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다. 문자를 기념하는 날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는 한글이 그냥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지시하에 만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문화의 바탕이 되는 날을 다시 맞는다.
세상에는 자기 말을 가지면서도 이를 표현할 글자가 없는 나라가 더 많다. 그런 가운데 너무나도 멋진 한글을 가진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한글로 적힌 간판을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는 한글이 한국 사람답게 만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만든 한글 창제의 훌륭한 뜻을 알면 마음마저 젖어 든다. 577년 전에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애쓴 통치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한글이 우리나라에서 수난을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말을 줄여 쓰느라 국적도 없는 말을 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궁금하여 물어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줄여서 쓰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은 말이 듣기에도 불편한 말이 된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말을 비트는지 알 수가 없다.
오랜 기간 중국과의 문화 교류에 따른 한자가 유입되고, 36년의 침략으로 남은 일본어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외래어의 영향도 점점 늘어난다. 물건을 팔면서도 경쟁적으로 남의 나라말을 빌려서 쓴다. 교통의 발달로 다른 나라로 이동이 편리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연스러운 범위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 위기 상황을 맞은 요즈음 외국 언론이나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무분별하게 들어온다. 방송이나 신문은 우리말로 순화하지 않은 채 경쟁이라도 하듯 기사를 선점하기에 바쁘다. 뱅크 런, 본드 런, 로크인 효과, 뱅크데믹 같은 단어는 뜻을 짐작만 할 뿐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은 한류가 세계 문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말로 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말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도 늘어난다. 한류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비행기에 오른다. 산과 문화재와 현대식 건물이 아우러진 서울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정작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다르게 생각한다. 높이 솟은 아파트에는 ○스테이트, ○○캐슬, ○○파크, ○ 플래티넘, ○샵 같은 외래어를 마주하고 중심가로 들어서면 상가의 간판들은 외국의 도시로 착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