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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돈맥경화 주범 DSR, 시장 경제 경직시키다

서진국 전 포항시 북구청장 시중에 이용할 수 있는 돈이 말라가고 있다. 고금리로 빨려 들어 간 돈이 DSR 규제로 은행의 문턱에 걸려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저금리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고금리에 시장은 몸살을 앓고 있다.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이른바 DSR(Debt Service Ratio)이라는 정책이 돈줄의 흐름을 강하게 죄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자금시장은 급격히 경색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서도 늘어난 가계 대출과 갭 투자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A씨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한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거의 수입이 없었다. 부족한 돈은 보험과 연금을 해약하고 지인과 친척들로부터 조금씩 빌린 돈으로 버텨 왔다.이제 주변에서도 어렵다면서 빌린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 그래도 그동안 번 돈을 모아 매입한 조그만 상가가 있어 상가를 담보로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은행에서 DSR을 설명하면서 부채를 상환 할 수 있는 소득이 없으면 대출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는데 지금은 부동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DSR은 총 대출 상환액이 연간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더한 원리금 상환 비율을 말하는 지표이다. DSR은 DTI 규제가 없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대출의 적용 대상으로 수입에 따라 대출의 한도가 대폭 축소된다.지난해 하반기부터 돈줄은 급속히 고금리 시장으로 변경되고 있다. 4~5%대 예금의 유혹은 시중에 돈을 더욱 경직시키고 있다. 소득이 있어도 대출금리가 늘어나면 DSR로 인하여 금리인상 비율만큼 대출 금액도 줄어든다.설상가상으로 은행으로 들어간 돈은 DSR로 강원도 포수가 되어 돌아 나오기가 어렵다. 강원도 레고랜드로 놀란 시장은 대기업은 물론 금융권조차도 자기 자본 비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이제 저신용자는 카드론조차도 받기 어려워졌다 한다.고금리의 여파와 돈줄의 규제로 시장이 경색되고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견실하지 못한 건설 업체와 프로젝트 파이넨싱(PF)을 주로 취급했던 기관들도 어렵다는 얘기가 기사를 타고 있다.최근 발표된 임대 업자에 대한 종소세, 취득세 완화와 규제지역 해제로는 지금 꺼져 가는 시장을 살릴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에 소득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특례보금자리론도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부동산 처방만이 아닌 시장 전반적인 자금 경색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행정은 타이밍이다.시기를 일실하고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때를 놓친 땜질식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난 정부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그동안 저금리 환경에서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해 시행한 DSR이 고금리시장에서 급격히 자금의 흐름을 경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늘어난 가계 대출 자금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금의 경색은 시기를 일실 하지 않도록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국민들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돈이 모이면 대부분이 그냥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부동산에 묻어 둔다. 부동산을 팔지 않아도 은행에 잡히면 어느 정도 돈이 나온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생각이 시장의 돈의 질서이고 흐름 이었다.그런데 이러한 기본적 시장의 질서를 DSR이 고금리와 맞물려 국민의 정서를 외면하고 시장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DSR을 풀지 않고 급한 대로 부동산 규제를 푸는 것은 부분의 방책에 불과 하다.지금 문제는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다는 것이다. 피가 모자라 목숨이 넘어 가는데 피를 수혈하지 않고, 장기 일부를 수술하겠다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려울수록 시장경제의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고금리로 변한 환경에서의 DSR은 돈맥경화의 주범 일 수 있다.한시적으로라도 돈줄을 죄고 있는 규제들을 풀어야 부동산 연착륙은 물론 시장경제가 되 살아 날 수 있다고 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문제에 치우쳐 초가삼간을 태워서야 되겠는가?현재 우선 1억에 묶여 있는 규제를 풀어 한시적으로 라도 DSR 적용 기준을 어느 정도 상향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아예 DSR을 적용하지 않는 것도 급격히 경색되고 있는 부동산은 물론 자금 시장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 일 수 있다.

2023-01-08

변화하는 혁신의 구조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이 인류 문명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1913년 미국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차가 처음 생산되면서 수제 조립에 의존하던 생산방식이 역사에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컨베이어를 따라 부품이 조립되는 순서대로 작업자를 배치하여 주어진 자리에서 컨베이어를 따라 흘러오는 자동차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동작만 행하면 자동차가 뚝딱 만들어졌으니 생산방식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수제 조립 생산방식에서는 작업자의 숙련도가 절대적이었기에 작업자는 도제식으로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아야 조립공이 될 수 있었지만 컨베이어 시스템에서는 부품의 이름도 작업 공구에 대한 지식도 필요 없이 정해진 자리에서 필요한 동작만 반복하니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포드 자동차는 3천불 이상으로 판매하던 자동차를 650불에 생산해서 팔 수 있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자동차의 대량소비 시대를 열어 사회적 생산기반,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인프라를 촉진시켰다.혁신을 하려면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지식으로 미리 편견을 갖고 제한을 가한다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를 부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간에 ‘파괴적 혁신’이 자리한다. 파괴적 혁신은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역임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파괴적 혁신’ 이론의 핵심은 위대한 기업이 큰 경쟁자에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하찮아 보이는 신규 경쟁자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 진입자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처음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의 반응들이 더해지고 기술과 성능이 개선되면서 결국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아 혁명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극명한 예가 필름 산업이며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필름 업체는 “저런 싸구려 기술로 무슨?”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모두 무너졌다.파괴적 기술은 과거에 통용됐던 것과 아주 다른 가치명제(value proposition)를 시장에 선보인다. 일반적으로 파괴적 기술은 기존 제품들 보다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주변 고객들이나 신규 고객들이 가치를 두는 몇몇 특징들을 갖고 있다. 무슨 거창하고 최고의 수준이 아니어도 사용하는데 비용과 수고가 많이 들지 않으면 그 기술은 쉽사리 채택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이 향상되니 주차장에 곧바로 채택되고, 음성인식이 되면서 스마트 스피커가 일반화된다. 그게 사람보다 더 잘 보고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수준에 비용이 안 들고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니까 쓰이는 것이다.파괴적 기술에 기초한 제품들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더 싸고, 더 단순하고, 더 작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전문가용의 대명사인 DSLR 카메라도 휴대하기 무거워 대중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소니, 캐논에 이어 니콘도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다.

2023-01-08

파레시아를 위하여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어느 날부터인가 임금님 귀가 점점 커져서 당나귀 귀만큼 길어졌다. 이 사실은 모자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임금이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장인은 죽기 전 도림사 대나무 숲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큰 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대나무를 자르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산수유가 자라면 그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삼국유사’ 경문왕 조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가 원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자 장인이 아니라 이발사가 소문을 퍼트린다. 미다스 왕에게 불만을 품은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잡아당겨 귀가 길어졌는데, 이발사에게만은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과 페르시아 지역에 퍼지고 신라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니,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새해가 되면서 ‘파레시아’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다’,‘진실을 말하다’라는 그리스어이다. 모자 장인이나 이발사처럼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탈이 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자 장인이 대나무 숲에 가서 땅을 파고 외친 것은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이혼율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다. 혹시나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릴까 자기 검열에 시달리는 예술가들도 많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질환이나 타고난 것까지 감추어야 하는 현실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 방송에 나왔다가 동네에서 죄인 취급 당했다는 방송을 보았다. 이웃 중에는 자녀가 발달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세라 쉬쉬하며 자녀를 가정에 꽁꽁 감추고 사는 이도 있다. 성 소수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그럼에도 용기 있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파레시아’이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이라고 한다. 어제 스피치 동호인 모임에 온 어느 참가자의 경험은 푸코의 말에 딱 맞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47세라면서 아직 결혼을 못 했고 붕어빵을 팔며 원룸에 살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그런 상황을 감추느라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도 내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밝히고 나니 그제서야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유머도 늘었다고 한다.이렇게 ‘다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자기답게 존재하게 해주고 남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다 말하기’ 위해서는 47세 참가자처럼 안전하게 들어주는 모임에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쓰기든 말하기든 올해는 자신과 동료를 믿고 세상에 진실을 표현하는 모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3-01-08

우리 동네 詩香千里

꽃이나 나무, 향수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한다. 시(詩)의 향기란, 마음으로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시향(詩香)이라 할 수 있다. 시가 뿜어내는 향기는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시향 천리(詩香千里)라는 말이 있다. 시(詩)향이 천 리를 가는 동안 무엇을 마주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향기를 뿜어낼까. 시(詩)의 향기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가슴 한곳에 쟁여두었던 그리움을 퍼 올리기도 한다. 이것뿐인가, 한 편의 시를 읽고 눈물을 닦아내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시향(詩香)을 통해 인향(人香)이 만리(萬里)를 갈 수 있음이다.하늘이 높아지는 9월, 포항시 남구 효곡동 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개강했다. 시문학 수업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시를 찾아 여럿이 나눠 읽고 느끼며 마음의 갈증을 해소했다. 옹달샘이 품은 시는 추억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 누구는 그 조각 따라 깊은 산골 고향마을에 닿기도 하고, 누구는 도시의 작은 골목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가 뿜어내는 향기 따라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를 담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나는 시향의 여행자가 되었다.금요일 아침, 시(詩)문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은 들떴다. 한 줄의 시를 받아 적기도 하고 어설픈 시인이 되어 펜을 들기도 했다. 우리 곁에서 소중하지만 잊혀가는 것들을 찾아내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숱한 의미가 함유된 메타포에 우리의 추억을 갈무리했다.시를 읽고 음악에 맞춰 낭독하는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어디선가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옷깃을 여미고 이제 우리는 시문을 닫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의 향기를 맡았지만, 이제는 홀로 시를 찾아 각자의 방법대로 시향을 맡아야 한다. 곧 문화센터 시문학 교실이 동면에 들 시간이다.짧은 이별이 아쉬워 문집을 만들었다. 문집 이름을 공모해 시(詩)향으로 정했다. 이번 학기 중에 만났던 시중에 내가 뽑은 최고의 시를 소개하고,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는 코너를 마련해 짧은 생각을 실었다. 물론 ‘나도 시인이야.’라는 코너를 빼놓지 않았다. 시인은 아니지만 몇 분이 시를 쓰는 용기를 내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수업 중의 사진을 찍어 이모저모에 실었다. 이순혜 수필가 전문성이 있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시향을 맡을 수는 있다. 우리의 손길이 닿은 페이지, 페이지마다 시문학 교실의 수강생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컴퓨터 자판의 글씨가 아닌 각자의 필체대로 써 내려간 시는 열 명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첫사랑의 아련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그가 살아가고 있을 어느 도시를 가고 싶다는 분, 수업 중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한 편의 시를 완성한 분, 노동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괜히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는 분, 그날 접한 시를 낭송으로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주시는 분, 그들의 모습이 그들만의 향기로 전해져 왔다.추위가 물러가면 머지않아 남쪽에서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봉해 두었던 시향을 풀어 볼 것이다. 어떤 이는 시향에 마음이 더 촉촉해졌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인이 되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묶어둔 시향에서 먼지가 날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시향을 펼치고 있을 텐데.우리 동네 시향 천리(詩香千里)가 오래도록 은은하게,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두 손을 포갠다.

2023-01-08

내 삶이 달라지는 청송의 도약

윤경희 청송군수 윤경희 청송군수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군정 운영 경험을 토대로 군민과 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청송! 새롭게 도약하는 청송’의 미래를 열겠다”고 새해 각오를 다졌다.윤 군수는 ‘내 삶이 달라지는 청송의 도약’을 위한 ‘다르게! 바르게! 풍요롭게! 하나되는 청송, 그 이상의 도약!’의 군정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6대 전략과제를 제시했다.우선, 탄탄한 미래농업 기반조성으로 활기찬 농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첫번째 전략으로 꼽았다. 농업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초밀식 다축 재배 시스템 구축과 보급, 청송 황금사과 연구단지 조성, 청송사과유통센터 시설확충 등을 통한 청송사과 브랜드의 경쟁력 을 확보하고 나아가 해외판로까지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또한 안정된 영농환경개선을 위해 농어민수당 지원과 농작물 재해보험료, 농업인 안전보험료를 지원한다.다음으로, 꼭맞게 든든한 보편복지 실현을 약속했다. 어르신들의 비율이 높은 청송은 사소한 것이라도 행정에서 앞장 서 도움을 주기 위해 8282 민원처리팀을 설치해 군민의 생활 속 어려움을 해결하고, 청송군 농어촌버스 무료운행을 통한 이동권 보장과 보편적 교통복지를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또한 거점 경로당과 이웃사촌 복지센터를 운영하며 지역공동체가 앞장서는 촘촘한 복지를 시행한다. 보건진료소와 보건의료원의 의료환경을 크게 개선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더욱이 진보면 지역아동센터 신축과 인재양성원의 도시수준 명품교육 제공으로 미래를 이끌 청송형 인재육성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생활이 나아지는 지역경제 활성화도 역점 과제로 강조했다. 내수소비 촉진을 위해 청송사랑화폐 유통규모를 700억 이상으로 크게 확대한다. 또 지난해 4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던 청송사과축제를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넘어 세계대표축제로 거듭나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할 방침이다.이와 함께 다양한 지역행사와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통해 관광소득 창출과 함께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노인과 청년일자리 사업지원을 확대해 보다 넓은 계층의 근로환경을 보장해 인구소멸에도 대응해 나간다.일자리를 만드는 문화관광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산소카페 청송정원과 함께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줄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을 착공해 군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환영받는 관광 1번지 청송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이밖에 덕천마을 한옥스테이 활성화 사업, 주산지 관광지, 백석탄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해 국제슬로시티 청송에 걸맞은 지역명성을 이어 간다는 전략도 세웠다.또한 주산지 왕버들을 복원해 뛰어난 절경을 전국민에게 보여주는 등 관광지 곳곳을 재단장해 농업소득 외에 관광소득을 창출해 농사짓기 좋은 청송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다양한 청송군으로 만들 예정이다.또한 여유롭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인다. 부남면과 진보면의 도시계획 도로를 정비하고 청송읍과 진보면, 산남지역의 전선지중화 사업추진,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해 청송의 도시경관을 크게 개선한다. 아울러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석유가스 공급시설 확대로 환경개선에 앞장서는 동시에 연료비 부담도 줄여 나갈 방침이다.특히 파천면의 아웃도어 골프장 조성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의 18홀 이상의 파크골프장 조성으로 군민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고 살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마지막으로 소통으로 하나 되는 청송행정을 운영해 나간다. 청송군 지역발전협의회와 군민배심원단을 운영해 양방향 소통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한다. 또 행정혁신 역량강화를 위한 제2기 ‘청송어람’을 운영해 젊은 공무원들의 자유로운 군정운영방향 제시와 획기적인 사업제안으로 지방행정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윤경희 청송군수는 “민선8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는 2023년에는 군민의 단합된 힘과 공직자의 열정이 합쳐질 때 군민의 삶이 나아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모두의 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청송! 새롭게 도약하는 청송의 미래를 열어 가겠다”고 밝혔다.

2023-01-08

그린벨트 해제

우정구 논설위원 그린벨트 설정의 목적은 도시경관 정비와 자연환경 보존, 도시민의 쾌적한 생활공간 확보 등에 있다. 이에 따라 이곳은 건축물의 신증설, 용도변경, 토지 형질변경 등의 행위가 제한된다.특히 우리나라 그린벨트 지역은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인식될 만큼 엄격히 관리돼 왔다. 비록 개인 소유지만 허물어진 집조차 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개발제한구역 개념이 처음 도입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38년 세계 처음으로 런던지역 일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했다. 토지를 국가 관리대상으로 삼겠다는 개념이다.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이 이 개념을 많이 도입한다. 우리나라는 1971년 7월 서울지역에 처음으로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했다.경제개발과 환경보전은 도시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갈등 요소다. 경제성장과 국민복지를 위해 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이 빚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훼손은 보존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다. 자연환경 파괴가 급기야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정부가 비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대폭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자체는 이번 조치가 지자체 숙원사업을 풀 절호의 기회라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지자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국토불균형 발전의 해소방안으로 지역차원의 그린벨트 해제를 지속 주장한 바 있다.정부 조치로 비수도권의 도시개발은 지금보다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존문제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아졌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균형있는 정책 조화가 숙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5

이젠 병폐 청산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새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 6위에 올려놓았다. 한국 앞에 선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뿐이다. 프랑스와 일본이 우리나라 뒤에 자리했다. 한국이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뛰어넘었다. 반도체와 조선, 배터리 등 분야는 세계 최고다. BTS와 영화 등 K컬처는 세계를 호령한다. 체육 부문에서도 손흥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했다. 우리만 몰랐지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이처럼 대단한 나라지만 내부적으로는 4류 정치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댄다. 김정은은 사흘이 멀다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국가안보를 위협한다. 사회 곳곳이 종북 좌파세력에 좀 먹고 있다. 정치에서 파생된 증오와 분노를 자양분 삼아 몸체를 불린 이념과 지역, 세대 갈등의 고질병이 우리를 옥죈다.지난 연말 우리는 막장 정치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무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와 원칙도 내팽개쳤다.여도 야도 모두 한통속이었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룰까지 바꿔버리는 횡포를 자행했다. 국민과 당을 위한 여론 반영 규정을 변경했다. 169석 머릿수를 앞세운 야당은 전횡을 일삼았다. 주요 입법을 미루는 직무유기도 마다않았다. 죄를 범한 동료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았다. 당 대표가 개발비리의 몸통으로 드러나 수사망이 좁혀들자 이를 방해했다. 여야가 서로 이해만 앞세우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서로 헐뜯다가 공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정치판의 대결은 곧바로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로 이어졌다. 광화문 광장은 주말마다 좌우로 나눠 총칼없는 전쟁터가 됐다. 진영 대결로 날을 새운다. “정치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할 정도다. 정치 양극화가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았다.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이슈다. 이념과 지역 갈등의 뿌리가 된 소선거구제를 폐기하고 중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총선때마다 이슈였지만 ‘구호’에 그쳤다. 반대가 만만찮지만 바꿔야 한다. 망국병의 원인이 된 선거구제 개편을 외면한다면 국회는 아예 문 닫아야 한다.일부 노동 및 시민단체들의 불법행위와 일탈은 국민 눈 밖에 났다. 약자를 위한 권리 주장과 행동이 코스프레가 되고 사회의 암덩어리가 됐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화물노조가 뭇매를 맞았다. 장애인연대의 지하철 시위에도 가차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각분야의 곪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부문이 많다.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의 잘못을 바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계묘년 토끼해다. 한국의 빛나는 성취를 갉아먹는 사회 병폐를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한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고 했다.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2023-01-05

교육과 사회의 불일치 해법 제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학교에서 나를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지식을 쌓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사회를 살아갈 힘을 제대로 길러주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교육전문가들은 교육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철학적으로 거대한 담론 수준의 주장이거나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그래서일까 이혜정 소장의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꾸려면 시험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이혜정 소장은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기를 거치면서 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기르기보다 선진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공부에 길들여졌다고 현재의 교육을 평가했다.이러한 교육으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한 생존 역량을 기르기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또한, 우리 교육은 아직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주로 평가하고 있는데 반해 사회는 ‘알고 있는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답 맞히기와 반복적인 문제 풀이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로 인해‘교육과 사회의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이혜정 소장은 교육을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평가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롤모델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소개한다. IB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150여개국 5천500여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 및 탐구학습 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학교 교육 체제이다. 우리나라도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역량 중심의 교육을 도입했다.이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세계 각국의 교육 방향과 일치하며 IB가 추구하는 교육 비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실제로 구현되는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역량 중심 교육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수업과 평가의 불일치 때문이다. 즉, 수업은 개념 중심, 이해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평가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평가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그 해답은 IB에서 찾을 수 있다. IB가 50여년간 수많은 국가에서 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다.수업과 평가가 일치하고 피드백이 일상이 되고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힘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로 운영되는 IB가 유수 대학의 입학자료로 공신력있게 활용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대구교육청은 공교육 혁신의 모델로 2019년부터 IB프로그램을 도입하여 IB 월드스쿨 14교, 후보학교 13교, 기초학교 61교로 해를 거듭할수록 IB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결과’보다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집어넣는’교육이 아니라 ‘꺼내는’교육으로, 그리하여 ‘지식 소비자’가 아닌 ‘지식 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으로 대구교육은 미래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2023-01-05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

토끼의 지혜로움으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토끼’하면 보름달 속 계수나무 그늘에서 두 마리가 정답게 마주 보며 절굿공이로 무병장수의 선약(仙藥)을 빻고 있는 설화가 떠오른다. 집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고, 산토끼는 총명하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천적들이 우글대는 숲속에서도 잘 살아왔으니 올해는 토끼에게 배워보자.토끼는 또 ‘꾀보’라는 애칭이 있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귀염둥이다. 그 순박한 모습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심했던 재난과 재해의 기억들이 많다. 영덕과 울진 지역의 20년 만의 대형 산불을 비롯하여 수도권에 퍼부은 80년 만의 폭우, 또 가을에 불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지역의 홍수와 인명피해 등 자연재해가 컸고, 코로나19는 3년째 여러 변이를 만들며 757일간의 거리 두기 해제를 비웃듯 감염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0월 말 핼로윈 축제에 밀려든 인파가 골목에 넘쳐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마음을 울렸고, 3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 여파로 여의도 들판에는 혼탁한 바람이 불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한바탕 휩쓸고 가는 어려움 속에서 자랑스러운 소식도 들려왔다. 뜨거운 나라 카타르의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응원으로 16강 대열에 섰으며, 누리호의 2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 강국 7위에 올랐고, 이어 연말에는 다누리 우주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여 달나라 토끼가 보고 있을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호랑이해였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신년 시정 방향을 ‘창의·융합·혁신’으로 표방하며 ‘안전도시 포항, 흔들림 없는 경쟁력,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 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겠다고 밝혔다.우리는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라는 말을 한다. 따로 뛰어다니는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잘하면 두 마리를 동시에 잡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기도 하며, 또 계획 없이 함부로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의미도 있으려니 올해는 국가는 견제와 타협, 사회는 성장과 복지, 국민은 일과 생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별주부전’을 보면 토끼의 총명한 꾀가 대단하다.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해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꼬셔 데려왔는데, 간을 내놓으라고 하니 ‘청산유수 맑은 물에 씻어 감추어 두었다’고 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와서는 ‘간 빼놓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고 하며 숲속으로 달아났다는 판소리 ‘수궁가’를 듣노라면 부귀영화를 탐낸 것에 후회하며 현명하게 빠져나온 토끼가 기특하다.올해는 국내외 정세를 보아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다. 큰 귀로 잘 듣고 퉁방울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뒷발로 힘차게 언덕을 뛰어오르는 토끼의 영특함을 배우자.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3-01-05

범죄자 사진 공개

홍석봉 정치에디터 앞으로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는 모습은 없어질 전망이다.강력범죄자들의 신상 공개 때마다 심하게 보정됐거나 옛날 사진이 공개돼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얼마 전 ‘택시기사·동거녀 살해범’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실물과 다른 모습이 문제가 됐다. 이에 신상 공개 시 30일 이내의 사진을 공개토록 하는 법안이 나왔다.송언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3일 특정강력범죄 혹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경우 30일 이내의 최근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개정안이 통과되면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들이 식별하기 쉬워지고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현행법에는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 범죄 피의자는 얼굴·성명·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개되는 피의자 모습은 과거 사진이 많았다. 현재 모습과 달라 잘 알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피의자가 최근 사진 공개를 원치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신상정보 공개의 원 취지인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효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관련법 개정으로 범죄자의 증명사진을 볼 일은 없어졌다.신상 및 사진 공개는 법 제정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잠재적 범죄예방 효과가 컸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적 가치를 위해 필요성이 높아졌다. 범죄 피의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화학적 거세까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와 사진 공개라는 인격 모멸까지 더해졌다. 흉악 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됐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4

지역은 대학부터 살려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학들이 새해 벽두부터 긴장을 탄다. 신입생 모집이 예전 같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예고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벚꽃 피는 순서로 문을 닫을 것이라는 경고등도 들어와 있었다. 대학들은 사실상 대안을 준비하지 않은채 바라만 보고 있다. 교과 과정뿐 아니라 행정 시스템에서도 교육부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특별히 손을 쓸 겨를도 없다. 수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는 학교 운영도 버거워 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형편이다. 학령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신입생 정원도 채우기 힘들게 되었다. 경북은 어떤가. 이를 어찌해야 하나. 대학의 위기지만, 대학만의 책임일까.지역에 대학들이 있으면 지역에는 무엇이 좋을까. 대학생들이 넘실대는 지역에는 우선 젊음이 넘친다. 청년문화가 지역의 역동성을 이끌어 싱싱한 분위기가 생긴다. 인구 고령화로 지역 소멸의 위기가 다가온다면, 지역은 대학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지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일하고 누릴만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난다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자. 4년 이상 머물렀던 곳을 왜 떠나려 하는지. 일자리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떠나지 않을까. 기회가 충분하지 않고 미래를 담보할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 지역에 독특하고 분명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데, 청년들이 머물러 기다릴 까닭이 없다. 정주여건으로 보아도 문화가 척박하여 재미가 없다. 재학 중에도 주말이면 지역에서 즐기기보다 서울로 달린다. 지역은 젊은이들이 머무르며 누릴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대학도 문제다. 지역을 소재지로 삼은 것 외에 대학이 지역과 학생들을 함께 생각하며 제공한 협력수단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지역에서 공부하는 동안 지역과 함께 호흡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기회가 드물다. 대학에서 갈고 닦는 전문역량은 재학 중에도 얼마든지 지역에서 발휘하고 기여할 가치가 있다. 지역의 기업들과 단체들이 지역 대학생을 인턴으로 기용하여 경영일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생들은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여 열심히 일할 터이고 기업에는 청년들이 불러올 젊은 기운으로 활기가 돌지 않을까. 더이상 강의실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현장에서 배우고 일하며 익히는 기회를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지역과 대학이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협력의 기운을 만들어야 한다.교육부도 문제다. 지역 대학들이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교과과정과 협력체계를 대학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는 대학들이 지역사정에 맞는 발전대안을 마련해 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자율과 책임을 확보하여 스스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일어나야 한다.필요한 재정은 일부 정부가 지원하되 대학이 자구책을 도모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나라의 고등교육은 그야말로 높은 수준에서 돌파구가 모색돼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빛나는 열매를 일구어내는 지역대학 문화가 꽃피어야 한다. 교육부의 방침과 지도에 자율성이 꺾이는 대학은 부끄럽지 않은가.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1-04

추워지는 날씨, 내 몸 같지 않은 손과 발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함부로 집 안에만 있어서 잊고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겨울이 추운 느낌이다. 이렇게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질 때가 되면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단골 증상이 있다. ‘손과 발이 시리고 저리다’라는 것이다. 환자들은 손과 발의 감각 이상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호소하게 된다. ‘저리다’ ‘시리다’ 또는 ‘발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 ‘아프다’ ‘내 발 같지 않다’등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증상을 ‘수족냉증’ ‘수족비증’이라고 한다.‘불통즉통(不通則痛·흐름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된다)’이라고 하였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움츠러들게 되고 이로 인해 혈관 또는 신경이 눌리면서 증상이 심해진다. 이런 손발의 감각 이상의 주된 원인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인지 신경이 눌리면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먼저 증상이 발생할 때 실제 손과 발이 차가워 지면서 시린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손과 발 양쪽으로 사지 모두에서 나타난다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며 시린 근육통을 많이 느끼고 마른 편에 속한다면 체질적으로 수족 냉증이 생기기 쉽다. 여성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더 많은데 위 증상과 더불어 생리통, 아랫배가 항상 찬 경우, 어지럼증 등이 있는 경우는 단순히 손발의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고려되어야 한다.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저하되는 경우 반신욕, 족욕 등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며 외출 시에 외투, 장갑, 목도리 등을 챙겨 방한에 더 유의하는 것이 좋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 때에는 찬 음식이나 찬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체온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므로 되도록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한쪽 손 또는 발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때에는 주위의 구조적 질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협착증’, ‘추간판탈출증’, ‘손목터널증후군’, ‘흉곽터널증후군’ 등 손, 발로 주행하는 신경이 목, 허리, 골반, 어깨, 손목 등에서 압박되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질환들은 평소 직업적으로 많이 하는 동작이나 자세, 습관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악화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려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지 않은 자세와 습관이 유지될 경우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재발하기 쉽기 때문이다.한의학적 치료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치료가 많다. 한의학에서는 몸이 차고 추위를 느끼는 것이 중요한 진단 요소가 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순환시켜주는 한약재를 처방하는 것이 중요한 처방 포인트가 된다. 또한 근골격계의 치료에도 경피경근온열요법, 경피적외선조사법, 뜸치료 등 온열요법을 많이 사용한다. 날씨가 추워져서 더 심해지는 수족냉증, 수족비증에 이러한 한열 개념을 고려한 한의학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3-01-04

새해에 다시 읽는 ‘난쏘공’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거리두기 없는 3년 만의 연말로 들떠있는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난쏘공’은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1970년대 산업화 시대 노동자 계급의 소외를 다룬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감이 있다. 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지만, ‘난쏘공’에 깃든 작가의 시각은 아직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난쏘공’은 대기업과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노동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노동자가 칼로 대기업 회장을 찌르고 재판을 받는 장면은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메시지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수십억의 벌금 면제 과정을 보고 있으니, 1980년대 후반 탈옥수에 의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극단적 선택밖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새해에는 ‘난쏘공’의 주인공이 아닌 ‘신애’에게 주목하고 싶다. 신애는 ‘난쏘공’에서 난장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나이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지만, 속편 ‘시간여행’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쉰두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냉방기를 사다 놓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다. 작가 조세희는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나이-듦’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나이-듦’의 전부가 되는 것과 국가가 공정 혹은 합법이란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의 정체를 인식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작가는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 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킬로그램으로 적고 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고 말한 바 있다.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을 새해에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거창한 이념이나 목표가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신 건강이 안 좋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생활하는 대학생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조세희 작가가 ‘난쏘공’에서 읽어 낸 대한민국의 현실이 시간이 지나며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이런 의미에서 올해에는 자본을 얻는데 별 도움이 안 되더라도,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과 같은 고전을 좀 더 읽고,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길 기원한다. 이것이 조세희 선생이 ‘난쏘공’ 이후 소설 창작을 중단하고 서북 탄광에서 광부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해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눈부시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그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 빛 속으로 들어가려 아등바등하기보다 그늘진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쉬며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2023년이 되길 희망한다.

2023-01-04

조청과 꿀단지

양태순 수필가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시장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에서 조청을 보았다. 가판대를 채우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수숫빛 유리병에 먼저 눈길이 갔다. 조청! 참말 그 조청이란 말인가? 왠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반가운 이를 대하듯 유리병을 어루만졌다. 딱히 쓸 곳은 없지만 사고 싶었다.어린 시절에 집에서 조청을 고는 날이면 어쩐지 설렜다. 그날은 어머니가 제일 바빴다. 수시로 솥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따끈한 정도를 확인했다. 온도가 적당치 않다 싶으면 불을 조금 때서 온도를 맞추었다. 해 질 무렵이면 베자루에 담아 건더기를 걸러내고 뭉근한 장작불로 엿물을 고기 시작했다.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고 기다리던 아이들도 앉은 채 꾸벅거릴 때, 그제야 엿물은 눅진한 조청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대접에 조금씩 담아 식구들에게 맛을 보였다. 그 맛은 내가 생각하는 쫀득하고 달큼한 맛이 아니었다. 조청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제맛을 모르고 오히려 속만 아리다는 걸 알았다.조청은 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시골 형편이 다 어려웠기에 명절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대개는 설을 앞두고 조청을 고아 강정도 만들고 엿도 만들었다. 식구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손님 접대용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명절이면 손님이 많이 왔다. 고모부가 오시기라도 하면 꽁꽁 숨겨 두었던 맛난 것들이 상 위에 올랐다. 나는 그중 조청 종지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가져다드린다고 들고 왔다. 조청과 꿀이 같은 줄 알았던 나는 친구가 엄청 부러웠다. 그 귀한 꿀을 갖다주면 숙이는 틀림없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 같았다. 나는 샘이 나서 소문을 내기로 했다. 몇몇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삽시간에 반 전체에 말이 퍼지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쉬는 시간이었다. 숙이가 없을 때 친구들이 꿀단지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꿀단지는 보자기에 싸인 채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다. 겁도 없이 누군가 그걸 덥석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보다가 그만 단지를 떨어뜨렸다. ‘우짜노 우짜노’ 하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친구들과 나는 깨진 조각을 허둥지둥 보자기에 쌌다. 꿀범벅이 된 바닥을 걸레로 닦고 창문도 열었다. 교실로 돌아온 숙이는 너무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가 파했다. 다른 날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숙이도 나도 발끝만 보고 걸었다. 길가 묘지 옆 빈터에 꿀단지 조각들을 묻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비밀이란 걸 눈빛으로 알았다. 꿀단지가 깨어진 게 순전히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드린다고 소문낸 것도 나고, 그러면 선생님은 숙이만 예뻐할 거라고 흉을 본 것도 나였다.나는 겁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시시각각 쪼그라들고 있었다. 친구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두려움에 떨었고 식구들이 알까 봐 조마조마했다.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랐고 숙이 얼굴 보기가 멋쩍어 피해 다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가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던가 보다.숙이가 선생님께 드리려던 것이 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샘내지 않았을 것이다. 참기름이나 계란, 그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해도 심통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꿀이 정말 조청과 같은 줄 알았었다. 꿀은 먼 나라 것처럼 익숙하지 않았고 꿀이 더 비싸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조청 대신 엿밥을 주었다. 엿밥이 달콤하긴 했지만 조청에 대한 허기를 채워주진 못했다. 어머니 몰래 먹었던 조청의 맛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이십 년 전에 간혹 보였던 조청이 요즘은 수시로 구할 수 있다. 지금도 조청만 보면 와락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집에 있어도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꺼내서 병만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어 놓기 일쑤다. 가난하던 시절에 조청을 귀히 간수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겹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청 앞에서 흔들리는 걸음이 먹먹히 멈출 것이다, 나는.

2023-01-04

수산업의 힘, 불황을 이겨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일반적으로 계묘년은 지혜와 생존력의 표상이다. 음의 기운을 가진 계수는 어디든 흘러드는 작은 물로 약한 힘이자 동시에 지혜로 해석된다. 지지의 묘는 목의 기운으로 봄의 생동감, 동력 등을 뜻한다. 비록 약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의 모습이 계묘년의 의미로 풀이되는 이유이다.2023년은 계묘년의 표상답게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해라는 게 집단지성의 결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펼쳤던 재정, 금융 정책들이 부메랑이 되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높은 물가와 금리가 일상을 옥죈다. 동시에 지난해 있었던 많은 사건들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 3년이 만들어낸 뉴노멀의 새로운 기준도 여전히 2023년과 함께다. 지혜의 힘으로 넘고 극복하며 이겨내야 할 파고가 겹겹이다.지난해 임인년(壬寅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양(大洋)의 기운과 호랑이의 양기가 만난 해였던 임인년은 코로나의 엔데믹과 대통령 선거, 이태원 압사 사고 등을 거치며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특히 이태원 압사 사고는 세월호 사고 이후 가장 큰 시대적 아픔이 됐다.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다 무질서 속에 압사를 당하는, 그야말로 21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막혀 있던 ‘함께 즐기는 문화’에 대한 갈증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이태원 사건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됐고, 곧 사건 발생에 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또 다짐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말자고 말이다.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한 사회의 다양한 변수들을 상정하며 사건발생 원인과 변동성 등을 예측한다. 지난 해 발생한 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고, 코로나로 달라진 뉴노멀에 관한 단상들이 만들어낸 여파를 예측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야에서 예측이 빗나갔다. 카오스에 가까웠던 팬데믹은 그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바다의 변화무쌍함만큼이나 사회문화적 환경도 급변했다.코로나가 엔데믹으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뉴노멀이 사회적 인식과 다양한 제도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버텼는데, 다시 경제불황이라는 새로운 변동성이 나타나 두렵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과거의 패턴과 주기 등을 들어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만든 뉴노멀과 전쟁, 국가 간 무역마찰 등 변수가 얽히고 설켜 다양한 지점의 위기를 가리킨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물의 기운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지혜’라는 표상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지난해 수산업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며 글로벌 위기극복 가능성을 보여줬다.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사상 최초로 수산물 해외 수출 30억 달러(2022년 기준, 대략 4조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애초 2025년 수산물 수출액 4조원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발굴했던 해수부 입장에서는 무려 3년을 앞당긴 성과였다.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K-POP, K-MOVIE 등의 영향과 건강식품을 찾는 식문화 트렌드가 결합해 이뤄낸 결실이었다. 정현미 작가 특히 한국의 김은 미국 등에서 스낵으로 각광받으며 김 업계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기업이 등장했다.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낸, 순살 고등어를 진공 포장해 수출한 업체 역시 급성장했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수산물의 변신이 수출 증대에 큰 몫을 한 셈이다.바다는 수산업과 여행·관광업, 항만물류 등 다양한 산업경제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바다를 둘러싼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경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주축으로 대접받는다. 올해도 이 분야 경제 주축들이 제 역할을 해내며 건실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수산업 뿐만 아니라 해운업도 뉴노멀을 적응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지혜는 위기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토끼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3곳에 도망갈 굴을 파놓는다고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어원이다. 올해는 우리에게도 이 같은 토끼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우리 모두 지혜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웃음을 즐기는, 그런 한 해가 되길 희망해본다.

2023-01-04

여당의 총선 D데이 벌써 시작됐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2023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는 권성동·안철수·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유력 당권주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다음 달 초 당 대표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국민의힘 책임당원 40%가 밀집한 대구·경북의 ‘당심(黨心) 잡기’에 나선 것이다.새해에는 큰 선거가 없지만, 여당은 3·8 전당대회를 계기로 내년 총선공천이 연초부터 민감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선 총선승리가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그날부터 식물정부로 전락한다. 그런만큼 3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며 선거전반을 진두지휘한다.국민의힘 당권레이스는 현재까진 친윤(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지난달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국민의힘은 친윤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공감에는 여당의원 115명 가운데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당대회 룰 개정에 따라 당 대표는 100% 당원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돌발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공감이 미는 당권주자 중 한 명이 대표가 될 공산이 크다.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민심을 광범위하게 얻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권성동·김기현·안철수·윤상현·조경태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정도다.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최근 방송에 출연해 “당 대표에 도전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당권레이스가 친윤계만의 리그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여당의 전당대회가 특정 계파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총선과 결부시켜보면 부정적이다. 당권레이스가 현 판세대로 지속돼 친윤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강성지지층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려면 2년 전 치러진 6·11 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최근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이 ‘당 대표 후보 수도권 출마 공동선언’을 제안하고,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70석 이상, 총 170석 이상 하려면 수도권 지도부로 정면 승부해야 한다”며 공감을 표명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국민의힘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121석 중 16석(13.2%)을 얻는 데 그쳐 수도권 의석 탈환이 최대숙제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연말 언급한 차기 당대표 3가지 조건론(수도권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 청년층 지지를 얻는 인물, 안정적인 공천을 할 수 있는 인물)을 항상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

2023-01-03

기적의 글꼴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의 글씨체가 이처럼 유명해질 지는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지난 2020년 칠곡군이 동네 어르신을 상대로 문을 연 성인문해교실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글을 깨친 400여 할머니 글씨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을 제작한 것이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가 즐겨 애용되고 있다.신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에 보낸 연하장에도 칠곡 할매 글씨체가 사용돼 또 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연하장에는 “위 서체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교실에서 글씨를 배운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칠곡군 할매 글씨체는 담당 공무원들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2020년 글꼴로 제작됐다. 이후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연이어 탑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 국립한글박물관에 칠곡 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가 상설 전시되면서 관광객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전국적 유명세도 타기 시작했다. 박물관측은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의 한 발자취”라고 높이 평가했다.할머니들의 글씨가 글꼴로 제작되면서 당시 칠곡군수는 할매글꼴로 명함을 새겨 돌리고 식당에서는 안내문의 글씨체로 이를 활용했다. 포항 해병대는 “신병환영”이란 현수막을 내걸며 칠곡 할매글꼴을 사용하기도 했다.칠순이 넘어 팔순에 이른 어르신들이 생애 처음 배워 쓴 삐뚤삐뚤한 한글 글씨체가 이처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일찍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한과 삶의 무게가 글씨 속에 고스란히 스며져 있은 탓은 아닌지 모른다. 질곡의 삶을 산 우리시대 할머니의 애환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3

다시 또, 새로운 시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김없이 또 한 해가 밝았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연도가 바뀌는 새해의 첫날에 뜨는 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움과 처음에는 신선함과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을 새로움으로 처음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아침 뜨는 해는 어제와 다르고 어제 본 강물은 오늘과 다르듯이, 날마다 새롭고(日日又日新) 처음과 같은 마음과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조롭고 낡은 일상의 반복 같은 지루한 나날같아도, 기실은 매순간 무엇인가가 변화하고 나타나거나 소멸하면서 시간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첫 시작을 잘해야 어떤 사물이나 경기, 시스템 등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다. 예컨대 옷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이 제대로 입혀지듯이, 길을 걷거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처음의 방향이나 시도가 분명하게 잡히고 길목에 제대로 들어야 목적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그만큼 첫출발이 중요함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새롭게 바뀐 새해 첫날에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거나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힘찬 새출발을 기약하는 걸까?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처럼, 일단 첫 마음으로 확고하게 다짐하고 쌈박하게 첫발을 내디뎌야 의지를 줄기차게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안도하는 모양새다.새해 첫날의 이른 아침, 꼭 1년만에 형산갓바위를 다시 찾으니 과연 예년 못지않게 해맞이객들로 붐볐다. 운무가 끼어선지 여명은 밋밋했고 형산강 하류의 물길과 주변의 시가지는 베일에 싸인 듯 흐릿하기만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솟아오른 계묘년 태양은 가뜩이나 상기된 듯 발그스름했지만, 사람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도를 하거나 연신 사진으로 담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필자 역시 준비해간 연하장을 펼치며 촬영하는 나름의 ‘해맞이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우연찮게 지인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었다. 서로 몇 마디 새해인사와 덕담을 건네면서 ‘밝고 희망찬 새날’ ‘좋은 일로 껑충껑충 뛰는 힘찬 2023년’‘遠禍召福(원화소복)’ 등의 붓글씨로 적힌 연하장을 건네주며 신년의 다복과 평안을 기원했다.“첫눈, 첫사랑, 첫걸음/첫 약속, 첫 여행, 첫 무대/처음의 것은/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숨어 있습니다//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다시 살게 하십시오//새해 첫날/첫 기도가 아름답듯이/우리의 모든 아침은/초인종을 누르며/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 손님” -이해인 시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중1년이라는 기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시간의 선물을 본인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이 달라지게 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이듯이, 하루하루 저마다 새롭게 내딛는 발걸음이 일년 내내 옹골차고 야무지길 기대해본다.

2023-01-03

2023년, 대한민국의 첫 과제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얼마 전 포항시에서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주자의 주민등록을 포항시로 옮기는 사업을 추진했었다. 반짝 증가하던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결국 지난해 6월에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역소멸의 문제가 심각하다.최근 통계청의 데이터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2012년 1.30에서 시작해 1.19, 1.20, 1.24, 1.17, 1.05, 0.98, 0.92, 0.84, 그리고 작년 0.81. 지난 10년간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의 수를 나타낸다. 합계출산율이 1인 사회는 남녀가 결혼해 한 아이를 출산하는 사회이다. 또 그 아이는 자라서 다른 부모가 출산한 한 아이를 만나 결혼해 또 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 사회에서는 양육의 부담을 축소한 대가로, 윗 세대를 부양하는 부담은 세대를 거듭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존의 생활방식, 도덕과 가치로는 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위기의 사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소득수준이 높아졌지만, 구성원들의 행복 지수가 떨어지고 정신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우리나라 자살율이 그 대표적인 지표이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청년 세대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를 그들에게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두 번째 통계청 데이터는 2021년 광역지자체별 합계출산율이다. 최저는 서울시 0.63, 이어서 부산시 0.73, 대구시 0.79. 반면에 최고는 세종시 1.28, 이어서 전남 1.02, 강원 0.98. 인구가 밀집되고 소득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는 출산율이 낮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안정적인 세종시에서는 예외적으로 높다. 오늘도 경쟁적이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고소득과 편의를 향해 청년들이 몰려가고 있다. 그런 청년들을 지금까지는 대도시에서 수용해왔으나, 이제 그 수용력이 포화에 이르고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청년들이 돌아와 경제생활을 하며 머물 매력적인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일어나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창의적인 제도와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2023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첫 과제는, 지금의 청년들과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 청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주춧돌을 놓는 것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존재해야 경제성장도 사회정의도 자유민주도 민족통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작을 한 해 더 늦추면, 회복과정에서는 두 해 이상의 고통을 다음 세대에 남기게 된다.청년들이 다시 꿈꾸고 활짝 웃는 사회, 그런 2023년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2023-01-03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만?

또 한 살 먹었다. 아….연말 내내 독감을 앓느라 새해가 된 줄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약 먹고 빨래 돌리고 방 정리도 하고, 아파서 하지 못했던 설거지며 온갖 잡무를 한바탕 해치우고 잠깐 숨 돌릴 겸 TV를 켰다가 오늘이 1월 1일인 걸 알았다. 앓아눕는 동안 시간 감각이 마비된 건지, 여전히 12월의 어디쯤인 것 같다. 왠지 나 혼자 외딴 시간 속을 헤매는 기분. 어쨌든 새해구나. 한 살 더 먹었네.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십 대 때에는 새해 인사와 덕담에 핸드폰이 터질 것 같았는데 올 해엔 그런 연락도 뜸하다. 왠지 2022년의 인간관계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새해 인사도 별로 못 받을 만큼 인간관계를 소홀히 했구나! 평생 새해 인사나 덕담 같은 걸 성실히 하지 않은 업보(?)를 이제 돌려받는 것 같다. 홀가분하다.사실 난 연말 연초의 분위기가 좀 그렇다. 좋다 싫다 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든다. 어딜 나가도 사람으로 넘치고, 다들 억지로라도 신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호들갑. 그 단어가 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해를 끝낸다는 건 분명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는 아닐 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일을 신나는 축제처럼 보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억지로 슬프고 괴로운 일들을 잊으려고 술을 퍼붓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기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연말 모임에 최대한 불참을 했더니, 몸과 마음은 편하다. 독감이 좋은 핑계가 되었던 것 같다.작년 한 해는 참 정신없었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 그 전에도 돈을 벌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적은 돈이나마 월급을 받는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물론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대출금이며 할부금이며 공금이며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다음 달에도 비슷한 돈을 번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안정감을 줬다.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기분. 이제, 원하는 걸 하나씩 마련하고 좋은 걸 하나씩 가져도 된다는 사회의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전셋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제는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며 차를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통장 잔고는 항상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정감에 기분이 제법 묘하다.안정감.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사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을지 모르지만), 대신 건강이 심히 안 좋아졌다. 학기 내내 수업과 원고 마감에 치여 살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 수준이 되어 이상한 불면에 시달릴 즈음부터는 자기 전마다 술을 마셨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덕분에 영상 실조라는 어이없는 진단도 받아봤고, 골다공증 초기라는 황당한 진단도 받았다. 그런데도 마음은 전보다 편하다니. 정말 묘한 기분이다.사실 병원에서 좋지 않은 진단 결과를 받았을 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뭐랄까, 열심히 몸을 돌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공증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게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지금까지의 내 삶의 모든 불행과 사건사고가 내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은 탓인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감에 시달렸었는데, 몸이 심히 안 좋아지고 나니 그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삶에 불행이 찾아든다면, 그건 내 탓은 아니겠네. 내가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네 하는 기묘한 안심. 이걸 안심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긴 하지만.그래서 올 한 해에는 그다지 열심히 살지 않아볼 계획이다. 돈도 열심히 안 모을 거다. 자동차나 사고, 할부금만 갚을 정도로 살 거다. 진심이다. 열심히 사는 거 별로 좋은 거 아닌 것 같다. 아프기나 하고, 괜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나 시달리고, 몸도 망치고 기분도 망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하기나 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거고, 뭔가를 사려고 노력하지도 않아볼 계획이다. 작으나마 전셋집에 차까지 구했으면 됐지 뭘. 그런 기분으로 책방에 갔고, 시집을 두 권 샀다. 아. 만화책이나 살 걸. 왜 난 또 시집을 샀지? 직업병인 것 같다. 올 해엔 진짜 공부도 열심히 안 할 거고, 일도 열심히 안 할 거다. 그런 기분으로 또 마감을 하나 끝냈다.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2023-01-03

세차를 잘하는 어른

올겨울은 정말이지 겨울 같다. 이게 무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소리인가 싶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열렬히 소리치는 중이다. 세상에! 진짜 겨울이야!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서 양손을 모았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반짝반짝한 겨울. 춥고 차갑고 꽁꽁 얼어붙은 그야말로 겨울다운 겨울. 첫눈 오던 날엔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전망 좋은 카페에 있었다.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우리가 스노우볼 안에 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친애하는 이들의 와하하 웃는 얼굴과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 속의 김. 비딱한 모양의 눈사람 오너먼트와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 추운 날씨가 무엇보다 싫은 나조차도 설레게 만드는 그런 겨울.이토록 낭만적인 풍경 뒤에 남은 건 지극히 지난한 현실이다. 미끄러운 도로와 질퍽질퍽해진 거리, 더러워진 자동차다.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차 문에 손을 대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젠 진짜 세차해야지, 생각하면 눈 소식이 있고 기온은 영하를 웃돈다.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사회적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로 더럽다. 미루고 미루다가 안 되겠다 싶어 손 세차장을 찾았다. 신년이니까. 새로운 해에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 현실감각이 축소된다. 세차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도 머뭇거렸다.이렇게 추운 날 세차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까, 반신반의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나에게 세차란, 특히 내 손으로 하는 세차란, 너무도 어른의 영역이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나보다 삶을 더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 비단 세차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영역이란 각종 세금을 미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제때 내는 것. 출퇴근을 성실히 이행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낯선 사람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제도적 시스템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익숙하게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자동차세를 내며 이런저런 계약서를 검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손 세차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세차장에서 훔쳐봤던 어른들의 우아한 손놀림이 이젠 무엇보다 슬픈 몸짓으로 느껴진다. 지금처럼 입김이 솔솔 나는 한겨울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기 차를 쓸고 닦았던가. 아마 나와 같은 상태였겠지. 더러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나의 게으름을 증명하는 일인 것 같아 부끄럽고 동시에 나 자신과 주변을 정돈하는 일을 관성처럼 해내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기합을 넣어본다. 물을 뿌리는 동시에 얼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물줄기를 타고 구정물이 죽죽 흐른다. 세제를 풀어 커다란 차의 구석구석을 닦다 보면 땀이 나고 팔다리가 저려온다. 얼마나 비싼 차라고 이런 수고로움을 감당하나 싶다가도 다시 열심히 손을 움직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일찍 일어나서 억지로 머리를 감고 비척비척 출근길에 올라 잦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참아가면서 번 돈으로 산 물건이다. 이제 나는 노동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고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그렇지만 고작 그 정도를 경험했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그런 의문이 찾아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던가. 매 순간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넘쳐난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이젠 그런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결승선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내겐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고 그건 그만큼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얼룩을 발견했다. 미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나는 어쩜 이런 작은 일도 촘촘하게 완수하지 못할까.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신년 목표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세차를 잘하는 어른. 아니,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지저분한 차를 보면서 한숨을 쉴지언정 결국에는 세차장으로 터벅터벅 향하는 어른.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까치발 든 아이처럼, 한 뼘이 채 안 되는 높이를 얻었다는 것에 으쓱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성장에도 크게 기뻐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23-01-03

‘래빗점프’

남광현 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2023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고, 중국-미국 갈등도 더욱 고조됨에 따라 세계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에 빠져들었고,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암울한 환경들로 인해 2023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의 부제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부제에 걸맞게 2023년 예측된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들을 하나로 묶어 ‘래빗점프: RABBIT JUMP’로 명명하였다.‘RABBIT JUMP’를 구성하는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경제, 사람, 기술의 3가지 측면에서 그룹화되어 있다. 우선 경제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평균 실종’, ‘체리슈머’, ‘뉴디멘드 전략’ 등 3가지이다.‘평균 실종’은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있는 트렌드로 평균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한다. ‘체리슈머’는 소비심리 악화로 비용 대비 효용을 극도로 추구하는 트렌드로 최소한 매너소비자의 덕목을 갖추어야 함을 시사한다. ‘뉴디멘드 전략’은 불황기에도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트렌드를 표현했다.사람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오피스 빅뱅’, ‘인덱스 관계’, ‘디깅모멘텀’, ‘알파세대가 온다’, ‘네버랜드 신드롬’ 등 5가지로 가장 많다.‘오피스 빅뱅’은 재택근무와 자율출퇴근제 확산, 보수보다 업무환경을 선호하는 트렌드, ‘인덱스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에 색인을 붙여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의 트렌드를 표현한다. ‘디깅모멘텀’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 ‘알파세대가 온다’는 2010년 이후 출생으로, 태어나면서 디지털기기와 함께 생활하는 진정한 ‘디지털원주민’이 주류가 되는 트렌드, ‘네버랜드 신드롬’은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사회 트렌드이다.기술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선제적 대응기술’과 ‘공간력’ 2가지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기술이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된 트렌드, ‘공간력’은 가상공간보다 실제공간의 힘이 강력함을 보이는 트렌드이다. 10가지 트렌드는 2023년 대한민국의 역동적 변화의 단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트렌드 변화는 국내·외의 여러 가지 환경조건에 지배되어 나타나는 피동적 현상이다.지난 연말 정부가 내어놓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민간중심 활용 제고’ 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트렌드는 또 달라질 것이다.또한,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3대(노동, 교육, 연금) 구조개혁, 3대 경영혁신(금융, 서비스, 공공), 인구·기후위기대응, 경제안보강화, 상생·지역 균형 발전 등 미래 대비 체질 개선 사업을 착실히 수행한다면 언어적 수사에 불과했던 ‘래빗점프’가 제대로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3-01-02

공짜 버스와 천원 택시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청송군이 1일부터 지역에서 모든 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승객의 연령과 주소지 등도 상관없이 공짜다. 외지인에게도 무료다. 전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을 위해서다. 가뜩이나 오지 운행 버스회사에는 지자체가 손실금을 전액 보전하는 판이었다.경북 농어촌 지역에 등장한 공짜버스와 천원 택시가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의 이동 편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의 손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청송군은 앞서 2015년부터 경북에서 처음으로 천원 택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한 차례 1천원의 요금만 내면 읍면 버스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요금 차액은 지자체에서 지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던 오지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줄었다. 노약자들에게 응급상황 발생 시 빨리 대비할 수 있었다. 청송의 천원 택시는 2017년 국민이 뽑은 행정서비스 정부 3.0 대표 브랜드 3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경북도내에서 행복 택시, 천원 택시, 희망 택시, 별고을 택시 등 다양한 이름이 붙은 택시가 등장했다. 전남 등 지역에서는 100원 택시도 등장했다.행복택시는 운행 횟수와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오지마을이 많은 군 단위에서 행복택시는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시골 노인들의 의료시설 이용과 복지·문화서비스에도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천원 택시와 공짜 버스를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교통복지로 포장한 표 확보 수단 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참담한 농촌 실정을 생각하면 이런 포퓰리즘은 언제든 환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2

과메기와 기후위기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에 와서 과메기 맛을 재발견했다. 저장과 유통기술의 발달로 타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찬바람이 불면 찾아오는 햇과메기의 맛은 포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김이나 돌미역, 곰피 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썰지 않은 ‘짜배기’(배를 갈라 말린 것)를 한 손에 들고 베어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과메기 하면 막걸리와의 궁합을 떠올리기 쉽지만, 꾸덕하게 기름기 오른 제철 과메기는 참치 뱃살에도 밀리지 않는 진한 맛 덕분에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과메기는 주로 예전에는 청어, 최근에는 꽁치로 만든다. 그 시대에 가장 많이 잡혀서 저렴한 생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륙지방에서도 신선한 활어회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신선한 생선은 바닷가 사람들이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새우젓이나 북어 정도가 내륙지방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해산물의 전부였던 시대가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서민들도 육고기 맛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허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1)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북어를 널어 말리는 덕장에서 꼬챙이로 북어 눈깔을 빼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 육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식품을 접하기 어려운 시대였음을 잘 보여준다.‘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 및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 파악하는 것이다. EPA(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에 따르면 양고기 1kg를 소비하는 것은 39.2k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이것은 약 145km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고 한다. 양을 기르고 도축하고 운송하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메기의 탄소 발자국은 어떨까? 물론 원재료가 되는 생선을 잡는 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겠지만, 이후부터는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햇과메기를 산지 인근에서 소비한다면 온실가스 발생은 최소화될 것이다. 내륙에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짝 말린 해산물을 먹고, 해안가에서는 활어와 선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메기는 교통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귀한 해산물을 내륙지방까지 전하기 위해 고안된 ‘적정 기술’(해당 공동체의 상황에 맞춰 고안된 기술)이었다. 따라서 미식과 괴식 사이에 놓인 지역 특산물이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적정 기술의 차원에서 과메기를 재평가해야 한다. 과메기 자체를 신화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지혜와 절제의 미덕을 배우자는 것이다.계절과 지리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 채소, 푸짐한 육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이 탄소 발자국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메기를 먹으며 기후위기를 생각해 본다.

2023-01-02

묘(卯) 이야기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여기서 ‘계’는 10개의 천간 중 마지막으로 검은색에 해당하며, ‘묘’는 12개의 지지 중 네 번째 ‘토끼’를 뜻하기에 이 둘을 합쳐 올해를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토끼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에 놀란 듯한 표정 때문에 약하고 선한 동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하지만 동시에 밤하늘 달 속에서 방아 찧는 신비스러운 존재, 새끼를 여럿 낳는 다산과 풍요, 자라의 꾐에서 빠져나오는 지혜의 상징 등 다양한 함의를 지녀왔다.이 중 지혜의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문헌 상 삼국유사 열전 ‘김유신’조에,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 김춘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장왕의 총신 선문해에게 청포 300포(布)를 뇌물로 바치자 선도해가 취중에 들려주었다는 ‘귀토지설(龜兎之說)’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이 외에도 사기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교토삼굴(狡FA32三窟) 고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영리한 토끼는 앞일을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이는 맹상군의 식객, 풍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우선 맹상군을 위해 그의 돈을 빌린 설 땅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맹상군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곁에 두게 했고, 둘째로 이웃 나라에 맹상군을 적극 추천한 뒤 다시 본국 제왕에게도 이를 알려 경쟁심을 부추겨 이전보다 더 후하게 맹상군을 기용토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설 땅에 맹상군 선대의 종묘를 세워 민왕도 함부로 못 대하게 함으로써 맹상군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이처럼 영리한 토끼는 난세에 현명한 지략을 펼치는 법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끼가 이러한 지혜로움 때문만으로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혜는 급변하는 사회 속 혼자 살겠다고 교묘한 계책을 쓰며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두고 우린 지능적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지혜롭다’고 하진 않는다. 지혜로운 현자(賢者)는, 바로 앞을 보는 혜안과 더불어 때에 따라선 자기 한 몸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정신이 배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정도(正道)를 걸어가면서 자기희생적 모습도 보여주기에, 뭇사람들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토끼는 그런 점에서 희생정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금석물어집’에는 노인으로 변한 제석천이 원숭이, 여우,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는데, 토끼만 아무것도 못 구해 오자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져 ‘나를 잡수시오’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제석천이 토끼를 어여삐 여겨 달 속에 소생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토끼의 희생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바야흐로 새해 벽두다. 이때쯤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새해 소망 빌기로 한창이다.올 한해는, 허울뿐인 계획들, 소망들이 아닌, 계묘년 토끼의 지혜와 희생정신을 새긴 알찬 한 해 계획을 한번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

2023-01-02

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같은 사람 다른 느낌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어김없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같은 날의 연속이지만 한 해의 마감 그리고 한 해의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에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새해 첫날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일출 명소를 찾는 것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경상북도 상주의 근암리(현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출신의 선비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24세이던 1703년(숙종 29) 12월 29일에 한 해를 돌아보며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그는 이 시절 한창 과거시험 공부 중이었다. 때마침 권상일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승사(大乘寺)에 모여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과거시험을 위해 집중 대비하고 있었다. 권상일은 1707년(숙종 33) 28세에 창녕에서 치른 초시에 합격했고, 1710년(숙종 36) 31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오늘이 입춘이다. 올해도 다 지나갔으니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느낌이 특별하다. 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이달 22일과 23일에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아울러 일어났다고 하니 변고가 없는 해가 없다. 앞날이 걱정이다. 적과(賊科) 무리가 군정(軍丁)에 편입되고 제주도로 귀양 갔다고 한다. 이 무리의 죄는 만 번 죽어야 마땅한데도 지금 이와같이 죽이지 않고 감형해 주니 통탄할 일이다.”- 권상일의 ‘청대일기’1703년(숙종 29) 12월 29일 일기 중에서1703년, 이 해에 권상일은 대승사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해도 맞이했다. 당시는 음력이 기준이었으니 입춘을 전후한 즈음이 연말연초에 해당했다. 그가 남긴 일기에 의거하면, 권상일은 1710년 문과에 급제할 때까지 총 8번의 시험을 치렀다.(‘청대일기’는 1702년부터 1759년까지 일부 누락된 해를 제외하고 43년간의 일기가 전해진다) 20대 시절 권상일은 수험생으로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하고 또 공부했으며, 백일장과 거접(그룹스터디)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검증했다. 그리고 시험이 있을 때마다 도전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 합격을 성취했다.절에서 연말을 보내던 수험생 권상일은 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잠시 특별한 감상에 젖었다가 며칠 전에 일어난 천재와 시변을 되새기며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마지막에 강한 어조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적과(賊科) 죄인들에게 내린 벌이 가볍다고 생각해서였다. 적과란 과거 시험장에서 남의 답안을 훔쳐 자기의 이름을 써내던 부정행위를 가리킨다. 1699년(숙종 25) 가을에 시행된 식년시(式年試) 복시(覆試)에서 감시관(監試官)과 봉미관(封彌官) 등의 방조 아래 답안지가 뒤바뀌어 응시생 송성(宋晟)·박필위(朴弼渭)·이성휘(李聖輝)·이수철(李秀哲) 등이 부정으로 합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해 11월에 발각되어 한참 동안 시간을 끌다가 1703년(숙종 29) 10월 12일에 이르러서야 부정 합격자들을 멀리 유배 보내고 관노로 삼도록 결정이 났다. 당시 부정행위를 도모했던 인물들이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었기에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계에서 그 논란이 한참 지속되었던 것이다. 권상일의‘청대일기’12책 중 1책(1702~1704). 사진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 과거시험 공부에 온갖 노력을 쏟아붓던 20대 시절 어느 해 연말, 권상일은 시험부정 행위자들의 처벌이 가볍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만 번 죽어야 마땅할 죄’라는 기록으로 이 해 마지막 일기를 마무리했다.그의 시선이 그의 마음이 그 소식에 머물고 그 소식에 분노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시험 공부 때문에 집이 아닌 절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이 좀 더 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으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권상일도 그랬다. 이후의 일기에서 그는 어떤 연말은 평온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피곤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렇게 다르게 보냈다. 지난 해 어떤 일이 어떻게 있었는가. 내 삶은 한 해 동안 축적된 경험의 시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지속되고 있는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인가.최은주 경북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으로 국학기반본부 국학자료팀장을 맡고 있다.

2023-01-02

건축의 인용과 정치적 정당성

독일의 아헨 대성당. 독일의 고도 아헨(Aachen)은 프랑크 왕국의 위대한 왕 샤를마뉴(747∼814)가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왕의 거처와 통치를 위한 부속 건물들이 지어졌지만 지금까지 옛 궁터에 남아 있는 것은 왕실교회 밖에 없다. 아헨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796년 경 지어지기 시작해 798년 무렵 완성되었고 805년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축성되었다.아헨 대성당은 중세 교회건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직육면체의 바실리카가 아닌 비잔틴의 중앙집중식 구조로 지어졌다. 건축물의 중심에는 8각형 돔이 올라가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은 16각형이다. 내부 역시 비잔틴 교회건축에서 관찰되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아헨 대성당은 건축 구조나 장식 등에서 비잔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더욱이 이 교회와 거의 똑같이 생긴 교회가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에서 발견된다.아헨 대성당과 닮아 있는 라벤나의 교회는 산 비탈레(San Vitale)로 547년 완공되었다. 250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두 교회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는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누어지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의 기운이 쇠하던 394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두 아들에게 상속했다. 이듬해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국은 분열하게 된다. 로마가 동서로 나누어진 후 채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이 때 서로마제국의 수도가 라벤나였다. 493년 라벤나는 다시금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에게 넘어 갔지만, 540년 비잔틴 제국의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서로마제국의 옛 수도를 탈환했다. 산 비탈레 교회는 이때 지어졌다.중심에 돔이 올라가 있고 팔각형의 외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를 지닌 산 비탈레 교회의 내부는 비잔틴 특유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제단이 위치한 후진의 상단 좌우 벽면에는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황녀 테오도라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교회건축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 세속 군주가 그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라벤나의 역사성과 비잔틴 황제의 권위가 성스러운 공간과 연결되면서 상징적 의미가 피어난다.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라벤나의 산 비탈레 교회를 모방해 아헨에 교회를 세운 것은 비잔틴 황제가 지니고 있는 정통성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건축적 인용이다.키가 190cm에 가까운 건장한 체구의 샤를마뉴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고 항상 날카로운 보검을 지니고 다녔다. 47년의 통치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랑고바르드를 굴복시켜 북부 이탈리아를 통치했고, 대군을 이끌고 떠난 원정에서 작센을 정복했다. 서쪽으로 진격해 스페인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동쪽으로는 도나우 강 중부 아바르 족을 무찔렀다.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은 옛 서로마제국의 땅을 거의 회복했을 정도로 서유럽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샤를마뉴의 권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795년 로마에서는 레오 3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혈통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샤를마뉴는 교황과의 돈독한 친분을 쌓기 위해 막대한 축하 선물과 함께 ‘교회와 교황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내며 교황에 대한 충성을 드러냈다. 교황 역시 강력한 세속군주의 지원이 절실하던 차였다. 로마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3세는 늘 위협에 불안한 처지였다. 799년 4월 25일 교황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 했고 마침 샤를마뉴의 사절단 호위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구출해 준다. 교황은 이에 대한 답례로 800년 성탄절 날 샤를마뉴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불렀고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준다. 샤를마뉴의 정치적 정당성을 교황이 인정한 것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1-02

검은 토끼의 도약을 기다리며

김진국 고문 해가 떠올랐다. 검푸른 동해를 뚫고 2023년의 해가 떠올랐다. 이 해에 우리의 꿈이 담겼다. 우리의 희망이 새겨져 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에 시달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았다. 금리·환율·물가가 한꺼번에 오르는 ‘3고 현상’에 무역수지 적자와 가계부채 증가까지 더한 불황이 덮쳤다. 그렇지만 주변 여건이 어렵다고 좌절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단련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이제 그 긴 터널의 끝에 이를 때가 됐다. 개구리가 뛰어오르려면 움츠려야 하듯, 지난 3년을 발판 삼아 이제 토끼처럼 새로 도약할 때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킨 DNA가 우리에게 있다.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영리하다. 우리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여 풀릴 형편이 아니다. 좀 더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교토삼굴·狡兎三窟)고 한다. 간을 산에 두고 왔다고 속이고 살아난 토끼처럼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해답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판을 뒤집는 창의력이 필요하다.토끼는 온순하고, 평화의 상징이다. 지난 한 해는 무한 대결의 시간이었다. 안으로는 정치가 실종됐다.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 대표와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 마주 앉아 대화해본 일도 없다.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사사건건 발목만 잡았다. 스토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비틀고, 비아냥대고, 시빗거리로 삼았다. 한나라 두 정부의 내전 상황을 연상케 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의혹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혐의를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불법적인 침략과 인명피해를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심각하다. 국제 공조가 조기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매달리는 북한 정권의 무모한 도발을 끝내는 것도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다.토끼는 겁이 많고, 온순하다. 분에 넘치게 욕심내지 않는 것이 토끼의 미덕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를 안고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움직일 때 지지율도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는 빚이 적다.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좁은 인재 풀에 갇혀 ‘윤핵관’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을 좀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고, 모든 자리를 내 사람으로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토끼가 마음 놓고 풀을 뜯는 안전한 나라를 원한다. 북한의 도발로부터 안전한 나라, 핵으로 위협해도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미사일을 거꾸로 쏘고, 드론이 서울 상공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노동이 안전해야 한다. 자본도 노조도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으로 굶주림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거북이가 전령으로 일하는 게 공정이 아니다. 전령은 발 빠른 토끼가 맡아 역할을 잘해 내야 모두 안전해진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공정하다.권력자의 성질대로 휘두르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경쟁자의 손을 잡고, 상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현행 선거법은 위성정당을 낳은 법이다. 선거법과 헌법을 10여 년째 만지고 있다. 이제는 매듭을 지을 때다.토끼는 생명력이 뛰어나다. 임신기간이 30일에 불과하다. 한배에 새끼 4~12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6~7개월만 자라면 임신할 수 있다. 놀라운 번식력이다. 지혜와 생존력은 현 정세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토끼의 기운을 빌려 어려운 국내외 환경을 이겨내고, 경제가 부활하고 재도약하는 기회의 해로 만들자.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3-01-01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으로 살아간다. 꿈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열매를 맺는다. 꿈을 잃은 미국 피츠버그시 베들레헴제철소는 자만과 매너리즘에 젖어 백 년의 부귀영화를 접고 2001년 6월에 문을 내렸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인 기업은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계묘년(癸卯年) 새해는 검은 토끼 해로 사람의 지혜를 뜻하는 검정과 풍요를 상징한다. 지혜와 풍요의 계묘년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새로운 꿈을 설정하고 즐거운 도전을 해보시기를 기원해본다. 미래의 꿈을 향한 도전,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필자는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며 어디까지나 자기창조라는 주관을 갖고 살아간다. P사가 운영하는 교육재단의 고교에 전국모집 1기생으로 입학했고, 입사 후는 일본 유학의 꿈을 갖고 IMF 이후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일본어 독학과 새로운 도전 속에 2000년 오사카 소재 철강대학 재료공학과에 합격했다. 기계, 전기, 재료, 정보처리, 지진에 대응하는 구조공학과 등 5개 학과 880명 수준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하여 일본 S사 기업생을 제치며 유학생 최초로 당선되었고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하기도 했다. 유학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다. 학업을 계속하여 기업혁신을 연구하며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제조업의 다양한 업종에 컨설팅과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최근에는 전혀 새로운 업종이라 할 수 있는 P사의 사내 식당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W사 컨설팅을 시작했다.‘적자를 흑자로 돌려달라’는 요청에 처음엔 설렘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지만 경영학 전공과 기업혁신 진화원리를 연구한 것이 요식업까지도 경영진단과 방향 제시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한 조리업의 특성에 맞게 종합체계를 완성하여 개선활동의 이정표를 만들었고 고객의 격과 식당 운영의 격, 경영의 격을 올려 W사는 흑자는 물론 안전사고 없고 일이 편리한 조리장이 완성되고 회사의 격 향상에 일조를 했다.혁신 선진기업 일본 도요타의 개선활동은 자동차 조립 프로세스가 정의 되어 있고, 공정별 표준작업에서 시작해서 표준작업으로 끝난다. 즉, 작업표준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하면 한단계 발전하는 표준작업이 완성되고 또 제로베이스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지속적인 개선활동을 통하여 생산프로세스 수준을 높이고 경쟁력 확보와 수익성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이렇듯 혁신이 성공하는 데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표준프로세스 정립이다. 개선은 프로세스로 시작하여 프로세스로 끝난다. 둘째, 프로세스 속의 공정별 작업표준화이다. 표준작업은 또 다른 개선의 테이블이다. 셋째, 지속적인 낭비발굴과 개선으로 프로세스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서 미래를 향한 꿈을 설정하고 도전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지속가능 경영의 비결인 것이다.필자는 아직 꿈이 멈추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꿈의 종합 결정체는 이제부터다. 새해에는 1인 기업 미래혁신전략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성을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 기여에 도전한다.

202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