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아버지 계신 서산에 간다. 동문동 동부시장 가서 장 보고, 미리 해온 음식 데우고, 전 부치고, 저녁에 한 상 차려 먹는다. 갈비찜, 잡채 등에다 설에는 새조개와 굴, 추석에는 꽃게와 대하가 함께 오른다. 거창한 밥상이지만 식사는 30분 안 돼 끝난다. 상 치우고 동생네는 안방에, 엄마는 작은 방에 들어가고, 아버지는 거실에서 종편을 본다. 살가운 대화 같은 건 딱히 없다. 가족애라는 것을 다들 가지고는 있는데, 표현에 서투른 탓이다. 어색하고 민망하다. 사랑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처자식을 버렸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 다니며 장애인인 할머니와 삼촌들을 먹여 살렸다. 먹고 살 만해지니까 할아버지가 돌아왔는데, 응어리가 져 평생 용서하지 못했다. 미워하면서도 모시고 살았다. 장남은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내 유년을 돌아보면, 퇴근한 아버지가 거실의 할아버지는 본체만체 안방으로 서둘러 들어가 버리던 냉랭함이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는 사랑 받지 못해서 사랑 주는 법을 몰랐다. 무뚝뚝하고 엄했다. 게임기 사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삼켰다.
바캉스를 가고 외식을 해도 행위만 있지 그 안에 다정함 같은 건 희미했다. 가장의 의무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아버지 공장이 부도를 맞고 나서는 추억이 됐다. 지방을 전전하는 아버지를 사춘기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보기 힘들었다. 그 10년은 참 괴로운 시절이었다. 더 작은 집으로 여러 번 이사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박스를 줍고,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어쩌다 아버지가 집에 오면 나는 컴퓨터 게임만 하고, 아버지는 내 등 뒤에서 무슨 말 하고 싶지만 못한 채 가만 서 있곤 했다. 내가 장교 임관훈련을 받던 여름 내내 아버지는 교육대 인터넷에 편지를 썼다. 10년 동안 못한 말들을 거기 열심히 적었다. 말로는 못하는, “아빠는 병철이가 자랑스럽다” 같은 문장들.
이런 내력 때문에 나는 남들이 가족 여행을 가고, 동영상 속에서 함께 장난치며 웃고,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화목함이 신기하고 낯설다. 가족은 다 우리 같은 줄 알았다. 오래전 애인의 아버지가 매년 10월 31일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연주되는 라이브카페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걸 보면서 놀랐다.
지난 설, 서산 바닷가 가서 비싸고 좋은 음식 먹자고 했다. 해가 갈수록 아들 마음은 조급해진다. 억지로라도 화목한 그림 하나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다들 내 맘 같지 않아서 그냥 동네에서 먹기로 했다. 앞장 선 아버지가 시장 좁은 골목 백반집 문을 열었다. 다 앉기도 전에 아버지는 6천원짜리 백반 여섯 개를 시켰다. 한 자리에 못 앉아 두 테이블로 나눈 것을 내가 주인아주머니께 몽니를 부려 합쳤다. 나물, 파래, 김치, 된장국에 나는 거의 손도 안 댔다. 그 사이 아버지는 밥을 다 드시고 일어났다. 혼자 빨리 걷고 빨리 먹는 아버지한테 짜증이 났다. 눈치 챘는지 아버지는 집에 가 새조개 먹겠느냐면서 5만원 지폐를 내밀었지만, 뿌리쳤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평생 미워했다. 할아버지는 늘 복덕방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평생 부끄러워했다. 할머니는 보청기 없이는 듣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더러 “닭띠니까 곡식을 먹고 살아라” 했다. 유언이었다. “아빠가 할아버지 무덤에 갔대” 귀에 대고 소리치자 할머니는 “죽을 때가 됐나보다” 했다. 아버지는 출포리로 매일 마실을 간다. 보청기를 끼고 부동산에 가 한나절 앉아 있다 온다. 뒤란에서 닭들이 벌레를 쪼고 메주가 푹푹 삭을 동안 평생 미워한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돌보지 않는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 아버지가 돼선 안 되는데….
나이 들수록 후회가 많아진다. 동부시장 ‘지곡밥집’에서 짜증 부렸던 일이 속상하다. 이번 추석 또 서산에 간다. 다시 그 밥집에 가 밥 두 공기 먹고 싶다. 아버지는 제철 꽃게를 잔뜩 사는 것으로 아버지 노릇을 하려 할 테고, 나는 무엇으로 아들 노릇을 할까. 가끔 하는 통화도 30초를 안 넘는데, 살가운 말 몇 마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어려운 마음도, 백반 여섯 개를 서둘러 시키는 급한 성미도, 밥 한 끼 먹으러 일 년에 두 번 모이는 수고로움도 다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