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웨덴 교육 당국은 태블릿으로 대표되던 디지털 교육 방식을 버리고, 다시 교실에 종이책과 연필을 비치하고 독서와 필기 연습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교육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지금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문자나 이미지적 정보 어떤 것이나 디지털로 옮겨질 수 있는 시대지만, 아이가 앞으로 배워갈 세상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 만큼, 반가운 의미를 지닌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영위해온 모든 세계의 기반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옮겨지면서, 종이 위에 연필로 사각거리던 감촉이나, 우둘투둘한 캔버스 위에 채 다 발리지 않고 뭉쳐 있는 물감의 질감, 필름카메라의 철컥거리는 셔터의 소리 같은 한 없이 아날로그적인 감각까지도 흉내내어 디지털의 양적 해상도 속에 포착해내고자 하는 과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서걱거림이나 이질감, 기계장치의 맞물림 같은 감각을 디지털로 접한 세대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제 인간의 문화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여전히 책 속의 글자를 읽고, 이해하고, 글을 쓰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문득, 점점 손에 든 책의 무게가 해마다 더 무겁게 느껴질 때, 강단에서 노트북이나 태블릿 너머로 교수를 바라보는 학생들과의 사이의 공기가 조금씩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이제 대학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회에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 책의 시대의 변화를 절감한다. 이제 책을 벗어난 인간의 문화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2019년에 번역된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전병근 옮김, 교보문고)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는 종이책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전작 ‘프루스트와 오징어’(한국어 번역서명 ‘책 읽는 뇌’, 이희수 역, 살림, 2009)에서 인간은 결코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는 도발적인 발언을 통해, 그는 인간이 책을 매개로 뇌를 재배열하면서 후천적으로 읽는 뇌로 발전시켜 인류의 지적 발달을 이끌었다며 책 읽는 뇌와 창조성에 대해 논했던 바 있었다. 10년 만에 낸 이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여전히 읽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독자들을 향한 9개의 편지를 통해 급속히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디지털화되는 교육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집’을 떠난 독자들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사실, 많은 미디어 학자들은 인간이 불편하디 불편한 문자와 글쓰기, 책을 벗어나 이제 새로운 전자 시대 디지털로 전환된 새로운 구술성의 시대로 옮겨갈 것이라 예측한다. 인간이 인간의 감각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모해간다면 당연하게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보의 습득 과정에 배치되는 비가역적이고 선형적인 고정된 정보 묶음으로서의 책보다, 비록 디지털로 매개되는 것이라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임은 틀림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이라는 불편한 미디어에 무언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매리언 울프의 말대로 그 불편하디 불편한 책에 적응해나가며 인간이 키워온 상상력이나 공감 등의 감정적 기반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 새로운 ‘인간’들이, 새로운 주체로서 사회를 채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공원 벤치에서, 카페 한 구석에서, 빈 강의실의 한 켠에서 책을 읽으며 고민하는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어쩐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