 그간 말로는 전하기 힘든 사랑의 말을 정돈하여 적어내기도 하고 응원과 희망 같은 밝고 환한 언어들을 잔뜩 힘주어 눌러 담기도 한다. 그렇게 담아낸 마음은 시간 간격을 두고 수신인에게 전달된다.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기 보단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우회하여 전달하고 싶을 때에 주로 편지를 택해 쓴다.가만 보면 편지를 담는 편지 봉투의 생김새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면서도 믿음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편지 종이든 크기에 맞는 편지지가 짝꿍처럼 같이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편지지는 빈 틈 없이 봉투에 꼭 맞아 들어간다. 편지 봉투는 편지지를 보호하기 위해 편지지보다 긴밀하게 두꺼우면서 사방이 막힌 네모반듯한 정직한 형태를 지녔다. 값비싼 물건을 감싸는 천 덮개나 보자기처럼 어딘가 믿음직스러워서 애정 어리게 보게 되는 구석이 있다.수신인이 없는 편지도 있다. 미처 보내지 못하는 편지나 나에게 쓰는 편지는 꼭 일기와도 같다. 김광석의 ‘편지’라는 곡은 이미 나의 곁을 떠나버린 수신인을 향하여 가닿지 못할 말을 노랫말로 적었다. 더는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너에게 담담하게 이별을 읊조리며 체념하며 너의 행복과 안녕을 빈다. 격정과 분노를 뺀 정제된 언어는 편지 속의 글과 닮았고, 덜어내었기에 감미롭고 담담하기에 슬프다.미국의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인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생의 말년엔 집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자로 보냈다. 에밀리 디킨슨은 일생 동안 1천775편의 시, 1천49통의 편지, 124편의 산문을 썼으나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말년엔 모든 소통을 편지로 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친오빠의 아내였던 수잔 길버트 디킨슨과는 약 300여 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보냈다고 한다. 은둔 생활 중 유일한 소통의 수단은 편지였을 정도로 그녀는 주로 고독을 말하며 썼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특히나 편지와 관련된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 시에선 ‘그’라는 대상에게 가기 위해 얼마나 ‘내 손가락들이 허둥대는지’,‘얼마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지’,‘문장이 얼마나 힘겹게 쓰이는지’에 대해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 편지에 봉인한다.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과 부끄럽고 서툰 마음을 편지를 쓰듯 간결하면서도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애정이 담긴 위트와 애달픈 긴장을 느낄 수 있어 더욱 느릿느릿 읽어 내려갔던 시다.결국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무언가 쓰고 싶었던 이유에는 까닭 없는 명랑함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편지는 첫 문장이 어색하고 다소 어두울 지라도, 내용의 끝에 다다를수록 아주 간단히 명쾌한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한 해의 시작 앞에서 무언가 두렵다거나 또는 지나친 걱정을 앞세우더라도 끝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나를 위한 건강한 사랑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올해도 무엇이든 명랑하게, 무사한 안녕을 빌어본다.

2023-01-10

‘어느 편이냐’ 묻는 당신에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진보정권에서는 진보를 비판하고, 보수정권에서는 보수를 비판하는 당신은 도대체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언론이나 지식인은 정권·이념·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진실·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자유·정의·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는 ‘편 가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프레임은 정치이념이 반영된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정치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자유인의 사고는 유연성을 잃고 정신적 노예로 전락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편이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에 빠졌다는 것은 주체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자유와 진리를 사랑한다면 ‘진영과 진영 사의의 경계’에 서야 한다. ‘경계인’의 삶이야말로 자유인의 지성적인 삶이다.‘정의’라는 담론 역시 진영논리로 정치화되면 ‘선택적 정의’가 ‘보편적 정의’를 대신하게 된다. 편향적인 ‘보수의 정의’나 ‘진보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이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정·정의·상식’의 역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한 이유는 대통령들의 정치성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은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는 공존을 지향할 때 비로소 보편적 정의가 될 수 있다.‘확증편향이 지배하는 흑백사회’에서는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 사람을 흔히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매도한다. 보수를 비판하면 진보이고, 진보를 비판하면 보수라는 단세포적 발상은 반민주적 흑백론이다.파스칼(B. Pascal)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천사(백색)도 악마(흑색)도 아닌 중간적 존재(회색)”이다. 완벽한 백색 또는 흑색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수많은 회색들의 농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중도층이 보수와 진보의 극단화를 막아주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빈부갈등을 완화시켜주니 ‘회색지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확증편향이라는 병’은 망국병이다. 조선시대의 동인과 서인, 해방정국에서 좌파와 우파의 극단적 대립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독선과 오만에 빠진 ‘편 가르기의 끝은 공멸’이다. 정치이념이 종교화되면 권력투쟁은 종교전쟁처럼 극단화되기 때문이다. 독선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신념’이며, ‘외골수의 신념’은 이성적 토론을 어렵게 함으로써 마침내 민주주의는 사망하게 된다.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자. 그 대신 우리의 인식과 행태가 불편부당(不偏不黨)하도록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자.철학자 호르크하이머(M. Hork heimer)는 “인간의 이성이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포기할 때 비극이 초래된다”고 했다. ‘확증편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성찰’과 ‘통합적 인식의 시선’이 절실한 이유다.

2023-01-09

‘산분장(散粉葬)’에 ‘퇴비장’까지

홍석봉 대구지사장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장사(葬事) 방법도 새로운 것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매장에 화장을 한 후 ‘수목장’을 하는 것이 그동안 가장 앞선 방법이었다. 여기에 이제 ‘산분장’까지 추가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주검을 거름용 흙으로 활용하는 ‘퇴비장’까지 등장했다. 아직 우리네 국민 감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퇴비장도 언젠가는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화장 후 산이나 바다 등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의 법적 근거를 마련, 발표했다. 방식을 산분, 수목장림, 해양장 등으로 확대해서 2023년까지 구체화하고, 2024년에 법제화한 후, 2027년까지 산분장 이용 비중을 화장 건수의 3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조사 결과 희망하는 장사방법으로 화장이 89.1%로 가장 높고 매장은 10.9%로 나타났다. 희망하는 안치방법은 자연장 41.6%, 봉안 35.3%에 이어 산분장이 23%로 세 번째로 높았다. 산분장은 법규 보완이 필요하다. 산이나 강 등 육지는 산분장이 가능한 구역을 특정하고, 바다는 금지 구역을 지정하는 등의 제한을 두어야 한다. 국립공원, 상수원보호구역 등 법률로 금지된 지역이 아닌 개인의 토지, 선산은 현재 화장한 유골을 뿌리거나 매장해도 괜찮다. 집 화단에 수목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마침내 ‘퇴비장’까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시신을 자연분해한 뒤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의 퇴비장을 허가했다. 친환경 논란과 함께 종교계의 반발이 적잖은 모양이다.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흙이 되기까지 과정은 유족의 선택에 달렸다. 주검이후에도 장사방법을 고민해야 할 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9

사랑하다의 다른 표현 ‘붕괴되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한 남자가 산에서 떨어져 죽는다. 형사(해준)는 살인인가 자살인가의 의문에서 출발해 증거를 수집한다. 죽은 남자의 부인인 서래는 용의자와 피의자 사이를 오가며 의심과 신문(訊問)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나간다. 형사와 용의자는 신문(訊問)과 증명(알리바이)을 주고 받으며 혐의를 입증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의 추리 수사물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남여가 만난다. 호감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대화하고 관찰하고 모든 행동과 대화를 되새기면서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조심스럽게 타진해 나간다. 사소한 행동,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그 과정이 애틋하다.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서로 다를 것 같은 장르가 한 편의 영화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어우러지고 있다. 저 사람은 ‘범인인가 아닌가’가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같은 선상에 놓인다. 수사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고, 신문의 과정은 타인과 나를 동일한 감정 선상에 놓이게 한다. 혐의를 입증해야하는 과정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수사가 끊임없는 의심과 증명의 과정을 밟을 때, 사랑은 관심과 마음의 표현이라는 과정을 따른다. 그래서 ‘저사람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인가?’는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범죄와 사랑의 증명을 위해 증거(관심)를 수집하고 확인해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수사극으로 시작한 영화는 멜로영화가 되고, 멜로가 시작될 때 다시 수사극으로 중첩되어 전환된다.수사가 유죄와 무죄의 두 가지 결말에 따라 자유와 구속을 길을 걸을 때, 멜로가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이 다른 자유와 구속(?)의 길을 걷는다. 등치되고 상반된다. 설렘과 의심 사이 ‘자부심’과 ‘붕괴’가 교차된다. 범인인가 아닌가와 사랑했는가 아닌가가 교차되며 오간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는 서래의 대사처럼 용의자와 형사로 만난 두 사람은 모호함을 오간다.산에서 시작된 영화는 바다에서 끝난다.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듯이 용의자와 피의자의 관계가 시소를 탄다. 명확해지던 정황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자부심’과 ‘붕괴’를 오간다. 안개 속 같은 모호함 속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영화 제목인 ‘헤어질 결심’이 누구와 헤어질 것이며,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다. 헤어진다는 것, 이별을 한다는 것은 대상과 지향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산에서 시작된 영화 전반부의 ‘헤어질 결심’이 형사 해준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결심이었을 때 바다에서 이어지는 후반부는 의심하는 사랑에 대한 단호한 응징과도 같은 확신을 보여준다. 이것이 서래의 ‘헤어질 결심’이다. 반면에 해준은 ‘자부심’과 ‘붕괴’ 사이에서 의심과 그것을 증명할 무엇인가를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존재로 남는다.의심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고, 구속하는 것의 구조는 수사와 사랑이 유사하다. 그러나 미결된 사건처럼 확인되지 않고 결말에 다다르지 못한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사랑으로 남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붕괴’를 막고 ‘자부심’을 지켜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 희생이라는 역설에 있다.“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해준의 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똑같다. 사랑과 붕괴가 동의어가 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사랑이 되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미결사건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는다.엔딩에 이르러 ‘붕괴’된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한 여자가 ‘마침내’ 사랑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순간.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여운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번져옴을 느낀다. 오래 갈 것 같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1-09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소통

‘선녀와 나무꾼’은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티프 중 하나이다. 하늘의 존재가 어떤 이유이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존재와 이어지면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하늘과 땅을 잇는 이야기는 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농경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 또한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를 맺기 위한 과정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늘로 따라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의 노모를 방문하다 또 금기를 어겨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닭이 되어 하늘만 쳐다본다.‘선녀와 나무꾼’은 지역마다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일부 빠지거나 추가되어 전승되어왔다. 선녀 또는 나무꾼 한쪽만 이야기에 등장하기도 하고,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연인과 강제로 헤어지거나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선녀와 나무꾼은 평행선을 달리는 불통의 관계다. 나무꾼은 훌륭한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희망하는 자로서 계획적으로 약탈혼을 추진하며, 선녀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구속에 대한 해방을 꿈꾸다 나무꾼과 결혼한다. 특히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은 우리가 상상하던 절절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효를 강조하다 연인이나 부부를 이별시키는 비극에 가깝다. 결혼으로 끝이 나거나 홀로 하늘로 떠나버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선녀는 아이들을 꼭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하늘에 올라 함께 살던 나무꾼이 노모를 걱정하다가 지상에 내려가고, 금기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아이와 선녀, 노모와 나무꾼은 ‘엄마와 아이’라는 관점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돌봄과 돌봄을 당하는 생의 역전 관계에서 사랑은 뒷전이 되고 ‘선녀와 나무꾼’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대구에도 ‘선녀와 나무꾼’에 관련된 설화나 민담이 전승되고 있다. 신분 상승, 장가가기, 약탈혼, 이성에 대한 호기심, 구속에 대한 해방, 가정 지키기 등 욕망과 갈등 그리고 그 결과가 부분적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에서도 역시 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들을 엿볼 수 있다. 달성군과 동구를 살펴보면, 달성군 하빈면에는 선녀와 정을 나누고 도망가는 죄를 지어 지상으로 귀양 온 용이 좋은 일 10가지를 하고 승천하는 이야기(‘용재산 용의 승천’)가 있다. 달성군 옥포읍에는 선녀곡, 선녀지, 선녀마을, 선녀약천, 장부타령에서 선녀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이 너무 맑아 일곱 선녀가 여름이면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오고(삼탕 이천의 유래), 선녀에게 반한 머슴이 선녀곡 옹달샘에 들었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장대비를 맞는다(‘장부타령’). 달성군 가창면에서는 하늘에서 베를 짜러 내려온 옥랑각시에게 노총각이 반하여 욕심을 내었으나 놀란 선녀가 벽에 구멍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옥랑각시굴’)가 전해진다. 동구 불로동에서는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고 운명이 얽힌 양씨와 그의 아내가 된 다섯 선녀의 이야기(‘하늘 선관과 다섯 선녀’)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팔공산 자락의 환상산의 한 봉우리 초례봉에는 약 1천500년 전 어씨라는 나무꾼이 하늘의 선녀를 만나 초례를 올렸다는 이야기(초례봉의 유래)가 전해진다.또 달성군과 동구, 두 지역 모두 전승되는 노동요에서도 ‘선녀와 나무꾼’의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공산동의 민요 ‘베틀소리’에서는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짠다는 내용과 베틀의 부위별 비유적 표현이 들어있다. 동구 평광동의 민요 ‘어사용’과 달성군 현풍읍의 민요 ‘땔나무 노래’에서는 나무꾼의 신세 한탄이 주를 이룬다. 베를 짜서 옷감을 짓고 나무로 땔감을 삼았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금기를 어기고 이어진 인연이나 정서상 떨어뜨릴 수 없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선녀와 나무꾼이 인연을 이어가는 데 분명한 한계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냥 순수하게 인연을 맺지 못하는 현대인처럼 그 옛날 선녀와 나무꾼의 시선은 애석하게도 매번 엇나가기만 한다. 이러한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대구에서 정기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라는 지역 연극 작품에서도 그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랑은 현실일까 아니면 마술일까. 결혼과 돈 그리고 사랑. 현대연극 속 선녀와 나무꾼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함께 고민해보고, 옛이야기의 그들과 달리 소통과 배려로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상상해봐도 좋을 것이다.지역에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는 직접 발을 디딘 땅의 기억에도, 이야기로 재구성된 문화 예술에도 녹아있다. 지역마다 문화콘텐츠 사업에서 테마파크, 출판, 공연, 영상, 음반, 전시 등 다양한 장르로 발굴되고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서서히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풍부히 향유되지 못하는 문화가 세월에 먹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문화 발전을 위한 정기적인 스토리 콘텐츠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옛이야기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대구의 지역민에게도 살아 숨쉬는 문화로서 소통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1-09

포항을 녹색교통 도시로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신음하는 가운데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대규모 공업지대가 주거·상업지역과 인접해 있는 포항의 공간적 특성상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과 같은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신년사에서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녹색교통은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저탄소 교통체계이다. 보통 녹색교통이라고 하면 지하철이나 경전철 같은 대중교통수단, 그리고 최근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인 전기차를 떠올리기 쉽지만, 녹색교통의 ‘근본’ 격인 교통수단은 바로 자전거다.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덴마크의 코펜하겐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는 지금도 자전거가 교통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자전거 고속도로’ 시스템을 도입하여,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인근 20개 소도시를 지나는 총 길이 200km 이상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축하였다. 그 결과 지하철로 30분 가까이 걸리는 구간을 자전거로는 11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어 시민들이 실용적인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반면 한국의 자전거 문화는 교통수단보단 레포츠용에 가깝게 발전해 왔다. 연배가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쌀집 자전거’를 기억할 것이다. 무거운 쌀 포대를 몇 개씩 올리고도 끄떡 없이 골목길을 내달리던, 투박하지만 튼튼한 쌀집 자전거. 오토바이와 트럭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서울의 한강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통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집과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은 자전거로 달리기 위험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도 자전거 교통이 대중화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다.필자가 생활하며 느낀 포항은 녹색교통을 일상화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도시이다. 도시공간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자전거 이동이 용이하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형산강 자전거도로와 철길숲 자전거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형산강과 철길숲을 잇는 간선도로를 정비하고, 냉천과 칠성천, 포항운하 등 기존 하천과 수로를 따라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면 거의 모든 지역을 자전거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녹색교통 시스템이 완비된다. 차도 가장자리를 분리시켜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든 서울시의 청계천 자전거도로를 벤치마킹해도 좋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는 이용하기에 따라 전동 킥보드나 전동 휠 같은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대중교통에서 내린 뒤 최종 목적지까지의 교통 공백을 메꿔주는 이동수단)와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녹색교통 인프라 정비의 필요성과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식 변화의 중요성이다. 도로는 자동차의 전유물이 아니며,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빠르고 편안하게’ 보다 ‘조금 느리지만 저탄소로’ 이동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다.

2023-01-09

귀가 두 개인 이유

김규인 수필가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어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다. 코로나는 여전히 사람 속을 헤집고 다니고 높은 물가와 금리는 삶을 옥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언제 끝이 날지 기약이 없다.서민들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힘겨운 삶을 산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경제 상황으로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만 본다. 심지어 국가공무원도 정부의 감원 계획에 앞날을 걱정하며 새해를 맞는다. 취업 자리가 줄어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시름도 깊어져 간다. 그나마 정부가 2023년도 예산을 조기 집행하여 경제의 불씨를 지피는 노력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정파적 이념에 사로잡혀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뒷전이다.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면서 말끝마다 내뱉는 국민 타령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입으로는 맨날 국민을 앞세우면서 실상은 자신의 입지와 정파의 이권을 챙기기에 바쁘다. 올해는 국회의원이 가진 수백 가지의 혜택 중에 하나라도 내려놓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오일 쇼크가 벌어질수록 정유회사가 돈을 벌고, 금리가 오를수록 금융권의 성과급 잔치는 늘어난다.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꼬박꼬박 빌린 돈의 이자를 내며 말없이 이를 지켜보는 서민들은 답답하다. 말이 없음이 모두 동의가 아님을 알지 못하는지.사람의 귀가 두 개요 입이 하나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지. 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말이다. 귀가 양쪽에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으라는 말이다. 지금은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2023년은 계묘년, 토끼의 해다. 신이 두 귀가 유난히 큰 토끼를 내려보내 주심은 뜻이 있다. 다른 이야기를 큰 귀로 더 많이 들으라는 말이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토끼의 생존 전략은 간단하다. 항상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핀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상의 흐름을 균형 있게 듣고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산다. 지금은 큰 입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많이 듣자. 서로의 목소리를 낮추고 남의 말을 들어보자. 한 사람에 다른 사람의 뜻을 모아보자. 그러면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솔로몬의 지혜가 나오리니. 나 혼자만을 앞세우기보다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지자.우리는 살아오면서 숱하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인간사다. 살아야만 하기에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반드시 해답을 찾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지구의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민족이기 때문이다.세상일이라는 것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다. 모두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신은 어려움을 준다. 인간이 너무 나약하지 말라고. 전에도 이 정도는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새해는 서로를 보듬으며 가슴에 희망 하나쯤은 품고 살 일이다. 내일은 밝게 웃을 테니 말이다.

2023-01-09

세계 6위와 세계 21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연초에 엇갈리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한국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간지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 가운데 하나가 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저축량과 외국인 투자액을 기록한 국가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해마다 세계 85개국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 영향력을 설문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국가를 보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도이칠란트, 영국이며, 프랑스가 7위, 일본이 8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과 함께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 같은 대중문화를 선도함으로써 최강 1위를 지키고 있다.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 공정성 지수’를 발표했다. 신문은 인권 존중과 법 준수, 무역의 자유, 환경에 대한 배려 등 10개 지표로 세계 84개국을 평가했다. 신문은 이것을 ‘정치와 법의 안정성 (30점)’, ‘인권과 환경 (30점)’, ‘경제 자유도 (40점)’ 등 3개 영역으로 계량화하여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자유도 28점, 법의 안정성 25점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권과 환경 16점으로 중하위권에 머물러 종합 68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86점의 아일랜드였다. 일본은 77점으로 11위, 미국은 74점으로 17위였다. 34점의 중국과 33점의 러시아는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문이 내린 결론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세계화가 효율성을 우선했다면, 이제는 효율성과 공정성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벼락부자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양과 품위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두 가지 조사를 보면 우리가 나갈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잘살아보세’라는 한 많은 표어를 들고 일로매진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넘사벽’으로 여겨지던 경제 강국 일본을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성세대인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보였던 일본을 돌파한 한국인들의 저력이 새삼 가슴 뿌듯한 것이다.그러나 뿌듯한 가슴을 진정하고 주변을 살피면 상황은 급변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강고해지고, 승자독식의 아수라판이 날마다 펼쳐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방과 지방대의 소멸과 서울·경기도의 승승장구, 재벌과 대기업의 압승과 하청(下請) 중소기업의 몰락, 도시와 농어촌의 커져만 가는 격차,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아우성이 나날이 높아만 간다. 경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와 문화·사회격차를 잉태하고, 그것은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니혼게이자이’의 평가지표인 인권과 환경에서 낙제점인 16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아니라,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호시우행(虎視牛行)’하는 자세가 절실한 계묘년 2023년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다.

2023-01-08

대북 심리전

우정구 논설위원 북한의 무력도발에 맞서 한국군이 대북확성기 방송 등의 대북 심리전을 다시 펼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사용에 따라 자칫 군사충돌로 번질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 판단에 많은 이가 주목을 한다는 것이다.정부는 남한 영공침범 등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2018년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이는 대북 심리전 활동을 부활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검토란 점에서 대북방송이나 전단 살포가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무력없이 북한 군인 등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사상을 동요시키는 대북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무력적 선전 수단이다. 이는 9·19 군사합의 이전에도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무력도발에 가장 효과적 대응 방법으로 이를 손꼽고 있다.“심리전의 목표물은 적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단을 “들리지 않는 총성”, “종이 폭탄”, “심리전의 보병”으로 부르는 것은 전단 효과를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은 전쟁 개시 4일째 무려 1천176만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25억장의 전단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대북 심리전이 비무력적이면서 상대 군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써 전술적 효과가 크다면 지금은 이를 활용할 운용의 묘가 필요한 때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북한의 연쇄 무력도발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을 보호할 장치로서 대북 심리전을 활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8

선거법 개정, 국민의 소리 들어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제기했다. 연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거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거법을 개정할 국회의원들의 당락에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2020년 4·15총선에 적용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실패도 의원들의 기득권 탓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반대했다. 연동형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압승만 거들었다.선거법을 개정할 때 의원들은 정당보다 자기 이해부터 생각한다. 의원직을 걸고 당의 이익을 챙기려는 의원은 없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제대로 작동한다. 다수인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다.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처리에 정의당을 이용했다. 선거법을 미끼로 이용했다. 그런 뒤에 자기들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다. 미래통합당을 핑계로 삼았지만, 욕심이 지나쳤다. 배신의 정치로 정치적 신뢰를 팽개쳤다.현행 제도는 실패했다. 연동형이 잘못이 아니다. 의원들 욕심 때문이다. 위성정당을 막지 못했다. 어설픈 반쪽 연동형을 했다. 이대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다음 총선은 내년 4월 10일이다.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21대 총선을 보자. 서울에서 민주당은 유효투표의 53.5%를 얻었다. 그런데 의석은 83.7%인 41석을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은 41.9%를 얻었지만, 의석은 16.3%인 8석에 불과했다. 경기도에서도 53.9%를 얻은 민주당이 51석(86.4%)을, 41.1%를 얻은 미래통합당이 7석(13.7%)을 가져갔다. 그런데도 비례성을 보완하기는커녕 ‘부익부’(富益富)로 법 취지와 거꾸로 갔다.20대 총선 서울에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각각 12석, 35석, 2석을 얻었다. 정당 투표 비율대로라면 16석, 14석, 15석에 정의당 4석으로 바뀐다. 민주당 40석, 국민의당 0석이었던 경기도도 득표 비율대로라면 두 당이 각각 17석을 얻었어야 했다. 수도권만 보면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의힘에 절대 유리하다.그런데도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에 더 부정적이었다. 정권을 민주당에 넘기고, 대통령 선거에 이기고도 민주당의 절대다수 의석에 발목이 잡혀 맥을 못 추면서 개별 의원의 당선만 생각한다.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도 해결해야 할 약점이 있다. 2인 선거구에서는 양대 정당 후보자가 나눠 먹을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보다 정당이 당선을 결정한다. 유신 체제에서 경험해봤다. 몇 인(3~5)선거구로, 어떻게 획정하느냐가 의석수를 좌우한다. 정치적 구획이 될 소지가 크다. 지역별 차이도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험 시행했다. 9명을 뽑는 광주 시범지역에서 민주당 6명, 진보당 2명, 정의당 1명이 당선됐다. 대구에서는 국민의힘 7명, 민주당 2명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영남지역에 진출했지만, 국민의힘은 호남으로 가지 못했다.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과거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 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도농복합형을 주장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을 설득하고, 지역 대표성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영호남 지역 갈등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기존 선거 제도에 대한 문제 인식은 분명하다. 승자독식에 따른 사표(死票)와 의석 분포의 극단적인 널뛰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중간층과 소수 목소리도 정당하게 반영돼야 한다. 위성정당을 막고, 유권자가 당선 순서를 정하는 개방형으로 하면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가장 적합하다.그렇지만 정파적 이해가 얽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도 좋은 대안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이고, 유권자의 뜻에 맞춰 국회를 구성한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어느 쪽이든 진전이다.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 당선된 의원들 손에 결정권이 있다. 정치적 담합이 아니라 국회 밖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3-01-08

윤심에만 의존한 유치한 당대표 선거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3·8 당대 표 선거일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집권 여당이 어정쩡한 현재의 비대위를 청산하고 당대표를 선출함으로써 당의 정상화에 기여할 기회가 되었다.지난 대선 승리 후 집권당은 당의 심각한 내홍으로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집권 여당이 초반부터 이렇게 분란이 심각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으며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추락되었다.3월 당대표 선출은 윤석열 정부로서는 국정의 탄력을 회복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당대표 선출과 당의 정비는 내년 4월 총선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지난해 말부터 거론되던 7∼8명의 당대표 후보 난립이 지난주 4∼5명으로 좁혀졌다. 문제는 그 선거판이 아직도 ‘윤심’에만 의존한 유치한 데 문제가 있다. 5일 윤핵관을 자처하는 권성동 의원이 전격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선거전은 ‘김장연대’ 등 윤심에만 의존하는 양상이 가열되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시중에는 당대표 선출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후보들이 민심이나 당심보다는 오직 윤심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집권당 대통령의 의중을 보지 않을 수 없겠으나 이처럼 윤심에만 의존하는 선거는 결코 옳지 않다. 현대 민주 정당의 위상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당대표 선출을 아직도 윤심 경쟁에만 치중하는 양태는 보기에도 민망하다.김기현 후보는 지난번 대통령 관저 초대를 자신이 윤심의 적자임을 선전하고 활용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김장연대’를 결성하여 표심을 모으려 한다.안철수 후보 역시 대통령 관저초대를 은근히 자랑하고, 윤상현 등 다른 후보 역시 기회가 있으면 자신이 친윤임을 내세운다. 지나친 비유겠지만 초등 반장 선거 시 후보자가 학생들보다 담임선생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선거전이 이렇게 된 데에는 후보들 못지않게 대통령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당내문제에 관여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 이준석 당대표 징계, 100% 당원 투표제 이태원 참사 책임문제 등 윤심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당대표 선거에서 윤심 경쟁은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내 민주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집권 여당 대부분의 당원들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그러나 윤심이 언제나 당심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옳지 않다. 그러기에 현명한 당원이라면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당 대표 후보의 선출을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대선 후 갑자기 불어난 중도 보수층과 MZ세대 당원들은 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윤심과 당심의 분리를 원할 것이다.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 당대표 경선에서 박심을 앞세운 친박 서청원 후보가 패배하고 비박 김무성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다. 그것이 공천파동으로 이어지고 당의 분당과 탄핵으로 연결되었다.역사는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감쌌던 집권 보수당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된 선례를 잊지 않기 바란다. 현대 정당제에서 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 방향의 뒷받침 못지않게 당내 민주화와 당 개혁 등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3월 8일 선거는 아직 두 달 남아 있다. 당대표 후보들은 윤심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보수 정당 발전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당대표 후보가 당 정책과 운영 비전보다는 윤심에 골몰하는 모습은 유치하고도 후진적인 모습이다. 당 대표 후보들의 수도권 출마선언이 무슨 당의 비전이 될 수 있는가. 차라리 내선 총선 수도권 승리의 계획이이라도 보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노동, 교육, 연금 3개 개혁 과제에 대한 실천적인 방안은 있는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를 위한 협상 전략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제시한 중대 선거구 개혁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태원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는 어디까지 인가.출마 여부가 아직도 불확실한 유승민 후보만이 윤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제안과 비판만 쏟아 붓고 있다. 시대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당대표 후보는 아직도 아무런 대답 없이 윤심에만 기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3월 당 대표로 누가 당선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현재 당심에서는 나경원 후보, 민심에서는 유승민 후보가 앞선다. 이들의 출마 선언이 선거판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대부분의 민심은 이러한 역동적인 선거를 바라는데 후보들은 윤심 의존에만 골몰하고 하고 있다. 윤심에 의존한 당대표 선출이 내년 총선의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3월의 당대표 선출이 집권당의 구조 개혁과 새로운 정책 비전이라는 역동적인 경쟁 대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산에는 눈이 녹지 않고 있다. 국내외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꽃피는 봄은 멀지 않은데 민의를 반영한 참된 정치 계절을 기다리는 시점이다.

202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