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정치란 정치에서 특정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정치를 말한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자유라는 단어를 수없이 강조하였다. 자유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이며 민주사회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가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에 추종하는 기회주의 세력을 자유주의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20세기 후반 칼 포퍼는 ‘열린 사회의 적들’에서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개방된 사회의 적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최근 반국가 세력에 대한 규정과 인식, 이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 요구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다.
누가 우리 사회의 반국가 세력이며 이의 청산은 가능할까. 정치 공동체의 갈등을 이념의 투쟁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는 정치에서는 협치나 화합을 기대할 수 없다.
이념을 앞세운 갈라치기 정치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극한 대결의 정치를 조장한다. 반국가 세력을 제거하자는 이념정치는 진영 간 대결을 더욱 확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최근 반국가 세력은 1+1이 2가 아닌 100이라고 선동 선전하는 세력까지 포함시켰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의 범주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야당이나 노동계나 시민운동 단체까지 포함시킨 듯하다.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체제를 공산 전체주의로 간주하고 반국가 세력으로 질타함은 반대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정부 비판 세력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지나친 논리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다원성에 배치될 뿐 아니라 여야 상생과 협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극한 대결의 정치에서는 참된 정치는 실종되고 승리를 위한 마타도어나 흑색선전이 난무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괴담이나 가짜 뉴스는 확대 재생산되고 정치적 진실은 가려져 왜곡될 뿐이다.
흔히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 한다. 이념을 앞세운 국내 정치는 가치외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여기에서 전례 없는 한·미·일 3국 안보 및 외교적 결속이 선언되었다.
국제 정치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이 통용된 지 오래다. 해방 이후 전통적인 한미 동맹이 우리의 안보의 구심축이 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한일 간의 안보 협력과 군사훈련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독도 영유권 문제, 강제 징용 보상 문제, 위안부 문제, 간토 대지진 희생자 문제 등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본의 선의에 기댄 한일 간의 외교적 타결은 아직도 국민적인 정서가 용납지 못한다.
김정은과 푸틴의 군사협력, 한·미·일의 합동 군사 훈련은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동북아의 역 삼각 냉전 구도가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
한국 정치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여야가 공히 상대를 거부하는 투쟁과 대결의 정치, 진영정치에 매몰된 결과이다. 이념의 정치는 홍범도 장군의 평가에서 보듯 현대사의 해석뿐 아니라 핵 폐기 오염 수 등 환경 문제까지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철 지난 이념 정치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고, 야당은 팬덤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여당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정적 제거용으로 이용했던 맥카시적 정치 술책을 재사용하고 있다. 야당 역시 자신들이 부패스캔들은 묻어두고 강성 지지층의 선동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는 남북 체제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지 오래다. 상대를 공산 전체주의나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는 정치 프레임은 이제 통용될 수 없다.
여기에는 모든 정치 현안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이런 곳에서 정치적 갈등은 증폭되고 정치적 진실은 왜곡될 뿐이다. 주변에는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과 혐오주의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도 30% 대의 박스 권에 갇혀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지지율도 오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선수는 시합 중 시계를 봐서는 안 된다고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이미 4분의1이 소진되었다. 내년 4월은 대통령의 중간 평가인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정치’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
이쯤해서 집권 여당부터 대결의 정치를 지양하고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집권 여당의 이념적 갈라치기 정치, 야당의 열성적 팬덤 정치는 결과적으로 선량한 국민들을 포로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나. 내외의 경제와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여야 정치인들의 각성과 타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국민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의 대타협 정치의 결단이 요구된다.